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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12. 00:00

기후변화와 언론

이 글은 환경운동가 박종권 선생(아래 사진)이 썼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이기도 한 박종권 선생은 7순을 바라봄에도 지구환경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지고 있다.

 

 

“새로운 기록이에요”

그레타 툰베리가 환경이나 기후 문제를 다룬 신문 기사가 1%를 넘었다면서 환한 얼굴로 외친 말이다.

그레타는 스웨덴 대부분의 신문이 쇼핑 관련 기사 22%, 자동차 7%, 비행기 여행 11%, 기후 관련 기사는 겨우 0.7%에 지나지 않는데 자극을 받아 매일 4대 일간지의 기사에서 기후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스웨덴은 기후변화 대응지수 평가에서 61개국 중 1위를 한 기후변화 대응 모범국가인데도 언론은 아직 적극적이지 않다.

금년 1월에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로 바꿔 사용하고 기후위기 취재 보도팀을 9명의 기자로 구성했다.

기후변화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일반 대중의 무관심이 가장 큰 위기라고 한다.

기후위기를 어쩌다 발생하는 기상이변 정도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미세먼지를 더 중요하게 느낀다.

일반 대중이 기후위기에 무관심한 것은 언론의 책임이 크다. 스포츠와 연예 뉴스, 코로나, 정치, 경제 뉴스가 언론 보도의 대부분이다.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화석 연료 사용이 급증하면서 시작됐다. 100년 전 280ppm이던 이산화탄소 농도가 417ppm까지 증가하자 지구 평균온도는 1도가 상승했다.

과거 1만년 동안 지구 평균온도가 4도 상승했는데 최근 100년 동안 1도 상승한 것은 25배 빠른 속도이다.

1도 상승한 지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바다와 산에서 물과 바람, 불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고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빠른 속도로 녹기 시작하여 분노의 강도를 더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의 저자 마이클 폴런 교수는 ‘온난화와 해빙 현상은 여러 모델이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 기후학자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정말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인다’라고 10년 전 칼럼에서 주장했다.

북반구 유럽 선진국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발빠른 대응을 시작했다. 석탄과 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퇴출하고 태양광, 풍력의 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에너지전환에 부정적 일변도로 보도를 하는 주류 언론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이다.

80대 영화배우 제인 폰더는 기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이사했다. 경찰 저지선을 넘어 감옥에 갇힘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를 생각하게 한다.

기후위기를 막을 시간은 이제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1도 상승에도 심각한 기상이변이 전 세계에서 일상화되고 있는데 0.5도가 추가로 상승하면 수 억 명의 기후난민, 식량 문제가 심각하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살아가면 5년내 벌어질 일이다. 특히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지수 평가에서 61개국 중 58위에 머물러 세계 4대 기후악당국으로 비난받는 실정이다.

OECD 국가 중 해외 석탄 투자에 공적 금융기관이 자금을 지원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석탄 투자는 파리협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 해외 언론과 국제단체로부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다행히 공적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투자 금지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인데 통과여부는 불투명하다.

정치인들은 10년 후를 생각하지 못하고 머릿속에는 오직 재선, 대선 생각만 가득하여 허구한 날 정치공방만 일삼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절실한 시대임이 분명하다.<<<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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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4. 5. 07:02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라고 밝혔다. 희귀한 자료다.

 

 

바다는 고요하다.

작은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논밭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

1901년 1월 마산포 앞바다의 모습.

조랑말 4마리와 대원 6명으로 답사대를 꾸려 1900~1901년, 1901~1902년 두 번의 겨울에 걸쳐 266일간 한반도를 답사하며 지질조사를 했던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이 사진은 그가 1901년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 창원을 거쳐 1월 말경 마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것이다. 사진을 보면 용마산에서 남쪽 바다를 보고 찍은 걸 알 수 있다.

하천 끝자락이 바다로 삐죽이 튀어나온 곳은 오동동다리 아래 쪽이고 해안을 따라 경사진 논밭은 산호동 일대이다.

오른쪽으로 돛섬이 보이고 바다 건너편의 삼귀 해안도 그렇고 인공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옛 해안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은 고토의 논문 조선산맥론(An Orogrphic Sketch of Korea. 1903)의 말미에 수록된 9장 중 하나로 여기에는 금강산, 대관령, 개마고원, 제물포, 은봉 등의 사진도 같이 실려있다.

조선기행록(Jouneys through Korea, 손일 옮김, 푸른길, 2010)에서 번역자가 "조선산맥론의 원본을 구하지 못해 9매의 사진을 실을 수 없어 아쉽다"고 한 바로 그 사진 중의 하나다.

그런데 최근에 자료를 찾다가 이 논문의 스캔본을 보게 됐는데 뜻밖에 이 사진이 있었다. 논문의 도판에 수록된 것은 남해 다도해의 해안선 굴곡의 성인을 설명하는 자신의 산맥이론의 전형적인 예로서 만입이 깊은 마산포와 진해만을 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은 크기가 작은데다 상태가 좋진 않지만 마산포의 당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어릴 때부터 배웠던 고토분지로의 산맥론은 산경표와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의 지리 관념과 오래 전부터 충돌해 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와는 별개로 우리 지역과 연관된 그의 이론이 있어 언급해 둘까 한다. 마산 창원지역뿐 아니라 부산, 경주 등 경상분지에 널리 분포하는 특정의 화강암을 마산암(馬山岩)이라 이름 붙였고 이는 지금도 학술용어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는 또 마산포 북쪽에서 시작해 낙동강 동안을 따라 칠곡, 비안으로 향하는 산맥을 '마산포산맥'으로 이름짓기도 했지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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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9. 00:00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의 1960년대 초반의 졸업앨범 한 권을 (자료수집용으로) 샀다. 앨범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해서 보니 '노동의원'이라고 세로로 쓴 한글 간판이 선명하다. (표시 부분)

 

 

노동의원!

중앙동 1가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했었던 바로 그 '마산노동병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62년 5월 16일, '5.16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는 현재의 통술거리 일대이다.

