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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74) - 강점제1시기

-마산포 최초의 수익용 매립-

馬山(1919年修正測圖)

1919년 / 육지측량부 / 조선총독부 / 1:10,000 / 柏書房 影印本 / 울산대 도서관

지난 주에 포스팅한 「馬山」을 보완한 지도입니다.

1916년 측도하여 1917년 발행했던 지도「馬山」을 1919년 제1회 수정측도하고 1924년 6월 25일 인쇄하여 6월 30일 발행한 것이 이 지도입니다.
따라서 이 지도의 도시상황은 1919년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저작권과 인쇄 및 발행자는 앞의 지도와 같습니다만 지도 가격은 인상되어 18전하던 것이 40전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영인본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삭제했는지 모르지만 이 지도에는 범례가 없다는 것이 앞 지도와 다릅니다.


지도에 나타나는 도시공간의 상황은 1916년 당시의 지도인 「馬山」과 거의 동일합니다. 1916년 이후부터 1919년까지의 시기에는 마산 도시공간의 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밀하게 검토해보면 약간 달라진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예를 보아 이 지도의 제작이 매우 정밀하게 수정측도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 두 그림을 보면 매립 이후의 남성동 상황변화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1916년에는 우편소와 몇몇 건물만 있었을 뿐이었던 이곳에 도로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전과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두 지도의
남성동 매립지와 현재 위성사진을 비교한 그림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해 놓은 곳이 남성동파출소 자리입니다.
불과 100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도시가 얼마나 변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들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길 중에서 어느 길이 옛부터 있었던 길인지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두 지도에 나타나는 남성동 매립지의 도로망도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6년에는 큰길만 있었지만 1919년에는 좁은 길까지 뚫렸습니다. 건물도 그 사이 많이 들어섰습니다.
매립지 시작 부분에 '우편소'라고 적혀있는 건물이 지금의 남성동 성당 앞에 있는 남성동우체국입니다. 물론 지금 건물은 다시 지은 것이고요.

이 남성동 매립은 일제가 시행한 최초의 수익목적 매립입니다.
이 매립 이후 해방 때까지 마산 해안에는 땅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일본상인들의 매립이 줄을 잇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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