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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1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4 / 1954년 4월 17일 (토)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4

 

이야기는 본선(本線)에서 조금 지났지만은 이교재 선생을 검거한 이만갑이라는 자(者)는 어떠한 자인가를 말 안할 수 없다.

기자(김형윤 선생 자신)와 이만갑은 (지금은 일반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마산 간이농업학교 동기동창이며 재학 중에 성질이 못된 자로써 장성(長成)한 뒤 그의 의부(義父)?되는 황용석(이 자는 기자보다 1년 선배로 졸업 후 헌병보조원으로 또 그 후 고등계로 전환하여 자살직전까지 관부열락선 상무형사로 기자가 일본 경도에서 추방 귀국 시 미행한 자)의 소개로 순사에 응시하여,

독립운동자 체포에 날 완(腕, 솜씨)을 뽐내어서 그때 유명한 상해의열단 김시현 일파 검거에 실패된 벌(罰)로 경부도 못되고 순사부장으로 진주 밀양 마산 등 경찰서로 전전하여 상당수의 애국자를 검거투옥한 자이며,

고문으로 1920년경 마산서의 조선인 고등계 주임 김 경부(警部)라는 자의 백중(伯仲)을 다투든 자며, 일설에는 친모를 XXX취체(取締)로 구류(拘留)시킨 전무후무한 모범경관이며, 그 의부 황용석을 구타까지 범한 자

피차(彼此) 장성(長成)이라 나는 사회주의자로 그는 형사로서 갈 길은 확연하였지만은 내가 일인 구타 사건 시에는 이만갑은 나의 직접취조자-생각하면 기이하기도 한 이야기다.

이만하면 그자의 위인(爲人, 사람 됨됨이)은 알 수 있는 일이다.

8·15이후 흐지부지한 반민특위의 수배를 받았으나 바보 같은 [특위] 어릿광대 놀음에 탈면(脫免)과 함께 고비원주(高飛遠走, 종적을 감추려고 멀리 달아나다)하고 만자이다.

생각하면 삼진지방은 공자도 나고 도척이도 난 모양이다. 한화휴제(閑話休題) 이교재 선생을 투옥한 후 일경은 선생을 고초를 주어 범죄를 추가하고 선생의 애처되는 홍씨까지 구속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혹한 고문을 자행하는 일방 초가지붕은 물론 온돌과 부엌까지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특기하여 만천하에 소개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선생이 받았던 상해임정의 밀영서이다.

보통 심약한 인간 같으면 남편이 그 지경이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는 이 불안하고도 가정이 망할 커다란 화근은 벌써 불살라버릴 것이지만은 선생의 미망인은 아무리 일본이 욱일승천의 세를 가지고 있지만은 석양이 닥칠 때는 반드시 오리라는 장한 뜻과 굳은 신념으로 이 불안한 지령서를 굴뚝 속이 아니면 밧줄에 묶어서 우물 속에 어떠한 때에는 부녀자의 월경대로서 일각일분(一刻一分)도 머릿속에 떠난 일 없이 심적 고통을 겪어오던 피눈물이 쏟아질 과거!

반드시 닥쳐올 조국독립의 강철 같은 신념 앞에 모든 사(邪)된 권력과 부귀가 어디 있으리오?

그러나 중생을 위하는 순도자의 가는 길은 언제나 박해가 따라다니는 모양으로 선생일거 후 기다(幾多)의 애국가는 변절하고 혹은 적진에 투항(投降)하고 주민과 친우는 자기 신변을 겁내어 접근하기 꺼려하여 설상가상으로 고리변업자(高利邊業者)는 맹호같이 달려들었으니 차귀(借鬼)는 선생의 문전에 낙역부절(絡繹不絶)되는 형편이라

그렇지 않아도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가 일시에 파산되어 적빈여세(赤貧如洗) 그대로 조석의 끼니까지 막연한 내락(奈落)에 빠지고 있었으나 그때는 일본의 악정이 있어 그렇다고 하고 자기의 생명을 조국에 바친 종적도 없이 8·15 해방된 후에는 선생의 집안에 누가 한번 따뜻이 찾아 주었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생에게 전달한 위임장. 이 위임장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교재를 경상남북도 상주 대표로 인정하여 ‘애국지사 연락에 관한 일, 독립운동에 대한 비밀적 지방조직을 행할 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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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3 / 1954년 4월 16일 (금)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3

 

산협의 좁은 비렁(‘벼랑’의 방언)을 얼마쯤 나가니, 간데 마다 산은 백구질을 하여 황토만 노출(露出)한 독산인데 이 산 중복(中腹)쯤 되는 곳에 선생의 백골(白骨)이 묻혀있는 허물어진 분묘가 눈에 뜨이고 조금 아래 양지쪽에 두 봉(封)의 묘소가 있는데 이곳은 선생의 선친 선영이다.

