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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59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4) - 강점제3시기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한반도에도 연합군의 공습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한반도 근해, 즉 부산과 제주도 남방에 미군비행기가 날아다닌 것은 1944년 7월 8일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심심찮게 내습하다가 1945년 들어서는 빈도가 잦아져 45년 5월 경 부터는 거의 매일 같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부터는 한반도 남부뿐만 아니라 인천 황해도 대전 광주 원산 청진 나남 나진 등에까지 내습하여 항해중인 선박과 운행 중인 열차 및 육상 해상 시설에 총격과 폭격을 가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태평양 전쟁에서 맹위를 떨쳤던 미군 B-25 경폭격기입니다. 미군의 공습에 당황한 조선총독부는 1945년 4월 4일자로 '소개(疏開)실시요강'을 공포하였고, 이어서 4월 7일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로 경성 5개, 부산1개,.. 2013. 6. 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3) - 강점제3시기 193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당한 사립 창신학교의 1930년대 사진 몇 장 소개합니다. 『창신학교 100년사』에 있는 자료들입니다. 이 사진들은 폐교되기 전, 창신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의 활동을 담은 장면입니다. 당시 우리 지역의 근대식 교육기관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자료라 소개해봅니다. 어떻습니까? 불과 80년 전 마산 창신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 모습이. 2013. 5. 2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2) - 강점제3시기 일본제국주의가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년)에 이어 태평양 전쟁까지 일으킨 1941년, 조선총독부는 ‘상이군인요양소’라는 이름으로 마산에 결핵전문병원을 세웠습니다. 마산 가포지역에 있는 현 국립마산결핵병원의 전신입니다. 시작은 상이군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해 지금은 한국 최대의 국립특수의료기관이 되었습니다. 마산도시의 끝자락인 가포(자복포, 율구미 포함)지역은 한 많은 땅입니다. 110여 년 전, 한반도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을 때 일본과 러시아가 서로 먹겠다고 각축을 벌인 ‘마산포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며 ‘지바무라(千葉村)’라는 이름으로 일본 어업이민의 전진기지가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가포는 20세기 초입에 강대국의 발톱에.. 2013. 5. 2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1) - 강점제3시기 1940년 2월에 創氏改名이 실시됩니다. 따라서 토지소유주의 이름만 보고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이 글에서 토지 소유관계를 정리할 때 확인한 이름 중 대부분의 한국인은 개명이 되지 않았지만 개명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제법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이름의 형태을 보아 국적을 판단하였고 그 다음은 한국인이 개명을 하여 실제로 사용했던 사례, 그리고 일본인들이 보통 사용하지 않았던 이름들을 찾아 이들을 한국인이라고 자의로 판단하여 정리하였습니다. 그러니 약간 틀릴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래 표는 1910년, 1920년, 1930년, 1945년의 원마산 토지에 관한 비교표입니다. 구분 정부. 마산부 기업. 단체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게 필지수 5 10 853 271 .. 2013. 5. 1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60) - 강점제3시기 1910년대 중반에 대규모 매립을 경험한 원마산 해안은 25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없다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다시 동성동 해안 일대의 대규모 매립이 시작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그림 중 앞의 것이 1930년, 뒤의 것이 1945년 그림입니다. 1910년대 박간(迫間)의 매립 때 매립되지 않고 남아있던 동굴강이 1927년에 현재 대신증권에서 어시장으로 내려오는 도로와 매립지의 도로망이 연결되는 형태로 부분적으로 매립되었다가 1935년 마산부가 행한 매립 때 전면적으로 매립되었습니다. 동굴강은 현재 어시장에 있는 이른바「너른 마당」의 북측 인접대지입니다. 「너른 마당」은 마산의 어시장 내에 있는 지명입니다. 