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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9 00:00

방사능 올림픽은 절대로 안된다

 

성명서 / 탈핵경남시민행동

 

 

 

 

그린피스의 원자력 분야 전문가인 ‘숀 버니’ 그린피스 수석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정부는 방사능 오염수 110만 톤을 바다로 방류할 계획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특히 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후 8년 5개월이 된 지금도 피해 복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오염수 처리업체가 제시한 처리비용은 200조원이다. 따라서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 처리를 결국 포기하고 바다에 방류할 가능성이 크다.

후쿠시마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물질로 태평양 일대가 오염되고 예상(20-30년)보다 훨씬 빨리 태평양을 돌아 이미 일본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다. 그린피스의 주장처럼 한국의 바다 역시 방사능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

 

아베정권은 방사능 오염수 바다 방출 계획을 철회하고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인접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바다오염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를 촉구한다.

또 후쿠시마 지역의 토양과 하천은 방사능 수치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언론보도가 수차례 있었다.

선수들의 안전을 담보하는 조치가 완벽하게 이루지지 못하면 2020년 도쿄 올림픽은 특별 재난을 이유로 하여 연기하거나 개최지를 변경할 것을 촉구한다.

 

후쿠시마 재앙은 이처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 것이다.

아베정부는 핵발전소의 재가동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를 바란다.

아베정권은 핵발전 사고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님을 인식하고 중국, 일본, 한국이 함께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기를 축구한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고대 그리스 올림픽은 개성의 발전, 신체의 균형, 건강의 유지라는 목적이 있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음식물을 섭취하고 운동경기를 한다는 것은 이 목적에 결코 부합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CBS, 8.5일자)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의견이 68.9%로 나타났다.

선수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안전조치가 없으면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핵 시민단체 ‘비욘드 뉴클리어’는 8월 7일 일본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후쿠시마 재앙이 극복되지 않았음에도 아베정부가 정치적 목적에 올림픽을 이용한다는 점을 비난했다.

 

아베는 정권 유지에 매몰되어 도덕성을 이미 상실했다.

아베는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커녕 무역보복으로 대응하는 졸렬함을 보여줬다.

탈원전을 염원하는 탈핵경남시민행동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아베정권을 규탄하고 일본제품 불매, 올림픽 보이콧 동참, 방사능 바다 방출 제지 등 반 아베 규탄행동에 나설 것이다.

 

2019.8.19.

탈핵경남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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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4 / K-LINE Cable Metro

-그들의 도전-

 

통영 및 여수, 최근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설악 오색케이블카 등 우리사회에서 케이블카 설치는 지역의 관광산업의 활성화의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고 있다. 그에 따른 지역개발과 환경보전 사이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메데진(Medellin)은 새로운 시각과 발상 전환을 통해 세계 최초로 케이블카를 대중교통 수단(Cable Metro)으로 도입하였다.

현재 세계 30개국이 넘는 도시에서 메데진의 이 혁신적 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니 그 실효성은 이미 입증된 것으로 보인다.

 

<메데진의 케이블카 K-LINE Cable Metro>

 

구체적인 이야기에 앞서 메데진의 도시변천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고산지대의 온화한 기후가 특징인 메데진은 최초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조성된 후 19세기에 이르러 금과 커피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내전과 마약분쟁 등 급속한 인구유입 요인이 있었고 이는 산악 빈민지역의 난개발 확장(Urban sprawl)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메데진의 난개발>

<모든 건물에 사용된 사각형 3구 황토 블럭>

 

이런 상황에서 세르지오 파자르도 시장을 비롯한 정책입안자들이 도시의 무분별한 확산에 대응하고 달동네 빈민촌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한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메데진 K-LINE으로 대표되는 Metro Cable이다.

교통복지를 통한 사회적 도시화(social urbanism)의 새로운 모델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메데진의 대중교통 Metro Cable K-LINE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

아래 '메데진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도'의 윗 부분에 살짝 한번 꺾인 수평의 연두색 라인이 'Metro Cable K-LINE' 이다.

 

< 메데진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도 >

 

메데진의 대중교통 시스템 노선은 중전철이 도시 중앙을 가로 지르고, 지선은 버스 및 K-LINE 등과 같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다.

현지 치안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에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Metro A-LINE Universidad역에서 전동차에 올랐다.

우려와는 달리 차안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하고 한국 지하철과 많이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스페인어와 우리 일행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몇몇 현지들만이 여기가 메데진 전철 안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였다.

 

<전동차 역 출입구와 차 내부>

 

Acevedo역에 도착하여 K-LINE 케이블카로 환승하였다. 별도로 요금을 내지는 않았다.

K-LINE은 고지대 빈민지역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케이블카 코스였다. 'COMUNA 13' 처럼 도시재생으로 관광지화 시킨 곳은 아니었지만 케이블카로 교통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 놀랐다.

케이블카 밖으로 다닥다닥 붙은 경사지의 수많은 집들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마치 과거 우리의 달동네 수십 수백 개를 한 곳에 모아 놓은 듯 했다.

놀아움이 이어졌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끝 없이 펼쳐진 붉은 황토색 주택들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공 황토벽돌과 골함석 지붕으로 만들어진 수십만 채의 집들이 도시와 구릉지와 계곡을 뒤덮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에 눌려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이렇게 많은 주거용 건축물을 한눈에 담은 적이 있었을까? 이들에게 주어져야할 도시행정은 어떤 것일까? 자문했다.

널리 알려진 도서관은 보수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다본 현지 모습>

 

메데진 토박이인 현지 운전기사의 말에 의하면 케이블카 설치 이전에는 주민들이 도심의 일터로 이동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서는 일이 평범한 일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K-LINE 설치로 도심지역으로의 출퇴근 소요시간을 최고 70%이상 줄였다고 하니 이프로젝트의 효과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하게 설치된 우리의 경전철이 도입취지와는 달리 지역의 흉물로 전락한 모습이 오버랩 되어 씁쓸하다.

 

<메데진 현지 운전기사>

 

케이블 K-LINE의 종착역인 Santo Domingo역에서 내리지 않고 고산지대 산악관광지 국립공원 Parque Arvi로 이어지는 케이블 L-Line으로 환승하였다. 여기는 추가비용이 필요했다.

대담한 구상이었다. 

 

<국립공원 Parque Arvi와 연계된 K-LINE>

 

대중교통용 케이블카(K-LINE)와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관광용 케이블카(L-Line)를 연계한 시도가 참신하다. 탑승비용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에서 차별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도 충분히 도입을 고려해 볼만한 아이디어이지만 우리에게 도시지역과 대규모 자연림이 연결되는 곳이 있을까?

 

<국립공원 Parque Arvi>

 

이름이야 거창하게 'Metro Cable'이라 붙였지만 사실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 편익을 증진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빈부격차를 현실로 인정한 고육지책에 불과하며 여전히 변화의 과정에 있어 그 성공을 단언하기에는 이르다는 폄하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룩한 혁신적인 성과와 노력은 대중교통의 혁신을 통해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도시재생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도시를 향한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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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5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3 / COMUNA 13

-평화를 회복하다-

메데진市의 16구역 중 13구역(La comuna 13)은 마약갱단과 반군들의 주둔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금의 'COMUNA 13'은 2002년 10월 16일 내린 Alvaro Uribe 대통령의 무장해제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진압작전에 의해 이곳 'COMUNA 13'이 정부군에게 장악되었고 그로부터 서서히 평화가 회복되었다.

회복된 평화는 미래의 길을 모색하게했고, 그 길의 방향은 자신들의 삶을 담고있는 그릇을 바꾸는 것(공간개선, 도시재생)이었다. 과거에 보지 못했던 방향과 방법으로.

 

<진압당시 사진 / 길 한편에 진압 당시의 사진이 자랑하듯 걸려있었다>

 

초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에스컬레이터였다.

경사가 급한 산동네라는 특성을 고려해 설치된 무료 에스컬레이터는 'COMUNA 13'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게기가 되었다.

일터까지 두세 시간 걸렸던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주었고 길고 긴 오르막 길의 고단함으로 일거에 덜어주었다.

좁고 경사진 골목의 입구만 막으면 외부진입이 불가능했던 곳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그 속에는마약조직별로 구역이 나누어졌고, 살아남기위해 살인과 폭행이 다반사였던 'COMUNA 13'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입구에 광장을 만들어지고 멋진 에스컬레이터까지 들어서자 공간이 변화한만큼 사람까지 변했다. 소통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붐빌까봐 아침 일찍 나섰는데 이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유럽인이 많다고 했다.

 

 

놀라게한 것은 이뿐 아니다.

마약조직 간의 폭력과 정부의 진압작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의미로 조성된 그라피티(graffiti) 때문이다.

그라피티야 도시 농촌할 것 없이 우리나라 어디에나 사람사는 곳이라면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더구나 작년 2월 미국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뉴욕 퀸즈의 한 건물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지운 건물주에게 675만불(한화 약 70억원)의 벌금형을 내린 사건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던 터라 관심이 더갔다.

 

'COMUNA 13' 그라피티는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작품을 하게함으로써 오늘의 결과가 있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라피티의 세계적 명소와 관광지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다. 

마을 곳곳에 서있는 옹벽과 건물 외벽과 담장에 그려진 수준 높은 그라피티가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들어맸다. 사회봉사활동이나 대학생 재능기부 등으로 작품 수준이 높지 않은 우리의 그라피티와 비교되었다. 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가는 쵸타(CHOTA)라는 젊은 작가였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다녀간듯 쵸타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있는 기념품 가게도 눈에 띄었다. 'COMUNA 13'이 그려진 콜롬비아 전통 모자를 하나 사서 차양모로 쓰고 다녔다.

 

<쵸타의 그라피티 작품들과 쵸타가 클린턴과 함께 찍은 사진>

 

<계단길과 나란히 설치된 미끄럼길 / 아이들 전용 놀이 공간으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운좋게 현장에서 그라피티 작업중인 젊은 작가들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국가나 지자체의 별도 비용지원은 없으나 자신들의 작품활동 기회를 제공받는 측면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바탕작업 중이어서 완성된 그림을 볼 수는 없었지만 'COMUNA 13'의 초입에 있는 긴 벽체의 그라피티라 실력이 검증된 작가이거니 생각했다. 만약 다시 온게된다면 그때는 완성된 그라피티를 볼 수 있겠지.