노(老) 미망인은 여기서 시부모와 부군을 추억하는 듯 몇 개의 풀을 뽑고 있었다.

선생의 봉분 아래는 산이 급각도로 수직하며 묘소 정면은 협소하여 성묘하기에도 부자유하다.

선생이 지하에든지 봄바람 가을달이 몇 번이나 지났건만 찾는 사람 별로 없고 유족생계가 화급하여 그랬는지 봉축은 허물어져 황폐 그대로 이고 한 조각 표석조차 없으니 마음 없는 초동이야 지하의 고인이 어찌 누구인줄 알까보냐.

일행의 단심으로 묘전에 간단한 요핵(核)을 차려놓고 추념의 제를 지내게 되었으니 제문의 애절함에 전배자는 물론 유족의 단장애(斷腸哀)는 어느 누가 알아주랴.

오십 반평생 제물(祭物) 앞이나 무덤 앞에 절해본 일이 없는 기자가 뜻밖에도 이 날 제주(祭主)라는 직위로 초헌(初獻)을 올리고 절을 하게 된 것도 비망록에 기록하여 둘 일이다.

이어서 일행의 대표로 이(李) 마산시장이 아헌(亞獻), 다음으로 이 씨 문중 취객으로 허 금조(금융조합)이사의 순으로 정성껏 잔 들어 올리고 일동이 함께 재배하니 일행 중 백발이 휘날리는 윤치왕 군의학교 교장, 전 마산여고 교장 권영운 씨, 김형철 삼성병원장 등 삼노(三老)가 이날 특이한 채색(彩色)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성어린 추모의 제를 마치고 일행은 고인의 선영 앞 장방형으로 된 석축 위의 잔디에서 파제(罷祭) 제물을 벌려놓고 고인의 불타는 애국정신과 그 업적에 경탄과 찬양(讚揚)의 꽃을 피웠다.

아울러 허물어진 봉분의 수축, 유족의 생활대책 문제가 화제에 올라 즉석에서 선열의 기념사업 추진 발기인으로 권영운 김상용 양씨 외 기자 3명이 지명을 받고 단시일 내에 이 사업의 구체안을 구상하여 유종의 결실을 보도록 하였다.

각설(却說), 이교재 선생은 어떠한 경로를 밟고 어떠한 결과를 맺었는가 우선 윤곽만을 소개하고 상보(詳報)는 기념사업추위에 있을 것을 믿고 미루어 두기로 한다.

선생은 1919 독립운동이 전국 우내(宇內, 온 세계)에 창일하였을 때 감연(敢然)히 상해로 망명하여 당시 대한임시정부의 동지와 규합하고 굳은 결심과 사(死) 서(誓)하고(죽음을 맹세하고) 중대 밀명을 띈 밀사로 국내에 잠입 활약하였다함은 이미 소개한 바이나

국내 험의(험疑, ?) 처음 군자금 징모 사건으로 지명 수배되어 동지 이병수씨(현존)와 통영 마산 진주 방면으로 전전 피신하던 중 김도산 일행의 신파연극을 변장 관람 중 동(同) 고향인 오서리 출신 이만갑이라는 진주서 고등형사(부장)에게 발각 피검되어 혹독한 고문을 겪었으며 종시(終始) 일관(一貫) 굳게 입을 다물고 자백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유치장 혹은 감방에서도 다만 동지들에게 「수구여병(守口如甁)」의 구호로써 동지들을 경고 하였다고한다.

5년 언도 후 공소심에서 3년형을 마치고 출옥 즉시 초지일관 백절불굴 조국광복의 열혈은 촌흐(寸?)도 냉(冷, 식다)함이 없이 상해 임정과 더욱 긴밀한 연락을 하다가 다시 혈고서파부(血告書播付, ?)사건이 발각되어 부산형무소에서 2년 언도를 받고 복역 중 일차 피검당시 전신 타박의 어혈병과 야만적 생식기 고문 여독의 화로 드디어 사십구 세를 일기로 열혈 심장의 고동도 장한을 품은 채 옥중에 정돈(停頓)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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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2 / 1954년 4월 15일 (목)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2

 

일행은 이(李) 열사가 생전에 생장하셨다는 봉곡 부락 길가에 정차를 하고, 좁다란 밭 기슭을 타서 가면 신작로에서 불과 3·4분 만에 선생의 구거에 당도된다.

