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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창원 역사 읽기(9) - 마산만에 자리잡은 해상왕국 골포국, 그리고 포상팔국 전쟁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2-2 마산에 자리잡은 해상왕국, 그리고 포상팔국 전쟁 비옥하여 오곡과 벼를 심기에 적합하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를 알아 비단과 짤 줄 알았으며, 소와 말을 탈 줄 알았다. 혼인하는 예법은 남녀의 분별이 있었다.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여 장례를 지내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이 새처럼 날아 다니라는 뜻이다. 나라에서는 철이 생산되는데 한. 예. 왜인 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다. 또 두 군에도 공급하였다. 풍습은 노래하고 춤추며 술마시기를 좋아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변한조) 삼한시기 마산・창원지역이 속했던 변한의 생활모습을 적은 글이다. 변한은 삼한 중의 하나이다. 흔히들 한국의 고대사회를 고.. 2014. 7. 21.
마산·창원 역사 읽기(8) - 창원 다호리에 있었던 '갈대밭 속의 나라'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2-1 창원 다호리에 있었던 「갈대밭 속의 나라」 연일 계속되는 고성과 난투장을 방불케 하는 몸싸움. 언제 그랬냐는 듯 품위와 위엄으로 재무장(?)하고 마치 일월의 야누스인 양, 두 얼굴로 웃고 화내고, 타협하고 뒤돌아 서고........... 누구의 일상일까? 아마도 현재만이 아닌 이러한 조직이 만들어진 이래 계속되어 온 평상의 모습은 아닐까. “정치집단” 혹은 “정치제”하고 명명되는 이러난 조직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일까? 왜, 그리고 어떻게 생겨났으며, 유지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이들의 역할이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받거나, 혹은 그 존재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 될 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후자의 경우에 더욱 절실하게 대두될 수 있을 것이다. 흔.. 2014. 7. 14.
타운하우스를 찾아서(4) : 동탄지역 일대 ♬ 타운하우스란? : Town House는 건축법규상 규정된 용어는 아닙니다. 굳이 용도를 분류한다면 공동주택입니다. 공동주택에는 5층 이상일 경우 아파트, 4층 이하일 경우 연립주택으로 나눕니다. 대개 상하층이 동일한 형태로 반복된 경우 공동주택이라고 하고요, 단독주택의 형태가 수평적으로 반복된 경우의 공동주택을 타운하우스라들 합니다. 법적으로는 4층이하이므로 연립주택이랄 수 있겠지만, 타운하우스로 부르는게 내용전달이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 동탄 푸르지오 : 대우에서 지은 타운하우스입니다. 공용주차장을 확보하고 단독주택이 수평적으로 반복 배치되어 있습니다. - 공용 광장입니다. - 세대별 별도의 마당이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여기에는 주차도 할 수 있습니다. - 외벽은 적벽돌 마감이고 지붕은 스페니.. 2014. 7. 10.
마산·창원 역사읽기(7) - 민주화의 성지, 마산과 창원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 7 민주화의 성지, 마산과 창원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치열한 저항정신을 보여준 지역민들의 역사적 경험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마산에서의 3.15의거는 그 뒤 4.19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이승만 독재정권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의 부도덕성은 도시의 지식인층이나, 학생들, 중간층들에게 반이승만, 반자유당이라는 성향이 투표로 나타났다. 1960년의 정.부통령 선거는 온갖 부정으로 인하여 2.28 대구에서의 학생시위, 제1.2차 마산봉기, 그리고 서울과 전국에서의 4.19항쟁, 4.26 교수단 시위와 이승만의 하야로 연결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오후.. 2014. 7. 7.
마산·창원 역사읽기(6) - 일본의 침략과 저항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6 일본의 침략과 저항 1876년 조선이 일본과의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이 맺어진 이후 마산지역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본인들과 친일조선인들에 의해 잠식당하였다. 개항 이후 마산지역은 러시아와 일본의 조차지 경쟁이 치열하여 개항 초기부터 외세에 의한 피해가 컸던 지역이었다. 특히 마산은 항구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해상운송부문 및 어항과 관련한 상업부분을 장악하기 위한 일본 상인들의 침략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어 마산은 일본인들의 소굴로 변해갔다. 드디어 1899년 5월1일, 마산은 일본에 의하여 강제적인 개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산포 남쪽 2㎞거리에 이쓴 창원군 외서면 해안의 신월리와 월영리 일대가 각국공동조계지란 이름으로 계획도시(지금의 신마산지역)가 들어섰다. .. 2014. 6. 30.