 

<작업 중인 그라피티 아티스트들>

 

주변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동양인들 모습이 신기했는지 현지인 일행이 대화를 요청해 왔다. 알고 보니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COMUNA 13' 구역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중인 현지 방송국 스텝들이었다.

그는 'COMUNA 13'에 살인과 폭행이 범람했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의 변화를 추적하고 기록하고 사진에 담는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자신들의 변화를 보기위해 찾아 왔다는 사실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쓰라린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덕담을 건넸다.

 

<COMUNA 13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콜롬비아 방송사 직원>

 

'COMUNA 13'을  빠져 나올 때 전깃줄에 신발이 걸려 있는 특이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행들끼리 다양한 의견이 제기 되었으나 도무지 사연을 알 수 없어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과거에는 이 주변에 마약상이 있다는 은밀한 표시였으나 지금은 단순히 재미로 걸어 놓는다고 한다. 생활 환경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

 

메데진시 주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무척이나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감정은 과거 마약카르텔과 폭력조직들에 의해 왜곡되어 왔고 그들이 사는 공간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평화가 회복된 이후 이러한 주민의 지역사랑은 혁신적인 도시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환경을 바꾸고 삶이 새롭게 시작된 그들의 미래에 궁금증을 품은채 짧은 탐방을 끝내고 'COMUNA 13'을 빠져 나왔다.<<< 

- webt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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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9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2 /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 이하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메데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빈곤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성적은 매우 우수한 학생이었다.

마약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고, 22세 때 이미 메데진 일대를 주름잡는 마약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여러 조직들과의 협작을 통해 1976년 그 유명한 메데진 카르텔을 결성했고 미국 내 마피아 갱단과 연합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하였다.

콜롬비아 혹은 메데진(Medellin)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에스코바르는 세계 역사상 가장 부유한 범죄자로도 유명한데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한다.

글 중에는 소문일뿐 확인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 전성기 시절 에스코바르의 갱단은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담당했으며 일 년에 500억 달러(한화 약 55조)를 벌어들였다. 현금 다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2,500달러(한화 약 270만원)를 지출하기도 하였다.

-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보잉 727기를 개조해서 좌석을 전부 떼어낸 후에 마약을 운반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잠수함까지 밀수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 (사실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그가 보유한 현금의 10%가 매년 없어졌는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쥐들이 쌓아 놓은 지폐를 갉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또한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의 합동 작전에 쫓겨 추운 콜롬비아 산맥으로 도주했을 당시에 (손녀가 춥다고 해서) 약 2백만 달러의 지폐를 불쏘시개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 에스코바르가 개인 동물원을 지었는데 그가 몰락한 후 보유한 동물들 중 하마들만 처분이 되지 못하여 자연으로 방생하게 되었는데, 원래 4마리였던 하마들이 50마리 이상으로 늘어나 현재 콜롬비아 생태계의 최대 재앙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스코바르가 콜롬비아의 현재에 끼친 가장 큰 해악은 다름 아닌 이 하마들을 사들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있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정부가 내전과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약을 팔아 번 돈의 일부를 사회 인프라와 빈민들을 위하여 투자하였다.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축구팀을 창설하였으며 심지어 빈민층에게 상당한 돈을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마약왕이 아닌 ‘가난한 자들의 로빈 후드’, ‘구원자’ 라는 칭송을 얻게 되었고, 1982년 콜롬비아 자유당 예비국회의원에 선출되었으며 심지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이중적 행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3년 당시 법무부 장관이 그의 범죄행위와 경찰을 상대로 한 매수 등 비리행위를 폭로한데다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의 합동 작전으로 인해 결국 수배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의 국가부채를 자신이 상환하겠다며 사면을 요구하였으나 정부는 이를 거절하였다.

결국 에스코바르의 수감생활이 시작됐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에스코바르가 수감된 감옥은 호화 별장을 방불케 하는 숙소와 다름없었고 운동장과 수영장, 연회장까지 갖춘 그야말로 마약왕을 위한 맞춤형 감옥이었다. 이유는 에스코바르가 직접 감옥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승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옥 안에서도 자유롭게 메데진을 시찰하며 마약사업을 관장했다. 이런 행태에 대해 미국이 강력한 압박을 가하자 콜롬비아 정부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교도소로 이감시키려하자 에스코바르는 함께 수감 중이던 지인들과 함께 유유히 감옥을 빠져나갔다. 이때 교도소 간수들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탈옥에 성공한 에스코바르는 메데진에 마련해둔 아지트에서 은신을 시작한다. 주민들의 각별한 보호가 그의 은신 생활을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과 콜롬비아 정부가 현상금 8백만 달러를 거는 등 적극적으로 그를 찾기 시작했고 경쟁 마약 조직의 보복 공격이 거세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은신 중이던 에스코바르는 결국 가족을 걱정한 나머지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의 20초간 통화 때문에 위치가 발각되고 만다. 자신의 생일 파티를 마친 직후였다.

위치가 파악되자 미국의 특수부대 델타포스와 콜롬비아 특수부대가 즉각 투입됐고, 총을 들고 탈출하던 에스코바르는 그가 숨어 지냈던 건물의 지붕 위에서 특수부대가 쏜 수십 발의 총알에 맞아 사망한다.

 

<페르난도 보테르 작(1999)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죽음>

<에스코바르가 최후를 맞이한 곳의 현재 모습>

 

메데진 도시재생을 포스팅하면서 먼저 그를 소개한 이유는 메데진에 남긴 에스코바르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크기 때문이다.<<<

 

- webt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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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1 / 세계가 주목하다

-그들의 변화-

 

한 때 전 세계 마약 시장의 80%를 주물렀던 세기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milio Escobar Gaviria / 1949. 12. 1~1993. 12. 2).

그의 일대기는 최근에까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아직까지도 중남미는 물론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메데진(Medellin)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고향이자 세계 최대의 마약 카르텔 본거지였다. 이로 인한 마약 쟁탈전과 높은 범죄율은 시민들에게 고통과 두려움의 징표였다. 

도시문제도 심각했다. 공공의 통제를 벗어난 대책 없는 확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 도시에 혁신적인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메데진(Medellin)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월 20일. 박용남 선생의 추천으로 이 낯선 도시를 찾았다.

오래 전(2002) 박용남 선생의 책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읽은 후 혼자 브라질 꾸리찌바에 간 적이 있다. 책에 실린 꿈 같은 내용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나와 박용남 선생과의 인연이다.

그 인연으로 올 초봄에 남미 도시 중 도시재생을 테마로 가볼만한 도시를 묻자 박 선생은 망설임 없이 메데진(Medellin)를 추천해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낯선 콜롬비아의 도시 메데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포스팅한다.

마침 7월 12일 중남미 순방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데진 플라자메이어에서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 메데진 시장과 만나 '서울-메데진 간 우호협력 결연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해 메데진은 서울시의 우호도시가 되었다.

 

 

내 글에 앞서 세계가 평가한 메데진(Medellin)을 먼저 소개한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글들이다.

 

【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올해의 도시’(2013) 】

ㅇ 월스트리트 저널은 콜롬비아의 메데진(Medellin)이 도시랜드연구소 (Urban Land Institute)와 협력하여 개발한 글로벌 프로그램인 "올해의 도시 (City of the Year)" 페데리코 구티에레즈(Federico Gutiérrez)경쟁의 우승자로 선정하였다.

ㅇ Aníbal Gaviria 시장 소감

“메데진은 20년 전의 매우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고통과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곳을 현재의 희망의 장소로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 여러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메데진(Medellin)은 사회변화 프로그램, 도시개발사업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의 결합에서 단계별로 혁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성공의 핵심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올해의 도시’ 선정을 통해 Medellin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앞으로 펼쳐질 엄청난 도전의 결과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ㅇ Urban Land Institute 성명서

“지난 20년간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메데진(Medellin) 만큼 변화를 이루어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습니다. 메데진의 살인률은 1991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동안 80% 급락했습니다.

메데진은 취약한 언덕 지역에 공공 도서관, 공원 및 학교를 건설했으며 거기로 부터 상업 및 산업 센터까지 일련의 교통 연결을 구축했습니다.

메트로 케이블카 시스템과 급경사 언덕을 가로 지르는 에스컬레이터, 정류 시간 단축, 민간 투자 촉진, 사회적 형평성 및 환경적 지속 가능성 증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

 

【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2016) 】

“메데진은 무분별한 도시 확장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의 도시환경에서 지속가능한 변화와 혁신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ㅇ 한정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메데진은 연간 수익의 약 30%를 공공 인프라 투자로 전환시키는 공공 소유 유틸리티 회사와 협력하여 자금을 창출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ㅇ 또한 Anibal Gaviria 시장과 지도자들은 소규모이지만 효과적이고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를 통해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 Circumvent Garden : 다중 운송모델을 통해 언덕과 도시를 연결함으로써 도시 확장을 통제하고 산사태 위험을 완화하는 한편 새로운 공공 공간을 창출하여 일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킴

- 구조적으로 건전한 것으로 밝혀진 비공식 무허가 주택 단지의 합법화

-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종전 활용도가 낮았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및 문화 공연장 개발

- 기타 유아 교육 프로그램 등의 개발

ㅇ 심사위원장 Kishore Mahbubani 교수

“메데진(Medellin)은 통제되지 않은 도시 확장, 높은 범죄률 및 마약 쟁탈전 등의심각한 과제를 해결하고 과감한 리더십, 장기 계획 및 지속 가능한 사회 혁신을 통해 제한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과 경제를 개선했습니다.

지난 20 여년간 메데진(Medellin)이 직면했던 도전은 아프리카, 아시아 및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도시들이 겪고 있는 전 지구적 도전을 대표합니다.

오늘날의 급속한 도시화는 삶의 조건과 경제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간 정착의 전경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혁신적이고 지속 가능한 도시 솔루션입니다.”