가옥은 농촌의 공통으로, 나지막한 토장(土墻, 흙담)과 싸리(柴, 시 / 산야에 절로 나는 왜소한 잡목)문을 들어서니 선생이 거처하던 노후하였던 집은 전항(前項)의 말과 같이 소실되고 소나무 향기와 흙냄새가 나는 새(新)집으로 변하였다.

이름과 외관만은 새집이지만 찬바람이 스며드는 쓸쓸하기 한량없으니 생계야말로 과반사(過半思)가 아닐까?

선생의 계보를 들어보면 수대를 두고 독자(獨子)로서 백숙형제(伯叔兄弟)가 없었고 원척(遠戚, 먼 일가) 외에는 혈혈 고독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으며 장(長)하여는 조국광복에 침식을 돌보지 않았으니 담석지저(儋石之儲, 얼마 되지 않는 액수의 저축)가 있을 리 없다.

불행한 혁명가의 후일은 천하의 통례인가?

선생이 순(殉, 목숨을 바침)한 후 유족으로서 금년 칠순의 홍태출 노온(老媼, 늙은 여인)과 일점혈육으로 당년 27세의 독녀 이태순 씨(현,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모친)가 있을 뿐!

적적황요(寂寂荒寥, 매우 외롭고 쓸쓸함)한 이 애국가의 가정은 글자 그대로 모녀 단 두 사람이 형영상조(形影相吊, 의지할 곳 없이 몹시 외로움)로 슬픈 일 즐거운 일 무슨 일이고 간에 아무리 둘러보아도 두 사람 외에 논하고 의지할 곳이 없었다.

3·1운동 후 애국하는 열혈열사의 탄압이 그(其) 극에 달하자 옛날 친근자(親近者)도 종기가 다치는 듯 전부가 이들 유가족을 기피하고 소원(疎遠)이하였다.

이런 일을 지금 애국자로서 기세 올리는 자는 한번 자야(子夜, 밤 12시경의 한밤중) 사방이 고요할 때 남모르게 가슴에 손을 얹고 돌아 살펴 보아라.

양심 있는 자면 똥물에라도 빠져 죽어야할 것이어늘 어찌하여서 이 자들이 감히 두천족지(頭天足地)하는가?

지금 원척(遠戚)의 이정순 군이 양자로 입가하여 노부인을 돕고 있으나 부락민들까지도 선생의 구거(舊居)에 위문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다.

왕년 백범 김구 선생이 일차 고(故) 동지의 유족을 위문한 외 사회·민간할 것 없이 금반 우리 일행이 최초인 모양이다.

홍 노온(老媼)은 우리 일행을 맞아들이며 과거 상해 임정으로부터 선생이 군자금모집이라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국내에 잠입할 시 가졌든 조완구·김구 양 선생의 명의로 발부한 비밀지령서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귀한 기념물이다. 노부인은 감격과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종시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일행 중 마산 금조(金組, 금융조합) 허기중 씨로부터 우리를 일일이 소개하고 위문금으로써 윤 군의교장(軍醫校長), 최 65육군병원장, 유 항공수리창장, 김 동양주정사장, 이 마고교장, 손 마산교육감, 주 창원교육감, 이 마산시장 제씨로부터 각기 금일봉을 드리고 곧 이어서 열사가 고이 잠든 오서리 오리허(許, 오리쯤 떨어진)에 있는 대실골(竹谷山, 죽곡산) 묘지로 향하였다.

묘소로 향할 제(際)에 고인과 청년시절에 막역하였던 친우 오륙 명과 미망인 그리고 양자인 이 군 등의 길안내로 굽은 밭길을 지나 산기슭을 둘러서 안치된 분묘 앞에 도착되었을 시에는 시간은 벌써 4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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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00:00

김형윤의 <삼진기행> 1 / 1954년 4월 14일 (수)

오늘부터의 포스팅은 창원지역에서 평생 언론인으로 살다간 목발(目拔) 김형윤(金亨潤) 선생이 남긴 기행문이다. 

마산일보(현 경남신문)에 실렸고, 기고자는 본명 대신 ‘H 생’이라 되어 있다. 제목은 「삼진기행」이며 1954년 4월 14일부터 23일까지 9회 실렸다.

당시 마산일보 사장이었던 김형윤 선생이 15명의 벗들과 함께 1933년 순국한 독립지사 '죽헌 이교재 선생'의 유족을 찾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을 찾았던 기록이다.

 

<죽헌 이교재 선생>

 

이 글의 가치는 이교재 선생과 유족에 대한 내용과 함께, 한국전쟁 직후인 1954년 당시의 삼진지역(진동, 진전, 진북) 상황을 이해하는데 있다.