일제 때 도로개설과정에서 각 도로가 집중함으로써 넓어진 곳인데 넓은 곳이라 하여 .. 2013. 5.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9) - 강점제3시기 먼저 1945년 원마산 상황과 1930년 상황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위의 두 그림에서 보다시피 1930년부터 1945년까지에 원마산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화의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정리한 번호는 위 1945년 그림에 표기되어있는 번호와 일치합니다. ① 1935년에 지금의 신포동 일대 매립으로 원마산과 신마산이 지형적으로 하나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② 같은 해 기선권형망수협지소와 그 인근 건어물 시장 주변 매립으로 동성동과 오동동의 경계까지의 해안이 직선으로 변했습니다. ③ 1937년에는 수성동, 즉 시민외과 앞 도로가 부림시장과 이어져 신포동 매립지와 연결되었습니다. ④ 같은 해 현 오동동 네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도로가 개통되었습니다. ⑤ 같은 해 ④의 도로가 새로 매립된 지역의 도로망과.. 2013. 4. 2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쳔사 (158)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1945년의 마산포(원마산)의 변화에 대해 올리겠습니다. 이 시기 마산포는 대규모 매립이 시행되어 규모도 커지고 근대식 도로망도 확산되는 대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시가지가 확산되었습니다. 1930년~1945년 사이의 원마산에는 한국인 상인들에 의해 부림동 시장과 남성동 해안 일대에 걸쳐 곡물․면사포 등의 포목류․식료품․고무화․기타잡화 등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소점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상인들도 원마산에 많이 진출하여 건축자재․철물․과자․서적과 문방구․가구․의복․주류․육류․연료․선구(船具) 등을 판매했습니다. 대금업자도 10여명에 달했으며 건축 붐을 타고 토건청부업도 호황을 누렸습니다. 1931년에 간행된『경상남도 통계연보』에서는 당시 마산 토지 중 대지․논․밭을 종류.. 2013. 4. 2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7) - 강점제3시기 일제강점기 마산만 매립 관련 글은 지난 번까지였습니다. 개항기 9회, 강점 제1시기 2회, 강점 제2시기 3회, 강점 제3시기 15회로 총 29회였습니다. 하지만 개항기 매립 중 5회는 계획으로만 끝났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된 매립 횟수는 총 24회였습니다. 매립 면적은 모두 325,000여 평이었습니다. 매립 주체를 유형별로 나누어 보면 조선총독부․마산부․기업․개인 혹은 공동매립과 단독매립 등이 있었으며, 1회 매립 면적도 최소 100여 평에서 최대 10만 평 가까운 면적까지 다양하였고 일거에 수만 평의 매립을 했는가 하면 한 사람이 세 번에 걸쳐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매립의 목적도 다양했습니다. 항만건설을 비롯해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한 매립이 있었는가하면 군용지 혹은 철도용지를 목적으로 매립한 것도 있.. 2013. 4. 1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6) - 강점제3시기 중앙부두 건설공사도 제1부두와 같이 1936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의 삼택조(三宅組)에 맡겨 시공하여 제1부두와 같은 날인 1939년 5월 19일 준공하였습니다. 총 25,475평 규모로서 총길이 1,080m의 물양장도 갖추었습니다. 현재 이 중앙부두에는 연안여객터미널․마산지방항만청․모래부두․쌍용양회 시멘트 사일로․세관․검역소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아이파크 앞에 합동청사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곧 이전할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이전하고 나면 이 일대를 근래에 조성한 서항부두와 함께 해양친수공원으로 조성할 것입니다. 마산 해안에 큰 변화를 가져올 계획이므로 시민들 기대가 높습니다. 시멘트 사일로도 철거한다고 하는데 여수엑스포 때처럼 재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설.. 2013. 4. 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5) - 강점제3시기 -부두의 건설- 부두 역시 매립으로 건설되었지만 그 목적이 항만건설이라는 점에서 일반 매립과 구분하여 다룹니다. 일제강점기 마산에는 부두를 건설하기 위한 네 번의 매립이 있었습니다. 모두 강점 제3시기(1930년 이후)에 이루어 졌으며 조선총독부 혹은 마산부가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국내 사정 및 권력 체제로 보아 마산부는 명의만 제공했을 뿐, 모두 조선총독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급속히 대규모로 시행된 이 항만공사는 마산을 상업무역항으로 키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일본의 침략전쟁을 돕는 병참기지로의 역할 수행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로 이어지는 일제의 전쟁 광란에서 .. 