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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00:00

홋카이도(北海道) 여행기 1 – 아사히카와(旭川), 다이세쓰산(大雪山)

금년 6월 1일자로 10년을 맞는 학봉산악회 회원들이 10년 된 기념으로 홋카이도를 여행했다. 10명의 회원 중 아홉 명이 함께했다. 명칭은 거창하게 ‘산악회’라 붙였지만 매주 토요일 오전에 만나 무학산 둘레 길을 걷는 소박한 모임이다.

참가자 : 김용운, 김재현, 김흥수, 서익진(글쓴 이), 신삼호, 신성기, 임학만, 정규식, 허정도 9명

일시 : 2019. 4. 25(목) – 4. 28(일) / 3박 4일

 

2019. 4. 25 (목, 첫째 날) - 흐리다가 맑음

한 팀은 새벽 6시, 다른 팀은 새벽 6시 반부터 서둘렀다. 두 대의 승용차로 나누어 공항으로 간다.

우리 팀은 김재현 회원이 네 사람이나 픽업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고맙기 짝이 없다.

차를 장기주차장과 민영주차장, 어디다 주차할 것이냐로 옥신각신 하다가 공항 앞 가장 가까운 민영 ‘현대주차장’에 주차한다.

주차장에서 제공한 셔틀 봉고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다른 팀을 만나 모두들 무사 도착을 확인하고, 자동 체크인 기기로 좌석을 배정받은 후 트렁크들을 화물로 부친다.

신삼호 총무가 일본과 한국에서 사용할 공동경비로 1인당 내기로 한 엔화 1만 엔(한화 10만 원으로 대신 납부 가능)과 한화 5만 원씩을 거둔다.

아침식사 할 짬들이 없었고, 저가항공사는 기내식 안 준다 하니 국제공항청사 1층에 있는 부산어묵집에서 어묵으로 때우다. 내가 추천했는데 다들 별로 음식에 감동하는 눈치가 아니다. 내가 원체 어묵을 좋아하다 보니... 허허.

9시 30분,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해 11시 30분경 삿포로의 신치토세(新千歲) 공항에 무사히 착륙한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비행기 탈 때마다 이착륙에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나도 나이 좀 먹었나보다.

짐 찾아 나와서 로비에서 좀 기다리니 우리의 명 가이드 정창훈 씨 등장. 몇 년 전 야쿠시마 단체산행 때도 우리 일행 가이드 했던 양반이다. 그때의 인연으로 이번에도 여행일정 전반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사이에 이 양반, 여행사 직원에서 사장이 됐다나. 작은 일본 전문여행사를 차렸고, 중요 고객에겐 직접 가이드 역할도 한다고. 솔직히 회사를 혼자 하는지 다른 직원은 있는지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10인승인가? 자리가 꽉 찼으니 10인승으로 짐작한다. 초 미니버스를 타고 아사히카와(旭川) 시를 향해 출발한다.

가이드는 점심시간이니 근처에서 먼저 점심부터 먹자고 한다. 공항 구역을 벗어나 얼마 안 가서 대형마트 건물 안에 있는 회전스시 집에서 식사를 한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반주가 왜 여행만 오면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생맥주와 청주로 반주를 곁들이는데, 청주 이름이 국사무쌍(國士無雙). 이름에 반한 허정도 원로대원, 한 병 사가야겠다고 하더니 귀국할 때 공항에서 살짝 국사무쌍 1병을 보여준다. 도대체 언제 샀지?

가이드상, 점심 먹었으니 맛있는 커피 맛보게 해준다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으로 데리고 간다. 100엔짜리 자판기 커피인데 그런대로 괜찮다는 중평이다.

 

 

커피 마시며 세븐일레븐이라는 상호가 일본이 원산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만물박사 ‘네이버’씨에게 물어보니 1927년 미국에서 오전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문 여는 세계 최초의 편의점으로 출발했고, 나중에 일본에 진출해 미국보다 더 큰 대박을 터뜨려 2005년에 일본 자회사가 미국 본사를 합병했다는 역사를 알려준다.

롯데를 앞세워 한국 편의점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일본에서만큼 쪽을 쓰지는 못한다고. 다른 나라들에서와는 달리 한국 시장에서 맥도날드가 롯데리아에 맥을 못 추는 꼴과 같은 것인가.

한국 소매 유통시장의 특수성은 프랑스계 까르푸와 미국계 월마트 등 외국계 대형유통업체들의 한국 진출 실패 사례도 머리에 떠오른다. 지금은 또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다시 아사히카와를 향해 출발한다.