김형윤 선생의 기고문에 맞추어 모두 9회에 걸쳐 포스팅할 예정이다. 원문 그대로 옮기지만 일부 고문(古文)은 읽기 편하게 고쳐 쓰고, 설명이 필요한 경우 푸른 글로 첨가한다.

 

먼저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수록된 김형윤 선생(아래 우측 사진)을 소개한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서 태어난 김형윤(金亨潤, 1903~1973)은 1915년 마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921년 귀국하여 창원 산업 조합에서 근무했다.

1923년 조선일보 마산 지국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남선 신문』, 『동아 일보』에서도 활동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는 아나키즘에 몰두하여 무정부 활동에 가담했으며, 1945년 12월 신탁 통치 반대 시위에 참여하다 종로 경찰서에 구금되어 1947년 봄에 석방되었다.

1947년 『남선 신문』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이 되었으며, 1948년 제호를 변경한 남조선 일보 사장 대리가 되었다. 1950년 『남조선 일보』를 『마산 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여 1966년 사직 때까지 편집과 경영 전반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1973년 12월 5일 유작으로 『마산 야화(馬山野話)』가 발간되었고, 1974년 8월 18일에 마산 산호 공원에 불망비가 건립되었다.

 

이교재 선생 묘지전배기(李敎載 先生 墓地展拜記) - 1

4월 10일 천랑기청(天朗氣淸)한 오후 2시 반, 기자는 3·1 독립운동 시 순국하신 이교재 선생의 묘소 전배차 일행 15명과 더불어 자동차 다섯 대로 분승하고 마산일보 정문을 출발, 일로 창원군 진전 방면으로 향발하였다.

이번 전배하는 일행에는 과거 일정 시 변절 혹은 매절한 분자를 제외한 것이 마음 가운데 통쾌함을 금치 못한 것이다.

우산(牛山) 고개를 넘어 예곡을 거쳐 통칭 옛날 군도(群盜)가 출몰하던 ‘동전이 재’까지 가는 도중에는 농민 부역군들이 도로개수공사에 여념이 없어 우리 일행을 흔히 보는 시찰이나 유람객으로 아는 모양인 듯 본체만체 차 지난 뒤 사진(沙塵, 모래먼지) 속에서 꾸준히 일들만 하고 있다.

이윽고 진동읍내를 일관하여 서(西)로 달리는데 눈에 뜨이는 것은 6·25사변 당시 소개(疏開) 후 파괴되었던 집들이 모두 다 개축되어 각기 영세한 생을 개탁하여 조선(祖先)의 뼈 묻힌 고장에 깊이 뿌리를 박고 지상의 낙도로 삼고 있는 것은 무한히 아름다운 광경이다.

도로 우측 평야 저 편에 깎은 듯이 직하(直下)된 험한 산이 즉 사변 당시 적과 격전한 각드미산(여항산, 갓데미산)이라 한다.

만약에 적군이 침공하였을 때 이 산이 없었더라면 마산은 병풍 무학산도 존재의 가치를 보전하였을까 아닐까가 의심날 일이다.

적들의 중요한 거점인 이 각드미산이야말로 적들의 최후 운명을 결정한 방채선(防砦線)으로서 길이 기념하여야 할 곳이다.

구치사방 산정수정(驅馳四方 山程水程, 산길 물길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떠돌아 다님)식 19세기의 나그네가 아니니 한가히 고개로 이리저리 돌려볼 수 없을 터인데 삼진 방면을 소개하시던 마산서중 이기재 선생의 선도로 일행은 진전면 입구에서 일시 정지하였다.

장소는 다르지마는 노변석벽(路邊石壁)에는 3.1의거 시 동면(同面) 황교 교반에 공봉(棒)과 적권(赤拳)으로 무장한 왜적의 폭재(暴材)하는 진중으로 돌격하다 장렬한 호국의 신(神)으로 순한 김수동(원문에는 김동수로 되어 있음) 이기봉 씨 외 6선열의 창의비(진북면 지산리에 있는 팔의사 창의탑. 지금은 인근에 이전) 앞에서 잠시 묵례를 드리고 다시 황교의 고전장(古戰場)을 거쳐 목적하였던 이교재 선생의 유족이 계시는 봉곡리 도산부락에 도착한 것이 세 시를 훨씬 지나 30분 경이었다.