2013. 4. 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4) - 강점제3시기 “나카무라 되었다?” 마산의 명승지 월포해수욕장이 매립된 이후 근위빈 해수욕장이란 이름으로 해운동 일대(전 마산화력발전소 자리) 해변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해수욕장이 1944년 12월 3일자로 일본인 종촌번부(中村繁夫)에 의해 매립되었습니다. 지금의 마산시외버스터미널 남부주차장을 포함한 해운프라자, 뎃츠빌딩까지의 넓은 지역이며 시기적으로는 일제기 마산의 마지막 매립이었습니다. 면적은 12,254평이었으며 매립 후 해안은 석축으로 호안하였습니다. 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매립지는 완공된 지 8개월 만에 일제가 패망했기 때문에 매립된 땅을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고, 해방 당시에는 공터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당연히 매립공사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할 수가 없었고 매립을 한 나카무라(中村)는 졸지에.. 2013. 3.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3) - 강점제3시기 1940년부터 1942년 9월 5일까지 부산 토건업체인 죽본조(竹本組)의 사주였던 竹本熊次(부산부 수정동 116번지 거주)가 시행된 매립공사입니다. 원마산(마산포) 매축지 동쪽 해변일대로서 마산시 수협이 있던 오동동 251-3을 비롯하여 동일제빙․동양공업․신기사 등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지금은 복어거리와 탑마트 그리고 웨딩그랜덤 건물이 있는 일대입니다. 총 11,860여 평이었으며 이중 대지로 사용한 면적이 8,885평, 도로는 2,539평, 하치장이 436평이었습니다. 이 외에 물양장이 254평 있었고 방파제 153m도 함께 시공했습니다. 다음 그림은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하고 있는 「매립준공인가관계서류」에 첨부된 본 매립공사의 설계도입니다. 시간을 되돌려 보면 이 매립지의 위치는 오랜 세월 동안 마산포.. 2013. 3.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2) - 강점제3시기 이번 포스팅에서는 강점 말기에 시행된 네 곳을 소개하겠습니다. 매립지 모두 공장부지로 사용한 사례입니다. 지금은 경남대 앞 상업용지로 도시 한복판인 이 땅들이 불과 7-80년 전에는 바다였으니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1938년 1월 28일 창포동 3가 5-12 전 심건(心建)조선소 자리 594평을 앞의 국전암시(菊田岩市)가 자영 국전(菊田)조선소 용지로 매축 준공하였습니다. 총 세 번에 걸쳐 매립을 한 국전암시(菊田岩市)는 1909년에 마산으로 이주해 와서 국전(菊田)조선소를 경영했던 일본인입니다. 위치는 현 경민 아파트 자리로 그림의 A입니다 1940년 2월 15일 창포동 3가 5-14번지인 전 심건조선소(心建造船所) 건너편 주택지 437평을 교본육삼랑(橋本六三郞)이 매립하였습니다. 위치는 역시 경민 아.. 2013. 3.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1) - 강점제3시기 1920년대 중반까지 마산의 도시구조는 한국인들이 모인 원마산과 일본인들이 거주한 신마산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두 지역을 연결해야할 중앙지역은 지형적으로도 잘록한 병목형이었을 뿐 아니라 철도용지로 묶여 있기까지 해서 도시발전에 장애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도용지가 마산부에 불하되어 시가지 형성이 가능해지자 마산세무서․마산부청․경성전기 마산지점․도립마산병원․지방법원 지원․신문사 등 관공서나 공공시설의 건물이 세워지거나 또는 건축예정부지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른바 중앙마산이 공공업무지역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겁니다. 때를 맞춰 비슷한 시기에 조선회사령도 철폐되자 일본인들이 기회를 놓칠세라 마산의 중앙부 해변에 매축을 계획하게 되어 본 매립이 추진되었습니다. 위치는 현 대우백화점, 어시장, 삼익아파트, 센트럴.. 2013. 3.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0) - 강점제3시기 1935년 2월 19일에 국민은행 마산지점 앞 간선도로 일대 2,145평이 매립 준공되었습니다. 그 중 대지는 1,043평이었고 그 외는 도로 및 하수구 등이었습니다. 매립의 목적은 어시장부지와 택지 조성이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본 위치입니다. 이 매립은 1927년 마산부가 시행한「남성동 30번지 동굴강 일부 매립」과 함께 마산부 직영사업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래 도면이 매립설계도입니다. 매립설계도(정부기록보존소,「공유수면매립방파제축조공사서」,문서번호87-1907,필름번호87-1291)를 자세히 보면 이 매립은 한 곳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네 곳에서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27년에 시행된 동굴강 107평 매립(2012/04/23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106) - 강점제2시기.. 2013. 