삿포로 시 외곽을 어디론지 한참 가더니 드디어 고속도로로 진입. 좀 가다가 오른쪽 아사히카와 방향으로 진격한다. 북해도라 하면 눈덮힌 높은 산들로 즐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깨어진다. 도대체 산은 어디 있는 거야. 가이드 상, 좀 가면 나온다고. 하하.

목적지까지 2시간 넘게 달려야 하니 운전자 가이드 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일본의 지리와 문화는 물론 정치, 문학, 경제까지 박식하기 짝이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까지 얘기하길래 가이드의 대학 때 전공이 궁금해진다. 기회를 잡아 물어봤다. 짐작대로 국제경영학과 일본학을 했다고. 그리고 일본 여행업에 종사한 이후로 항상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직업에 대한 자세가 되었고, 명품 가이드를 아무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스나카와(砂川) 휴게소에서 휴식한다. 화장실 들르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먹고 다시 출발. 차 속에서 허 원로, 기행문 누가 작성할 거냐고 추궁하듯 묻는다.

일본서 짧지만 방문교수도 했고 이번 여행일정 조율도 맡았던 김재현 대원이 적합하다는 중론인데, 이 양반 할 수 없이 쓰기는 하겠지만 자기는 뼈만 작성할 테니 나보고 살을 붙이라며 나를 물고 들어간다.

나는 백산 산행기 담당자이지 해외 산행기 담당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경주 남산 산행기도 아직 완성 못했는데... 아, 뼈를 발라 살을 만드는 밤을 두 번이나 더 새워야 한다니.

10명 회원을 가진 산악회 아닌 산악회에 이미 회장, 보급대장, 백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산행기 담당이 있는데, 이번 원정에서 총무, 부총무, 부총무보까지 생겼다. 전 대원의 간부화가 멀지 않았다.

 

후카가와(深川) JC에서 빠져나와 아사히카와의 외국 수종 시범림(소설 ‘빙점’의 무대) 안에 있는 미우라 아이코(三浦綾子, 1922-1999) 기념문학관에 4시 반 경에 도착한다.

 

 

가이드 왈, 시간도 좀 남고 문화적인 것 좋아들 하실 것 같아 이곳으로 모셨다고. 나야 당근 만족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만족했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한 시골마을의 산책로 입구에 위치한 이 문학관은 작은 2층 건물과 더 작은 단층 별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 벽에 “이 문학관은 작가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공익재단을 만들어 세웠다”고 적혀 있다.

1층 벽면에 장식된 작가 연보에는 주요 연도마다 그 해의 중요 사건을 병기해 놓았다. 그의 작품들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나는 ‘빙점’이라는 소설을 알고는 있지만 읽었는지 여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가이드의 설명으로 스토리의 뼈다귀는 알게 되었다. 웬 남자 사진이 걸려 있어 누굴까 했는데, 2층에 마침 모범부부 기획전을 하고 있어 살펴보니 남편이다. 몸이 불편한 작가의 구술을 받아 적는 등 외조를 많이 했고 금슬이 좋았기 때문이란다.

2층 반대쪽에는 자유도서관이라 이름 붙은 문 없는 작은 공간이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전시해놓고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해놓았다.

한국의 어느 문학관에서 이런 도서관을 본 적이 있나? 물론 1층 카운터에서는 작품은 물론 관련 소품들도 판매한다.

별관에는 작가의 생전 서재 모습을 복원해 놓았다.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표찰이 붙어 있어 작가의 앉은뱅이 탁자 앞에 앉아볼 수는 없고, 대신 마루에 걸터앉아 사진만 찍었다.

임 보급대장 건축전문가답게 별관 입구의 자동 닫힘 장치를 보고는 탄성을 발한다. 우리도 이런 거 도입하면 좋겠다면서.

 

5시 20분 경 다시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간다.

드디어 멀리 눈덮힌 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댐이 나타나고 저수지를 따라 서서히 올라간다. 어디서 사진 찍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자말자 가이드 기사 즉시 차를 되돌린다. 전망이 좋은 곳을 지나쳤다는 것이다. 사진들 찍고 경관을 감상한 후 호텔로 직행하다.

 

 

6시 20분 목적지 호텔에 도착한다. 다이세츠잔(大雪山)의 아사히다케(旭岳, 2291미터) 중턱 1,050미터 높이에 있는 아사히다케 온천호텔이다.