(참고로 2018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은 서울시가 받았다)

 

 

> 위키백과에서는 메데진(Medellin)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콜롬비아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2,499,080명으로 콜롬비아 제2위의 도시이며 콜롬비아 서부,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다. 해발고도 1500m의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 금의 개발 기지로 건설되었고, 후에 커피 재배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콜롬비아 커피 재배 지역의 중심지로 많은 커피를 집산하고 있다. 콜롬비아 최대의 공업도시로서, 제철, 자동차, 플라스틱, 섬유, 식품(맥주)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수도 보고타 다음가는 콜롬비아 제2의 도시로, 아름다운 공원과 근대적인 고층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과연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통해 마약으로 얼룩졌던 기존의 이미지를 떨치고 혁신적인 변화를 이룩하였는지 몇 차례의 짧은 포스팅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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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00:00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의령 자굴산 산행

이 포스팅은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진주혁신도시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내 토지주택박물관과 의령 자굴산을 다녀온 기록입니다. 글은 회원인 손상락 박사가 썼습니다.

- 일시 ; 2019년 5월 31일∼6월 1일(금, 토)

 

5월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한 달을 맞이하는 지난 5월 31일(금)과 6월 1일에 우리는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100산 탐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박 2일에 걸쳐 진주 혁신도시에 본사의 둥지를 틀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박물관 견학과 자굴산 산행을 기획했다.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손흥민이 강원도 산골에서 2002년 월드컵 개막전을 보면서 월드스타를 꿈꾸던 오월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지는 1일차에는 토지주택박물관을 견학하고, 날이 새어 새로운 달이 되면 의령 자굴산을 오르는 일정이었다.

1일차인 5월 31일 금요일 오후 3시,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산 문화예술의 전당인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집결한 우리 일행은 메트로팀과 비메트로팀으로 차량 2대에 분승하여(김흥수 회원은 개별 이동) 진주 혁신도시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회원 대부분이 도시건축분야 전문가라 택한 목적지였다. 

 

 

저성장시대에 도시정책의 대안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도시재생과 관련하여 향후 쇠퇴되고 지방도시의 소멸위기 마저 걱정해야 하는 오늘날, 지역의 도시재생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생각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사전에 공문을 통해 관람 승인을 요청함과 동시에 안내와 해설까지 사전에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항상 이동 차량을 후원해주시는 분의 애마인 아우디와 넥서스로 남해고속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려 진주 혁신도시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차장에 도착한 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자랑하는 개관 20주년을 맞은 토지주택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수준 높은 학예사로부터 주거문화의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고급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움집에서부터 한옥 그리고 “잘 살아보세”하며 고도성장기의 산업화‧도시화 시대에 집(아파트)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온 주택‧주거문화와 도시의 발전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2017년의 토지주택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전(2017. 12. 11~)을 하고 있었다. “사랑과 가족”을 주제로, 이름하여 “사랑, 옛 문서에 담긴 사랑이야기”였다. 옛 문서에 남겨진 가족·결혼·부부생활·돈·이별에 대한 흥미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스토리를 엮어가고 있었다.

 

 

100여 년 전 토지문서에 나타난 법순과 푼수의 첫사랑 이야기, 역사 속 선조들의 결혼과 부부생활 이야기, 어긋난 사랑과 첩·치정·돈에 대한 이야기, 자매·상속·증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자신을 직접 종으로 파는 아들의 부모공경 이야기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클라이막스는 1998년 안동시 장성동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업지구에서 발굴해 전국민의 눈물을 흘리게한 원이 엄마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의 아기를 두고 먼저 떠난 고성이씨 이응태의 아내가 쓴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원이 아빠에게 보내는 애절한 편지”다.

이응태 아내의 편지 내용을 잠시 보면,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했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남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등등. 400여 년전 당시의 부부애와 가정생활, 그리고 남녀 동등관계 등에 대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많았다.

 

이렇게 박물관의 주택·토지에 관한 전시와 특별전 관람 등 1시간이 넘는 시간을 보낸 후 6시경 내일의 산행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진주의 먹거리를 탐방할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진주 원도심에 자리한 이 식당은 번화가가 아닌 뒤안길에 자리한 허름한 곳이었다. 우리 일행이 조금 일찍 도착해서인지 한산하기까지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진주에서 맛있고 특색 있는 소문난 식당이라는 말대로 손님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불고기인 것 같은데, 육수를 먼저 끓인 후 돼지고기 주물럭을 넣어 한참 뒤집기를 하니 특색 있는 먹음직스러운 주물럭 두루치기가 완성되었다.

시장기에다 특색 있는 두루치기에 젓가락질과 술잔 기울이기를 바쁘게 반복하니 모두들 음식 맛에 대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주 메뉴를 다 먹은 후 나오는 디저트가 특이했다. 바로 그 주인공이 “토란 들깨국”라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고 맛이 있어 모두들 더 먹고 싶었는데, 주인장께서 국이 얼마 없다시면서 김용운 회장님만 한 그릇 더 드렸다.

진주 최고의 두루치기에 상추 쌈과 소주로 민생고를 해결한 후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야! 잘 먹었다. 특색 있네. 다음에 다시 한 번 와야겠다”며 만족감과 포만감을 품고 식당을 나섰다. 우리 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했는데, 아니 허름하지만 소문난 식당 먹을 것이 많았다.

"맞어, 분위기 있고 품위 있는 곳은 아니더라도 여행자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으로 다시 가보고 싶어지는 특색 있는 먹거리가 필요해. 그것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절묘한 식당의 선택이었다.

 

7시 15분경 식당을 나서 진주성 야경을 일견하기 위해 진주성으로 갔다. 진주에 와서 진주성을 밟지 않으면 진주에 왔다 할 수 없기에 말이다. 시간 덕택에 입장료는 무료였다.

성내 산책 중 우리는 박물관 우측의 삼층석탑(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을 만났다. 안내판을 보니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국보 제105호였다. 아름다웠다.

 

 

산청군 소재 범허사라 하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41년 대구의 일본인 골동품상이 구입해서 공장에 세워놓았던 것을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했다가 긴 타향살이를 마감하고 2017년 2월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한다.

석탑을 살펴보던 우리 일행은 “원형 그대로 이다, 아니다, 복원을 위해 손을 대었다”는 등 분분한 이야기가 오가다가, 주말이면 가끔 지역 내 이곳저곳의 왜성이나 성곽 등의 발굴현장을 탐방하기도 해서 문화재에 대해 어설프지 않는 식견을 갖고 있는 신삼호 회원의 주장대로 원형 그대로가 아닌 일부 손을 댄 것이 맞았다. 사물을 보는 눈은 경험에서 축적되는 것이 판명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진주성을 한 바퀴 돌면서 산책을 하는데, 진주의 상징이요 문화재인 진주성의 지척 어디에선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신나는 유행가가 울려 퍼졌다. 진주성 가까이 있는,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가 설치를 했다는 분수광장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갓 쓰고 두루막 입은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든 화려하거나 멋지지는 않더라도 조화가 필요하려니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화재와 그 주변에 대한 보다 세심한 생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진주성벽에서 내려다 본 남강과 의암>

 

이렇게 진주성을 한 바퀴 산책하고 8시 30분경 숙소에 도착했다.

진짜 시작은 여기서 부터였다. 웃음 섞인 이야기들과 노래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아모르 파티”가 나오자 인문학의 대가께서 그 의미와 해석(運命愛: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이 따랐고 그럴수록 건배 횟수도 늘어갔다. 이윽고 명창 김용운 회장님의 무반주 노래가 나오자 모두들 다시 한 번 그 실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흥을 돋우는 모임의 조미료처럼,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동안 오가다가 노래의 감정과 느낌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내용인즉,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장사익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자지러지는 느낌이 전해오는 장윤정 스타일, 비음이 섞여 흐르는 이미자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꺾는 맛이 나는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 등등 각자 흥을 느끼고 감상하는 스타일의 다양성을 재발견했다.

 

 

노래 말에 관한 한 대미를 장식한 히트송은 유행가가 아닌 동요였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어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였다. 노랫말이 주는 어느 회원님의 재해석에 또 다른 시대상을 느끼게 했고, 이는 당시의 가족사와도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 회원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이번에는 산악회 사진전 실행 여부로 화두가 옮겨졌다. 지난 4월 일본 홋가이도 해외원정 시 논의된 바 있는 산악회 차원의 등산·여행과 관련 사진전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왜 하느냐에서부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회원, 일반 대중이 많이 찾는 장소에 게시하는 것은 핀잔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는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개떡 같은 사진이라도 찰떡같이 기획할 수 있다”는 강한 의욕을 피력하는 회원, 사진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이미 출품사진을 확보하고 있다는 회원 등등. '정신없는 산악회'인듯하면서도 실행 여부를 둘러싼 의견에 다양성과 균형성을 재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뿐, 실행 여부에 대한 결론은 끝까지 나지 않았다.

밤은 깊어 시계침이 새로운 달 6월 초하루를 가리킬 즈음, 원로님과 회장님은 큰방으로 가서 2일차 산행을 위한 체력 비축용 잠을 청하시고, 다른 회원들은 사진전과 기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더 주고받았다.

하지만 술에 장사 없는 법. 시간이 계속 흐르자 한분 한분씩 체력 소진으로 각 방으로 가서 베개를 벗 삼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새벽녘까지 거실에서는 여전히 인문학과 인생을 논하며 잠꼬대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몇분 회원의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잠꼬대 같은 소리 중 백미는 “이불 속에서도 와 이리 손이 차노.?” 였다.

 

 

10주년 기념 산행의 날이 밝았다. 7시 출발 예정이었지만 지난 밤 무리 탓에 1시간 가량 지체된 기상이었다. 게다가 거실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혼돈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조화를 찾아가는 산악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질서를 찾기 시작하면서 언제 전쟁터와 같은 거실이었는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9시경 숙소에서 나와 인근 콩나물국밥집에서 속풀이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해 9시 40분경 자굴산 산행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했다.

 

 

어제 밤 무리 탓에 힘든 몸을 끌고 시작된 산행이었다.

15분가량 산을 오르니 기와를 올린 꽤 모양새 있는 정자를 만났다. 반가웠다. 전날 밤의 취기와 무리로 체력이 소진된 탓에 가쁜 숨을 가다듬기 위해 배낭을 풀고 잠시 허리를 내려 쉬었다.