2.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9) - 강점제3시기 1933년 1월 25일 준공된 매립입니다. 위치는 현 경남대 앞 삼우상가와 월드프라자 빌딩 사이의 부지와 그 뒤쪽 횟집이 많이 있는 삼각형 블록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노란색으로 표시한 땅입니다. 면적은 속칭 번개시장 옆 삼각형으로 남아있는 부지 창포동 3가 7-1번지의 589평과 그 주변 일대에 해당되는 월남동 5가 4-1번지 23평, 월남동 5가 4번지 일대 1,596평을 합쳐 총 2,185여 평이며 도로까지 합친 면적은 3,300여 평입니다. 매립을 추진한 이는 일본 문사(門司 / 모지)에 거주하던 지전원차(池田源次)와 창포동에 거주하던 영삼구간(永森久幹) 두 사람입니다. 처음 매립권을 취득한 자는 경성에 살던 고영경일(高榮京一)과 영삼구간(永森久幹)이었지만 자금사정 때문에 고영경일(高榮京一)의 매립.. 2013. 2.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8)- 강점제3시기 -강점 제3시기의 매립-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마산 해안의 매립은 1930년대 들어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이라이트가 1929년에 착공하여 6년 간 시공한 후 1935년 완공한 신포동의 중앙마산지역 매립인데 이 매립으로 그 동안 둘로 나누어져있던 마산의 도시공간이 지형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1931년 12월 4일 창포동 3가 1-1번지 801평이 매립되었습니다. 일본인 조선업자로 창포동 3가 5번지에 살던 국전암시(菊田岩市)에 의해 조선공장 부지조성을 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된 「공유수면매립준공인가서 / 문서번호 87-969」에 의하면 토지소유권 취득자 통지서에 토지 취득 일자가 1932년 3월 25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고란에는 도로․구거 및 호안석원(護岸石垣.. 2013. 2.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7) - 강점제3시기 1945년 / 미군정청 / / 1:25,000 / 옥한석 논문 / 허정도 이 지도를 최초로 공개한 옥한석 교수(강원대학교)에게 입수 경위를 직접 확인했더니 1980년경 미국에 체류할 때 미군정에 관여했던 민간인한테서 얻은 것이라고 했습니다.세밀한 지도는 아니지만 표기 상태는 아주 선명합니다. 1945년 해방 당시 마산에 이미 개설되어 있던 도로가 모두 표기되어 있으나 매립지 쪽의 세부 도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 내 각 정(町)의 위치는 표기되어 있습니다. 범례에 기존도로와 계획도로가 각각 실선과 점선으로 구별되어 표기되어 있으며 지도에도 이 두 도로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지난 1월 2일에 포스팅한 142회「馬山府全圖**」에 나와 있는 계획도로와 이 지도에 표시된 계획도로가 동일합니다. 미.. 2013. 2.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6) - 강점제3시기 1937년 / 임시토지조사국 / 조선총독부 / 1:200,000 / 朝鮮二十萬分一圖 / 국립중앙도서관 1918년 임시토지조사국에서 편찬하고 제판한 지도로 1921년 발행되었다가 1928년 1차 수보(修補)한 후 1937년 2차 수보하여 발행된 지도입니다. 동래군․창원군․통영군․함안군․고성군․진주까지 남부 경남 일대를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마산부 내의 도시구조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지만 마산부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도로는 상세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인쇄는 경성에 있는 조선인쇄주식회사에서 하였으며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였는지 매당 30전이라고 적혀있습니다. 1940년대 초 / 마산부 / / 매립준공인가관계서류, 문서번호 87-3026 / 정부기록보존소 죽본웅차(竹本熊次)의 오동동 매립공사와 관련된.. 2013. 1. 2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5) - 강점제3시기 1937 / / / 1 / 40,000 / / 김한근 당시의 도시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표기한 지도입니다. 건물이 들어선 지역을 검은 색 빗금으로 쳐놓아 도시화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미 시행된 중앙마산의 도로 상황과 도시범역이 잘 드러나 있을 뿐아니라 추후 시행될 계획도로도 그려져 있습니다. 현 용마고(마산상고) 앞 일대 산호동 지역의 계획도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중요시설 12개, 즉 상업학교(전 마산상고, 현 상남성당 자리), 마산도립병원, 지방법원지청, 세무서, 부청사 이전예정지, 장군교, 여학교(마산여고), 본원사 본파(현 경남아파트), 우편국, 시장(일본인 전용시장, 현 반월시장), 헌병대, 세관 등이 범례에 잘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현.. 2013. 1. 