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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9) - 강점 제1시기

-마산시의 첫 지도-

<마산부 관할구역도 / 馬山府管轄區域圖>

1913년 / 조선총독부官房總務局 / 조선총독부 / / 조선총독부 관보호외 / 서울대 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1914년 조선총독부가 단행한 지방행정구역 개편을 목적으로 1913년 12월 29일자로 발행한 것입니다. 총독부령 제111호로 도의 위치와 관할구역 그리고 부(府)와 (郡)의 명칭 및 관할구역 등에 관한 조정명령이었습니다.

이 때 개편된 마산부가 사실상 마산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지도는 마산시의 첫 지도가 되는 셈입니다.

이 행정구역개편에서 마산부에는 관할구역으로 마산포각국거류지일원, 외서면의 완월리, 신월리, 월영리, 자산리, 서성리, 성호리, 중성리, 성산리, 동성리 및 오산리, 상남리, 교방리의 일부가 포함되었습니다.
지명을 이렇게 소개하였지만 사실은 앞서 포스팅했듯이 1910년부터 이미 원마산에도 한국식 지역지명 대신 일본식 정명(町名)으로 변경되어 있었습니다.
2011/02/28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7) - 개항이후

같이 단행된 관할구역 획정에서 창원군 부분에는 마산부 부내면, 상남면, 하남면, 동면, 북면, 내서면, 구산면, 대산면, 진동면, 진북면, 진서면, 양전면, 웅읍면, 웅동면, 천가면, 진해면, 웅서면, 외서면 중 마산부에 속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관할구역에 관한 지도이기 때문에 마산부의 경계가 뚜렷이 나타나있습니다.
이 지도에 의한 마산부 경계는 동쪽으로 마산만 해안선을, 서쪽으로 대곡산과 무학산 정상을, 남쪽으로 율구미, 북쪽으로 오동교부터 노비산까지를 포함하고 있으나 서원곡은 제외되어 있습니다.

범례에서는 마산부의 경계선 및 도로․철도와 정차장․논․밭․산악․하천․바다․건물 등을 표시하고 있는데 도로와 건물 표시 때문에 당시 신마산의 원마산 쪽 진출 정도를 약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현재의 마산경찰서 부근까지만 개설되어있던 중앙간선도로를 보면, 1910년에 원마산까지 3m폭으로만 개설되었다가 1912년에 15m 폭으로 완전 개통되었는데 그것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마산 역 앞에서 장군교 방향으로 사선형의 직선도로 서편 안쪽은 건물이 대부분 들어선 것으로 나타나 있고 조계지의 고지대는 고운로(孤雲路) 아래까지만 개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지도의 마산부 경계를 현재 위성사진에 옮겨보았습니다.


지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제에 의한 정명변경이 있기 전 원마산 6개리를 비롯하여 교방리․상남리 등과 완월리․신월리․월영리의 위치와 경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인 박간방태랑(迫間房太郞)에 의해 시행된 남성동 매립공사는 완성되지 않은 형태이나 공사중 임이 뚜렷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 이미 육군중포병대대 입구(현 남부터미날부근)에서 시작해 신월계라 불렀던 전 마산극장 앞까지는 해안에 직선의 호안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마산상황을 알 수 있는 참 좋은 자료인데, 흠이 있다면 동쪽을 북쪽이라고 나타낸 방위표시의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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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1
  1. wood pellet mills 2011.08.02 19:29 address edit & del reply

    음.. 공감합니다. 어서 우리도 독도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할 텐데요. 그런데.. 우리 정부는 크게 손을 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런 극악무도한 일에 세계인이 알도록 홍보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 일을 해야합니다. 언론사, 정부,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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