이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식이 펼쳐졌는데 마산에서도 중앙부두 앞 광장에 학생과 공무원, 시민 등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신마산 일대를 돌아 마산시청 앞에 설치된 사열대 앞을 지나 구마산 방면으로 군대식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이 학생 브라스밴드를 앞세워 저 '노동의원' 앞을 지나갈 때 그 병원의 실질적 설립자인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마산노동병원, 노동병원, 노동의원 등으로 불리던 이 병원은 마산부두노조에서 1957년에 부설 기관으로 설립한 병원이었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재해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되었고 마산부두노조에서는 이미 1954년부터 설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여건상 쉽지 않았다.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지역 내 의사들의 동참과 각계의 후원과 협조를 끌어내 1957년 8월 노동병원의 개원을 실현하게 된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마산노동병원은 조합원과 그 가족, 영세시민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명의 의사들이 당번을 맡아 진료하고 치료비는 최저 실비만 받았다.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 설립은 일제강점기부터 추진되었는데 특히 1928년 설립된 원산노동병원이 유명했다.

마산에서도 병원 설립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보건 향상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23년 마산노농동우회는 '무산계급'을 위해 삼성의원 학산의원 등 5개 의원을 섭외하여 이들 병원에서는 노동자에게 무료 진찰을 해주고 약값은 반으로 할인해 주게 하였다.

또 1930년 마산자유노동조합에서는 시내 6개 의원과 교섭하여 극빈 조합원들에게 무료치료권을 배부하여 화류병을 제외한 병의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해방 이후 마산노동병원이 설립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포, 화순, 대전, 부산 등지에도 노동병원이 세워졌다. 한편 마산부두노조에서는 노동자 결핵요양소 설치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마산노동병원의 운영은 매우 어려웠다. 노현섭 위원장은 "우리(노동자)의 병원은 우리(노조)의 힘으로 세워야 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임의사를 확보하기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시내 의사들의 희생적인 협조로 근근이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설립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은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노현섭은 육군 방첩대에 전격 체포되었다.

노현섭은 마산부두노조 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을 뿐 아니라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마산씨름협회 회장을 맡는 등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4월혁명 후에는 교원노조 활동을 지원하고 '양민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학살자유족회를 이끌고 있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혁신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노현섭은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의 중형을 언도받게 된다.

마산노동병원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노현섭 위원장의 수감 이후 병원은 운영난으로 인건비 염출에도 애로를 겪게 된다.

마산부두노조는 노동병원의 시설을 확충하고 사단법인화를 통해 운영난을 타개하려고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원장이 바뀌면서 병원은 이어져 갔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말 이후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모른다. 더 자료를 찾아보고 해야 하지만... 누군가 마산노동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마산노동병원은 노동자와 노동단체의 힘으로 의료인과 연대해 노동복지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극빈 노무자'들의 '의료후생'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소중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 혹시 노현섭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그의 평전인 "불세출의 혁명가 소담 노현섭"(홍중조 이상용 저, 2016.)을 보시길 바람.

추가 ; 아래 사진은 마산일보 1965년 10월 29일자 3면에 실린 '노동병원을 확장-보사부장관 지정으로' 기사에 실린 것입니다. 위 박영주 선생이 발견한 사진과  '노동의원'이라는 간판이 똑 같습니다. 두 사진과 주변 건물들을 보면 병원 위치는 현재의 '홍시통술(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1가 11-1)'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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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2.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7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10) "진짜 본토박이" ------------------------- 배○○

1941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604-2

날짜 : 2015년 1월 1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얘기부터 기억나시는대로 좀 해 주시지요.

= 바로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랐지요. 6.25전쟁이 났을 때 내가 아홉 살 먹었는데 진해 웅천으로 피난을 갔거든요. 회원국민학교 입학 하고는 바로 피난을 갔어요.

거기로 피난 갔다가 석달만에 돌아왔어요. 그때는 여기가 전부 초가집이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농사 짓고 닭 키우고 소 키우고 완전히 농촌이었지요.

그래 기억나는 게... 군인들이 논에 엎드려 숨어 있고... 우리가 수류탄도 줍고 그랬거든요. 무엇인가 싶어서 주워보면 조그마한 단지처럼 생겼는데 그걸 도랑에 돌멩이 사이에 끼워놓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때 여기 미군들이 많았어요. 처녀들은 밖으로 못댕겼어요. 미군들이 건딜려고 해서... 그래서 우리 언니들도 막 숨겨놓고 그랬어요.

- 어릴 때 여기 사실 때는 이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저 위 골짜기에도 마을이 있었지요?

= 여기는 그냥 회원동이라고 했어요. 저 앤지밭골 골짜기 거기는 전부 농촌이고 사는 사람도 스무남 집 정도 될까? 사람이 많이 안살았어요. 앤지밭골은 우리 아주 조그만 할 때부터 앤지밭골이라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네요. 앤지밭골에서 내려오다 보면 중간에 못이 있었거든요.

그 주변이 다 논인데 논 중간에 언덕이 있고 그 옆에 못이 있었는데 애 하나가 빠져죽고 난 뒤 그 못을 없앴버렸어요. 그게 언젠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조금더 내려오면 거기가 못산이거든요. 그런데 못이 가운데 있으니까 못산인가 싶기도 하네요. 옛날에 못산쌀가게가 있었는데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까 앤지밭골 밑 동네가 못산마을이고 그 다음이 우리 마을인데 이 마을은 그냥 회원동이라 했어요. 사람은 못산에 많이 살았고 앤지밭골에는 별로 많이 안살았어요.

- 지금 이 동네 안에서 제일 오래된 집은 어느 집입니까? 옛날에는 다 초가집이었지요?

= 주변이 다 논밭이고 집들은 다 초가집인데 어쩌다가 기와집 하나 있고... 초가가 점점 없어지고 쓰레트로 바뀌었다가 쓰레트 없어지고 슬라브 올리고 그랬어요.

우리 이 집도 옛날에 조그만 기와집이었어요. 지금 집들이 다 오래됐지요. 아직도 집이 옛날 그대로이지요. 요 앞에 골목도 옛날 그대로고 입니다. 내나 우리 쪼깬을 때 그 골목이고... 집도 다 농사 지어 묵던 집 그대로 이지요. 조금씩 수리해서 살다가 재개발 한다는 소리 듣고 수리도 안하고 그대로 살다보니 옛날 그 집 그대로 입니다.