2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4) - 강점제3시기 1937년 / 마산부 / 마산부 / / 觀光の馬山 / 우무석 所藏 지난 주 포스팅한 「마산***」과 함께 첨부된 지도로 역시 채색본입니다. 보다시피 이 지도에는 마산만에 진입하는 해로를 표시한 광역 지도가 추가로 함께 인쇄되어 있습니다. 일본(內地)으로 가는 해로을 비롯해 세 종류의 해로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난 주의 「마산***」지도에서 처럼, 이 지도에 표기된 도로들도 계획도로까지 표기하고 있어서 이 지도를 통해 당시의 도로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 계획도로는 연재 142회에 포스팅한「馬山府全圖**」와 내용이 같은 것으로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한 마산의 도시계획도면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각종 시설들의 위치를 글로써 표기하고 있으며 범례를 두어 중요시설의 표시를 해 놓았는데 도.. 2013. 1. 1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3) - 강점제3시기 1937년 / 馬山府 / 馬山府 / / 觀光の馬山 / 우무석 所藏 1937년 마산부에서 제작한 관광안내용 책자에 첨부된 지도입니다. 이와 똑 같은 형태의 지도가 다른 도시에서도 발간되었습니다. 이 자료의 소장자는 시인이자 불휘기획 대표인 우무석 선생입니다. 마산역장을 역임한 우 시인의 외조부 문판개 선생의 유품이라고 합니다. 지도의 영역은 당시 마산부 경계를 기준으로 제작한 것으로서 남쪽으로 자복포의 육군중포병대대(옛 한국철강 터)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쪽으로 현 상남동 일대까지입니다. 포켓 형식으로 된 안내서의 표지에는「觀光の馬山」이라는 제목과 함께 산을 배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 벚꽃이 만개한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명주(銘酒)’라고 적힌 일본 청주 통을 그려 놓아 당시 마산의 관.. 2013. 1. 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2) - 강점제3시기 1937년 / 마산부 / / 마산시구개정관계서류, 문서번호 1014 / 정부기록보존소 정부기록보존소에 소장되어 있는 지도입니다. 제작시기에 맞춰 아주 정확하게 표기된 지도로 보입니다. 조계지는 물론 신마산 전역에 이미 개통된 도로가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으며 주요 시설들도 명기되어 있습니다. 원마산 역시 그 때까지 개설되었던 도로가 그려져 있고 당시 이미 준공되었던 신포동 매립이 완성된 것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죽본조(竹本組)가 매립한 오동동 해안의 매립은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형태는 달랐습니다. 이 지도를 통해서 장군천까지 완전하게 도시를 이룬 신마산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마산 역시 교방천까지 도시의 범역이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앙마산의 조성도 진.. 2013. 1. 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1) - 강점제3시기 1936년 / / 朝鮮運送株式會社 / / 朝鮮港灣之事情 / 경남대학교 박물관 『朝鮮港灣之事情』이란 단행본에 수록되어 있는 지도인데 마산의 도로 정황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는 지도입니다. 신포동의 매립이 완료되어 ‘중앙매립지’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후에 시행될 원마산의 죽본조 매립이 점선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1920년대 후반에 시행된 중앙간선도로 서쪽 일대의 도로가 잘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마산 도시사정을 정확하게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는 지도입니다. 조계지의 도로도 실제로 개통되어 있는 부분만 표시하였으며 중앙마산 고지대 중 이미 개통되었던 도로가 비교적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지도의 특이한 점은 중앙마산의 고지대 부분, 즉 진주가도의 상부로서 지금의 완월동과 자산동일부에 점선.. 2012. 12. 2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40) - 강점제3시기 1936년 / / / / 진해만 요항부 검열제 도면철 / 정부기록보존소 앞(138회)의「馬山港平面圖*」와 동시에 작업한 도면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연대가 다른 만큼 지도의 내용은 차이가 많습니다. 이미 신포동의 대규모 매립이 완료되어 있고 제2부두와 제1부두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추정컨데 이 지도는 중앙부두 시공과 관련한 도면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방법원과 부청이 표기되어 있으며 아직 시구개정사업에 의한 도로는 표기되지 않은데 반해 강점 말기에 시행된 신마산 해안의 매립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보아 상호모순인 이 현상은 내륙의 도로 상황의 변경을 그때마다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신마산해안의 매립공사는 도면의 선의 상태를 보아 현재 공사 중이거나 계획 중인 상태를 새로 선을 그은.. 2012. 