둘러보니 당호가 없는 정자였다. 우리 산악회가 마산 무학산 둘레길에 있는 정자에 산악회 창설 10주년 기념으로 '취풍정'이라는 현판을 설치한 것이 문득 생각나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기도 했다.

자굴산 중턱 쯤에 이르러 산행루트의 갈래 길을 마주쳤다. 백산대장은 2일차 산행루트를 미리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텐데,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디로 갈 건가를 두고 이야기했다. 다른 때와 달리 회원들의 눈빛에 전날 밤 음주로 체력이 소진되어 회복이 안 되었으니 짧고 평이한 코스(둘레길)로 가자는 기색이 역력했다.

통상 산행 속도는 시간당 2∼2.5킬로를 이동하는데, 쇠목재(베이스, 해발고도 650m)에서 자굴산 정상(897m)까지 약 1.3킬로를 전날 밤의 여파로 1시간 20분 걸려 11시경에 정상을 정복하는 거북이 산행이었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없이 산행을 했던 터라 정상에서 10주년 기념 산행의 회장님 기념사도 잊은 채 산행을 하다가 하산 도중 둘레길 중턱에서 회장님의 기념사를 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2시 10분경 하산을 완료, 출발지 쇠목재에 도착해 의령 읍내로 가니 12시 50분경이었다. 유명한 종로식당에서 쇠고기 수육과 국밥, 그리고 전통주로 속풀이를 하면서 배를 채운 후 회비 1만원 거출해 그 유명한 의령 망개떡을 구입하여 회장님 하사품으로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박물관 관람과 자굴산 산행이라는, 의미 있고 스토리 있고 진한 추억까지 가슴에 잔뜩 남겨준 학봉산악회 10주년 기념 100산 탐방 1박 2일의 산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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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8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4 – 삿포로(札幌), 뒷풀이

4. 28 (일요일, 넷째 날) - 맑음

 

8시 반 출발을 앞둔 호텔 앞 주차장에서 간밤에 있었다는 지진 얘기가 한창이다.

허와 서, 두 원로는 웬 지진 얘기라며 금시초문이다. 가이드가 진짜 있었다고 확인해주면서 지진의 강도를 규모와 진도로 구분까지 해가며 설명해준다.

원로 두 사람만 곯아떨어져 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놀라 깨어났다! ... 나이만 먹는다고 아무나 원로가 되나요? 자연재해에도 무심할 정도로 도가 터야지, 원로원 가입기준이 하나 생긴 셈이다!

막 출발하자말자 누가 호텔방에 도수 있는 선글라스 놔두고 왔다고 한다. 도로로 나오자 말자 바로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새로 ‘정규직’이 된 김 구청장이다. 어젯밤 기대치 않은 깜짝 승진의 감동과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으로 해석하는 게 정답일 듯.

이 에피소드는 학봉산악회 ‘정규(직)’ 회원의 위상을 웅변해준다. 향후 학봉의 정규회원 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것이 틀림 없으렸다!!!

가이드 기사가 호텔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느 집 앞에 차를 세우더니 큰 봉지 두 개를 들고 온다. 오늘 일정상 점심식사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비행기 안에서 드시라고 도시락을 준비했단다.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는 가이드의 성심이 엿보인다. 내가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인가, 호호.

아파호텔 객실마다 일본 극우가 쓴 문고본 책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 그리고 호텔 방 뒷면 창문이 바깥이 안 보이도록 해놓은 것 등이 궁금해서 이동 중에 가이드한테 그 이유를 물어본다.

뒷 창문 바깥 안 보이게 해놓은 건 아마 노천탕 때문인 것 같고, 아파호텔 체인 사장 남편이 극우인사인데 자기가 쓴 책을 출판해 홍보용으로 비치해놓은 것 같다고. 일본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데, 언론의 자유라 금지할 수도 없고... 대개들 그냥 무시한다고.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타키노레이엔(瀧野靈園)의 묘지공원 두대불전(頭大仏殿)을 보러간다.

 

 

이 불전의 모습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으니 사진들 참조하시기 바란다. 며칠 전에 씨네아트 리좀에서 ‘안도 타다오’라는 다큐영화를 보았는데 이 묘지공원은 나오지 않아 의아했고, 베네통 그룹의 파브리카연구소를 그가 설계했음을 알게 되었다.

파브리카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25세 미만의 젊은 창의인들을 모아 숙식하면서 무엇이든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일체의 지원을 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지식인 장기 레지던스라고나 할까.

공원 입구에 들어오면서 보았던 모아이상과 33명의 보살상을 보러 간다.

모아이 상들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르다. 말해 놓고 보니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모아이상들이 날 쏙 빼닮았다는 중론이다.

생각난다. 주왕산 계곡을 내려오면서 암벽의 사람 옆 얼굴, 그것도 날 쏙 닮았다고들 했다. 그래 나는 인류의 표본이야, 갑자기 자긍심이 밀려온다...

허 원로가 나를 나와 가장 닮은 것으로 보이는 모아이상 옆에 세우고는 작품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이름은 ‘비몽사몽’을 제치고 ‘반모반인’으로 정한다. 이거 공동작품으로 인정 안 하면 초상권 행사할거다. 가장 먼 쪽에 다른 모아이들보다 키도 덩치도 더 큰 석상이 하나 있다.

내가 보니 임 보급대장과 닮았다. 그는 이 얘기를 듣자말자 가서 확인한다. 그도 허 원로의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웃는 바람에 대칭성이 사라졌다고... 나는 표정을 모아이처럼 잘 했다고 칭찬 듣고...

 

 

공항이 있는 남쪽 신치토세 방향으로 내려간다.

좋은 길을 두고 산길로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가는 이유는 일본서 가장 물이 맑다는 산정호수 시코츠코(支笏湖)를 보기 위해서다. 그래서 점심 먹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 호수를 두고 분화구인가 아닌가 논란이 일었고, 이렇게 큰 화산 분화구는 없다는 주장이다. 가이드 아니라고 확인해준다. 그럼 어떻게 해서 생긴 건가? 설명한 것 같은데 못 들었다.

 

드디어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다.

좌석 예약이 안 되어 있고 가장 늦게 도착해 뿔뿔이 흩어져 앉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운데 자리들이 많다.

돈 더 주면 좋은 자리로 바꿔준다는 제안에 어안이 벙벙. 빈자리 있으면 처음부터 줄 것이지. 비상구 옆 좌석은 원래 가치가 낮은 자리인데 발 뻗을 여유가 있다고 가치가 상승했나보다. 어쨌든 고객 입장에서는 저가항공 이용자의 비애이고, 항공사 입장에서는 수익 극대화 방법의 일환이겠지, 이해하고 넘어간다.

가이드는 우리가 눈에 안보일 때까지 서 있다 가고, 비행기는 12시 55분 정각에 이륙한다.

신 대장의 양보로 허 원로와 나란히 앉은 나는 도시락 까먹고, 열심히 얘기도 하고, 호텔서 가져온 일본 극우가 쓴 소책자도 몇 페이지 읽고, 잠시 졸고 하다 보니 벌써 김해공항이다.

 

시간을 보니 15시 40분. 아, 3박4일은 좀 지친다. 그래도 2박3일은 짧고, 4박5일은 피곤할 것 같고. 해서 가장 적당한 일정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마땅한 식당이 떠오르지들 않나보다. 기내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앉았던 회원들 중에는 눈치가 보여 도시락을 못 먹은 사람도 있다. 누구는 아침도 못 먹었다네. 세상 불공평하다. 먹은 사람들 중에는 도시락 내용이 좀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일단 마산으로 가면서 의논해서 전화 연락하기로 하고 올 때처럼 두 팀으로 나뉘어 돌아간다.

우리 차에서는 허 원로 제안으로 생아구를 잘 한다는 다정식당으로 정했고, 통보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온다. 저쪽 팀에서는 회장이 다정식당을 제안했다나. 누군가 말하길 우연의 일치이지만 허 원로와 김 회장이 처음으로 통했다며 앞으로 죽이 잘 맞을 것 같다나. 하하 역시 쯔기다시 이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싶다.

 

17시에 마산의 '다정 생아구' 식당에 도착하다.

조금 이른 석식이지만 오늘은 제대로들 못 먹어서 괜찮다. 해단식도 해야 하고...

이번 산행 겸 여행에 대한 자평들도 있었다. 너무 학습 위주 여행이었다, 마지막 밤은 시내에서 지내야 했는데... 비용 절약 위해서는 패키지 이용도 검토해야. 패키지도 별도 가이드 둘 수 있다는 둥. 그래, 해외 갈 때는 공부도 좋지만 즐거움도 있어야지...

해외원정단장이 향후 해외원정지는 직권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검토 중인 후보지 중 인도네시아의 모 해변이 1순위란다. 부하 직원이 추천했다는데, 세계 제일의 석양과 노을을 볼 수 있단다. 어쨌든 알아서 하시고...

정신없는 산악회로 규정하는 바람에 무등산에서 정규직이 되지 못했던 김 부총무, "회장은 뭐 인사만 하고 권한은 직책 맡은 사람이 가지고 있고, 정신없는 산악회 맞네."

하하, 정규직 되더니 인자 눈에 보이는 게 없제? 원로원 가입만 늦어질 껏이다! 김교쑤! [끝]<<<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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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3 – 비에이(美瑛), 삿포로(札幌)

4. 27 (토, 셋째 날) - 흐리다가 삿포로 도착 후 맑음

 

숙소에서 조식을 먹은 후 9시 출발을 위해 탑승 준비들 한다.

게스트하우스 리좀과 무관하지 않은 나는 펜션 주인장 부부와 함께 건물 입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은 숙박업자로서...

떠나는 차 안에서 김 구청장 숙소 파트너였던 김 교수 왈, 자는 데 보니까 정말 몸이 안 좋다는 걸 알았단다. 어젯밤에 너무 닦달한 게 좀 후회스럽다. 그런데도 그동안 전혀 내색을 안 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가이드는 어젯밤에 주인장이 놀랬다 한다. 경험상 한국인 단체손님 왔으니 오늘밤 잠 설칠 각오했다는데, 조용한데다가(노래 소리가 잘 안 들렸나보다) 11시도 안 되어 취침하다니 다른 한국인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그동안 안 좋은 이미지 개선했다면 좋은 일이지...