물새는 집도 있고... 얄굿습니다. 요 밑에 골목으로 조금 가면 옛날에 풍수하던 사람 집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이씨라서 이풍수라고 불렀어요. 사람도 죽고 다 어디로 가버리고 지금은 빈집입니다.

또 그 골목 끝에 돌깨는 돌쟁이 집이 있었는데 집도 뜯겨나가고 빈터 뿐입니다. 옛날에 이 동네에는 송씨, 허씨들이 많이 살았는데 다 어디로 가고 없어요.

- 앞에 이 골목이 거의 동네 한가운데 있는데 옛날에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내나 골목이지요. 우에 골목, 아래 골목... 어른들이 그리 부르대요. 여기 우리 집 있는 데는 아래골목이고, 우에 골목은 연탄집 위에 있는 거기가 우에 골목이고... 그리고 동네 골목, 여기가 또랑인데 지금은 복개를 안보이지만 개울이지요.

지금은 다 덮어놔서 안보이지만 또랑 따라서 공동새미가 졸졸하이 네 개나 있었어요.

- 그럼 지금 회원천이라 부르는 저 하천은 어릴 때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 큰또랑이라고 했지요. 우리 동네 여기는 작은 또랑이라고 하고... 작은 또랑은 지금 복개를 해서 덮어놨지만 지금도 그 밑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요.

옛날에 우리가 빨래 하러 큰또랑 갔다 아닙니까. 큰또랑 가면 물이 펑펑 내려오니까 거기 앉아서 빨래 하고 그랬지요.

- 예. 물이 깨끗했겠네요?

= 옛날에는 앤지밭골에 마을이 있어도 더러운 거는 논으로 다 갔지 또랑으로 꾸중물 내려오고 그런 거는 없었거든요.

물이 맑았어요. 무학산 물이 참 좋고 그랬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못해요. 똥물보다 더 더러워서... 비 좀 왔다 하면 다리가 떠내려 갈 정도로 여기에 물이 많았어요.

물이 깨끗할 때는 송사리 같은 조그만 물고기도 있었고 가재도 있었고 고동도 있었어요. 새까맣고 쪼깬 고동... 삶아서 꼬리 끊어 빨아 먹던 그 고동도 있었는데...

- 그러면 서원골 쪽으로는 빨래 하러 안갔습니까?

= 갔지요. 거기 가면 나무 주워와서 불 피우고... 옛날에는 다 알미늄 니무 대아거든요. 그 대야로 빨래 삶아 가지고 깨끗하게 빨아서 큰 바우에 널어놓고 냄비에다가 밥 해 먹고 놀고... 그랬다 아닙니까.

하하 재미 있었지요. 여기 큰또랑은 빨래를 해도 빨래 널 큰 바우 같은 게 없거든요. 거기는 우리가 놀기삼아 어불리서 갔다 아닙니까. 하하 그때가 좋았어요.

- 또랑 건너 둥구나무(아래 사진) 있는 데는 옛날에는 어땠습니까?

= 우리 쪼매할 때부터 있던 정지나무가 지금까지 있는 겁니다. 정지나무 원 둥치는 죽고 옆 가지가 살아있거든요. 누구든지 회원동 정지나무라 하면 다 찾아왔어요. 택시도 알고 전부가 다 알았어요.

어릴 때 보면 큰 정지나무가 있는데 노인네들이 거기 누워자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또 옛날 노인네들이 거기서 제 지내고 그랬거든요. 깨끗한 사람이 제를 지내야 되거든요.

부정 타면 안된다고 상주도 못보고 아무도 못봐요. 그런데 지금은 제도 없고... 옛날 노인들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술꾼들, 노름쟁이들만 모이쌌대요.

- 아, 거기서 제를, 그러니까 동제를 지냈다고요? 그럼 동제를 언제 지냈습니까? 정월에?

= 그때가 우리 처녀 시절인데... 그때가... 정월에 안지내고 가을이든가? 춥도 덥도 안할 때니까 가을입니다.

정월하고 팔월에는 안했어요. 동네에서 그 나무가 전통있는 나무라고 해서 거기다 오만 거 다 차려놓고...

 

 

- 제를 아주 크게 지냈던 모양이죠? 언제까지 제를 지냈습니까?

= 옛날 노인네들이 크게 지냈지요. 상주거나 추접은 사람은 부정탄다고 거기에 못가고... 회원 마을 사람은 다 모였으니까 큰 행사였지요.

떡도 하고 돼지도 잡아서 동네에 다 갈라먹고 그랬어요. 건구도 치고... 제 안지낸지가 삼십년도 넘었것 같네요. 내가 의령으로 시집 갔다가 보리 숭년지고 난 뒤 여기로 다시 이사를 왔는데 그때까지도 제를 지내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열아홉살에 시집을 의령으로 갔다가 스물두살에 여기 내려왔어요. 신랑은 군에 가버리고 아들 하나 낳아가지고 보리숭년이 져서 여기 내려왔는데 그때까지 제를 지내더라고요.

내가 스물세살까지... 지금 내가 칠십네 살이니까 한 사십일 년이나 이 년 되는가 보네요. 노인들이 차차 돌아가시니까 누가 할 겁니까? 할 사람이 없는데... 옛날 노인들이 돌아가시고 나니 할 사람이 없어요.

- 당시에 이 마을에는 사람이 얼마나 살았습니까?

= 어릴 때 이 동네에는 많이 살았지요. 또랑 건너 하고 합하면 한 백 집?

이 동네만 해도 지금 있는 것만 백 집 되지요. 회원동 마을이 크거든요. 저 건너편에는 일본놈 말 키우는 창고가 있었는데 거기가 새한아파트 됐어요.

- 거기 창고는 어떻게 되어 있었습니까?

= 소 키우는 것처럼 일본놈들 말을 쭉 매어놓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말 지켜주고 말 밥 먹여주고 그랬다고 하대요. 그 한참 뒤에 말 창고 뜯은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가 들어섰어요.

- 이 동네에 당시에 절은 없었습니까?

= 우리 쪼맨할 때는 돌산이라 하는 데에... 돌산이 교방동에 들어가는데, 저 위에 육일약국 있지요? 그 건너편부터 주공아파트 그 위로는 돌산이라 했어요. 돌이 많다고 돌산이라 했어요.