이 부락도 역시 적색분자가 침투할 것이라는 추측 아래 소개 명령을 받고난 뒤 연합군의 폭격례를 받고 전 부락 50여 호가 소실되었던 곳으로 가옥이야 태어난 팔자대로 일간 모 옥(屋)으로 신축하여 쓰라린 기억도 잊은 듯이 생기발랄한 것을 볼 때 파탄에 빠진 현재 농촌에도 언제나 영원한 봄 서광이 비쳐 오리라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우리가 경(敬)공히 찾아뵈올 이교재 선생 유족의 가정과 생계는 어떠한가? 일행은 마음 초급히(焦急-, 시간 여유 없이 아주 급하게) 이(李) 선열 미망인의 주택을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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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00:00

총독에게 폭탄 던진 65세 강우규 의사

부끄러웠던 그날 저녁

 

지난 9월 19일 옛 서울 역 건물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축문화제’에 갔다가 역 광장에서 왈우(曰愚) 강우규(姜宇奎) 의사 동상을 처음 보았다.

 

 

세운지 오래되었겠지만 서울 갈 일이 자주 없는 나는 처음이었다.

마침 시간이 여유로워 천천히 동상을 감상한 뒤 설명문까지 차분히 읽었다.

기단부에 새겨진 설명문 사진이다.

 

 

기록문 중 생년(1859년)은 오기로 보인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등 관련자료 다수에서는 185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바로 잡아야할 일이다.

 

마침 외국인 여러 명이 동상 주변으로 와 ‘이게 누구 동상이지?’라는 표정으로 동상과 아래 설명문을 살폈다. 하지만 동상에는 한글 외에 아무 설명도 없었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그들에게 미안했다. 외국어 설명문도 필요하다.

 

이 포스팅은 그날 이후 든 생각이다.

1855년생 강우규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던졌던 것은 1919년 9월 2일, 선생의 나이 65세 때였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60년 국민 평균 연령이 남자 52.1살, 여자 54.7살이었다.

그렇게 볼 때, 1919년 65살은 지금의 8~90과 다르지 않은 나이다.

1909년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저격 뒤부터 일경의 요인 경호가 심했지만, 강 의사께서 총독 사이토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워낙 연세드신 어르신이라 일경이 눈여겨 보지 않았서였다. 당시 65살은 그 정도였다.

 

그 연세에 적의 수괴를 치기 위해 폭탄을 던지다니,,

재산도 많았다는데 모두 조국의 독립과 민족교육을 위해 바치고, 나라가 망하자 만주와 러시아 벌판에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위해 힘을 다했고, 이윽고 남은 몸까지 민족을 위해 던진 선생,,

재판에서도 "총독을 처단하고자 한 것은 정의와 인도에 입각하여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강우규 의사.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선생의 마지막(사형)은 서대문형무소였다.

1920년 11월 29일 오전 10시 30분, 만주에서 온 장남 중건이 마련해 준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떠났다.

한많았던 생을 끝내며 시를 남겼다. 이른바 사세시(辭世詩), 남은 동족들에게 밝힌 선생의 심경이다.

 

사세시(辭世詩)

斷頭臺上  猶在春風  (단두대상  유재춘풍)   /   단두대에 올라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有身無國  豈無感想  (유신무국  기무감상)   /   몸은 있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선생의 그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니 목구멍 저 아래서 뭐가 올컥 치밀어 올랐다.

꼭 필요했던 일이지만 나이 탓하며 피한 적이 더러 있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만큼 강우규 선생의 기개가 더 높게 느껴진다.

그것은 안일을 위한 핑계였을 뿐이라는 깨우침을 선생께서 주셨다.

 

2019년 9월 19일 그날 저녁,

선생께서 폭탄을 든지 100년 되는 그날 그 저녁, 그 부끄러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관련된 이야기>

왈우 선생 의거 두 달이 지난 1919년 11월, 상해 임시정부 외교위원장 직함으로 몽양 여운형 선생이 일본 동경을 방문했다.

이 때 일본 정부가 마련한 환영행사에서 몽양이 당당하게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은 널리 잘 알려진 일이다.

방문기간 동안 몽양은 일본의 정치가와 고급관료들을 만났는데, 이 중에는 미즈노 렌타로(水野 錬太郎, 1868~1949) 내무대신도 있었다.

미즈노 렌타로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문부대신 역임한 일본의 정치가인데, 강우규 의사 폭탄 투척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현직 일본 내무대신이었다.

여운형이 그를 만나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여운형 선생이 미즈노 렌타로에게 인사차 악수하면서 “경성 역에서 강우규의 폭탄에 얼마나 무서웠느냐”고 짓궂게 물었다.