정문 상단에 ‘bearmonte’라는 호텔명이 붙어 있다. 곰의 산이란 뜻인데 이 산에 곰이 많나? 주차장에 차들도 없고 로비도 한적해 영업 중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카운터 옆 좌측 공간에 페치카가 있고 주위에 소파들이 놓여 있다. 로비를 둘러보다 반가운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름 하여 ‘喫煙室’. 국립공원 내 호텔이어서인지 건물 내부에 ‘흡연실’을 만들어둔 것일까.

왜 일본은 끽연실이라 하고 우리는 흡연실일까. 끽연실이 더 정확한 것 같은데, 일본 따라 하기 싫어서... 그러고 보니 중국에서도 ‘흡연실’이라 부른다.

점심 먹을 때 허 원로, 맨날 원로들끼리만 합방하기 싫다며 회장에게 방 배정 방식을 고민해 보라고 지시(?)했었다.

충직한 김 회장 작은 종이조각들에 숫자를 적어 접은 후 탁자 위에 놓고 선택들 하라 한다. 강제 조정권을 가진 조커까지 넣어서 재미를 한층 돋우었지만, 조커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실제로 행사 가능한지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한다.

어쨌든 허 원로와 내가 같은 1번을 뽑았다... 허 원로 왈, 나 하고 같이 안 자려고 꾀를 냈는데... 내가 대꾸하길, 날 버리고 가는 사람 안 잡어... 다들 웃음보를 터뜨리고, 누군가 이를 두고 천생연분이라 한다.

어쨌든 사흘 밤을 같이 지냈다. 제비뽑아 갈라져도 조커들이 합쳐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게 원로들 대접한다는 핑계로 사실은 원로원 왕따 시킨 것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렇게 방을 배정한 후 짐들을 넣어놓고 호텔 부설 온천사우나를 한다.

노천탕이 있다고 가이드가 자랑해서 노천탕에 갔더니 바깥쪽 벽 위로 하늘이 길게 보일 뿐이다. 내가 들어가니 신씨 성을 가진 두 명의 회원이 뭔가 얘기하던 끝에 건물 층수 매기는 문제가 나오자 내가 개입한다.

건축에 문외한으로 도대체 경사지에 지은 건물의 층수 매기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 했더니 일제 때부터 내려오는 건축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고. 내가 그게 일반인으로서는 불편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으니 상식에 맞추어 법을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 하고 쎄우니, 건축 전문가들 왈 규정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며 일축한다.

설명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결국 건축주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겠다. 다른 분야들도 아직 그렇지만 건축 분야에는 일본식 용어가 유독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법률마저 그렇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것도 행정 및 관행 편의주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가 양반들은 벨시리 문제되는 건 아니라는 식이다.

사우나를 마치고 식당 앞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정규식 전 회장대원이 게르마늄 목걸이 하나를 목욕탕 바닥에서 주웠는데 아무래도 내 것 같다고 묻는다. 나는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목욕탕 옷 바구니에 넣어두고 옷 입을 때 바닥에 떨어뜨린 것 같다.

몇 년 전 대마도에 교수연수회 갔다가 마눌님에게 아부하느라 비싼 값 주고 샀는데, 몇 번 착용해보더니 무겁고 불편하다며 사용을 안 한다. 차라리 팔찌가 나았나 싶었다. 값도 헐 쌌는데. 그냥 집안에 돌아다니는 게 아까워서 내가 착용하고 다닌 지가 근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무감각하다니...

다음날 아침에 보니 우리 김 회장도 나하고 같은 걸 하고 있네... 가이드 왈 정작 한국 관광객들에게 팔았던 일본 사람들은 잘 사지도 착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호구 잡힌’ 기분이다.

호젓한 분위기 있는 호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다.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더니 두 서너 팀이 더 있다.

 

 

드디어 삿포로 맥주를 마신다. 바깥은 어둠 짙은 산속이고 주위에는 이 호텔만 덜렁 있어 올 데도 갈 데도 없다. 술 마시며 얘기꽃들 피우는데 식당에는 우리만 남아 있다. 내가 보니 종업원들 눈치가 빨리 안마치고 뭐 하냐는 것 같아 대충 마무리하고 방에 모여 한잔들 더 하기로 한다.

원수 같은 원로 두 사람이 자는 방에 다들 모여 술추렴을 더 한 후 일찍들(?) 자러갔다. 이렇게 일본 홋카이도에서의 첫날밤을 맞았다. 뒤편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눈빛을 느끼며...

이 대목에 뼈다귀를 추렸던 김 교수 원고에 대설(大雪)の 장(藏)이라 적혀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몰라 본인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잘 모른다나? 어허 이럴 수가. 자기가 써놓고도 모른다니... 호텔 건물 어딘가에 적혀 있던 글은 아닐까? 아무도 모른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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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0 00:00

경주 남산 산행기

2019년 2월 23일(토) 산행 친구(서익진, 김재현, 신삼호, 김용운, 임학만, 손상락, 신성기)들과 경주 남산에 올랐던 기록이다. 서익진(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글이다.