그 돌산에 절이 하나 있었어요. 지금까지 있는데 절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네요. 옛날에는 절에 간다 하면 돌산 절에 가고 그랬지요.

- 옛날에는 동네마다 조그만 공장이 많았지 않습니까?

= 또랑가 둥구나무 밑 쪽에 작은 장갑 공장이 있었고 또 바로 밑 교원동에 우피 공장이 있었어요. 소가죽을 벗겨서 그 껍데기를 고아가지고 부리풀 만들었어요.

그걸 부리풀이라 하든데 그게 고무신 만드는 공장에도 가고 또 어디에도 가고... 그걸 또 녹여서...

- 그러니까 부리풀은 아교를 말하는 거군요? 접착제로 쓴 거지요?

= 소가죽을 가져오면 그 속살은 삶아먹기도 하고 그랬지요.

제비산 밑에 도치막이 있었어요. 또 우리 동네에 정미소는 또랑가 정자나무 밑에 있었어요. 우리 처녀 땐데 거기 하던 사람이 배씨라서 배씨 정미소라 그랬어요.

둥구나무 바로 밑에 다리 딱 건너면 거기 있었는데... 그럴 때 미군들이 많았어요.

- 그럼 그 당시가 전쟁 때이군요. 정미소, 장갑공장, 우피공장...

= 그리고 방장 공장이 있었어요. 요 앞에 작은 또랑 건너가 교원동인데 거기에 있었지요.

그때 우리가 열여섯 살, 열일곱 살 먹었을 처녀 시절인데, 거기서 방장도 만들고 마스크, 손수건도 만들고 이랬어요. 그 공장 했던 사장이 이만열이란 사람입니다.

또 그때는 일본 있다 나온 사람들이 요꼬를 많이 하대요. 우리 집에서도 방을 세 놓으니까 그 작은 방 사람이 요꼬를 짜더라고요. 그때 가정집에서도 기계 하나 가지고 요꼬 짜고 많이 그랬어요.

- 옛날에 이 근방에서 국화도 많이 키웠지요?

= 하우스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리고 저 위에 무학농장이라고 있었는데 포도, 배, 복숭 이런 거 하던 농장인데 마산에서 최고로 큰 농장이었지요. 과일나무가 있고 그 농장 안에 여관도 있고 하니까 사람들이 놀러 많이 갔지요.

해치 하면 농장 안에 가서 하고... 그 농장 주인이 말을 타고 내려오면 동네가 딸깍딸깍 했구마는...

- 농장 주인 성씨가 뭐였습니까?

= 천씨였는데 회원동에서 최고로 부자였어요. 농장에서 말 타고 내려오면 동네가 들썩들썩 했지요.

영감쟁이가 멋이 있었는데... 그 뒤에 한일합섬에서 사서 소도 키우고 짐승도 키우고 그러다가 한일합섬에서 또 어디 팔았다고 하던데... 몇손을 넘어간 모양이더라고요.

- 그럼 무학농장은 언제 생긴 것 같습니까?

= 우리 쪼맨 했을 때도 있었으니까 오래 됐을 거예요.

우리 오빠가 살아 계시면 팔십네 살인데 오빠가 그 농장에 댕기고 할 때 우리가 쪼맨했으니까요. 농장이 한 마을을 다 차지해 있을 정도로 큽니다. 지금도 젖소 키우고, 오리 식당, 닭백숙 식당도 있고 그렇습니다.

- 어릴 때는 밑에 시장이 없었겠네요?

= 옛날에는 시장 한번 가려면 부림시장까지 가야 되는데, 다라이 이고 갔다오면 멀었지요. 그전에는 회원동 전체에 시장이 없었어요. 시장이라고는 부림시장 밖에 없었지요.

어시장은 멀다고 잘 안가고... 북마산역 앞에 쌀장사들이 좀 있었고 그 건너편에 소전걸이 있었고... 한참 뒤에 북마산 중앙시장 들어서고 또 철길 있는 데도 시장이 생겼는데 장사가 최고 잘 된단다고 그래요.

부림시장은 죽었는데 여기는 아파트 들어오고 사람이 많이 끓으니까요.

- 그리고 이 동네는 큰 부자집이 있다든지 그런 것도 없이 다 비슷한 형편이었던 모양입니다.

= 우리 어릴 때야 다 농사 짓고 사니까 농사를 많이 짓는 사람이 부자인데... 비슷비슷 했지요.

그중에서 좀 많이 지은 집이 송씨 집이었어요. 큰 집, 작은 집, 졸졸하이 집을 지어 살았는데 송씨 부자집이라 했거든요.

- 그러면 그 송씨들이 지금도 살고 있습니까?

= 옛날에 좀 부자로 살면 애들이 대학까지 나와서 다 서울로 어디로 가버리니까... 집 팔고 터값만 받아먹고 다 떠났지요. 옛날 부모들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 그럼 이 동네에서 대대로 살고 있는 집은 어느 집입니까? 동네는 얼마나 오래 됐다고 들었습니까?

= 얼마나 오래 됐는지 모르지요. 내 알기만 해도 백 년이 넘는데 몇백년 됐는지는 알 수가 있습니까?

그래도 삼대 사대 그렇게 오래 산 집은 없어요. 옛날 사람들은 전부다 동네 떠나고 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 옛날 농사 짓던 헌집을 사서 들어온 사람들이지요. 이 동네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사람이... 나 하고 바로 이 밑에 사는 내 친구, 이미숙이라고 있는데 그 친구도 토백이입니다.

바로 옆에 살아도 동으로는 그 친구는 교원동이고 나는 회원동입니다. 그리고 노원호 씨라고 내하고 두 살 차이인데 동네서 같이 자란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 하고 내 친구 하나 하고 세 사람이 토백이이네요. 나머지는 전부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뭐 말 한마디 하면, 토백이값한다, 이럽니다. 하하하.

이 동네 완전 본토박이는 세 사람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사 가고 없어요.

- 예. 말그대로 진짜 본토백이군요. 그러면 부모님들은 뭘 하셨습니까?

= 내나 농사 지었죠. 우리 아버지 고향은 밀양이고 분성 배씨인데 우리 어머니는 진양 강씨이고요.