착한 주택을 찾아서(3) : 프루지오 제너자임 하우스 ♪ 동탄에 있는 푸르지오 주거단지를 방문했습니다. 99세대의 단독주택용지를 하나의 단지처럼 계획하고 시공하여 분양한 타운하우스입니다. 주거단지 내 1가구를 실제생활이 가능한 체험주택으로 만들어 놓은 곳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주택과 분양주택에 적용된 시스템이 꼭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참고가 될만한 점이 많아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 동탄 '프루지오 하임' 입구 입니다. 단지소개는 이것 외에 몇개 단지를 묶어서 다음편에 소개를 하겠습니다. - 단지입구 전경입니다. 단독주택단지이다보니 용적율이 50%대 정도이므로 한적해 보입니다. - 현관문입니다. 진공단열재와 고기밀 후레임을 사용해 출입구의 열차단에 주력하였습니다. ● 설계개념을 Green으로 해석 했군요. G : Geo nature, 자연그래로, 땅을.. 2014. 6. 26.
마산·창원 역사읽기(5) - 조선시대의 마산과 창원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5 ·조선시대의 마산과 창원 창원이란 지명이 만들어진 것이 조선시대이다. 조선 태종대에 의창과 회원을 합쳐 창원이라 이름지었다. 부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도호부가 되었다. 선조 34년에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대도호부로의 승격은 임진왜란때 병사 겸 부사인 김응서와 그를 따르는 군인, 관인, 백성들이 한 사람도 일본에 항복하지 않았다는 체찰사의 장계 때문이었다. 임진왜란때 일본군과 벌였던 대표적인 전투는 노현 및 창원성 전투, 안민고개전투, 합포해전이 대표적이다. 칠원군과 합쳤다가 광해군 9년(1617)에 나누었다. 인조 5년(1627)에 진해와 합쳤다가 7년에 나누고, 현종2년에 전패를 잃었기 때문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1년에 다시 승격되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이 지역은.. 2014. 6. 23.
착한 주택을 찾아서 (2) : '코오롱글로벌'의 'e⁺ green home' ♩ 친환경건물에 관심을 가지는 곳은 크게 건설회사와 지자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시범주택으로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곳으로 코오롱건설의 연구센터인 '코오롱 글로벌'에서 2012년 선보인 '이 프러스 그림홈'을 찾아보았습니다. - 진입로에서 본 건물전경입니다. 파란 잔디우에 꾸불어진 선의 윤곽이 건물의 측면으로 나타납니다. 역동적인 흰색 윤곽이 호기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 다시 건물 전경을 보기위해서 마당쪽으로 나와서 본 모습입니다. 접혀진 면에 1층과 2층이 포개진 사이로 주택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 홍보영상관입니다. 본채와 별도로 건물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홍보영상관 로비에 연구협력사와 건설자재 공급업체 명단이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 그리고 코오롱에서 그간에 개발한 친환경.. 2014. 6. 19.
마산·창원 역사읽기(4) - 고려시대의 마산과 창원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4 고려시대의 마산과 창원 신라말의 사회는 중앙진골귀족들간의 왕위계승분쟁으로 지방세력들이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호족세력이었다. 이 지역의 인근에는 김해지역의 호족이었던 김율희가 있었다. 이 사람은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봉림사 개창을 지원했던 인물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제압하고 한반도를 통일했다. 마산.창원지역은 고려 현종때에 의안.합포를 합쳐서 금주(지금의 김해)에 소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각각 설치하였다. 충렬왕은 원나라가 일본을 정벌할 때에 군량등을 공급한 공로가 있었다고 하여 의안을 의창으로 합포를 회원으로 지역명을 변경하고 현으로 승격시켰다. 고려시대의 마산지역은 원나라 주도의 일본정벌이 시작되면서 전진기기가 되었다. 몽고와의.. 2014. 6. 16.
