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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43

해양신도시를 삼쇠처럼 이 글은 6월 4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다.카테가트 해협의 덴마크 삼쇠. 제주도 1/16 정도인 북해의 청정한 섬이다. 바이킹 시대에는 그들의 모임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딸기가 유명하고 현재 4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크지 않은 이 섬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최초의 에너지자립 섬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립은 에너지 사용과 생산의 합이 제로라는 의미다. 삼쇠는 탄소중립에 이어 탄소배출량이 마이너스인 탄소네거티브까지 달성했다. 이런 삼쇠를 덴마크 사람들은 '기적의 섬' ‘동화 속의 섬’이라 부른다. 삼쇠섬이 올보르대학과 에너지 자립계획을 세운 것은 1997년이었다. 덴마크 정부의 재생에너지 아이디어경진대회에 채택되면서 시작되었다. 에너지 자립을 달성한 것은 시작 8년 후인 2005년이었다. 주민들의 자발.. 2024. 7. 7.
도시 속 사격연습장 이 글은 1월 3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창원시 미군 사격장 확장공사 잠정 중단 시민 안전 위협한다면 이전이 근본 해법 2020년 4월 23일 전남 담양의 한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이 머리에 총알을 맞은 사고가 있었다. 골프장에서 1.4㎞ 떨어진 군 사격장에서 발사된 K2소총의 도비탄이 원인이었다. 창원시에도 사격연습장이 있다. 팔룡산 북서쪽 일대의 미군사격장이다. 원래 면적은 129만 평이었으나 현재 40여만 평 사용된다고 한다. 국방부는 2023년 초 이 사격장의 확장 공사를 허가하였다. 이 사실이 지난 4월 인근 시민 민원으로 문제가 되었다. 당시 창원시는 확장공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창원시가 미군과 국방부에 확장 공사 일시중단을 요청했고,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궁.. 2024. 1. 4.
100산-35 ; 경남 창원 백월산(白月山) 학봉산악회 창원 백월산 산행기 -2022년 8월 13일(토) 창원시 북면 백월산 -참가회원 5명 : 서익진·정규식·신삼호·손상락(글쓴이)·허정도 / 신성기·임상후 두 회원은 용강포레에서 합류 학봉산악회 국내 10대 명산 탐방을 위해 거대한 꿈을 머금고 10여년 전 시작했다. 산림청에서 고시하는 100대 명산이 그 주요 대상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원의 체력이 노쇠해지고, 이름있는 100대 명산의 기준은 점차 허물어져 해발 500m 이하도 자의적 기준에 따라 100대 명산으로 둔갑하는 상황을 자초했다. 각산 높이 410m가 100대 명산에 등극하여 새로운 기준을 갖게 되었다. 이번 주는 창원시 북면에 있는 백월산(428m)을 탐방하기로 했다. 이는 백월산 자체를 탐방하기 위해서보다는 백월산 탐방후 동읍.. 2022. 8. 15.
기억을 찾아가다 - 24 24. 이승만 행사 -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 노인잔치...... 내 고등학교시절의 어느날 동회 서기가 들고온 책자를 잠시 훑어본 기억이 남아있다. ‘한국 정치인 99인집’이란 제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승만편이 현격히 길었고, 나머지 대부분도 자유당 각료들과 국회의원들 이야기였으며, 조병옥, 장면 등 야당정치인 몇명의 이름도 본 것 같다. 거기에 이용범도 올라있는 걸 기억하는 건 당시 그의 이름이 마산 창원을 통털어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어 좋은 데 많이 쓰는 신사정치인’ 정도 내용이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여당에 오히려 누가 될 ‘희작’이 되었겠지만, 그때 나의 머리엔 그런 인식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엔 여당성향의 우리집.. 2018. 4. 2.
고지도로 보는 창원5. - 창원부 비변사지도 ● 창원부 비변사지도(1745~60) (奎12154)/ 필사본(방안식) - 지도개요 : (제작시기: 1745~60년 (영조 36), 비변사 보관 지도 이 지도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사각형의 方案 위에 지도를 그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안의 사용은 위치·거리·방향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그리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정확한 거리산정을 통해 이동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 읍성의 위치인 읍치를 중심으로 주요지점간 도로를 표시하였다. 도로의 경우 大路는 적색, 中路는 황색, 소로는 靑色을 사용하였다. 봉수의 호응관계는 주황색의 얇은 직선으로 표시하였다. 邑治의 경우 분홍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面은 황색 바탕에 적색 윤곽선의 직사각형으로, 驛은 짙은 살구색 바탕에 청색.. 2017. 5. 1.