우리 형제가 오빠가 다섯 명이고 내 위로 언니 다섯 명, 내 밑에 여동생 남동생 있제 하니까 열 명도 넘었어요. 옛날에는 생기는대로 낳으니까 열 명도 넘었는데 인자 다 돌아가시고, 언니 하나, 내 밑에 동생 둘 뿐입니다.

- 이 동네서 나서 지금까지 살고 계신데 재개발 한다니까 마음이 어떠십니까?

= 재개발 되면 어쩌겠어요. 돈 쪼매 내주면 가도오도 못할 건데... 요새는 일억오천은 줘야 조그만 집이라도 산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재개발 되면 전부 촌에 터 사서 집 지어서 간다고 하고, 여기 아파트 들어와 살 사람이 거의 없어요.

지금 여기는 전부 늙은 사람 뿐이지 젊은 사람 없거든요. 젊은 사람은 다 나가 있고 나이 많은 사람들 밖이거든요. 지금 우리 동네 이 근처에 집이 일곱 채가 비어 있어요.

터 값만 삼천만 원 받은 집도 있고 사천만 원, 육천만 원 받은 집도 있지만 빙돌아 다 비어 있습니다. 덕방 하는 사람들이 사가지고 아파트 들어서면 팔려고 하다가 팔년이나 구년이나 썩히고 있는 데도 있어요.

재개발 되면 할 수 없지. 어디로 가게 될런가, 어찌 될런가... 앤지밭골로 가 터를 좀 사서 집 지으려고 해도 터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엄두도 내기 힘들어요.

앤지밭골이 큰 도시가 됐어요. 옛날에는 앤지밭골이 골짜기였는데 지금은 절이 두 개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양옥집을 지어 놓고 잘 돼어 있더라고요. 거기는 공기 좋고 물도 좋고 해서 살아보고 싶은 곳인데 잘 될런가 모르겠어요.<<<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모두 27회 포스팅했다. 이 편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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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 2021.04.06 16:39 address edit & del reply

    안녕하세요
    검색하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푹 빠져서 27편까지 내리 봤네요^^
    제가 사는곳의 역사를 읽으니 너무 흥미롭고 재밋었습니다~~

  2. 허정도 2021.04.07 13:56 address edit & del reply

    마산 분이시군요, 방문 감사합니다~~

2021. 3. 15. 00:00

창원 민주화 역사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

이 글은 <문화뉴스> 노예진 기자의 2021년 3월 5일 기사입니다.

 

2월 28일 성황리에 막을 내리다

강제규 감독 “코로나 이길 희망으로 기억되길”

 

창원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2월 28일 막을 내렸다.

 

<사진 - 창원문화재단 제공>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도서를 원작으로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이 암울했던 시기 작은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감독이자 창원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강제규 대표가 총괄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다.

1909년 구한말 순종의 순행, 1919년 3.1운동, 1929년 마산의 노동야학, 1949년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의 삶,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 70년의 역사를 담아 마산이 독립지사들뿐 아니라 저명한 문학가들이 터를 닦은 곳임을 보여주었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창원의 역사와 시민성, 정신을 잘 살린 작품이다. 깊은 역사를 가진 마산의 이야기를 연작으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의 마지막 장면인 3.15 의거탑 앞에서의 대사가 너무 뭉클하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평범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작품이다.’ 등 작품에 찬사를 남겼다.

창원문화재단은 “준비과정부터 공연 진행까지, 걱정과 설렘이 가득했는데, 벌써 공연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라며, “우리 공연을 사랑해주신 관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우리와 함께 이 작품을 기억하고 추억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강제규 감독은 ‘역사와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 항거하던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이 연극이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도시의 얼굴들’은 2월 18일 부터 성산아트홀에서 공연되었으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며 2월 28일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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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8.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6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9) "서민들 살기 좋은 동네" ------------------------- 심○○

1943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8-6

날짜 : 2015년 1월 10일

장소 : 자택

 

- 이 동네 사정을 제일 잘 아신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 그런데 이 동네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내가 온 지 얼추 한 사십 년 되어 가는데, 뭐 유물이 있다든지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 재개발을 하게 되면 동네가 다 헐리게 되고 그러면 동네 흔적이 다 사라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동네 전경도 사진으로 남기고 또 여기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이 동네 옛날 모습 그러니까 어디에 국화밭이 있었고 미나리꽝이 있었고 조그만 공장이 있었다고 하는 그런 옛날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겁니다.

= 그런 걸 확실히 알려고 하면 토백이 한테 들어야 됩니다.

바로 위에 노씨라고 나이 많은 분이 있거든요. 그 분이 여기 본토백이인데 지금은 말을 잘 못합니다. 이 앞에 연탄집 옆에 이층 집 안있습디까? 그 사람도 고 사장이라고 제일 토백이입니다.

그리고 저 앞에 이층집 조사장도 좀 오래된 집입니다. 우리는 들어온 사람인데 한 삼십오륙 년 되는 것 같습니다. 연탄집은 박씨라고 우리하고 비슷한 때에 들어왔어요.

- 그때 이미 동네가 집들이 다 들어서 있었겠네요?

= 그렇지요.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면 동네가 싹 다 보입니다. 우리 집이 제일 높으니까 거기서 보면 구동네하고 새동네가 딱 표가 납니다.

새동네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구동네는 옛날 집 그대입니다. 옛날 우리 살던 그대로 입니다. 이 소방도로 난 것 하고 가원빌라, 성심주택 들어선 것 말고는 다 그대로 입니다.

- 여기 오셨을 때 근처에 국화밭은 없었습니까?

= 성심주택에서 골목으로 쭉 나가면 저쪽으로 국화밭이 있었는데 그리 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도 국화밭인데 노씨가 했어요. 그 지하수를 내가 팠습니다. 성심주택도 지하수를 내가 팠고요. 이 위에는 또 미나리꽝이 있었습니다.

- 지하수를 파셨으면 이 동네 많이 다니셨겠네요?

= 그렇지요. 내가 지하수를 파니까 이 동네뿐 아이라, 창원 함안 마산시내 골목골목 다 댕깄습니다.

- 이 동네는 물이 잘 나왔습니까? 예전에 이 동네는 지하수 파면 어느 정도 깊이까지 파야 물이 나왔습니까?