그러자 미즈노가 얼굴이 시뻘게지고 고개를 어디로 돌릴지 몰라 당황하며 몸을 떨었다고 한다.

그날 강우규 의사 폭탄이 그만큼 무서웠다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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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7 00: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구글과 애플

탈원전 정책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지난 9월 3일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상공회의소는 ‘정부 에너지 정책 변화와 지역 경제 세미나’를 개최해 원전 산업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탈원전을 감행하는 나라가 없고 원전 산업 전성기에 탈원전하는 것은 자해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언론사 경제부기자는 보수 야당 의원의 말을 빌려 ‘탈원전 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는 표현을 자료집에 실었고, 언론은 이를 받아 크게 보도하였다.

탈원전 정책을 찬성하는 발표자는 한 사람도 없었고,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발표자도 없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오직 경제적 어려움만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상 그들은 경제 전문가도 아니었다.

 

 

설령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자. 도대체 국민의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재앙은 8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처리비용 200조원 때문에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겠다는 일본을 우리는 비난한다. 그러면서 한편 원전을 더 짓게 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안전의식이 있는 사람들인지, 경제를 아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다.

원전을 계속 더 건설하면 재생에너지산업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어려워도 괜찮고 원전 산업계만 좋아지면 되는 것인가?

지진, 각종 비리 사건 등으로 원전을 항상 불안하게 바라보는 국민들의 불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을 애써 무시하고 시간을 허비하다가 망한 코닥 필름을 잊었는가? 세계 원전의 절반을 건설한 웨스팅하우스의 몰락을 잊었는가?

재생에너지 산업을 미루게 되면 우리 산업 전체가 어려워진다.

재생에너지 사용 100%를 선언한 세계적 기업(RE100)이 이제 192개가 되었다.

구글, 애플, BMW, 월마트, 이케아 등등 세계 상위 100대 기업은 모두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선언하였고 그 협력업체에게까지 요구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부터 신재생에너지로만 필요 전력을 충당한다>

 

이런 추세를 볼 때, 원전을 붙들고 있으면 전자제품의 일본 부품 사태보다 훨씬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그 때 후회하면 이미 늦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용 때문에 계약을 파기한 사례가 발생하였다. 삼성, 엘지는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한 나라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원전 대국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한 이유는 안전성보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에 요구한다.

탈원전 정책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선택한 정책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로 인한 고용불안이나 기업의 어려움에 대하여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폭염으로 인한 원전의 냉각기능 상실과 지진 등 자연재해에 의한 사고를 철저히 대비할 뿐 아니라 노후 원전의 조속한 폐쇄를 촉구한다.

또한 기업은 원전산업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재생에너지 산업이나 관련 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더 이상 새로운 원전의 건설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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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00:00

2003년생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외침

어른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 건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2003년생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깁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툰베리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안 됩니다. 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 돌아갔어야 합니다. 근데 당신들 모두는(어른들은) 희망을 말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당신들은 속빈 말로 내 꿈과 유년시절을 빼앗아갔습니다.” 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정상들을 향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돈 타령과 영구적 경제성장 타령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텐가” 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매서운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툰베리는 연설 도중 떨리는 목소리로 격한 감정을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회의장을 깜짝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기도 했습니다.

 

 

툰베리는 작년 8월 스톡홀름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촉구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급기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툰베리의 이런 모습에 동조하는 전 세계 미래 세대들이 툰베리의 캠페인을 이어갔으며 이로 인해 유엔총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대안 노벨상인 바른 생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른 생활상’은 1980년 스웨덴의 한 우표 수집가의 기금으로 만들어 졌으며, 지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가에게 주어집니다. 기존의 질서에 맞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주는 값진 상입니다.

지난 9월 25일 AP통신에 따르면 바른생활재단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정치적 요구를 고무시킨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재단은 또 툰베리는 모두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03년생 스웨덴 한 소녀의 외침, 우리 어른들이 못 들은척해도 될까요? 우리 아들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긴데 말입니다.

툰베리의 연설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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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00:00

탈원전 정책은 유지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 추세, 새 원전 건설은 결코 안돼

 

요즘 창원 경제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렵고 260 여개 원전 관련업체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한다.

창원시정연구원은 탈석탄.탈원전 등 정부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면서 창원 소재 대기업 및 협력업체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한 보수언론의 경제부장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은 반민주적, 반헌법적 작태”라고 자유한국당 이언주의원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세계적 추세와 역행하는 온갖 거짓뉴스를 보도한 보수언론을 소개하는 형태로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였다.