고지도로 보는 창원4. - 칠원현 해동지도 ● 칠원현 해동지도(1750) 칠원현의 범위는 현재의 함안군 칠원읍, 칠서면, 칠북면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역에 해당된다. 칠원현이 현재의 창원시 지역과 연관이 있는 것은 구산면 때문이다. 구산면은 실제 현재의 칠원읍에서 20KM 이상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칠원현 행정구역에 포함되어 있었다. 진해현에 인접한 곳임에도 내륙에 있는 칠원현에 포함된 특수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별도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칠원현 읍성은 현재 칠원초등학교 일대 및 주변에 있었던 성이다. 주변의 지형은 읍성 북측으로는 무릉산이 동측으로 청룡산과 천주산에 면해 있다. 행정구역은 읍성을 중심으로 남측에 상리면, 북면과 서면 동측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구산면을 포함해서 4개의 면으로 나누어져.. 2017. 4. 24.
고지도로 보는 창원3. - 진해현 해동지도 ● 진해현 해동지도(1750) 진해현은 현재의 마산합포구 삼진(진동, 진전, 진북)지역에 해당된다. 지도의 중심에 진해현 읍성(현재 진동초등학교 일대)을 배치하고, 하천으로 구획된 지역을 구분하여 표기하였다. 읍성내에 아사와 객사 건물 2동이 있으며, 출입문은 동문, 서문, 남문 3개가 있다. 읍성을 중심으로 오측에 동면, 서측으로 북면과 서면으로 3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읍성 오른쪽의 하천은 현재 태봉천에 해당되며, 좌측에 3개의 천은 진동천, 덕곡천 및 인곡천에 해당된다. 공공건물은 태봉천 상류에 문묘가 있으며 진동천과 덕곡천 사이에 사직단이 있으며, 현재 진동면 고현리 일대에 해당하는 해변에 정자(대변정)이 표기되어 있다. 주변의 지형은 북서측 칠원방향으로 경산이 있으며, 진주방향으로 여.. 2017. 4. 17.
고지도로 보는 창원2. - 웅천현 해동지도 ● 웅천현 해동지도(1750) 고지도상의 웅천현 지역은 구. 진해시 일대을 말하며, 웅천현의 명칭은 본래 신라의 웅지현으로 경덕왕이 이를 고쳐 웅신현으로 고쳤으며, 고려시대에는 웅신현과 완포현으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조선조에 경상도의 육군편재 개편시 김해진 관할의 편제에 소속되었으나 지방관이 파견되는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조선시대 군사조직 편제의 개편에 따라 육군편제에서 종6품의 지방관이 파견되는 웅천현으로 승격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수군의 병선이 주둔하는 정박지로 제포만호가 설치된 지역이다. 웅천읍성(웅동 일대)을 중심으로 주변을 표기하였다. 읍성내에 ‘웅천현’라고 적혀있으며 2동의 건물이 있다. 좌측에 아사, 우측에 객사, 우측 아래에는 감옥(옥)이 있으며, 사방으로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배.. 2017. 4. 10.
마산창원 역사 읽기 (33) - 지방교육의 중심, 향교와 서원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8 지방교육의 중심, 향교와 서원 전근대사회의 교육은 모든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평등사회가 아님을 보여주는 예이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양인 농민 이상이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림의 떡이었다. 온종일 책을 끼고 살았던 양반들과 생업에 전력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이 형설지공(螢雪之功),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그들과 경쟁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반의 자제들은 서원에서 향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과거시험을 치르고 그들은 관료로 나아갔고 이로 인하여 경제적 기반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방교육의 중심-향교에서- 교동, 교촌, 교촌동, 교리, 명륜동……. 이러한 마을 이름의 공통점은 무.. 2015. 1. 5.
마산창원 역사 읽기 (31) - 9산 선문의 남쪽 끝, 봉림사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6 9산 선문의 남쪽 끝, 봉림사 봉림산 중턱까지 올라가노라면, 산들바람을 벗삼아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봉림사 옛터에 이르게 된다. 그 흔적만 쓸쓸하게 남아있는 건물지, 탑지, 연못지 등은 우리의 기억을 천년 전의 아득한 세월 속으로 이끌어 당긴다. 나말여초! 이 땅에는 사회변동의 기운과 전쟁의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믿음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너져가던 신라왕실이나 왕실·중앙귀족과 밀착된 화엄종 등의 교종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이 기댈 곳이 아니었다. 여러 곳에서 자라나던 지역의 세력가들이나, 미륵신앙·선종 등이 희망으로 떠올랐다. 천년 전 우리 지역인 김해와 진례에서도 경주의 중앙정부와 독립된 세력가들이 나타.. 2014. 12. 22.
