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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2. 1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향토의 교통도(鄕土の交通圖)>

1932년 / 마산공립보통학교 / / / 鄕土の硏究 / 경남대학교 박물관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필사본으로 당시 마산상황을 정리하여 간행한『향토의 연구(鄕土の硏究)』에 수록되어있는 지도입니다.

입체형식으로 그린 일종의 조감도인데 당시 마산의 도로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제기 마산 이야기 중 많이 등장하는 월포해수욕장의 위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이 지도의 자랑입니다.

월포해수욕장의 위치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이 많습니다만 이 지도를 보면 해수욕장의 위치가 신포동 매립지 쪽이 아니라 제2부두에서 중앙부두 쪽(현, 쌍용 시멘트 사일로 부근)에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어 달 전, 제일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배두이 선생님에게서 월포해수욕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주 어렸을 때, 흐릿한 기억으로 너덧 살 때였을 거라 했습니다. 현 장군교 인근에 집이 있었는데 가끔 해수욕장에 나간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위치는 전 마산시의회 바로 아래였다고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기억과 이 지도에 나타난 위치도 동일합니다. 맑은 물에 반짝이는 금빛모래의 잔상이 지금도 선생님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월포해수욕장과 관련한 동아일보의 기사를 소개합니다.

먼저 1931년 7월 19일 자 3면입니다. 아래 기사가 당시 신문의 원본입니다.

『마산 월포의 해수욕장 개시』라는 큰 제목 아래 「욕객에겐 긔차임도 할인, 아동 수영소도 별설」이라는 작은 제목이 있으며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후와 공기가 온화하고 명미하며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마산 월포해수욕장이 개시되었다. 지난 10일 오후 1시 마산신사(현 제일여고)에서 부윤(현, 시장)을 비롯한 5-60명의 관민이 모여 월포해수욕장의 개장식을 마쳤는바 연일 비가 계속되었으므로 해수욕장은 자못 한산하여 있던바 지난 15일부터는 욕객이 모여들어 번창한 중에 있다. 특별히 아동수영소를 별립하였으며 각지의 욕객을 흡인하기 위하여 욕객에게는 기차임금까지도 할인하는 동시에 시내버스를 욕장 입구에 까지 운전하는 중인바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수질과 모래 및 공기 모두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을 구비하여 있으므로 금년 하긔(여름)에도 자못 번창할 것을 예측한다고 한다」

해수욕장의 개장식을 신사(神社)에서 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다른 기사는 1934년 7월 5일 자 5면에 실린 기사입니다. 당시 기사의 원본입니다.

 

『때 만난 마산월포해수욕장』이라는 제목의 사진기사인데, 내용은 「여름의 바다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떠들썩거리는 판인데 마산 진해 해수욕장에도 벌써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욕객이 모여드는 판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하여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 때 한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위 두 기사를 보아 월포해수욕장은 당시 최고의 여름 휴양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월포해수욕장은 중앙부두 건설이 시작된 1936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외에 이 지도에는 각 동(당시는 町)과 주요 건물이 표기되어 있습니다만 약도 형식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도시를 파악할 수 있는 지도는 아닙니다.

신마산 부두에서는 대판과 고베 등 일본으로 가는 항로가 있고 마산포(원마산) 부두에서는 진해와 부산으로 연결되는 항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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