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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15.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7) - 강점제3시기

<강점기 매립 글 정리>

일제강점기 마산만 매립 관련 글은 지난 번까지였습니다.

개항기 9회, 강점 제1시기 2회, 강점 제2시기 3회, 강점 제3시기 15회로 총 29회였습니다. 하지만 개항기 매립 중 5회는 계획으로만 끝났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된 매립 횟수는 총 24회였습니다. 매립 면적은 모두 325,000여 평이었습니다.

매립 주체를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조선총독부․마산부․기업․개인 혹은 공동매립과 단독매립 등이 있었으며, 1회 매립 면적도 최소 100여 평에서 최대 10만 평 가까운 면적까지 다양하였고 일거에 수만 평의 매립을 했는가 하면 한 사람이 세 번에 걸쳐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매립의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항만건설을 비롯해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한 매립이 있었는가하면 군용지 혹은 철도용지를 목적으로 매립한 것도 있었고 기업과 개인에게 분양을 목적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임대를 목적으로 매립하기도 했고 자신의 사업장을 확대하기 위한 매립도 있었습니다. 반면 사실상 매립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도 매립이 완료된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마산의 매립은 그 내용과 형식에서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단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다면 그 주체가 모두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이루어진 매립공사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산의 매립은 마산부나 조선총독부가 마산 도시의 전체적인 균형과 발전을 위해 거시적으로 일관되게 계획되어 시행되었던 것이 아니었고 오직 매립 주체인 개인과 기업의 경제적 필요에 의해 시행된 것이었습니다.

마산이 끼고 있던 해안의 간석지가 일본자본가의 입장에서 볼 때는 저비용으로 고수익을 올려 손쉽게 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원시적 축적의 한 방편이었고 때를 맞춰 일기 시작한 국내 공업시설 확충 붐이 이런 조건들을 부추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립된 부지 중 어느 곳도 공공용지로 사용되었거나 도시의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기반시설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 일본자본가들의 투기성 경제활동의 수단으로서 매립공사가 시행되었던 것입니다.

식민지 시대가 끝난 뒤에도 많은 매립이 있었습니다. 자유무역지역, 한국중공업 등을 비롯해 엄청난 양의 매립이 해방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매립이 서항이라 부르는 신마산 지역의 매립과 구항이라 부르는 어시장과 신포동 일대 해안도로 매립입니다.

그러면 일제 식민지시대 매립과 해방후 한국정부 때의 매립은 뭐가 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일제 때의 매립과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매립의 주체가 한국인 혹은 한국정부라는 것뿐이었습니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 자본가들의 투기성 경제활동의 수단이었던 것은 일제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은 지금 시행되고 있는 가포신항만 25만평, 해양신도시 19만 평 매립도 본질은 마찬가지입니다. 

근세기 백 년 동안 진행된 마산만의 매립은 일제강점기 32만 평, 해방 후 160만 평, 진행 중 46만 평, 모두 238만 평 정도입니다. 이 규모는 마산만 내만의 50% 정도의 면적입니다.

정말 엄청난 양의 바다를 지난 백 년 간 없앴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포신항, 해양신도시 , 방재언덕 등 마산만 매립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립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다음 그림은 지금까지 소개한 일제강점기 매립의 전체를 그려본 도면입니다.

녹색, 회색, 적색, 황색 네 가지 색으로 그려 넣은 부분이 일제강점기 매립이고 희미하게 바다색으로 덮혀있는 도시지역이 해방 후 매립된 부분입니다. 번호는 매립된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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