마산창원 역사 읽기 (29) -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4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푸른 및 드리운 바위 앞에 문 두드리는 소리, / 날 저문데 그 누가 구름 속 길을 찾느뇨.남암(南庵)이 가까우니 그곳으로 가시지, / 내 앞의 푸른 이끼 밟아 더럽히지 마오. 산골에 해 저무니 어디로 가리, / 남창(南窓) 빈자리에 머물고 가오. / 깊은 밤 백팔염주 세고 있으니, / 길손이 시끄러워 잠 못 들까 두려워라. 『삼국유사』권 4 탑상(塔像)편에는 백월산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수도와 성불 과정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위의 찬문(贊文) 가운데 앞의 것은 백월산 북암(北庵)에서 수도했던 달달박박을, 뒤의 것은 남암(南庵)의 노힐부득을 찬한 것이다. 어두운 밤 백월산 깊은 골짜기를 찾아온 낭자-여인으로 현신한 관음보살-를 .. 2014. 12. 8.
마산창원 역사 읽기 (28) - 가야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3 가야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 우리는 신문, 방송 등의 언론 매체를 통하여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에 대한 기사를 접하곤 한다. 예를 든다면 함안 마갑총에서 국내 처음으로 국보급의 가치를 가진 철제 말갑옷이 출토되어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고대 가야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든가, 또는 창원 다호리무덤에서 통나무 형태의 목관 실물과 더불어 각종 토기, 칠기, 철기류 그리고 필기용 붓이 발견되어 2,000년전에 이미 문자를 이용한 기록이 가능했고, 가야 초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가 출토되었다 등등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마산·창원 지역은 지형상으로 마을 배후에 솟아있는 높은 산은 바람을 막아 주어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며 주변에 하천을 끼.. 2014. 12. 1.
마산 창원 역사읽기 (27) - 옛사람들의 쓰레기장, 성산패총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1 옛사람들의 쓰래기장, 성산패총 직선길이 12.5km로 전국 시가지 도로 중 가장 긴 창원대로를 따라 자동차로 20여분 달리다 보면 광활한 창원공단 한 복판에 야트막한 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기에 성산패총이 있다. 성산패총은 공단도시 창원시민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창원공단은 기계생산이 주류이다. 지금의 창원모습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듯 성산패총에는 조개껍질과 토기류 외에 철을 생산했던 흔적이 발견돼 야철지(冶鐵地)로도 명성이 높다. 오늘날 창원공단을 이룬 요람인 셈이다. 지금 성산패총은 사적 240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지금도 유적지가 발굴되어 보존되는 경우는 드물다. 개발이 항상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성산패총이 발굴된 1970년대 초는‘산업근대화.. 2014. 11. 24.
마산·창원 역사 읽기(26) - 고인돌은 지배층의 무덤이었나?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4-1 고인돌은 지배층의 무덤이었나?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출현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무덤을 통해서 그 생각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무덤을 만들어 시신(屍身)을 따로 모시는 것 자체가 ‘죽음’은 삶의 연장이었으며, 내세관(來世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시신을 별도의 장소에 모시는 것은 물론 껴묻거리副葬品를 함께 묻은 것으로 보아 내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구석기시대 후기에 이르러서 무덤이 만들어졌던 예가 가끔 있기는 하다. 한반도의 경우 구석기시대의 무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석기시.. 2014. 11. 17.
마산창원 역사 읽기 (24) - 「아이들에게 희망을」- 이원수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3-7 「아이들에게 희망을」, 이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 땅에 사는 사람이면 이라는 노래를 불러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노랫말을 쓴 사람이 동원 이원수다. 그는 15세 되던 해 방정환이 내던 잡지『어린이』에 이 당선된 후 7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주옥같은 작품을 수도 없이 남겼다.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아동극, 수필, 시, 아동문학 평론 등 모두 800여 편의 방대한 작품을 남겨 아동문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의 문학은 늘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하였고, 우주 만물의 모든 사물을 소재로 삼으면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념의 갈등으로 희생되고 서로를 죽였던 처.. 2014. 11. 3.
