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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2. 09:0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0) - 강점제2시기

2010년 4월 8일에 시작한 연재가 오늘로 100회를 맞았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글을 올린 것이 그럭저럭 2년이 다되었군요.

보잘것 없는 글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산포와 신마산이 연결되다 - 중앙마산의 형성>

4) 문헌을 통해 본 당시 상황과 중앙마산의 도시계획

직전 포스팅에서 올린 중앙마산에 대한 문헌의 내용들을 정리해 보면 당시 중앙마산의 상황이 다음과 같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중앙마산의 범역은 신월천에서 장군천을 거쳐 척산교에 이르는 철도용지 내 시가를 뜻했다.

② 마산은 마산포․신마산․중앙마산이라는 세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마산포 방면은 한인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고, 신마산은 정비된 가로에 군인 및 관리를 상대로 하는 상점이 많으며 중앙부는 관아․학교․사원․철도소재지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사택이 많이 있다.

③ 1931년에는 중앙마산의 토지 5천 평을 경매했는데 그 부근에 매립도 5만평을 할 것이고 향후 중앙마산이 상업지 혹은 관공서지역으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에 마산뿐만 아니라 타지에서도 입찰에 응할 사람이 많았다.

④ 완월․신월 두 개 동을 합하여 일본인 360호 1,500인, 한국인 750호 4,0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⑤ 중앙 마산 중 일부 신마산에 접한 곳은 상황(商況)이 오히려 신마산쪽을 능가하지만 그 외는 대부분 철도용지를 차용한 전답인데 장군천 이북, 즉 현재 시청 남측의 우방아파트 지역인 중앙공설운동장을 포함하여 척산교에 이르는 이 지역 때문에 신마산과 원마산이 전혀 공간적으로 융화되지 않으며 도시 발전에도 장애가 되었다.

⑥ 도시의 서쪽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관공서의 위치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고 도시발전에도 지장이 많았는데 이에 대해 특히 원마산 주민들의 불만이 심했다. 이런 이유로 교통이 편리한 중앙마산으로 관공서를 이전해 줄 것을 부민들은 원했다. 그러나 일부 관리들은 이를 원치 않았다.

⑦ 부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930년 마산 우편국을 중앙마산으로 이전 신축하였고 같은 이유로 마산부청도 이전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⑧ 마산부가 중앙마산의 도시계획을 잘 세워 세 영역을 합쳐 하나의 대도시로 만들어야 하고 이 일이 머지않아 성사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⑨ 이런 연유로 부에서는 이 용지를 불하하는 대 개정을 실시하여 기본 조사를 마치고 총공사비도 계상(計上)하였다. 그 불용경지(不用耕地) 총면적 11,189.90평을 철도국에서 불하받아 이에 대하여 삭지(削地) 성토를 하고 도로 및 택지를 개설하는 계획이었다.

⑩ 장군천의 장군교 상부지역 일대가 田中 遜이 운영한 월포원이었으며 현존하는 장장군(張將軍)의 묘는 월포원 내에 있었다.

⑪ 1929년 이전에 이미 철도부지가 마산부로 불하되었다.

⑫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된 이후인 1929년경에는 속속 신건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부청과 공회당의 부지가 확정되었다.

⑬ 중앙마산 해면의 매축이 시행 중에 있으며 이 공사가 완료되면 중앙마산의 발전으로 마산 시가지에 큰 변화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1920년대 당시 중앙마산의 출현과 그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한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 실정이 반영되어 마산부에서는 중앙마산 조성을 위해 도시계획사업을 입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행정서류「마산시가계획인가의 건(馬山市街計劃認可ノ件)」이란 제목으로 계획․추진된 이 사업은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산시가계획인가의 건」은 '중앙마산 연재'에서 보여드린 각종 문헌에서 나타나듯이 중앙마산의 도시조성 여론이 확산되고 있던 1924년 10월 30일 신청하여 1925년 5월 6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인가받았습니다.