먼저 간 곳은 ‘시라히게노다키(しらひげの瀧, 흰수염폭포)’와 ‘시로가네하시(白金橋)’다.

 

 

용암이 흘러 생긴 작은 개천이라 한다. 작은 개천이 넓은 개천과 만나는 곳에 폭포가 생겼는데 절벽 위에서 흘러내리는 게 아니라 절벽 수직면의 군데군데서 흘러나온다. 가까이 갈 수는 없고 백금교 다리 위에서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폭포 바로 위에 집들이 들어서 있어 위험해 보였지만 전혀 아니라며 그 때문에 오히려 인기가 많다고 가이드 설명한다.

 

차를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나와 ‘아오이이케(靑い池)’를 구경한다.

 

 

둑을 따라 산책길이 나 있다. 이 연못은 혹시 용암이 또 흐르면 막을 목적으로 인공으로 조성되었다. 나무들을 그냥 두고 둑을 쌓아 나무들이 물에 잠겼다.

신기하긴 하지만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김기덕 영화의 무대, 청송 주산지의 운치와는 비교가 안 된다. 물 색깔이 파랗다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색깔조차 이름값을 못하는 것 같다. 이 호수가 무언가에 나와서 유명해졌다는데... 무엇인지 잊어먹었다.

 

일본의 유명한 풍경사진 작가 마에다신조(前田眞三)의 기념관, 타쿠신칸(拓眞館)으로 이동한다.

 

 

마에다는 가장 일본다운 경치를 찾아서 전국을 쏘다니다가 이곳에 정착했고, 비에이의 구릉지대를 사철 쏘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한다. 구릉지의 낮밤, 노을, 석양, 계절 등 다양한 순간들이 포착되어 있다.

누군가 사진은 기다림의 작업이라 했던가. 같은 곳에서 같은 전경을 찍어도 사진은 다를 수 있다. 작가의 인내와 수고로움을 짐작할만하다.

척진관을 나와 바로 옆에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 속 오솔길을 따라 프로므나드(산책)한다.

사진들 찍기 바쁘다.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나무 숲길 끝은 언덕 위 도로로 이어진다. 밑에서 보면 병풍처럼 둘러선 언덕 위에 올라서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대. 멀리 눈 덮인 연봉들이 보이고 그 중 어딘가가 이틀 전 주봉 턱 밑까지 가보았던 대설산이 있겠지.

나는 사진 찍느라 뒤쳐졌는데, 마에다의 사진작품에 혹했는지 구릉지의 절경에 반했는지 이미 사진작가회를 결성했단다. 나도 무조건 회원이라며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10월에 전시회 개최까지 결정하고, 전시장으로 갤러리 리좀 예약까지 부탁한다. 진도를 한 번에 다 나가니 현실감이 없다.

 

언덕길에서 내려와 자작나무 숲길을 다시 돌아간다.

가이드 상, 전시회 리플렛에 실을 작가 얼굴사진 찍어준다 해서 모두들 번갈아가며 자작나무 숲길을 배경으로 폼들을 잡는다. 벌써 사진작가 된 줄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진 공유는 없다. 우리는 경쟁자인 것이다!

 

 

비에이 구릉지대를 이리저리 더 돌아다니다가 일명 파노라마 로드라는 길에 잠시 멈춰 구릉지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비에이역을 거쳐 비에이쵸(美瑛町)의 고마소바(ごまそば;검은깨 소바)점 쯔루키(鶴喜)에서 점심을 먹는다.

이제 정든(?) 비에이죠를 떠날 시간이다.

구릉이여 아듀(A Dieu!=to God). 연중 가장 경관이 못하다는 4월이 이 정도 감동을 주는데 언제 다시 한 번 와서 비에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려나.

이동 중에 내가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일어도 우리처럼 한자 없이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만으로 전용이 가능하지 않나? 혹시 그런 움직임은 없냐고? 가이드 답변, 못 들어봤다면서 자기 생각엔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서가 아닌지... 그래선지 일본인들은 언어유희를 많이 즐긴다고. 언어 후진국이라나!

 

나카후라노(中富良野)에 있는 도미타(富田) 농장으로 간다.

주차장에 내리자말자 살짝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아무도 없어. 이크, 부리나케 뒤편 산 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올라가보니 아무 것도 없다. 다시 내려와 우측으로 건물 뒤편이 수상해서 가보니 라벤더 노상 밭도 있고 하우스도 있다.

일행은 하우스 안에서 라벤더 꽃들을 구경하고 있다. 누군가 실종되었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버려진 느낌이 이럴까?

7~8월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는 라벤더 밭. 아, 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의 흐드러진 라벤더 밭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북해도 여행은 프랑스 유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계기가 적지 않다.

그다지 크지 않은 농장을 둘러보는데 라벤더를 넣은 빵 같은 것을 총무가 사먹자고 한다.

원로 두 사람 거절하고 커피나 한 잔 먹자 하니 총무 왈, 그건 공금 지출이 안 된다고 자른다. 할 수 없이 엔화가 없어 보급대장에게 커피 한 잔 얻어먹는다. 그런데 회장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들어온다. 공금으로 샀단다. 항의를 받자 자기는 빵 대신이라고 강변한다.

그럼 빵 대신 커피는 왜 안 되는데? 회장님의 기호는 일반회원과 별도로 취급하는 건가? 총무님 회장에게 너무 아부하시는 건 아닌지요? 이것이 아이스크림 사건의 전말이다. 결국 이틀 뒤 해단식에서 회장은 아이스크림 값을 토해낸다.

회장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회장단 위에 원로원’(‘조물주 위에 건물주’의 패러디) 다시 한 번 절감했을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쯔기다시’라는 사실도. ‘원로원 외 기타 둥둥’.

원하는 것 있으면 구입하라며 가이드 상이 근처에 있는 대형 슈퍼마켓을 들린다. 다들 뭔가 샀는지 모르겠지만 보급대장이 원했던 유리창 닦게는 결국 못 찾았다고.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이 도시 외곽에 있는 후라노 와인공장으로 이동하다.

입구에서 바로 지하 와인저장소로 내려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연도별로 제작된 포도주병을 전시 보관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랑스의 샤토(Chateaux, 성)들에서 거대한 지하 저장소를 본 나는 시들하다. 이층에서 공짜 시음을 하고 바로 나오려고 하니 총무가 유료시식 안 할 거냐고 해서 안 한다고 답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허 원로 등과 함께 공기를 쇤다.

다른 사람들이 한참 있다 나오더니 하는 말 와인 5가지를 유료 시음했다며 왜 안 하셨냐 한다. 헛기침이 난다. 이 몸은 프랑스 본토 포도주를 충분히 마셔본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 게 눈에 들어오겠어.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이제 북해도의 마지막 밤을 보낼 삿포로를 향한 장도를 시작할 참이다.

두 시간 못 미쳐 도착할 예정이란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이드 운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5월 1일부로 천황 연호가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변경된다.

우리가 방문했던 대형마트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세일이 진행 중이었다. 공식행사 중 총리가 ‘천황 만세’를 부르는데 지난 번 연호 변경 때 이에 대해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고, 일본 헌재가 합헌으로 판정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에도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가다보니 고속도로 갓길에 승용차 두 대가 서 있고 경찰이 단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뒤에 선 차의 종류는 ‘토요타 크라운,’ 경찰차가 아니어서 가이드에게 물어본다. 이른바 ‘복면 패트롤카’라고 한다. 일종의 암행순찰로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갈 카메라가 위헌이라며 모두 제거했다 하지 않았나? 어느 게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는 계속해서 삿포로시의 개척사 시대 이야기를 계속한다. 현재 인구는 200만 명, 대도시다. 평지인데다 마천루도 없어 도시의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고 방향도 해가 없으면 짐작할 수 없다. 이런 곳에야말로 랜드마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 게 도시학자와 건축가들 아니었던가요?

첫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남성용 주간지 1권을 샀던 총무는 오늘 또 1권을 샀다. 두 잡지에서 여성들의 노출 정도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하나는 좀 노골적인 대중 잡지 같고, 다른 하나는 거의 포르노 잡지에 가깝다. 인물들 연락처까지 있다.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는 신호인가. 무슨 생각? 몰라! 편의점이나 서점에서 대놓고 팔고 있으니 점잖은 한국 선비들, 어이없다.

한국인은 이보다 더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쾌락을 추구하며 ‘눈 감고 아웅’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뭐 굳이 숨길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라는 논평에 다들 동의한다. 이웃사촌 간의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이드는 이러한 일본인의 성 관념에 대해 지진이 빈발하는 재해국가 사람들의 특징은 아닐까, 즉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항상 즐기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철학박사는 일본 문화의 감각주의 성향도 여기서 기인한 건 아닐까라는 가설까지 세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유명한 영화까지 거론된다. 다들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렇다고 염세주의까지는 아닌 것 같고. 섬나라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항상 대륙 경영을 호시탐탐 노리고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과감하게 실행했던 침공의 역사를 감안하면 말이다.

어쨌든 일본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쉽지 않은 한국인에게 일본은 정말 쉬운 나라가 아니다. 일본과 일본인을 무작정 무시하는 태도와 일본 뒤만 따라가는 행태와 그래도 배울 건 많다고 보는 한국인의 이중적인 일본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삿포로 시로 진입하는 고속도로 출구 근처 도로표지판에 백석(白石)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어! 우리의 사랑하는 백석 시인과 한자도 같네. 확인해보니 흰 돌이 많은 지방이란 장소명이다. 하지만 무등산 때처럼 단어의 뜻만으로 추리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높다는 경험을 한 바 있어 확신할 수는 없다. 혹시 백석이 일본 유학시절에 삿포로에 어떤 인연을 남겨놓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얼핏 든다. 누가 알랴! 나중에 백석 연구자들에게 물어나 볼거나? 상상은 자유고 끝이 없다.

 

홋카이도청으로 직행한다.

 

 

북해도의 상징이라는 아카렌가(붉은 벽돌건물) 구 청사의 2층 전시장에서 북해도의 역사를 공부하다.