= 예 잘 나왔지요. 물도 좋았어요. 지금 우리 집도 수도가 없고 전부 지하수를 씁니다.

이 동네는 깊이 안팝니다. 옛날에 돈도 없고 하니까 많이 파면 삼십이나 삼십오 미터, 사십 미터 정도밖에 안팠어요. 암석까지만 팝니다. 암석도 오륙 미터까지 밖에 안팝니다. 백 미터까지 내려가는 그런 깊은 데는 큰 기계로 파거든요. 이 위에 있는 태양탕이나 그런 목욕탕 같은 데는 좀 깊이 팠을까 다른 데는 깊이 파지 않습니다.

일반 가정집인데 뭐 몇백만 원 주고 팝니까? 그 당시는 오십만 원, 육십만 원 많이 주면 백만 원이고 그랬어요. 요새는 백만 원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큰 돈입니다.

이삼십 년 전에는 파는데 이십만 원, 삼십만 원 밖에 안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하도 파니까 물이 말라버리는 겁니다. 그래 다시 팔 때는 백만 원, 백오십만 원도 받고 그랬어요.

여기 지하수는 풍부합니다. 아무 데나 파도 가정집 물은 충분합니다. 여기 땅이 마사 땅이거든요. 마사는 전체가 물을 딱 머금고 있어요. 그러니까 높은 고지대가 아니고서는 물이 짝 있기 때문에 파면 다 물이 나옵니다.

- 교원동 교방동 회원동 이 일대는 땅밑이 마사토란 말이지요?

= 그렇죠. 위쪽은 돌과 황토가 섞여 있지만 한 육칠 미터 밑에는대부분 마사토입니다. 위쪽은 돌이 많으니까 파기가 좀 힘들지만 조금 내려가면 마사토니까 잘 파집니다.

- 지하수 파는 기계를 뭐라고 부릅니까? 지하수 일은 얼마나 하셨습니까?

= 그냥 보링기라고 합니다. 내가 이 동네 사니까, 다는 아니겠지만 이 동네 지하수를 삼분지 일은 내가 판 거 같아요. 하하. 한 이십오 년 넘게 했습니다. 지하수 안한 지도 삼십 년 거의 돼 가요.

- 옛날에 지하수를 마음대로 팔 수 있었습니까?

= 좀 늦게 되어서야 지질조사니 수질검사니 했지만 그때는 수질검사고 뭐고 어딨습니까? 그때는 물만 나오면 됐어요. 요새는 환경영향평가도 해야 하고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때는 무조건 바로 파면 됐습니다.

그 당시는 수도가 제대로 없었거든요. 있어도 아무래도 물이 안좋고 부족하고 하니까 지하수를 파거나 그랬지요.

- 또 우물물 길러 먹고 그랬지요. 지금도 이 동네에 새미가 있지요?

= 그렇지요. 이 위에 올라가면 샘이 있었고 이 아래 내려가면 거기에도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또 옛날에 우리 집 밑에도 공동샘이 하나 있었는데 이 집을 새로 지으면서 막혀버렸지요.

- 오셨을 때 공장 같은 거는 없었습니까?

= 이 밑에 가구 공장이 있었어요. 지금 고물상 자리가 가구 공장이었어요.

그리고 또 오래 된 게, 공장은 아니지만, 지금 어린이집 하는 거기가 남일목욕탕 자리인데 옛날에는 목욕탕이 거기밖에 없었지요. 남일목욕탕은 헐렸고 가구 공장도 없어진지는 오래 됐죠.

북마산 가구거리 생기던 즈음에 없어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가구 공장 옆에 우피 공장도 한 데 붙어 있었어요.

또 무학상가 자리에 요꼬공장이 있었는데 쓰레트로 허름하게 지어져 있다가 우리 오고 나서 그 자리에 무학상가 지었습니다. 이 위로는 다 주택이고 밭이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저 회원파출소 위로는 옛날에 전부 국화밭이었어요. 그리고 저 건너 회원동 쪽에는 왜정시대에 말 키우던 데라고 하대요(아래 사진의 중앙 상부 음영 짙은 세 건물). 또 천막도 있었다고 하고요. 그 자리에 새한아파트 세 동이 들어서 있습니다.

 

 

- 비가 많이 와서 큰 수해를 입은 적은 없습니까?

= 그때가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하천변에 큰 피해가 난 적 있습니다.

우리가 이 밑에 집에 세들어 살았거든요. 그때 집 안으로 막 물이 들어와서 피해를 많이 봤죠. 그때 도랑가 옆으로 전부 집을 새로 다 지었어요.

이 밑에 도랑가 이층집은 거의 그 이후에 새로 지은 거라 보면 됩니다. 저쪽 서원골 의신여중 밑으로는 완전히 쓸어버렸고 여기는 이 밑에 남일목욕탕 그 주위로 피해를 많이 봤지요.

이 앞에 이 골목이 지금은 복개 했지만 옛날 도랑입니다. 옛날에는 큰 비만 이 도랑이 넘쳐 흘러서 주변이 엉망이었어요. 저 큰도랑 있고 여기 작은 도랑밖에 없었거든요.

- 그럼 여기 작은 도랑은 복개한 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 복개한 지가 이십년 넘게 됐을 겁니다. 지금은 비가 아무리 와도 큰 피해는 없지요.

- 조금 위에 수재민 주택이라기도 하고 공영주택이라고 하는 데 있잖아요?

= 수재민 주택은 저 위 앤지밭골에 있고 여기는 회원주택이라 하대요.

그리고 또 주공아파트 새로 지은 거기도 수재민 주택이 있었던 같습니다. 여기 무학자이 그 자리에도 수재민 주택이 있었어요. 쓰레트로 쫙 지어가지고...

- 그럼 여기 오시기 전에는 어디 사셨습니까?

= 봉덕에 살았지요. 원래 고향은 함안 여항입니다.

지금은 진전면이지만 옛날에는 함안군이었어요. 함안군 여항면인데 저쪽은 산동이고 이쪽은 산서인데 산서는 진전면으로 붙어버린 겁니다.

- 바로 이 밑에 길가에 보니까 점집이 하나 있는데 갓데미산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함안 분인가? 생각했습니다. 여항산을 갓데미산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 맞습니다. 둔덕 위에 그 산을 갓데미산이라하지요. 그걸 따다가 이름 붙였을 수도 있겠네요.

