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치가 시작되다>
3․1운동을 정점으로 시작된 문화정치가 마산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에서도 소위「문화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문화운동이란 실업과 교육 장려를 맨 앞자리에 내 세워 회사와 학교의 설립과 확충을 통하여 대중을 조직화하고 강연회․토론회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서구적 근대의식을 계몽한다는 사회운동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20년 6월경, 마산지역 문화운동의 구심점을 표방한 마산구락부가 300여 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습니다. 참여자 중 간부들의 상당수가 원마산 어시장의 객주를 비롯한 상업자본가였습니다.
이들은 세대와 이념 전력 등의 차이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교육․체육․계몽․교류활동 등에 많은 힘을 쏟아 그야말로 문화운동을 실감케 했습니다.
이 문화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마산의 경제인들은 학교설립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이 1922년에 수학연한 3년제 실업계학교로 설립한 마산공립상업학교의 설립을 지원한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마산학원(마산구락부에서 1920년 설립), 배달학원(불교진흥회에서 1921년 설립), 월영노동야학교(신마산청년회에서 1921년 설립)도 들어섰습니다.
이 밖의 교육시설로 1924년에는 의신유치원이 개원되었고, 1915년 개교했던 마산공립실과여학교는 1921년 마산고등여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마산고등여학교는 현 마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1922년 설립된 마산공립상업학교 / 전 마산상업고등학교, 현 용마고등학교>
<1921년 개교한 마산고등여학교 / 현 마산여자고등학교>
교육운동 뿐만 아닙니다.
19세기 말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일본에서도 전개된 폐창(廢娼)운동도 마산에서 전개되었습니다. 1
1924년 마산청년회에서 미신타파 및 공창폐지운동을 한 것이 그것입니다.
마산청년회는 일본인 송본다장(松本多藏)이 설립한 민간단체로, 회원 수가 많았고 회원간의 친밀도도 높았다고 합니다. 명치절에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벚꽃이 필 무렵에는 마산시내에 벚꽃 장식을 하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사회봉사 단체였습니다.
동아일보 1924년 7월 20일자 3면 7단에 「마산청년회, 미신타파․공창폐지 결의」라는 제목으로 마산청년회의 활동이 기사로 나와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세계적 추세였던 사회주의자운동과 노동운동 및 청년운동이 마산에 그 첫 선을 보인 것도 이 때였습니다.
개항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된 일본인의 포교에 힘입어 1920년대에는 상당한 규모와 종류의 일본 종교가 마산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마산신사(1909년 3월)를 필두로 조동종 무학산복수사, 서본원사파 승원사, 마산정토종 포교소, 일련종 묘국사, 환주산 홍법사, 일련정종 등이 그것입니다.
<일본 사찰 복수사>
이처럼 문화운동이 활발했지만 1922년 후반부터 마산학원의 경영난과 기독교회의 보수화, 특히 1920년경부터 시작된 전후 불황이 지역경제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마산지역의 문화운동도 조금씩 침체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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