마침 사할린 관련 전시와 아이누족 등 소수민족 관련 전시도 하고 있다. 건물이 낡아 곧 보수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전시 내용과 가이드 설명을 통해 사할린 동포 문제의 원인이 망국과 분단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일제에 끌려온 노동자들은 일본 항복 후 이미 망해 없어진 조선의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당시 남북한 어느 곳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국민으로서 여권 발급을 해주지 않아 국제 미아로 방치되었다는 것. 자주국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일본 북해도의 국제적 현안은 러시아가 약속했으면서 아직 반환하지 않고 있는 북방 4개 섬을 돌려받는 것이다. 소수민족의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는 내년 올림픽을 대비해 인권 중시국의 인상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들의 존재를 원(原)주민이 아닌 ‘선(先)주민’으로 표현한 것은 뭔가 의도가 있어 보인다. 아이누족이 일본의 원주민이고 체격이 왜소하다고 왜놈이라고 비하해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지식이란다. 사진으로 보는 아이누족은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데다 잘 생겼다. 이 또한 식자우환이다!

삿포로 맥주 공장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에서 삿포로 맥주의 역사를 훓어보고, 인접해 있는 비어가든에서 걸게 저녁식사를 한다.

 

 

‘쯔기다시’가 다시 등장한다. 게를 비롯한 안주가 나온 후 여러 가지 종류의 삿포로 맥주를 마시면서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 우예 된 일인지 고기가 너무 많이 나와 결국 마이 남긴다. 사람으로 가득 찬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우리보다 걸게 먹고 마시는 팀은 없다.

인사말 하라는 허 원로의 지시에 김 회장 폭탄선언을 한다. 김 예비회원을 이 시간부로 ‘정규직’으로 발령한다는 것이다. 회장 직권이란다. 모두들 환영 및 축하 박수다. 원로들도 어쩔 수 없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분석해보자. 전날 밤 비정규직 논란으로 더 이상 구청장 출신의 전직 동료가 더 이상의 설움을 받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안타까운 동료애의 발로, 언제 ‘정규직’으로 받아줄지 모르고 계속 갖고 놀려고 드는 고집 센 원로들과 한 마디 상의도 하지 않은 것은 회장임에도 쯔기다시로 처신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자긍심의 발로, 그리고 다른 회원들은 비정규직 시절이 없었거나 짧았다는 사실을 감안해 공평성의 원칙의 적용 등이 아니겠는가?

큼큼. 내가 생각해도 제대로 분석한 것 같은데... 회장의 단독 결정에 다들 환영하는 것을 보니 이제 원로원 전횡 시대는 끝이 나는가 보다. 아, 옛날이여. 이젠 ‘황제 천국’이 될까.

실컷 먹고 마신 후 나오면서 비어가든 건물 입구에서 단체기념사진 해프닝 발생. 안 찍겠다는 걸 사진사가 공짜라 해서 찍었더니 사진 인화는 공짜가 아니란다. 잘못 알아들은 건지 속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인접한 쇼핑센터에서 자유시간, 별 일 없는 나는 김교수와 정교수와 함께 맥주 한 잔 더 한다. 좀 있다 허 원로가 창밖에 지나가는 걸 보고 잡아들인다. 무슨 얘기들 했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난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마지막 밤을 보낼 숙소를 향해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이 빛나는 시내를 지나간다. 가이드 하는 말, 삿포로 유흥도심은 중앙가로 남서쪽에 있는데 호텔로 가는 방향이라며 번화가를 한 바퀴 돌아준다.

어느 건물 3층인가 4층인가에서 손님 주문 받고 있는 듯 술집아가씨 두 명이 맨살의 엉덩이를 바깥 유리창 쪽으로 드러내고 서 있는 뒤태가 훤히 보인다. 이야, hot place 맞네! 그것만 제외하면 유흥가라 하지만 한국의 도시들만 못한 것 같고, 장기불황의 그늘도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번화가를 빠져나와 어디론지 외곽으로 계속 간다.

가이드 상 호텔에서 시내를 왕래하는 셔틀이 있지만 11시엔가 막차라면서 혹시 시내 나가신다면 올 때는 택시 타야 한다고... 말들은 안 했지만 상당수 회원들 불만이 이때부터 싹텄다는 사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 밤인데 왜 호텔을 시내에 정하지 않았냐는 거지.

어딘지는 몰라도 시내에서 제법 남쪽인 것 같은데, 이름은 아파호텔이다. 멋지지는 않지만 대형호텔이다. 방 배정하고 사우나한 후 1235호실(3인실)에 모여 남은 술과 비어가든 나오면서 들렀던 쇼핑센터에서 사 온 치즈를 안주 삼아 한 잔들 한 후 조용히 자러들 간다.

속들이 부글부글 끓었을까. 아마 그래서 잠들을 깊이 들지 못했나보다. 새벽에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다들 깼다고 하는 말이다. <<<

글 / 서익진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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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2 – 다이세쓰산(大雪山), 비에이(美瑛)

4. 26 (금, 둘째 날) -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에 눈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났나 보다. 새벽 4시부터 동이 훤하니까.

홋카이도는 한국보다 비행기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동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같은 표준시를 쓰니까 생긴 현상이다.

사우나 하고 호텔 뷔페 간편식으로 조식을 먹고, 짐 다 싸들고 나와 차에다 싣는다.

9시 경 아사히다케 호텔에서 눈앞에 보이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릴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케이블카 정거장을 향해 간다.

호텔 정문 맞은편에 ‘비지터 센터’(방문자의 집)가 있다. 아직 문이 잠겨 있어 그냥 지나치고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직진한다.

우측으로 대설산 정상이 정면으로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라고 큰 푯말까지 박아놓았다. 바쁘게 사진들 찍는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오늘 날씨들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히 쾌청하다.

허 원로, 어제 밤에 내가 향(?) 피우며 올린 기도가 통했다며 고맙다 한다. 나도 박자를 맞추어 마침 마산에는 비가 온다는데 내가 염력으로 여기 있던 비구름을 마산 쪽으로 보내버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설산의 진면목이 서서히 나타난다. 케이블카 뒤쪽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쪽 방향으로 평야가 갈수록 더 넓어지고, 어제 이곳으로 올 때 사진 찍느라 되돌아가서 멈추었던 장소 옆에 있는 저수지도 보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좌측과 우측으로 길게 늘어진 산맥들의 흰 연봉들도 더 길어져간다. 내 눈에는 좌측 연봉이 훨씬 더 길어 보인다.

해발 1,600미터에 있는 스가타미역(姿見驛)에 내리다. 그래봤자 이 케이블카에는 시점과 종점밖에 없다. 가이드가 눈에 발이 빠질 우려가 있다며 장화를 빌려야 한다 했지만, 다들 그냥 산으로 다가가 사진들 찍느라 분주하다. 60센티 이상 쌓인 눈이라지만 표면이 약간 얼어서인지 걷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약간 경사진 오르막 위 평지가 시작되는 곳에 걸상 밖에 없는 작은 전망휴게소가 설치된 곳에 올라가 사방을 구경한다.

 

 

바로 옆에 더 이상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 표지판이 서 있다. 산책로인지 등산로인지 발자국들이 이미 나 있다. 가이드 말로는 얼마 전 실종 사건이 난 후 입산금지를 한 것 같다고 한다.

질서 잘 지키는 한국인들로서 어찌 감히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런데 완만한 경사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대설산 주봉이 가파르게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곳에 증기기관차처럼 쉭쉭 소리를 내며 김 기둥을 뿜어내고 있는 곳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발자국도 나 있고 그 우측에는 전망휴게소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예까지 왔는데, 2시간 정도 눈길 산보를 예상하고 왔는데 이게 뭐람. 게다가 언제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정상까지는 못 가더라도 그곳까지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의 경고를 무시하고 무작정 나와 몇 사람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다지 멀지도 않다. 가까이 가서보니 두 개의 분화구에서 뿜는 소리와 세기가 굉장하다. 뒤돌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올라온다.

 

 

분화구와 정상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일명 죽음의 계곡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데 갑자기 김 부총무의 ‘사람 살려’라는 외침이 들린다.

돌아보니 발 하나가 눈 속에 푹 빠졌다. 숨구멍이다. 꽁꽁 언 호수에도 이런 숨구멍들이 있는데 빠지면 죽기 십상이어서 매우 조심해야 하지만 눈밭의 숨구멍은 위험하지는 않다. 도리어 재밌다.

내려오면서 여러 사람이 발이 빠졌고, 나도 두 번이나 빠졌다. 내가 “발이 빠진 수만큼 죄를 지었지만, 이제 빠진 것으로 땜했다”고 하니 다들 안심한다. 죄들 짓고 살기는 사는가보다.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 죄 안 짓고 우예 살 수 있겄노.

우리는 내려오는데 뒤늦게 출발한 우리 일행 몇 사람이 올라오다가 중간에 만나서 다 같이 내려왔다. 이들은 결국 김 뿜는 분화구를 가까이 가 보지는 못한 것이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타자마자 바로 구름이 밀려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허 원로 내 기도 빨 덕분에 산에 있을 때는 쾌청했다며 서도사로 인정한다고 하자, 아이고 나도 염력이 다 되어 더 이상 구름을 보내버릴 힘이 없다고 엄살을 떨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다시 쾌청해졌다. 중간에 구름 속을 지나온 것이다.

 

올라갈 때 닫혀 있던 비지터 센터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다.

대설산 관련 정보들이 비치되어 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서가에 대설산의 식생 등 조사보고서가 빼곡이 꽂혀 있다. 누구나 관심 있는 사람은 보라는 것 아닌가.

자료(정보와 지식)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모두 수집해 보관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까지 하다니. 선진국답다. 좋은 것 좋다 하고, 잘 하는 것 잘한다 하는 것도 친일일까?

흑곰 한 마리가 진열되어 있다. 물론 박제이지만 살아 있는 듯한 위용을 자랑한다. 어제 잤던 호텔 이름이 왜 베어몬트인가 알겠더라.

 

11시 30분경 비에이(美瑛) 마을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가이드가 일본 맥주 역사를 설명하고 3일째 되는 날 삿포로맥주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알려준다.

도중에 옆 계곡 길로 새서 칠복암(七福岩)의 주상절리를 구경한다.

