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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강점3시기 마산의 교육기관>

1941년 간행된『약진마산의전모(躍進馬山の全貌)』와『마산개항백년사』에 게재된 내용에 의하면 1930년대 마산의 교육기관은 공립으로 마산공립중학교․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공립고등여학교가 있었습니다.

반면 사립으로는 창신․호신․의신학교․마산노동야학교 등이 있었으며 초등교육기관으로서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마산성호공립심상소학교․마산완월공립심상소학교가 있었습니다.

유아교육기관으로는 사립마산유치원과 사립대자유치원 등 몇 개의 시설이 있었으며 종교기관에서 사회교육차원에서 행한 교육시설도 있었습니다.

현 마산고등학교의 전신인 마산공립중학교는 1936년 개설하였으며 입학생의 대다수가 일본인이었습니다. 한국인 학생은 친일파 자제이거나 성적이 우수한 극소수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몇 년 전 용마고등학교로 바뀐 마산공립상업학교는 대부분 한국 학생들이었습니다.

1922년에 개교한 마산공립상업학교는 1939년 수학연한 5년제 상업학교로 바뀌었으며 1940년에 이르러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이 학교는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수학연한을 4년으로 단축하였고 1942년에는 신입생의 50%가 일본인 학생으로 채워지기도 했습니다.

다음 사진은 마산공립상업학교가 현재 자리로 옮기기 전 건물입니다.

 

 

마산공립고등여학교는 1927년 수학연한 5년제의 고등여학교로 개정한 현 마산여자고등학교의 전신입니다. 입학생은 주로 일본인이었으며 한국인 입학은 매우 어려워서 전체 재학생 수의 20%에도 못 미쳤습니다.

1932년 공사비 36,000원을 들여 기숙사를 지었는데 이 기숙사가 전국의 모범이 되어 각 지에서 온 시찰단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산고녀는 1936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특히 1937년에 준공한 대강당은 기숙사와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드높아 부인회 등 그 밖의 집회에도 자주 이용되어 부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민(府民)이란 당시 마산에 살았던 일본인을 말합니다.

다음 사진은 마산고녀 이전 개교기념식 장면입니다.

 

 

 

하지만 창신학교에서 고등과로서 분리된 호신학교(濠信學校)가 1932년, 창신학교는 1939년에 문을 닫았고 여학교였던 의신학교도 이 시기에 문을 닫았습니다.

노동야학은 강점3시기에도 활기가 넘쳤습니다. 사설교육기관이었던 마산노동야학은 그 전통이 깊습니다.

1907년 시작된 마산노동야학은 1931년에 교사를 신축했습니다.

옥기환교장이 지역유지들과 협력하여 6,000엔의 교육기금을 마련하여 중성동에 있는 전답 1,000여 평을 사들여 여기에 5개의 교실과 사무실․회의실 및 2동의 사택 등이 있는 신교사(新校舍, 전 영남자동차학원자리)를 지었습니다. 원래의 노동야학교이었던 창동 교사는 마산여자야학교의 교사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외에 일본인이 운영한 복수야학회도 있었습니다. 일본 조동종복수사(曹洞宗福壽寺)의 사회교화사업으로서 광영박명사(光英博明師)가 경영하였습니다. 한국인 자제를 대상으로 했으며 1924년 교사 신축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성호초등학교인 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학교명이 마산성호공립심상소학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인 가정에서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통학거리 등을 감안하여 완월동에 분교를 설치하였는데 이 분교는 1938년 마산완월공립심상소학교로 독립 개교하였습니다. 지금의 완월초등학교입니다.

1904년에 일본인거류민회에 의해 발족된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는 1936년 4월에 마산공립중학교가 설립된 이후 고등과를 폐지하고, 1938년경부터 마산포(원마산)에 사는 일본인 자녀 1․2․3학년에게 통학상의 편의를 위해 자산동에 분교를 두었습니다. 그 분교가 지금의 무학초등학교입니다.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는 일본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개항 직후부터 패망까지 운영된 마산 유일의 일본인 학교로서 현재의 마산월영초등학교 전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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