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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김형윤의 <마산야화> - 53. 우편국, 54. 화장장

by 허정도 2015. 10. 26.

53. 우편국

 

명치 32(1899년) 1126일 창원부 외서면 중성리(현 마산시 남성동 142 성남병원)에 그 당시 사정으로 부산우편국 마산출장소를 설치하고 우편과 일문(日文) 전보를 취급하다가 이것을 190281일 신마산 본정(本町) 서정목(西丁目)에 청사를 신축 낙성한 것을 시발로 구마산소(舊馬山所)와 완전 분리되었다가 마산국(馬山局)으로 승격했다.(1900415)

다시 1922년에 마산역 앞 일각(一角)으로 이전한 것이 현재의 사옥 그대로이다.

초대국장은 하합영길(河合英吉)인바 구역은 창원군 일부 구산면에서 내서면 봉암 등으로 시가지가 확장 됨에 따라서 창원군 3분의 1 범역(範域)을 미구(未久) 옹위될 가능도 없지 않을 만치 업무가 폭주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편집배를 모두 본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구마산 우편소가 19131219일 남성동 매축지에 국사(局舍)를 신축한 이후에는 본국과 동일한 업무로써 적행양우편물(赤行襄郵便物) 철도수송 및 인수, 우편물 수집 배달도 독자적으로 취급하였으나 해방 수년 앞두고 전신전화 취급 외는 전부 본국(本局)에서 인수하게 된 것이다.

  <1902년 월남동 4가에 건축한 마산우체국>

 

 

54. 화장장(火葬場)

 

서원골(書院谷) 조금 못가서 왼쪽 고개 목에 세워진 부영(府營, 市營) 화장장은 1937~8년 경에 신축한 것인데 본래는 완월동 좌편 산언덕에 있었다.

완월동 화장장이 설치되기 전에는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일본인 거류민의 사체를 다비(茶毘, 화장)로 처리하다가 점점 거류민이 증가함에 따라 1905~6년 경부터 전기(前記) 장소에 소규모의 목조건물을 세웠는데, 일본인 부락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네들에게는 적당했는지 모르나 하필이면 산자수명하고 마산만을 일모(一眸)에 조망할 수 있는 한인부락 코앞에다 설치했으니 남동풍이 불어올 때면 연돌(煙突)에서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연기의 악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쾌한 것이었다.

자자한 여론에 굴복한 후 부 당국은 드디어 지금의 장소로 옮긴 것인데, 30여 년간이나 비위를 참아온 한인의 강인한 인내력(?)도 그렇거니와 몰염치한 일본인의 소행은 얄밉기 짝이 없었다.

지금의 건물은 그들의 취향대로 된 것인데 중유연소식(重油燃燒式)으로 신장(新裝)했으며 전화도 그들이 기()하는 422(시니니-日語-죽으려)번을 비치했으나 해방 후 시청 사회과로 옮겼다가 없어졌다.

이 부영(府營) 화장장이 신축 이전하기 전후로 그 옆에 마산불교진흥회가 관장하는 신목(薪木)을 사용하는 화장장도 있었다.<<<

<1936년 건축한 화장장 / 현 합포고등학교 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