마산·창원 역사 읽기(10) - 창원은 가야의 탁순국이었다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2-3 창원은 가야의 탁순국이었다 가야 후기에 창원지역에는 탁순국(卓淳國)이 자리잡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창원시의 옛 지명은 굴자군(屈自郡)인데, 『삼국유사』와『고려사』에는 구사군(仇史郡)이라고 나오며, 『일본서기』에는 구사모라(久斯牟羅), 또는 기질기리성(己叱己利城)이라고도나온다. -다양하게 남아 있는 유적들- 창원 지방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은 발견된 바 없고, 청동기시대 유적은 더러 발견되었다. 즉, 창원시 남산 유적, 외동, 가음정동 민무늬토기 포함층과 진해시 성내동(웅천) 출토민무늬토기 등을 비롯하여, 창원시외동, 토월동, 가음정동, 용지동, 동읍 덕천리, 용잠리, 화양리, 신방리, 남산리, 북면 외감리 등에서는 지석묘 유적이 발견되었다. 창원시 남산 .. 2014. 7. 28.
마산·창원 역사읽기(5) - 조선시대의 마산과 창원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5 ·조선시대의 마산과 창원 창원이란 지명이 만들어진 것이 조선시대이다. 조선 태종대에 의창과 회원을 합쳐 창원이라 이름지었다. 부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도호부가 되었다. 선조 34년에 대도호부로 승격했다. 대도호부로의 승격은 임진왜란때 병사 겸 부사인 김응서와 그를 따르는 군인, 관인, 백성들이 한 사람도 일본에 항복하지 않았다는 체찰사의 장계 때문이었다. 임진왜란때 일본군과 벌였던 대표적인 전투는 노현 및 창원성 전투, 안민고개전투, 합포해전이 대표적이다. 칠원군과 합쳤다가 광해군 9년(1617)에 나누었다. 인조 5년(1627)에 진해와 합쳤다가 7년에 나누고, 현종2년에 전패를 잃었기 때문에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1년에 다시 승격되었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이 지역은.. 2014. 6. 23.
마산·창원 역사읽기(3) - 고대사회의 마산과 창원은 가야의 영역이었다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3 고대사회의 마산과 창원은 가야의 영역이었다 「고려군읍」 연혁도칠폭, 채색필사본, 19세기 이후,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 단군조선 이후 고려까지 각 왕조의 강역을 그린 일종의 역사지도. 강역의 역사적 변천과 도성을 비롯한 주요지명의 위치를 이 지도를 통해서 파악할 수 있다. 흔히들 한국의 고대사회를 고구려, 백제,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삼국시대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기원을 전후로 한 시기에 한강의 남쪽 지역에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다. 중국의 정사서인 “삼국지”에는 마한(지금의 경기도,충청도,전남지역), 진한(낙동강의 동쪽), 변한(낙동강 서남부지역)이 있었다. 이들 삼한에는 다양한 이름의 나라들이 있었다. 마한에는 백제국을 비롯한 54개국이, 진한에는 사로국을 비.. 2014. 6. 9.
마산·창원 역사읽기(2) -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1-2. 언제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이 지역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이 지역에는 구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되거나 유물이 채집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가까운 부산.경남 권역에서는 최근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발견되었고 중기구석기시대 이전 유적들도 몇 군데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마산.창원지역에도 이 시기의 유적이 나올 가능성은 많다. 신석기 시대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8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는 보통 농경이 시작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신석기시대에는 처음부터 농경을 한 것이 아니고 식물성식료의 채집과 특히 어로생활 중심의 생업경제였다. 이러한 생활형태였다면 신석기시대 유적인 부산 동삼동유적, 김해 수가리 유적, 통영 상노대도 유적처럼 마.. 2014. 6. 2.
마산·창원 역사읽기(1) -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예고해 드린대로 오늘부터는 우리 지역의 역사서 「마산·창원 역사읽기」를 올리겠습니다. 모두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 택했습니다 이 책은 전공분야가 연구분야가 다른 31명이 함께 쓴 책입니다. 저도 함께 했습니다. 이제는 도시통합이 되었지만 원래 책 제목대로 이 글 제목도 「마산·창원 역사읽기」로 하겠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국사 속의 마산·창원 2. 청동기 시대에서 10·18까지 3. 지역의 인물을 찾아서 4. 유적으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한 꼭지에 5-10개 정도의 작은 꼭지가 있기 때문에 약 40 꼭지 정도 됩니다만 해방 이후 부분이 준비될 때까지만 싣겠습니다. --------------------------------------------.. 2014. 5. 26.