태양광은 가동기간이 30년 이지만 원전은 60년이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원자력공학과 출신으로 지금까지 여러 가지 특혜를 받아 온 어느 교수는 탈원전은 ‘원자력산업이 전성기에 있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하면 안 될 자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장면>

 

탈원전이 자해라면 대통령은 왜?

 

9월 5일자 보도에 두산중공업이 영국원전에 2천억 원 부품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탈원전 국가는 원전 수출도 못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계약에 성공했을까? 미국이나 일본은 원전을 짓지 않지만 수출하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전체 매출 15조 원 중 원전 부문은 1조 5천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탈원전 추세 때문에 수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산은 원전설비만 제조하는 회사가 아니다. 바닷물 담수사업, 가스, 석탄발전 설비, 풍력산업, 건설기계, 엔진 등 많은 사업부가 있다. 2018년 매출은 15조원에 이르고 2017년보다 6.5% 증가하였고 2019년 3월 현재 동기 대비 매출액이 7.1% 증가하여 금년 매출은 1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주가 하락은 전 세계 원전 회사와 같은 현상이다.

세계 원전의 절반이상을 건설한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망했다. 프랑스 원전사 아레바도 망했고 일본 도시바 원전사업도 망했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기업의 생존이 위태롭다고 하는데 매출은 어떻게 증가하는가. 두산중공업은 원전 전문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종전과 변함이 없다. 2084년이 되어야 탈원전국가가 된다. 65년 이후의 일이다.

계획 중이던 원전 5기 포기한 것이 탈원전의 전부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이 급변적이라니 할 말이 없다.

원전업계가 어려운 이유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세계의 탈원전 때문이다.

원전산업이 전성기라는 말은 완전한 거짓 뉴스이다. 30년 전에 전 세계의 원전은 451기였다. 2019년 9월 8일 현재 450기이다. 30년 전에 보다 오히려 원전이 줄어 들었는데 전성기라니 이해할 수 없다.

원전은 탄소배출을 석탄보다 10분의 1수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기후변화당사국총회는 원전을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채택하지 않는다. 경제성,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전의 종주국 미국과 세계 2위 원전 대국 프랑스가 원전을 건설하지 않는데 어떻게 전성기인가.

일본의 재앙을 모르나. 오염수 한 가지 처리하는데 200조원이 든다는 데 원전이 전성기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원전은 60년을 가동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폐쇄후 30년-40년 원전 부지는 못 쓰는 땅이 되는 것은 계산 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이 반헌법적.반민주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탈원전을 내세워 당선되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는데 왜 반민주적인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대통령의 헌법적 의무이다.

탈원전 하지 않는 것이 반헌법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도지사, 유승민 의원 모두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한 바 있다.

 

산업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이다.

과거 봉제 산업이 한국을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철강, 전자, 자동차 산업이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경제성, 안전성이 없는 원전산업은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에 태양광, 풍력산업이 들어서고 있다.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시장규모는 500조원이나 원전 신규산업은 50조원도 되지 못한다.

미국의 대표기업이면서 종업원 40만 명, 140년 역사의 코닥이 이러한 산업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망했다. 반대로 독일의 지멘스는 원전산업을 접자 주가가 오르고 성장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한 탈원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정적 어려움이나 노동자의 일자리 불안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원전을 다시 건설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경제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안전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이 글은 2019년 9월 11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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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산인 2019.09.24 17: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원전은 더 이상 안됩니다. 미래 세대도 생각해야합니다.

2019.09.16 00:00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인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Leonardo DiCaprio)가 2014년 9월 24일 유엔 기후변화 정상회담에 모인 세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지금 기후변화문제는 인류의 존재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다음은 그의 연설문 요약입니다.

우리는 매주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통해 기후변화의 위기에 이미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가뭄은 더 심해지고, 바다는 더 따뜻해지고 산성화되고 있으며 메탄 가스는 바닥에서 계속 증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극심한 날씨 현상과 높은 온도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남극과 아이슬란드의 빙하는 이전 연구에서 예측했던 것보다 수십 년 빠른 속도로,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빠른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과장도 아니고 빈말도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과학계도 인정하고, 산업체와 정부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국 국방성도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 해군 태평양 총독인 새뮤얼 락크리어도 기후변화야말로 우리 보안에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했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역사 어느 때보다 바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참으로 어려운 사안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순간, 새로운 역사를 만들든지 아니면 비난을 받든지 각오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전구를 바꾼다든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즉 개인의 행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었다는 말입니다.

이젠 산업계와 세계의 모든 정부가 대단위의 결정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할 때입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과학자여야 할 이유도 없지요.