착한 주택을 찾아서 (1) : LH공사의 '더 그린하우스' ♪ 지난 5월에 지인들과 경기도 일원 친환경 건축을 답사하러 갔습니다. 모델하우스 몇개와 주거단지 등을 보고왔습니다. 새로운 에너지 관련 정보와 디자인을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5차례 정도나누어 소개하겠습니다. ● The Green : 미래주택기술체험관, 공동주택 홍보관 : LH공사에서 서울 강남구에 설치한 모델하우스입니다. - 건물모형사진 : 옥상부를 휘감는 목제루버의 파동형태가 독특합니다. - 건물외관 모습 : 지상 3층 건물로 전관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2층 전시홀의 전경 : 화려한 마감자재가 오히려 반환경적인 느낌이 들 정도임 2014. 6. 12.
마산·창원 역사읽기(3) - 고대사회의 마산과 창원은 가야의 영역이었다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3 고대사회의 마산과 창원은 가야의 영역이었다 「고려군읍」 연혁도칠폭, 채색필사본, 19세기 이후,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 단군조선 이후 고려까지 각 왕조의 강역을 그린 일종의 역사지도. 강역의 역사적 변천과 도성을 비롯한 주요지명의 위치를 이 지도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흔히들 한국의 고대사회를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시대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에 한강의 남쪽 지역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다. 중국의 정사서인 “삼국지”에는 마한(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남지역), 진한(낙동강의 동쪽), 변한(낙동강 서남부지역)이 있었다. 이들 삼한에는 다양한 이름의 나라들이 있었다. 마한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54개국이, 진한에는 사로국을 비.. 2014. 6. 9.
한국100명산 11. :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을 품은 산 ♪ 해인사 가는길 : 대장경판을 전담하던 스님이 사고로 돌아가신터라 애절한 마음도 달랠겸해서 정해졌습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5월의 마지막날 3.15아트센터에 7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이번에는 4명이 출발하는 관계로 카니발 차량이 널럴했습니다. 아침먹을 휴게소는 현풍에서 해결하려고 했으나 차선이 헷갈리는 관계로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합천으로 빠지는 길을 놓쳐서 결국 성주IC까지 갔다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여 아침은 길거리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컵라면과 김밤으로 떼워야 했습니다. ♬ 해인사 출입 배치가 이상해요! :해인사방향 주차장에 내리니 '성보박물관'이 가야산 전경을 막고 떡하니 서있습니다. 우리가 온 동선이 주로 많은 사람들의 동선인것 같은데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아 기분이.. 2014. 6. 5.
마산·창원 역사읽기(2) -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2.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이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이 지역에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되거나 유물이 채집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가까운 부산.경남 권역에서는 최근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고 중기구석기시대 이전 유적들도 몇 군데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마산.창원지역에도 이 시기의 유적이 나올 가능성은 많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는 보통 농경이 시작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에는 처음부터 농경을 한 것이 아니고 식물성식료의 채집과 특히 어로생활 중심의 생업경제였다. 이러한 생활형태였다면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유적, 김해 수가리 유적, 통영 상노대도 유적처럼 마.. 2014. 6. 2.
마산해양신도시 조성 공약한 안상수 후보께 새누리당 창원시장 안상수 후보를 두고 세간에 말들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지적을 많이 받는 부분은 “중앙정치권에서 평생을 보낸 분이 중앙에서 자리를 잃자 수십 년 전에 떠난 고향으로 내려와 시장하겠다”는데 대한 것입니다. 안 후보는 자신을 '힘있는 정치인이라 지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선뜻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사실보다 안상수 후보가 내건 공약이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안 후보께서 내건 공약은 대부분 그간 창원시가 쭉 해오던 사업들이어서 신선감이 없었습니다만, 특히 실망스런 공약은 부분입니다. 지역 사정을 제대로 몰라서 이런 공약을 걸었는지, 그냥 직전 시장들이 진행해 오던 사업이라 별 생각도 안 해보고 내건 것인지, 주변 분들의 훈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아니라고 .. 2014. 5. 29.