그들을 고발한 이유 지난 3월 10일, 저와 차윤재 마산YMCA 사무총장은 각각 속해있는 시민단체를 대표하여 마산가포신항사업 시작 당시의 관계자들인 장승우 해양수산부 장관, 이정욱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 황철곤 마산시장, 김형남 (주)마산아이포트 대표이사를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에 형사고발했습니다. 우리는 왜 마산가포신항과 관련된 이 네 사람을 고발했을까요? 다투는 사람도 말려야 될 나이인데 왜 그랬을까요? 마산가포신항은 시작부터 잘못된 사업이었고, 잘못된 시작을 덮기 위해 시행과정에서 더 많은 잘못들이 행해진 추악한 사업입니다. 이 엉터리 공공사업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해 전문가들이 허위로 용역보고서를 작성했고, 국책사업에 기대어 정치적 이득을 노린 마산시장은 이 사업으로 마치 마산이 경제적 돌파구를 찾을 것처럼 지역민들을 호.. 2014. 3. 27.
창원도시철도, 바로 알고 바로 하자 - 1 7월 5일 오후 2시 창원시의회에서 「창원도시철도 약이 될까? 독이 될까?」라는 제목으로 시민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이 글은 토론회에서 밝힌 창원도시철도에 대한 창원시의회 김석규 의원의 발제 내용과 지난 6월 11일 창원도시철도 시민대책기구 창립총회에서 밝힌 창원YMCA 전점석 명예사무총장의 발제 내용입니다. 제 생각은 다음 번에 올리겠습니다. 우선 창원시의회 김석규 의원이 토론회에서 밝힌 내용을 소개합니다. -창원도시철도 현황과 문제점- ○ 도시철도 도입 효과에 대한 의문 도시철도의 필요성에 대해 ‘자동차 증가율 억제’와 ‘교통혼잡 완화’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승용차 이용자가 승용차 대신 도시철도라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 피크타임 때의 교통 혼잡구간의 상황도 달라지지 않.. 2013. 7. 11.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 통합창원시 청사위치 문제 때문에 지역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옛 창원지역 출신 시의원 한 분은 '시청사는 마산과 진해 중에 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더니 집 내놔라 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마산시민을 두고한 말 같습니다. 그 분이 누군지는 몰라도, 공직자로서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가리지 못하니 시민이 시의원을 걱정해야할 판입니다. 그렇습니다. 3년 전 통합여론조사 때 창원 진해 시민들에 비해 마산시민들이 통합을 많이 원했던 것 사실입니다. 도시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던 마산시민들이 도시통합을 돌파구로 생각했던 것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못 먹고 사는 사람 구해줬다”는 생각 옳지 않습니다. 통준위 합의사항.. 2013. 1. 30.
당신의 말이 듣고 싶습니다 어제와 그제, 지역 언론에는 통합창원시 청사위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머리기사를 장식했습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결과가 예고되었던 터라 보도 자체가 새롭지는 않았습니다. 시민다수가 신청사 건립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 이미 예측되었던 일입니다. 여론조사결과를 두고 일부 언론과 SNS에서 통합정신 훼손, 비민주적 의사결정, 통합준비위원들을 향한 날선 비판 등 이런저런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모두 쇠귀에 경 읽기인 것 같습니다. 통합 때문에 생긴 청사위치 여론조사결과를 보니 문득 지난 일들이 생각납니다. 3년 전 상황들 말입니다. 통합에 가장 앞장 선 분들은 당시 한나라당의 지역 국회의원, 시의원들이었습니다. 당시 병환 중이었던 진해시장을 뺀 두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의원.. 2013. 1. 23.
