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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3.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강점제3시기인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마산관련 지도를 해제하고 그 외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마산 도시구조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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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山港平面圖*>

1931년 / 내무국토목과항만계 / 조선총독부 / 1:15,000 / 마산만매립서류 / 서울대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마산의 매립공사에 관한 도면으로, 마산시가지 전역이 비교적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간행연도인 1931년 이전에 이미 매립이 끝난 부분을 ‘기성부분(旣成部分)’으로, 현재 시공 중인 부분을 ‘공사중(工事中)’으로 구분하여 각기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매립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원마산 해안에 박간(迫間)의 매립지와 신마산 해안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에 의해 완공된 10,500여 평이 ‘기성부분’의 범례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개설 당시에 이미 대지로 확보되었던 세관부지 일대도 「기성부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제작과정에서의 오류로 보입니다.

반면에 지전원치(池田源治)와 영삼구간(永森久幹)이 매립하는 신마산 창포동 일대 2,200여 평 공사와 마산매축회사에서 시행한 66,000여 평의 대규모 매립공사가 ‘공사중(工事中)’으로 정확하게 표시되어있습니다.

매립도면이라 그런지 범례를 두어 방파제(BW), 물치장(L), 잔교(P), 공사중 등 네 가지로 구분해 놓았으며 당시 마산부 해안에 있었던 각종 시설이 잘 표시되어 있을뿐 아니라 수심도 상세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훗날 1940년경 일본인 죽본웅차(竹本熊次)에 의해 착공되는 오동동 매립지가 이 지도에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부터 계획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 착공이 왜 그렇게 늦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특히 마산부 내에 그 때까지 개설되었던 도로들이 자세히 표기되어 있어서 이 시기까지 도시개발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잘 알 수 있어서 도시변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지도입니다. 도면에서 알 수 있듯이 본 지도가 제작될 당시만해도 신마산 조계지 서측 경사지는 개발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상세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건물들도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신마산의 건물들은 장군천 부근까지 다가왔으나 장군천 이북에는 1911년 개통된 대로변에도 건물이 없습니다. 다만 현 시청 부지에 발전소만 있고 구도로(크리스탈호텔 앞 도로) 변에는 건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조계지에도 한국 사람들의 가옥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야흐로 대대적인 매립과 개발로 마산 도시가 급변하던 시기의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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