마산·창원 역사읽기(1) -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예고해 드린대로 오늘부터는 우리 지역의 역사서 「마산·창원 역사읽기」를 올리겠습니다. 모두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 택했습니다 이 책은 전공분야가 연구분야가 다른 31명이 함께 쓴 책입니다. 저도 함께 했습니다. 이제는 도시통합이 되었지만 원래 책 제목대로 이 글 제목도 「마산·창원 역사읽기」로 하겠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한 꼭지에 5-10개 정도의 작은 꼭지가 있기 때문에 약 40 꼭지 정도 됩니다만 해방 이후 부분이 준비될 때까지만 싣겠습니다. --------------------------------------------.. 2014. 5. 26.
도시이야기(끝) 16. 모로코.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 국가 ● 이베리아 반도의 남단. 모로코에 가다. -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속한 국가로 스페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을 방문하는 하면서 잠시 들르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의 거리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두고 육안으로 보일정도의 가까운 거리입니다. 스페인의 남단에 위치한 '타리파'라는 항구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운항하여 도착한 곳이 모로코 땅 '탕헤르'입니다. 국가이면서 상당히 는 아프리카 국가이면서 스페인과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소위 말해서 지정학적 조건에 의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진출하기에 가장 용이한 육로와 연접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중동지역의 이슬람교도들이 이집트를 통해 북아프리카를 경우하여 서쪽으로 진출하여 유럽으로 북진한 지역은 모로코 페소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 2014. 5. 2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4) 개항부터 해방 때까지 47년 동안 진행된 마산의 도시변화과정 속에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철저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일제가 자본 축적을 위해 마산을 투자의 대상으로 삼아 도시를 물리적으로 확대하거나 변형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래 조계지로 설정되었던 신마산 지역은 식민 지배 이후 부분적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근대적 도시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던 원마산 지역의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도시정책을 좌우했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도시는 단지 투자의 대상이었기 때문에「근대도시로의 변화」와「전통 공간의 보존」이라는 도시의 기본적인 발전방향은 철저히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도시변화과정의 바탕이 이러했기 때문에 근대기 마산 도시는 경제적 잉여를 창출하.. 2014. 5. 19.
한국100명산 10. : 조계산. '태백산맥'의 배경지 ♪ 100명산을 시작한지 만 1년만에 10번째 산행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번 원정지는 전남 순천에 있는 조계산입니다.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기점으로 좌우에 송광사와 조계사가 위치하여 횡단하는 코스는 두 사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조계산입니다. 그리고 태백산맥으로 너무나 유명한 조정래 선생님이 태어난 곳이 조계산 선암사입니다. 그의 대하소설 '태백산맥'과 깊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조계산은 소설 '태백산맥'의 중요무대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한국동란 이후 빨치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지리산으로부터 확산된 전남 서부지역과 연결되는 통로로서 조계산이 당시 빨치산의 거점이며 통로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계산은 우리민족의 아픈역사가 남아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 5월 3일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31.. 2014. 5. 1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3) 개항부터 해방까지 진행된 마산 도시변화과정의 특징을 간단히 요약한 글입니다. 내용은 시가지 확산, 도로망 패턴, 토지 이용 등 세 가지와 이 시기에 있었던 도시변화 중 대표적인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원마산과 신마산의 두 도시가 각각 다른 조건과 형태로 생성․변화․확산을 거치면서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 마산 시가지는 남북 장축의 대상형(帶狀型)으로 변하였습니다. 두 도시의 연결은 단지 두 공간이 지형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간적 경계가 완화되고 식민정책을 관장하는 공공업무지역이 형성되는 등 사실상 마산 도시에 있어서 최대의 변화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합방 이전까지 원마산에는 자연취락형 도로 밖에 없었으나 신마산의 .. 2014. 5. 12.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5일 어린이날, 진도 팽목항에 다녀왔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별 생각 없이 가보았습니다. 이미 실종자가 5-60명으로 줄어든 탓에 팽목항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유족으로 보이는 분들보다는 저와 같은 방문객들과 자원봉사자, 기자, 경찰들이 많았습니다. 핏기 없는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흐렸고, 너나없이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웠지만 긴 챙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끔 세월호 선원들에게 퍼붓는 욕설도 들렸지만 대부분 한숨과 탄식소리 뿐이었습니다. 먼 바다가 바라보이는 부두에서는 흐느낌도 더러 들렸습니다. 마치 5년 전 봉하 마을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모든 것이 아팠지만 절 더욱 아프게 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2014. 5.