- 이 동네 오래 사셨는데 살기가 어땠습니까? 도 조금 있으면 재개발 될 거 아닙니까?

= 살기 좋습니다. 시장 가깝고 해서 없는 사람들 살기가 좋습니다. 또 이 집은 양지라서 볕이 들어서 따시고 사는데는 아무 불편이 없어요. 조금 있으면 우리 집에 볕이 여기까지 들어 옵니다. 볕이 잘 들어와요.

이 집 지은 지가 한 십칠팔 년 되겠네요. 우리가 살려고 지었거든요. 설계도 우리가 했고 공사를 떼내어 줬는데 그때 돈으로 평당에 이백이십 만원씩 주고 지었어요.

사실 우리는 재개발을 안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야 될 거고... 지금은 돈이 안드는데 관리비니 뭐시니 달달이 돈이 들 거고...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돈 싸게 주면 안 할끼고 비싸게 주면 할 거고요. 하하하.

- 어떤 사람들은 빨리 됐으면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반대하시고...

= 반대하는 사람 많이 있을 겁니다. 나도 여럿 사람이 같이 하니까 반대를 못하지 내 혼자만 반대한다고 되지도 안할 거고 또 괜히 시끄럽기만 하고...

- 바로 옆에 주차장은 만들어진지 오래 안된 모양입니다.

= 한 이삼년 밖에 안됐어요. 땅임자가 선창에 복다방 주인인데 처음에는 주차비를 얼마씩 받고 관리를 했어요. 그런데 주차비를 주고 주차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폐지를 했어요.

그러니까 쓰레기장이 되는 겁니다. 그래 새로 싹 딲아서 무료 주차장을 만든 거지요. 동네 주민들을 위해서 땅임자가 서비스를 하는 거지요. 그러니까 차 대기 좋고 동네 깨끗하고 해서 좋아요.

- 좋은 일이네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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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2. 08:08

"창원 70년사 잘 담긴 연극 탄생 뿌듯"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 (kmj@idomin.com) 2021년 02월 22일 (월) 기사입니다.

 

허정도 건축가 동명 도서 원작…관객, 연기·무대·의상 호평

일제강점기부터 부마항쟁까지 옴니버스식 인물·사건 극화

"지역민으로서 자부심 느껴" 창원문화재단 28일까지 선봬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이 전국 순행 중 마산(현 창원시)을 찾은 1909년 일제강점기부터 유신독재 붕괴의 도화선이 된 19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 70년의 역사가 100분의 연극으로 펼쳐져 주목을 받았다.

작품은 마산이라는 장소 위에 굵직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내세워 지역의 자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8일 창원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한 연극 <도시의 얼굴들>(성종완 작·정범철 연출)이 초연됐다.

이 작품은 이달 말 임기 종료를 앞둔 강제규(영화감독) 대표이사가 총괄 프로듀서로 야심차게 선보인 창작 연극이다. 원작은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 도서로 배우 김수로가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연극은 옴니버스식 구성이다. 주인공은 의병활동, 독립운동을 한 털보, 그와 결혼한 순애, 순애와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한 춘석이다.

연극은 1979년 경남대 근처 아귀찜 가게 마산집에서 기자 원석이 아픈 아버지 춘석을 대신해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산집은 순애의 딸 영희가 운영 중인 곳으로 여든이 넘은 순애가 원석에게 털보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며 전개된다.

연극은 방대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압축해 보여준다.

1909년 순종의 순행, 1919년 3·1운동, 1929년 마산의 야학운동, 해방 후 1949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함께 각 시대 마산에 살던 인물이 등장한다.

의병, 독립운동가 옥기환(1875~1953)과 명도석(1885~1954),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 소설가 지하련(1912~?) 등 무려 20명에 가까운 인물이 언급된다.

특히 순애가 원석에게 "그때 창신학교에 참 좋은 얼굴들이 마이 나왔다"며 자산 안확(1886~1946)·한결 김윤경(1894~1969)·한뫼 이윤재(1888~1943)를 언급할 때, 관련 인물 사진이 무대 배경에 나와 역사 교과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지난 18일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첫선을 보였다. 공연은 28일까지 이어진다. /창원문화재단

 

출연 배우는 서울에서 온 원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 연기했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소 어색한 사투리로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기억의 조각과 과거의 조각을 맞추어 오늘이 되었음을 표현하는 무대 디자인은 돋보였다.

극 마지막에 3·15의거탑을 배경으로 각 출연진이 "내는 운동선수입니다", "가정주부", "구두닦이", "자동차정비공", "학생" 그리고 "내는 마산시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고 외치는 부분은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민주주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

손수나(33) 씨는 "전반적으로 창원의 역사, 특유의 시민성과 정신을 잘 살린 콘텐츠가 탄생한 것 같다"며 "사투리 짙은 연기며 무대 세트, 의상까지 굉장히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을 선물받은 느낌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손 씨는 "다만 역사가 깊고 이야기가 많은 마산인 만큼 연작 시리즈로 제작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했다.

김예원(26) 씨는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 등 민주주의를 잘 담은 연극이라 마산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며 "특히 극의 마지막 부분에 3·15의거탑 앞에서 나이·직업을 불문하고 민주주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언급될 때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허성무 시장이 취임한 이후 창원시립예술단은 창원지역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무용극 <소리 없는 함성>과 오페라 <찬란한 분노> 등을 선보였다.

이번 연극은 그 연장선으로 <도시의 얼굴들>이 재단 대표 레퍼토리가 될 수 있을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연극은 28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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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21. 00:00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 2월 18일 개막

이 글은 위드인뉴스 김영식 기자의 2021년 2월 19일가 기사입니다.