철도용지 해제를 전제로 추진된 이 계획의 공간적 범위를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은 중앙마산 도시설계도면인데 길이는 전 불로장유(장군로에서 마산여고 방향으로 꺾어지는 모퉁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여 장군천을 건너 지금의 마산세무서․마산법원․도립병원․미래치과를 지나 경남데파트까지입니다.

폭은 장군천을 기점으로 이북방향은 중앙간선도로인 현재의 장군로에서 장군교 정도까지의 직사각형 범위였고, 장군천 남쪽은 개항기 때 개설되어 마산 역과 연결되는 사선(斜線)도로 이북까지를 포함한 대 규모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장군로 동쪽(현․마산시청 쪽)도 길게 한 블록이 계획되었습니다.

두번 째 그림은 같은 축척의 현재 시가지 도면입니다.



도시설계의 내용은 원마산과 신마산의 시가를 연담화 시키기 위해 중간에 자리 잡고 있는 철도용지이면서도 사실상 철도용지로 사용되지 않는 곳을 관유지와 민유지 및 도로로 개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도로의 형태를 길이 방향으로는 7칸을 나눈 후 각 칸을 다시 소로를 이용해 두 칸씩 나누었으며 폭 방향으로는 3칸을 나눈 후 그 중 후면의 두 블록은 길이 방향처럼 소로를 이용해 두 칸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인가를 받기 위한 서류에는 당시의 설계도면인 이 그림 외에 축척 1/100의 단면도, 평면도 등까지 상세하게 그려서 첨부되어 있습니다.

중앙마산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은 총독부 인가를 득한 후 시행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지적도를 보면 계획도면과 같은 형태의 도로가 잘 표시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토지대장과 지적도를 확인해보니, 도로가 생기면서 토지가 분할된 시점은 1926년이었습니다.

지적도의 내용 중 계획도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토지를 분할하여 정리한 영역이 옛 진주가도 동쪽 부분(옛 크리스탈호텔 앞길과 중앙간선도로 사이)에만 우선 시행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토지대장에 나타나는 중앙마산의 토지는 1912년 사정(査定) 때부터 지목은「鐵(철)」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토지가 분할되고 지목이 바뀐 다음 해인 1927년에 장군로와 진주가도 사이의 모든 토지의 지목은「垈地(대지)」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렇게 조성된 중앙마산이 1929년 11월과 1931년 9월에 도립병원과 당 기숙사 및 지방법원 부지확보를 목적으로 세분화된 블럭을 합필하기 위해「馬山市街計劃路線 中 一部廢止ノ件(마산시가계획노선 중 일부폐지의 건)」이란 제목의 서류가 상정되어 추진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립병원은 현 도립의료원입니다.
1926년 현재의 위치에 2,6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여 연건평 438평의 병원건물을 신축하여 1927년 5월 10일 완공하였는데 이것이 마산 최초의 종합병원입니다.

또한 1929년 11월에 중앙동 2가와 3가의 도로 887m를 폭 20m로 확장하는 계획까지 세워 1930년 4월에 인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 도로 확장 계획은 이미 1929년에 분할해 놓았다가 이 때 총독부 인가를 받아 1934년에 도로로 지목을 변경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 이후의 각종자료(1947년 항공사진, 1954년 지도, 1965년 지도 등)를 보면 중앙마산의 이 도시계획사업은 장군로변의 한 블록 정도만 실제 시행이 되었으며 진주가도의 서쪽은 시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적도와 토지대장 등 법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그 때까지 실제로 도로개설을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한편 이 계획서류에 첨부된 도면에는 시가계획구역 외의 지역도 점선으로 도로계획을 하고 있는데, 1930년대에 실제로 시행된 도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 계획과 전혀 다르게 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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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상완 2012.03.16 15:06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의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스토리가 있는 문화 상품으로 개발한다면 그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 저를 속물이라 욕할 수도 있겠지만 그 흔적들이 사라져 가는 현장들이 안타까울 다름입니다...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하고 자문해봅니다...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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