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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07) - 강점제2시기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과 국종웅일(國宗雄一)의 월남동․창포동 매립>

신마산에 오래 동안 살아온 일본인 목재상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과 국종웅일(國宗雄一) 두 명이 시행한 매립입니다.
공사는 우리나라 경부선 철도부설공사에 참여한 후 재계에 두각을 나타낸 서울의 토건업자 황정초태랑(荒井初太郞)에게 의뢰하였고,
1926년 해면 매축 사업에 착수하여 1928년 12월 21일에 준공하였습니다.

이 매립에 대해서는 정부기록보존소에서 찾은「공유수면관계서류」의 「문서번호87-193, 필름번호87-560」을 참고하였으며 서류에는 아래와 같은 도면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위치는 현재 경남은행 신마산지점 남쪽 건너편 일대입니다.
세분해보면 옛 마산도기 및 진일공업사 등이 있던 월남동 1가 5번지에서 46번지의 1에 이르는 4,663평을 비롯해서 전 유원연탄 및 그 주변일대와 전 항등여관 주변인 월남동 2가 13번지에서 2가 60번지까지의 3,425평 그리고 유원산업(당시 昭和酒類) 주변의 창포동 1가 3번지에서 1가 38번지까지의 2,433평 등 총 10,500평의 넓은 땅입니다.

북쪽으로는 철도공사 시 일본군이 매립한 토지의 경계로부터 남쪽으로는 개항 초기에 건설했던 세관 잔교까지에 이르는 방대한 매립이었습니다.

이 땅들은 당시 마산과 진주 간의 사설철도를 운영하던 조선철도회사․소화주류․각 기선회사․그 밖의 일본인들에게 분양되었습니다.

매립 후 해안선은 석축안벽으로 호안되었고 소화주류 앞에는 소규모의 선착장이 들어섰습니다.

서류에 나타나 있는 매립의 목적은 ‘시가지조성’이었으며 매립공사 준공 후 도로․구거․물양장․교량․호안석원(護岸石垣) 및 공유지 100평은 국가에 귀속하는 조건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총 매립면적은 13,820여 평이었으며 위의 10,500평은 그 중 대지면적을 만한 것입니다.

이 매립공사는 1928년 2월 사석(捨石)공사가 종료되고 토석채취공사를 할 즈음 자금 조달이 어려워 이 공사의 시공자였던 황정초태랑(荒井初太郞)에게 매립면허권을 양도하였다가 매립 준공 직후 다시 목가전평삼랑(目加田平三郞) 개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하였습니다.

다음은 이 매립지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❽번으로 표기한 곳이 이 매립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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