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2) 지금까지 올렸던 글에 대한 요점과 관점 그리고 성과를 정리한 글입니다. 마산은 오래 전부터 존속해왔던 조선인 집촌의 원마산(마산포) 지역과 개항 이후 인위적으로 조성된 신마산 지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각각의 영역을 확산시키면서 마침내 하나의 도시로 연담화되어 가는 변화과정을 겪었습니다. 마산의 도시구조가 지금과 같은 틀을 갖춘 것은 이 시기였으며, 이 때 형성된 도시구조는 이후에 규모만 확장되었을 뿐 큰 변화 없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용 중 과거에 존재했던 도시공간의 복원은 그 자체로서 해당 시기에 지니고 있던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익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시구조의 물적 형태를 시계열적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에 도시사학(都市史學.. 2014. 5. 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1) 지금까지 210회에 걸쳐 1945년까지의 마산 도시의 변천과정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살펴본 마산 도시의 변화과정을 각 시기별로 요약․정리합니다. 고려의 정종(靖宗, 1035-1046년 재위)대에 이르러 정부는 마산 해안에 조창인 석두창(石頭倉)을 설치하였습니다. 창(倉)의 위치는 오늘날의 남성동 부근에 있던 해안 지역으로서, 근대기까지 존속했던 동굴강 일대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의 이런 추정과 달리 산호동 쪽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충렬왕 원년(1274년)에 여원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마산에 정동행성을 두면서 이 도시는 군사 항구 도시로 변했으며, 결과적으로 동아시아의 국제도시로서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었습니다. 조선의 영조 36년(1760년)에 조선 정부는 대동미를 운송할.. 2014. 4. 2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10) - 강점제3시기 지금까지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강점기 마산의 도시변화과정은 여느 도시처럼 사회변화 및 산업성장에 따른 도시인구증가가 일반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마산이라는 도시만이 가지는 특수성도 도시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동서(東西)쪽에 바다와 산을 접한 자연조건과 개항․러일전쟁․한일합방․부(府)제정․회사령․시구개정․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경제조건입니다. 내용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 산과 해안으로 인한 세장형의 해안 평지 --- 시가지형태가 대상형(帶狀型)이 됨 도로망 패턴이 선상(線狀)으로 됨 ○ 간석지가 많음 ;------------------------- 대규모 매립으로 시가지 확산 ○ 短軸(동서방향)의 경사가 심함 ------------ 단축(短軸) 도로가 발달하지 못함 산.. 2014. 4. 21.
포르투갈 도시이야기 15. '성모마리아 발현지' 파티마(Patima) ♪ 파티마 마을은 관광코스로 알려진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카톨릭교인들에게는 성모님이 나타난 성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창원에는 파티마 병원이 있는터라 친숙한 이미지로 와 닿았습니다. 도시라기 보다는 조그마한 시골마을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마을은 성지순례를 위한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터라 숙박시설과 성물을 파는 점포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물을 제작하는 장인들로 이루어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들른 성물 판매점에는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화,성모상, 십자가, 묵주, 제의 그리고 포도주까지 다양한 성물들의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의 분위기가 성스럽고 조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 파티마의 성모(포르투갈어: Nossa Senhora de Fátima) : .. 2014. 4. 1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9) - 강점제3시기 도시는 인구․생활욕구․교통체계․경제여건 등 내적 상호작용에 의해 그 구조가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지역과 국가 나아가서 국제사회가 기능적으로 상호 긴밀하게 얽혀있는 생태의 장(ecological field)에서 도시가 그 중심적인 구성체이기 때문에 도시와 외부 영향 사이의 관계 및 입지조건 등 외적자극도 중요한 변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이런 변화요인에는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비롯하여 문화적․사회경제적 조건 등 일체의 상황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몇 주 동안 올린 강점기 마산의 도시화과정을 요약 정리합니다. 내용은 1) 시가지 확산, 2) 도로망 패턴, 3) 토지 이용 순입니다. 1) 시가지 확산 마산의 시가지 확산은 한국인이 살던 원마산과 일본인이 살던 신마산의 두 .. 2014. 4. 1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208) - 강점제3시기 지난 주 까지 일곱 가지 분석 틀을 통하여 마산의 토지이용 상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중에는 각 필지의 토지가격을 이용한 구체적인 접근방법도 있었지만 추상적이거나 포괄적인 방법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일곱 가지 분석의 결과를 보면 대체적으로 일관된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이들을 종합한다면 당시의 토지이용상태에 대한 개괄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원마산(마산포) 개항기 원마산은 마산창에서 남쪽해안일대에 강력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상당히 넓은 지역까지 토지가 상업용으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일부 도로 안쪽의 대지와 동성동의 동쪽 일대만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개항 이후 마산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원마산으로 진출한 후 마산창 주변과 수성동 일.. 2014. 4. 7.
