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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9.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92) - 강점제2시기

<마산상공회>

1914년에 조선인 상업회의소가 와해되고 1908년에 설립된 일본인 상업회의소도 그 뒤 흐지부지된 후 1920년대까지 지역의 상공인들 단체는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마산간담회」「마산경제회」「마산번영회」라는 상공인 모임이 있긴 했지만 두드러진 활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6년 7월 22일 마산공립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에서 개최된 마구(馬邱/마산대구)철도촉진기성회를 조직하기 위한 부민대회에서 지역의 상공인 모임이 필요하다고 제안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들이 1929년 4월 24일「마산상공회」가 창립되었고, 이후 마산 경제의 주축을 이루는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1938년「조선상공회의소령」에 의한 마산상공회의소의 설립인가가 나던 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최근 마산상공회의소가 펴낸 '사진으로 본 마산상의 111년의 흐름'이라는 책에도 마산상공회의소라는 이름으로 마산의 상공인들이 단체를 만든 때가 1938년 7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회장으로 표기된 서전목총시(西田木惣市, 西田嘉惣市로 기록된 곳도 있습니다)는 1907년 홍문동에 설립한 서전주조장의 창업자입니다.



「마산상공회」의 회칙에 기록된 사업내용을 통해 당시의 마산상황과 주요현안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馬邱철도 부설 촉진
2) 長尾半兵衛氏 계획의 통영선 실현 촉진
3) 마산상업학교의 학년연장, 학급증가 건
4) 경전남부선 중 순천 경유를 하동, 화개, 구례 경유로 변경 청원
5) 마산-부산간 직통열차 운행 증발 건
6) 일본과의 직통항로선 운임 인하 건
7) 마산중학교 설립 촉진
8) 남지교의 架橋等背面 교통 확충 건
9) 마산항 선차(船車)연결시설 확충 건
10) 상업은행지점 설치 건
11) 일본 북구주(北九州)와의 선로 개설 건
12) 마산세관 출장소 승격 건
13) 합천 직통통로 개설 건
14) 전력요금 인하 건
15) 창원 추도(墜道) 촉진 건
16) 마산-거제도 연안 연결 항로 개설 건
17) 마산-삼랑진간 기동차 운행 건
18) 된장, 간장 운임 할인 건
19) 청주 운임 할인 청원
20) 석발미(石拔米) 증산 건의
21) 상업창고 설치 건의

이미 식민지배 한 세대가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라 다음 세대의 교육에 관한 내용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 마산의 경제역량을 외부로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된 후 세 도시의 상공회의소도 ‘창원상공회의소’ 간판을 달았는데 마산상공회의소는 ‘마산상공회’로 이름을 바꾸어 마산지역을 커버한다고 합니다.
우연의 결과겠지만 1929년부터 사용했던 그 명칭이 되살아난 셈입니다.<<<

Trackback 2 Comment 1
  1. grv1fhvg4y3 2013.12.11 04:56 address edit & 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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