 

창원시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창작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지난 2월 18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드디어 첫 막을 올렸다.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도서를 원작으로 하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이 암울했던 시기 작은 희망을 품고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감독이자 창원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강제규 대표가 총괄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1979년 마산의 한 아귀찜 가게에 기자 원석이 찾아와 가게 주인 영희의 노모 순애에게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순애가 1909년 구한말 소년 의병 털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 운동을 하던 순애와 춘석, 의병 대장 털보의 젊은 시절부터,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를 갈망하는 역사를 가진 당시 마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 중 순애의 젊은 시절에는 노동야학을 개설한 옥기환, 독립운동가 명도석,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한 이원수, 소설가 지하련 등이 등장하며 마산이 독립지사들뿐 아니라 저명한 문학가들이 문학의 터를 닦은 곳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미지: 연극 <도시의 얼굴들> 공연사진 | 제공 = (재)창원문화재단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개막에 앞서 창작 초연에 함께할 배우들을 공개하며 기대를 모은 바 있다.

극 중 젊은 시절 의병 대장이자 상해임시정부 비밀 요원 털보 역은 박정철이 연기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1979년의 순애 역에는 이칸희가 맡았다.

독립운동을 하며 노동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젊은 순애 역에는 길은혜가 순애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젊은 춘석 역은 지찬이 맡아 1919년 3.1만세운동과 1929년 노동야학에서의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극이 시작하는 1979년 아귀찜 가게 주인이자 순애의 딸 영희 역에는 김민경이, 순애를 찾아 마산을 방문한 기자 원석 역에는 윤대성, 영희의 외아들 정규 역에 조선기가 부마항쟁 시대의 마산을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노동야학인 ‘마산 노동 야학교’를 개설한 옥기환, 기환과 함께 노동야학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간 명도석 역에는 정상훈, 안두호가 아동문학가로 동요 ‘고향의 봄’을 발표한 이원수 역에 오태호,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하였던 소설가 지하련 역에 이현아가 순애의 젊은 시절을 함께하는 인물들을 연기한다.

이들은 오문강, 이성재, 이슬기, 류성진, 김준호, 허지훈, 김희수, 안지아, 남은주, 김민성, 박솔지, 권인화, 김예은과 함께 극 중 다양한 시대 속 인물들을 표현하며 그 시대 창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원문화재단은 ‘연극 <도시의 얼굴들>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등 시민들이 지역의 우수성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겠다. 이 연극을 창원문화재단의 대표 레퍼토리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매 장면 정성스럽게 만들었다.’라며 자신감 있는 개막 소감을 밝혔다.

첫 개막 공연을 관람한 관람객들은 연극<도시의 얼굴들>이 전해주는 지역의 역사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민주화 투쟁의 중심 창원의 역사 속 인물들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2월 28일까지 성산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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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16. 20:13

박정철, 연극 ‘도시의 얼굴들’ 캐스팅 확정

배우 박정철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

이 글은 톱데일리(http://www.topdaily.kr) 최지은 기자의 2021년 2월 15일 기사입니다.

 

14일 토리엔터테인먼트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배우 박정철이 연극 ‘도시의 얼굴들’에 출연을 확정지었다”고 전했다.

연극 ‘도시의 얼굴들’은 구한말부터 1970년까지 창원시(옛 마산)를 거쳐 간 16인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당시 도시의 풍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풀어내 지역적 특성을 잘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원작은 2019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한 허정도 건축가의 동명의 책이다.

극 중 박정철은 ‘털보’로 분한다.1909년 구한말 소년 의병인 ‘털보’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총과 칼을 든 인물.그는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항쟁까지.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다.

 

 

이에,박정철은 깊은 연기 내공은 물론,특유의 선 굵은 연기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완벽 소화,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할 예정이라고.

한편,박정철은 최근 배우 최정원,나혜미 등이 소속된 토리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활발한 활동을 예고한 바 있다.

‘도시의 얼굴들’은 오는 18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초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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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 8. 00:00

마산 70년 담은 〈도시의 얼굴들〉 이달 무대에

<이 글의 원문은 경남도민일보 김민지 기자가 쓴 2021년 1월 27일 기사입니다.>

허정도 건축가 원작 동명 도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색·극화

이달 18∼28일 성산아트홀서

 

창원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하는 연극 <도시의 얼굴들>이 오는 2월 18∼28일 성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첫선을 보인다.

이 작품은 허정도 건축가(LH 상임감사)의 동명 도서를 원작으로 한다. 영화감독이자 재단 대표이사인 강제규 씨가 총괄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하며 극작가 성종완 씨가 각색을 맡았다.

책에는 구한말부터 1970년대까지 마산을 거쳐 간 16명이 등장하며 저자는 당시 도시의 풍경과 사건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경상대 출판부가 발간한 책은 제3회 한국지역출판대상 천인독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원작의 인물, 도시의 풍경과 사건, 지역적 특성을 '어떻게 연극으로 풀어냈을까'다.

연극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다. 공연은 기자 원석이 1979년 마산의 한 아귀찜 가게에 찾아와 주인 영희의 노모 순애에게 털보의 행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순애는 1909년 소년 의병 털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독립운동을 한 순애와 털보, 춘석의 젊은 시절부터 해방 후 1960년 3·15의거, 1979년 부마민주항쟁까지, 민주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민주화의 성지 마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극 <도시의 얼굴들> 출연진이 연습을 하고 있다. /창원문화재단

 

이 밖에 노동야학을 개설한 옥기환, 독립운동가 명도석, 동요 '고향의 봄'을 작사한 이원수, 소설가 지하련 등이 등장한다.

배우와 스태프가 화려하다.

 

 

의병 대장이자 상해임시정부 비밀 요원인 털보 역은 <유별나! 문셰프>, <다시, 첫사랑>, <아내가 돌아왔다>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준 박정철이 맡는다.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1979년 순애 역에는 드라마 <누가 뭐래도>, <위험한 약속> 등에서 섬세한 감정연기를 펼친 이칸희가 캐스팅됐다.

독립운동을 하며 노동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젊은 순애 역에는 <어쩌다 가족> <단, 하나의 사랑>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는 길은혜가, 순애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젊은 춘석 역은 <편의점 샛별이>, <번외수사>에 출연하며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보여준 지찬이 맡는다.

연극 <장수상회> <돌아온다> 등에서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준 정범철 연출가와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 이동준 음악감독도 함께한다.

재단은 연극 <도시의 얼굴들>을 대표 레퍼토리 콘텐츠로 만들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시민들이 지역의 우수성을 공감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 지역의 문화도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향후 연극뿐 아니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예약제로 무료다. 1인 4장 제한. 문의 055-268-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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