다시 나오는 길에 보니 차도 외에는 모두 눈으로 덮여 있는데 나무들마다 땅에 인접한 부분의 주위는 눈이 녹아 둥그렇게 패여 있다. 그 이유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누군가 나무도 생물이라 열 때문에 눈이 녹지 않았을까라는 썰을 풀었고, 다들 대체로 동의한다. 왜? 진짜 이유를 모르니까. 근데 무생물인 표지판들도 조금씩 그러하니 이건 어떻게 설명하나. 몸의 열기가 낮은 탓이겠지... 허허허.

얼마 지나지 않아 비에이 마을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이다.

가이드 왈 카레와 라멘-볶음밥 중 선택하라고 해서 투표하기로 한다. 원로 두 사람은 아무거나 좋다며 기권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카레가 대세다. 카레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도로변 주택마다 건물 정면 이마에 연도로 보이는 네 자리 숫자가 붙어 있다.

비에이 마을은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삿포로 경영을 위해 이 지역에다 대지를 조성해 놓고 자발적으로 이주해 오는 본토민에게 땅을 나눠주기 위해 조성한 인공마을이다.

연도는 그들의 선조가 처음으로 이주했던 해를 지칭한다. 오래 된 것은 1870년대이고 20세기 전반도 상당히 많다. 이 마을이 계획도시라는 것은 거의 100% 격자형 도로망으로 증명된다.

패밀리레스토랑 다이마루에서 다양한 카레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어쩌다 ‘찌께다시’란 말이 나왔다. 가이드가 ‘쯔기다시(附き出し)’로 바로잡아주면서 이건 속어로서 ‘기타 등등’의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찌께다시는 일본의의 갱상도 사투리쯤 되겠다.

회원들 왈, “우리가 바로 쯔기다시네.” 대장 외 기타 등등. 쯔기다시는 이후 여행 내내 몇 번이나 반복 사용될 정도로 인기어가 되었다. 학봉산악회에서 대장원로의 위상과 함께 나머지 회원들의 자조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에피소드로 보인다.

식사 후 몇 사람이 카레집 건너편에 있는 전기용품 전문점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하는 말, 임 보급대장이 맘에 드는 유리창 닦는 도구가 있어 여주인에게 물어보니 파는 물건이 아니고 자기들이 쓰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으니, 부드러운 말투로 “글쎄요,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라고 답하더라며, 김 부총무 감탄해 마지않는다.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주인장은 퉁명스럽게 ‘몰라요’ 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투다.

 

오후 2시경부터 비에이 마을을 둘러싼 구릉지대에 흩어져 있는 명소들을 찾아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멀리 왼쪽으로는 다이세츠산 아사히다케 연봉과 오른쪽으로 토카치다케(十勝岳, 2077미터) 연봉이 보이는 비에이 구릉들(패치워크)은 모두 밭으로 가꾸어져 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작물은 거의 없고 맨땅이다. 때가 되면 씨뿌릴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무가 거의 없는 구릉지대에 군데군데 나무들이 서 있다.

 

 

그중에서 광고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나무들을 찾아가서 사진도 찍고 주변 경관을 감상한다. 떡갈나무 ‘세븐스타’, ‘켄과 메리의 나무’라 불리는 포플러나무, 이름은 없지만 차도에 일렬로 늘어선 자작나무 군 등이 대표적이다.

 

호쿠세이노오카(北西の丘) 전망공원에 갔다. 이 구릉지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비에이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날씨가 쌀쌀해져 따끈한 커피들이 생각났는지 카페를 찾는다. 카페라는 팻말을 보고 살펴보니 장사를 안 하는 것 같다. 누군가 옆에 있는 작은 슈퍼에 따뜻한 캔커피 판다고 해서 우루루 들어갔다. 몸 좀 녹이면서 커피는 캔으로 때웠다.

출발하려고 차를 탔는데 허원로와 임대장이 안 보인다.

누군가 카페 팻말이 붙은 쪽으로 옆길로 더 들어가보니 비닐하우스 안에 카페가 있고 거기에 있다는 전언이다. 아니 카페를 찾았으면 다른 사람들도 불러 같이 가지 않고 둘 만 가다니 꽤심하지 아니한가.

우리도 혼내주자는 음모가 저절로 꾸며진다. 차를 숨기자는 것이다. 가이드 기사 한술 더 뜬다. 안 그래도 차에 주유를 해야 하는데 비에이 시내에 갔다 오자는 거다. 대충 근처에 숨어있다 놀래켜 주자는 생각이었는데 일이 커진 것이다.

언덕 밑으로 내려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자 다들 맴들이 약해져 반대편 길을 따라 원위치한다. 마침 주차장에 다시 도착하는 순간 저쪽에서 두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나온다. 다들 어디 있었냐며 오히려 나무라는 눈치다. 음모는 자백으로 곧 밝혀졌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날이 추워져 더 이상 구경을 포기하고 일단 카미후라노(上富良野)에 있는 숙소 ‘스텔라’ 펜션에 짐 풀어놓고 온천목욕하려 가기로 하다.

시각은 오후 5시 경. 눈 덮인 자작나무 산길을 구비구비 거슬러 올라가니 프랑스 유학 시절 그르노블 외곽에 있는 샹후쓰(Chamrousses) 스키장 올라가는 길이 겹쳐 보인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눈 덮인 산길 경치인가. 어언 강산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세월의 흐름은 실감나지 않지만 과거는 생생하다.

토카치다케 밑에 있는 후키아게(吹上)온천 백은장(白銀莊)이다.

산장 같은 건물이 주변과 어울려 보인다. 산속 외딴 곳, 등산로 입구도 있다. 들어가니 노천탕을 멋지게 꾸며놓았다. 온천물이 고이고 또 흘러가도록 시내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런 곳에서 하룻밤 잤으면 하는 말에 가이드가 이 건물에는 숙소도 있다 한다. 지자체가 관광객을 위해 운영해 다른 온천숙소보다 약간 싸다고 한다.

아깝다. 가이드상 좀 쓰지 그랬소. 혼자 생각이다. 노천탕은 남탕과 여탕 중간에 남녀혼탕이 있다. 발꿈치만 들면 가리게 너머로 안이 다 보인다.

청춘남녀 한 쌍이 어쩌고 있다는 둥 수영복이 없어 혼탕에 못 들어가는 한도 풀고 사라져버린 청춘들을 안타까워들 한다. 나 혼자만 그런가. 진눈깨비 같은 눈발도 흩날리고, 분위기 죽인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이게 일본 집밥일까. 일본 소주와 정종은 무엇이든 맛있어.

 

 

TV 방영되었던 주인장 스토리가 녹화로 재생되고 있다. 6년 전 은퇴 후 이곳에 정착했다고. 사설 천문대도 운영 중이라고, 그제야 펜션 이름이 스텔라인 까닭을 짐작한다.

식사 내내 젊은 부부가 시중을 들더니 딸과 사위라 한다. 다음날 아침 떠나는 차 안에서 가이드 왈 젊은 남자는 일종의 데릴사위라 한다. 도쿄 유학 보낸 딸년이 졸업도 하기 전에 남친을 데리고 왔다나. 그래서 여기 와서 같이 살면 결혼을 허락한다고 했단다... 이거 부모 갑질 아니여...

3인용 방인 이층 다다미방에서 술 마시고 돌아가며 생노래를 부른다.

 

 

유일한 예비회원인 김 전 구청장. 몸 ‘조시’ 안 좋다며 노래를 안 한다. 어쩌다 내가 예비회원을 비정규직에 빗대는 바람에 논란이 되었다. 결국 돌아가며 노래하기로 한다.

걸핏하면 M고를 걸고 넘어지는 허 원로, 이번에도 C고가 헐 잘한다며 차별한다. 이거 자격지심(自激之心) 아니여. 내가 M고를 대변한다. C고가 노래 잘 한 것은 맞지만 창의성들이 없지 않나, 즉 음정 박자 잘 맞추면 뭐 하나 감정 넣어 자기 식으로 불러야지 하며 억지논리를 끌어댄다.

마지막으로 김 전 구청장이 결국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자랑은 막을 내리고 잠들 자러 가다. 밤 10시밖에 안 됐따!.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내일 날씨들 걱정에 내가 내일 오전 중으로 날씨 개일 것이라고 예언한다.

다음날 진짜로 그리 되니 가짜 서 도사가 진짜 서 도사로 공인되는 순간이다.

일급비밀! 가이드가 일기예보를 보고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근데 그게 딱 맞아떨어지다니, 이것도 일본의 실력인가?<<<

글 / 서익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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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1 – 아사히카와(旭川), 다이세쓰산(大雪山)

6월 1일로 10년을 맞은 학봉산악회의 회원들이 10년 된 기념으로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열 명의 회원 중 아홉 명이 함께했다. 명칭은 거창하게 ‘산악회’라 붙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에 만나 무학산 둘레 길을 걷는 소박한 모임이다.

참가자 : 김용운, 김재현, 김흥수, 서익진(글쓴 이), 신삼호, 신성기, 임학만, 정규식, 허정도 9명

일시 : 2019. 4. 25(목) – 4. 28(일) / 3박 4일

 

2019. 4. 25 (목, 첫째 날) - 흐리다가 맑음

한 팀은 새벽 6시, 다른 팀은 새벽 6시 반부터 서둘렀다. 두 대의 승용차로 나누어 공항으로 간다.

우리 팀은 김재현 회원이 네 사람이나 픽업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기 짝이 없다.

차를 장기주차장과 민영주차장, 어디다 주차할 것이냐로 옥신각신 하다가 공항 앞 가장 가까운 민영 ‘현대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장에서 제공한 셔틀 봉고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다른 팀을 만나 모두들 무사 도착을 확인하고, 자동 체크인 기기로 좌석을 배정받은 후 트렁크들을 화물로 부친다.

신삼호 총무가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할 공동경비로 1인당 내기로 한 엔화 1만 엔(한화 10만 원으로 대신 납부 가능)과 한화 5만 원씩을 거둔다.

아침식사 할 짬들이 없었고, 저가항공사는 기내식 안 준다 하니 국제공항청사 1층에 있는 부산어묵집에서 어묵으로 때우다. 내가 추천했는데 다들 별로 음식에 감동하는 눈치가 아니다. 내가 원체 어묵을 좋아하다 보니... 허허.

9시 30분,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해 11시 30분경 삿포로의 신치토세(新千歲) 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비행기 탈 때마다 이착륙에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나도 나이 좀 먹었나보다.