그러나 세계 과학계는 이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했습니다. 모두 협력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금이 바로 행동을 개시할 순간입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재생에너지 체제가 실제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이로운 정책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기존의 기술을 이용해 생산하는 청정 재생에너지로 2050년이 되면 지구의 수요를 100% 채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발에 따라 수백만의 새로운 직업이 창출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안은 논쟁의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면 인류의 문제니까요.

깨끗한 물과 공기 그리고 존재 가능한 기후는 인간에게 빼앗을 수 없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 해결에 정치적인 갈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도덕적 책무입니다. 물론 매우 벅찬 임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존경하는 UN 대표님들, 또 세계 지도자 여러분,

인류 존재에 가장 중대한 사안에 대해 여려분이 해답을 제시할 때입니다. 바로 지금이 용기와 정직으로 이 문제를 직면해야 할 때입니다.

 

디카프리오 연설 5년이 지난 2019년 9월, 16세 스웨덴 여학생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디카프리오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를 가기를 포기하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일에 나섰습니다. 유엔에서, 유럽의회에서, 프랑스 의회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연설을 했습니다.

요트를 타고 보름간 항해하여 기후정상회담에 참석하러 뉴욕에 갔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세계 100여개국 150만 청소년들이 지구의 미래를 위하여 길거리로 나섰는데 어른들도 동참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2018. 12,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연설하는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는 “60년후 우리들의 미래 세대가 지금 이 순간 뭔가 할 수 있었을 때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이냐“고 외칩니다.

이런 활동들이 높게 평가되어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되었습니다.

 

경남 창원에서는 9월 21일 오후 5시 상남동 분수광장에서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 모여 외치기로 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습니다”

자녀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박종권 / 경남탈핵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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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00:00

꽃과 미녀의 도시, 콜롬비아 메데진(Medellin) - 7 / 보테로의 도시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 1932~ )

 

일정 중 틈을 내 메데진 사람들의 자부심 미술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를 감상했다.

 

 

보테로(Fernando Botero)는 콜롬비아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투우사 양성학교를 졸업했지만 16살 때 메델린 미술연구소 전시회 출품을 시작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산마르코, 보고타의 국립미술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부풀려진 인물과 독특한 양감이 드러나는 정물 등을 통해 특유의 유머감각과 남미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장된 인체 비례와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된 인물 그림으로 유명하며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아래 그림은 보테로의 대표작이다. / 위키백과

 

 

보테로의 말이다.

"예술은 일상의 고됨으로부터 영혼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뚱뚱한 여성을 그리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볼륨을 그린다. 정물화를 그릴 때도 역시 볼륨 있게 그리고 동물을 그릴 때도 볼륨이 느껴지게 그리며 풍경화 역시 같다"

 

<보테로 광장>

현대 미술의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는 메데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만큼 도시 요소 요소에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그를 기리는 각종 행사가 줄을 잇고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도시 한복판의 '보테로 광장'이다. 이곳은 그를 기념하여 메데진 중심지에 조성한 도시의 상징공간이다.

그러니만큼 광장에는 풍만하고 사랑스러운 그의 작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작가 보테로의 진수와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었다.

도시 밖에서 온 사람들은 부지런히 보테로의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메데진 시민들은 조각작품들 사이사이 놓인 벤치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메데진은 보테로의 도시였다.

 

 

 

<안티오키아 미술관>

 

 

보테로 광장과 마주하고 있는 안티오키아(ANTIOQUIA) 미술관으로 갔다.

안티오키아는 메데진이 속한 주의 이름이며 안티오키아 주도가 메데진이다. 안티오키아 미술관은 안티오키아 주립 미술관이다.

이곳에도 보테로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의 매력은 페르난도 보테로 컬렉션을 보는 것이었다.

보테로는 고향의 이 박물관에 자신의 작품 92점을 기증했고, 그것들이 안티오키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보테로 광장의 작품도 그 중 일부다.

 

 

수도 보고타에 그의 미술관이 따로 있지만, 메데진에서 보테로를 보기 위해서는 이곳 안티오키아 미술관을 뺄 수는 없다.

보테로의 남미 사랑은 각별하다.

“나는 모든 것을 그릴 수 있기 바란다.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도, 그러나 나는 항상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이 깃들여지기를 바란다.”

이 말처럼 보테로의 작품 주제 대부분은 중남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만큼 그는 라틴 사람으로서 라틴 사람에 대한 애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서정성에 기초한 삶의 은유와 풍자가 보테로 작품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적절한 말이다.

보테로 스스로 "나는 볼륨을 그린다"고 했다지만, 한 눈에 봐도 풍자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얼핏 장난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는 부당한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과 폭로가 넘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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