창원시청사, 여론조사로 결정할 일 아니다 통합창원시의 청사 위치를 시민 여론조사로 결정한다고 합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 시청사 위치 연구용역을 한다고 했을 때, 필요 없는 일 한다고 말이 많았는데 그 염려가 맞아 떨어졌습니다. 「창원시청사 여론조사로 결정」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원 마산 진해의 인구 차이가 있지만 세 지역 똑 같이 각각 1,000명 씩 2개의 조사기관에서 여론을 묻는다니 아주 공정하다고 보십니까? 혹은 주민 주권 시대인데 주민들의 여론을 물어 시청사의 위치를 결정하니 진일보된 민주적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도 아니면, 결정권을 가진 시의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창원시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보십니까? 제 생각입니다. 창원시 청사 위치, 이런 식의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 옳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음.. 2013. 1.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7) - 개항이후 개항 직후 시작된 이 도시의 생성과 변화를 31회에 걸친 포스팅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던졌어야할 질문을 뒤늦게 던져봅니다. 그들은 왜 '창원군 외서면 월영리와 신월리 해안'을 개항지로 삼았을까요? 근대 마산의 시작은 개항이었고 개항지는 마산포 남쪽 2㎞지점의 월영리와 신월리 일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였던 이곳은 ‘신마산’이라 불렀고 그들이 부른 ‘신마산’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지로 선택되었던 월영리와 신월리,,,,, 그곳은 마산도시의 최남단으로 지형상 말단부였습니다. 동쪽은 합포만, 서쪽은 무학산이 막아 북쪽 마산포 쪽으로만 시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조건이 이러했슴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조계지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① 외부와의 연결은 물론 당시에 문물교류 루.. 2011. 5.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마산포의 길- 포구를 끼고 발생한 마을의 경우, 마을 규모가 작을 때는 한 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마을 규모가 클 때는 몇 개의 선창을 연결하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형성됩니다. 마산포의 경우는 후자처럼 창원가도(昌原街道)를 중심으로 수계(水系)와 능선 그리고 등고선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얼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회에 올렸지만 다시 한 번 마산포 복원도를 보겠습니다. 남성동 파출소 일대, 즉 조창지 부근지역은 조창과 관련한 관리들 거주지 혹은 조창관련 건물들 탓에 계획된 도로로 보이는 직교격자형이 많았습니다. 이 지역은 한일병합 이후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금융 등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시설을 담당하는 마산포의 중심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인구 증가와 함.. 2011. 4.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6) - 개항이후 1876년 최초의 개항이후 1910년 일제에 의해 완전 강점당할 때까지 34년간은 이 땅 안의 모든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새로운 질서로 재편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재편 과정에서 신도시(新都市)가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많은 전통적 도시들이 상대적 또는 절대적인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자는 마산을 비롯한 개항장 소재지들로서 외국인거류민들을 중심으로 통상 무역이 활발히 전개되던 신도시들이었고 후자는 지방행정의 중심으로서 1,000여 년의 전통을 이어받은 전래의 도시들이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마산․인천․군산․목포․부산․진남포․신의주․원산․청진 등의 9개 도시와 후자에 속하는 도시 중에서 경성․대구․평양의 세 도시가 1914년 부(府, 현재의 시)로 바뀝니다. 개항 이후 국제 사회에서 한국 .. 2010. 10. 4.
용지공원에서 삼겹살을 굽는다면? 창원 도심에 자리잡은 용지공원은 입지나 규모면에서 창원의 대표공원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 명성만큼 시민들의 이용도도 높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용지호수 주변은 밤낮없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반면, 포정사 주변의 잔디공원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소풍이나 사생대회같은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사람구경하기가 힘듭니다. 용호상업지역이나 용호동 주택가에 근접해 있지만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않고, 사람들을 끌어들일만한 뭔가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용지공원. 평일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공원이 한적하면 좋지'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맞는말입니다. 한가로이 산책하며 사색에 잠길만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공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저는 조금 다른 생.. 2010. 9. 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2) - 개항기 사람 손 닿기 전의 신마산 옛 모습 1899년 / 네델란드인 스태든으로 추정 / 각국정부 / 막대추정 / 군산 마산포 성진 각국조계장정 / 규장각 이 지도는 외부대신 박제순과 각국 대표들이 맺은「군산․마산포․성진 각국조계장정」에 첨부된 설계도면입니다. 개항기 마산관련 자료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지도로 근대적인 측량기법으로 작성된 마산시내 최초의 지형도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습니다. 등고선으로 표시된 지도라 지형의 고저(高低)와 기복(起伏)을 잘 알 수 있으며 해안의 간조선과 만조선 그리고 하천까지, 사람 손이 닿기 전의 조계지(신마산) 옛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있는 자료입니다. 등고선의 단위(고저차)가 표기되지 않아 아쉽습니다만 현재의 지형과 비교해보면 등고선의 고저차가 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2010.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