짐 찾아 나와서 로비에서 좀 기다리니 우리의 명 가이드 정창훈 씨 등장. 몇 년 전 야쿠시마 단체산행 때도 우리 일행 가이드 했던 양반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도 여행일정 전반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사이에 이 양반, 여행사 직원에서 사장이 됐다나. 작은 일본 전문여행사를 차렸고, 중요 고객에겐 직접 가이드 역할도 한다고. 솔직히 회사를 혼자 하는지 다른 직원은 있는지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10인승인가? 자리가 꽉 찼으니 10인승으로 짐작한다. 초 미니버스를 타고 아사히카와(旭川) 시를 향해 출발한다.

가이드는 점심시간이니 근처에서 먼저 점심부터 먹자고 한다. 공항 구역을 벗어나 얼마 안 가서 대형마트 건물 안에 있는 회전스시 집에서 식사를 한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반주가 왜 여행만 오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생맥주와 청주로 반주를 곁들이는데, 청주 이름이 국사무쌍(國士無雙). 이름에 반한 허정도 원로대원, 한 병 사가야겠다고 하더니 귀국할 때 공항에서 살짝 국사무쌍 1병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 샀지?

가이드상, 점심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 맛보게 해준다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데리고 간다. 100엔짜리 자판기 커피인데 그런대로 괜찮다는 중평이다.

 

 

커피 마시며 세븐일레븐이라는 상호가 일본이 원산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물박사 ‘네이버’씨에게 물어보니 1927년 미국에서 오전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문 여는 세계 최초의 편의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 일본에 진출해 미국보다 더 큰 대박을 터뜨려 2005년에 일본 자회사가 미국 본사를 합병했다는 역사를 알려준다.

롯데를 앞세워 한국 편의점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일본에서만큼 쪽을 쓰지는 못한다고.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한국 시장에서 맥도날드가 롯데리아에 맥을 못 추는 꼴과 같은 것인가.

한국 소매 유통시장의 특수성은 프랑스계 까르푸와 미국계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들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도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또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다시 아사히카와를 향해 출발한다.

삿포로 시 외곽을 어디론지 한참 가더니 드디어 고속도로로 진입. 좀 가다가 오른쪽 아사히카와 방향으로 진격한다. 북해도라 하면 눈덮힌 높은 산들로 즐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어진다. 도대체 산은 어디 있는 거야. 가이드 상, 좀 가면 나온다고. 하하.

목적지까지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니 운전자 가이드 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일본의 지리와 문화는 물론 정치, 문학, 경제까지 박식하기 짝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까지 얘기하길래 가이드의 대학 때 전공이 궁금해진다. 기회를 잡아 물어봤다. 짐작대로 국제경영학과 일본학을 했다고. 그리고 일본 여행업에 종사한 이후로 항상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직업에 대한 자세가 되었고, 명품 가이드를 아무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스나카와(砂川) 휴게소에서 휴식한다. 화장실 들르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다시 출발. 차 속에서 허 원로, 기행문 누가 작성할 거냐고 추궁하듯 묻는다.

일본서 짧지만 방문교수도 했고 이번 여행일정 조율도 맡았던 김재현 대원이 적합하다는 중론인데, 이 양반 할 수 없이 쓰기는 하겠지만 자기는 뼈만 작성할 테니 나보고 살을 붙이라며 나를 물고 들어간다.

나는 백산 산행기 담당자이지 해외 산행기 담당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경주 남산 산행기도 아직 완성 못했는데... 아, 뼈를 발라 살을 만드는 밤을 두 번이나 더 새워야 한다니.

10명 회원을 가진 산악회 아닌 산악회에 이미 회장, 보급대장, 백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산행기 담당이 있는데, 이번 원정에서 총무, 부총무, 부총무보까지 생겼다. 전 대원의 간부화가 멀지 않았다.

 

후카가와(深川) JC에서 빠져나와 아사히카와의 외국 수종 시범림(소설 ‘빙점’의 무대) 안에 있는 미우라 아이코(三浦綾子, 1922-1999) 기념문학관에 4시 반 경에 도착한다.

 

 

가이드 왈, 시간도 좀 남고 문화적인 것 좋아들 하실 것 같아 이곳으로 모셨다고. 나야 당근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한 시골마을의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이 문학관은 작은 2층 건물과 더 작은 단층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벽에 “이 문학관은 작가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웠다”고 적혀 있다.

1층 벽면에 장식된 작가 연보에는 주요 연도마다 그 해의 중요 사건을 병기해 놓았다. 그의 작품들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나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알고는 있지만 읽었는지 여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으로 스토리의 뼈다귀는 알게 되었다. 웬 남자 사진이 걸려 있어 누굴까 했는데, 2층에 마침 모범부부 기획전을 하고 있어 살펴보니 남편이다. 몸이 불편한 작가의 구술을 받아 적는 등 외조를 많이 했고 금슬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2층 반대쪽에는 자유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문 없는 작은 공간이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시해놓고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국의 어느 문학관에서 이런 도서관을 본 적이 있나? 물론 1층 카운터에서는 작품은 물론 관련 소품들도 판매한다.

별관에는 작가의 생전 서재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찰이 붙어 있어 작가의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아볼 수는 없고, 대신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만 찍었다.

임 보급대장 건축전문가답게 별관 입구의 자동 닫힘 장치를 보고는 탄성을 발한다. 우리도 이런 거 도입하면 좋겠다면서.

 

5시 20분 경 다시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간다.

드디어 멀리 눈덮힌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댐이 나타나고 저수지를 따라 서서히 올라간다. 어디서 사진 찍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자말자 가이드 기사 즉시 차를 되돌린다. 전망이 좋은 곳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사진들 찍고 경관을 감상한 후 호텔로 직행하다.

 

 

6시 20분 목적지 호텔에 도착한다. 다이세츠잔(大雪山)의 아사히다케(旭岳, 2291미터) 중턱 1,050미터 높이에 있는 아사히다케 온천호텔이다.

정문 상단에 ‘bearmonte’라는 호텔명이 붙어 있다. 곰의 산이란 뜻인데 이 산에 곰이 많나?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로비도 한적해 영업 중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카운터 옆 좌측 공간에 페치카가 있고 주위에 소파들이 놓여 있다. 로비를 둘러보다 반가운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름 하여 ‘喫煙室’. 국립공원 내 호텔이어서인지 건물 내부에 ‘흡연실’을 만들어둔 것일까.

왜 일본은 끽연실이라 하고 우리는 흡연실일까. 끽연실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일본 따라 하기 싫어서...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도 ‘흡연실’이라 부른다.

점심 먹을 때 허 원로, 맨날 원로들끼리만 합방하기 싫다며 회장에게 방 배정 방식을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충직한 김 회장 작은 종이조각들에 숫자를 적어 접은 후 탁자 위에 놓고 선택들 하라 한다. 강제 조정권을 가진 조커까지 넣어서 재미를 한층 돋우었지만, 조커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실제로 행사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어쨌든 허 원로와 내가 같은 1번을 뽑았다... 허 원로 왈, 나 하고 같이 안 자려고 꾀를 냈는데... 내가 대꾸하길, 날 버리고 가는 사람 안 잡어... 다들 웃음보를 터뜨리고, 누군가 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한다.

어쨌든 사흘 밤을 같이 지냈다. 제비뽑아 갈라져도 조커들이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게 원로들 대접한다는 핑계로 사실은 원로원 왕따 시킨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방을 배정한 후 짐들을 넣어놓고 호텔 부설 온천사우나를 한다.

노천탕이 있다고 가이드가 자랑해서 노천탕에 갔더니 바깥쪽 벽 위로 하늘이 길게 보일 뿐이다. 내가 들어가니 신씨 성을 가진 두 명의 회원이 뭔가 얘기하던 끝에 건물 층수 매기는 문제가 나오자 내가 개입한다.

건축에 문외한으로 도대체 경사지에 지은 건물의 층수 매기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했더니 일제 때부터 내려오는 건축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고. 내가 그게 일반인으로서는 불편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으니 상식에 맞추어 법을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쎄우니, 건축 전문가들 왈 규정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며 일축한다.

설명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결국 건축주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른 분야들도 아직 그렇지만 건축 분야에는 일본식 용어가 유독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마저 그렇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도 행정 및 관행 편의주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양반들은 벨시리 문제되는 건 아니라는 식이다.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 앞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정규식 전 회장대원이 게르마늄 목걸이 하나를 목욕탕 바닥에서 주웠는데 아무래도 내 것 같다고 묻는다. 나는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목욕탕 옷 바구니에 넣어두고 옷 입을 때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교수연수회 갔다가 마눌님에게 아부하느라 비싼 값 주고 샀는데, 몇 번 착용해보더니 무겁고 불편하다며 사용을 안 한다. 차라리 팔찌가 나았나 싶었다. 값도 헐 쌌는데. 그냥 집안에 돌아다니는 게 아까워서 내가 착용하고 다닌 지가 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무감각하다니...

다음날 아침에 보니 우리 김 회장도 나하고 같은 걸 하고 있네... 가이드 왈 정작 한국 관광객들에게 팔았던 일본 사람들은 잘 사지도 착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호구 잡힌’ 기분이다.

호젓한 분위기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두 서너 팀이 더 있다.

 

 

드디어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바깥은 어둠 짙은 산속이고 주위에는 이 호텔만 덜렁 있어 올 데도 갈 데도 없다. 술 마시며 얘기꽃들 피우는데 식당에는 우리만 남아 있다. 내가 보니 종업원들 눈치가 빨리 안마치고 뭐 하냐는 것 같아 대충 마무리하고 방에 모여 한잔들 더 하기로 한다.

원수 같은 원로 두 사람이 자는 방에 다들 모여 술추렴을 더 한 후 일찍들(?) 자러갔다. 이렇게 일본 홋카이도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뒤편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눈빛을 느끼며...

이 대목에 뼈다귀를 추렸던 김 교수 원고에 대설(大雪)の 장(藏)이라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몰라 본인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나? 어허 이럴 수가. 자기가 써놓고도 모른다니... 호텔 건물 어딘가에 적혀 있던 글은 아닐까? 아무도 모른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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