12. 1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9) - 강점제3시기 1932년 / 마산공립보통학교 / / / 鄕土の硏究 / 경남대학교 박물관 마산공립보통학교에서 필사본으로 당시 마산상황을 정리하여 간행한『향토의 연구(鄕土の硏究)』에 수록되어있는 지도입니다. 입체형식으로 그린 일종의 조감도인데 당시 마산의 도로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일제기 마산 이야기 중 많이 등장하는 월포해수욕장의 위치가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 이 지도의 자랑입니다. 월포해수욕장의 위치에 대해 이런 저런 주장이 많습니다만 이 지도를 보면 해수욕장의 위치가 신포동 매립지 쪽이 아니라 제2부두에서 중앙부두 쪽(현, 쌍용 시멘트 사일로 부근)에 있었다는 것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어 달 전, 제일여자고등학교 교장을 지내신 배두이 선생님에게서 월포해수욕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2012. 12. 1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8) - 강점제3시기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강점제3시기인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제작된 마산관련 지도를 해제하고 그 외 관련 자료를 토대로 마산 도시구조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 1931년 / 내무국토목과항만계 / 조선총독부 / 1:15,000 / 마산만매립서류 / 서울대중앙도서관 이 지도는 마산의 매립공사에 관한 도면으로, 마산시가지 전역이 비교적 상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간행연도인 1931년 이전에 이미 매립이 끝난 부분을 ‘기성부분(旣成部分)’으로, 현재 시공 중인 부분을 ‘공사중(工事中)’으로 구분하여 각기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매립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2012. 12. 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7) - 강점제3시기 1930년 이후 마산지역에서 시행되었던 각종공사 중 조선건축회에서 간행한『朝鮮と建築』에 게재된 것을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 다음 표입니다. 년도 기 사 제 목 발주처 규 모 금액 (圓) 기 사 위 치 비 고 1931 마산고녀기숙사の신설 학교조합 목조와즙평가530평, 부속동 36,000 10집8호p.35 신흥동 장군천 우측 1931 마산항수축공사の계획 경상남도 넓이6,350㎡매축지 110,000 10집12호p.42 평균길이 125m, 폭 50m 규모 1932 마산부내 매립지の성황 준공․공사중 합계 110,000평 11집3호p.70 현재 매립 신청 중3건 35,000평 1932 마산고녀교の개축문제 11집4호p.51 이십 수년전에 건축하여 낡았음, 이전계획 1933 마산부고녀교이전결정 예산에計上 12집1호p.5.. 2012. 11.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6) - 강점제3시기 회사령 폐지로 시작된 마산의 산업시설 확충은 20년대의 주조 및 장유공장을 비롯하여 1930년대에는 대형 방직공작과 창고 등이 들어섰습니다. 군수산업과도 관련이 있는 이런 시설들은 동 시기에 매립된 해안지역에 대부분 배치되었지만 원마산 쪽에도 일부 들어서는 등 마산 전역에 걸쳐 건설되었습니다. 원마산 쪽 건설의 예로는 조선물산주식회사가 오동동에, 조선신흥방직회사가 산호동에 대규모로 들어선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한편, 개항기에 신마산 쪽으로 집중 배치되어 불편을 더했던 관공서 건물들이 하나 둘 중앙마산으로 옮겨와 현재 합포구청(옛 마산시청) 일대인 중앙마산지역이 공공업무지역으로 본격 형성되는 변화도 보였습니다. 강점제3시기에 건축된 마산의 대표적인 건물들은 다음 표와 같습니다. 한상술의 논문에다 몇 건물.. 2012. 11. 1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5) - 강점제3시기 지난 두 번의 글을 통해 마산이 ‘술과 꽃’의 도시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만 ‘사쿠라’라는 일본어로도 우리 귀에 익숙한 벚꽃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그림들은 강점기 마산의 벚꽃이 담긴 사진입니다. 직전 포스팅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꽃과 술은 마산을 상징하는 요소였습니다. 심지어 1929년 간행된『馬山現勢錄(마산현세록)』에서는 목차에「酒の馬山(술의 마산)」과 「花の馬山(꽃의 마산)」이라는 항목을 넣어 마산의 술과 꽃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당시 마산 벚꽃이 하도 유명해 봄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매년 4월 10일을 전후하여 부산․대구․대전․경성 방면에서 꽃구경을 위한 임시열차까지 있었습니다. 일제시대를 기억하는 한국인 중에는 당.. 2012.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