한국100명산 9. : 태백산. 민족의 영산 ♪ 갑오년 시작을 알리는 시산제가 지난 1월초 에 있었습니다. 무학산 고운대(일명 학봉)에서 수육과 과일을 포함한 주한상을 차려놓고 정갈하게 산신제를 지냈었습니다. 그 때에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올해의 첫 원정지로 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2월에 첫 등정을 하자고 꿀떡같이 약속을 했건만, 막상 2월에 영동지역의 폭설로 인해 이동자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결국 춘분인 3월 22일에서야 태백산을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 마산에서 태백까지 : 아침 6시반에 양덕동 메트로모델하우스앞에서 집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6시 15분쯤 케이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아마 최초의 약속시간인 6시로 착각한 듯 합니다. 제가 '6시 반'이라고 알린 메모가 헷갈렸던 모양입니다. 담부터 정확하게 '6시 30분'이라고 정.. 2014. 4. 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7) - 강점제3시기 지난 글의 ‘사정(査定) 당시 원마산의 토지등급’에 이은 글입니다. 2) 1933년 당시 마산의 각 동(洞)의 토지가격 (원본에는 동(洞)이 아니고 정(町)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편의를 위해 동(洞)으로 고쳤습니다) 당시 마산 시가지 내 토지가격을 기록해 놓은 자료로는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에서 1932년 간행한 『鄕土の硏究』와 마산교육회가 1933년 간행한 『鄕土の調査』라는 두 문헌입니다. 이 책에서 1932년 기준으로 한 마산 각 정(町)과 동(洞)의 토지가격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 두 문헌은 모두 당시 마산공립보통학교의 교장이던 일본인 上原 榮에 의해 편집된 것입니다. 발행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과 편집자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보통학교와 마산교육회에서 간행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전자의 .. 2014. 3. 31.
그들을 고발한 이유 지난 3월 10일, 저와 차윤재 마산YMCA 사무총장은 각각 속해있는 시민단체를 대표하여 마산가포신항사업 시작 당시의 관계자들인 장승우 해양수산부 장관, 이정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황철곤 마산시장, 김형남 (주)마산아이포트 대표이사를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에 형사고발했습니다. 우리는 왜 마산가포신항과 관련된 이 네 사람을 고발했을까요? 다투는 사람도 말려야 될 나이인데 왜 그랬을까요? 마산가포신항은 시작부터 잘못된 사업이었고, 잘못된 시작을 덮기 위해 시행과정에서 더 많은 잘못들이 행해진 추악한 사업입니다. 이 엉터리 공공사업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해 전문가들이 허위로 용역보고서를 작성했고, 국책사업에 기대어 정치적 이득을 노린 마산시장은 이 사업으로 마치 마산이 경제적 돌파구를 찾을 것처럼 지역민들을 호.. 2014. 3. 2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6) - 강점제3시기 지난 회까지는 ‘토지이용’에 대한 추정을 각종 문헌과 사진(가. 문헌과 사진에 나타난 토지이용)과 도시공간·소유상태(나. 도시공간·소유상태를 통한 추정)을 이용하여 살펴보았습니다만 이번에는 토지의 가격을 통한 추정 방법에 대해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토지가격에 의한 추정 시가지 내 토지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토지의 상업적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각 지역의 토지가격을 알게 되면 비교적 정확하게 당해 지역의 토지이용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1) 사정(査定) 당시 원마산의 토지등급 필자가 작성한 1912년 당시 원마산 토지이용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의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사정토지대장 중 남성동1번지의 사본입니다. 확인 후에는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 2014.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