 

오전 7시 30분, 3.15아트센터 주차장에서 차량 2대에 분승하여 경주를 향해 출발했다.

신삼호 대장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다. 허 원로 요즘 ‘스도쿠게임’을 즐긴다며 휴대폰으로 하는 숫자 맞추기 퍼즐게임을 소개하자 퇴직 후 시간이 남아돌 것으로 남들이 착각하는 김재현 회원이 덥석 관심을 보였다.

결국 허 원로의 노회한 술수에 걸려 10분 내 퍼즐을 풀면 커피 사주긴가 뭔가를 걸고 내기가 붙었다. 그런데 김 회원이 이에 성공하자 김이 빠졌다. 허허, 철학박사를 돈 주고 딴 게 아니라 바둑 같은 게임하면서 땄음이 증명되었다. 사실 김 회원은 한 때 프로기사 지망생이었고 경남대 최고 고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깜빡 하시지 않았나 싶다.

진영에서 새로 난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나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터널들을 지나고 계곡들이 이어진다. 좁은 계곡들에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차량 속에서도 역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탁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공장들이? 우리나라에서 공장은 입지선정에 사실상 아무 제약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들판 한 가운데, 산 중턱에, 계곡 속에 어디든지 어떻게든 허가가 난다. 공장과 자본의 유치는 정부의 과업이자 지자체의 살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지만 경제가 사회와 정치는 물론 문화예술까지 지배하는 세상이니 가히 ‘경제의 시대’에 걸맞는 나라꼴이 아닐까. 그런데 왜 ‘경제학’은 인기가 없을까?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언양휴게소에서 쉬면서 우동으로 못 먹은 조식을 때웠다. 어묵우동과 해물라면 두 가지만 시켜 놓고 하나를 골라 먹으라 한다. 나야 당근 어묵우동이지. 그러나 항상 선택하지 못한 게 더 좋아 보이는 건 인지상정. 해물라면이 갑자기 맛있어 보였다.

언양 휴게소 건물은 최근에 전면 신축한 것이다. 수도권 휴게소들에서 신축 건물들을 이미 상당수 본 적은 있지만 영남 일대에서는 처음 보았다.

다시 출발한 차 안에서 나는 김 회원이 가져온 경주 남산 소개 책을 살펴봤다. 동승자들을 위해 중요한 것은 소리 내어 읽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남산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남산이나 앞산 같은 산 이름은 전국에 산재한다. 대도시라면 거의 다 있다. 그만큼 산이 많고 거주지들과 함께 있다. 우도나 저도가 전국 바다에 산재해 있듯이. 그만큼 섬도 많은 나라다.

하지만 도시 근처에 있는 작은 산이라 해서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삼릉 앞 국도변에 조성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준비물을 갖춘 후 도로 건너 등산로 입구로 갔다.

남산은 국립공원이다. 산 자체보다는 이 산이 가진 보물 덕분이리라. 공원 관리원들이 입구에서 주의사항도 주고 안내도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모두 여자들이다. 무등산 국립공원에서는 관리인들이 모두 남자였던 게 문득 떠올랐다. 우리도 관리인한테 단체사진을 찍었다.

 

 

등산로로 들어서자말자 바로 울창한 송림이다. 그 속에 삼릉이 있다.

삼릉 앞에 30명은 족히 될 만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 뭐 하나 보니 시산제를 지낸다. 아직 2월이니 그럴 만하다. 엄청난 자태를 자랑하는 금강송들을 감상하면서 계곡을 향해 올라갔다.

삼릉곡 초입에서 ‘석조여래좌상’을 알현했다. 그런데 머리가 없다.

사실 머리 잘린 부처님이나 보살상이 남산에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일본인들이 그랬을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상당히들 공감한다.

‘선각육존불’,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터’를 연이어 감상하고 올라가는데 갑골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바위가 길 가에 나타났다. 거북등이다 자라등이다 논란이 분분하다. 몸체 전부를 보더라도 분간하기 어려울텐데 등만 보고 자란지 거북인지 우예 알겄노. 그것도 흐릿한 문양 밖에 없는데, 다 사람들이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선각보살상’을 거쳐 올라가니 ‘바둑암’이다. 남산 전체의 북쪽 끝에 해당한다. 북쪽으로 경주 시내가 보이고 서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단체사진을 찍고 다들 가는데 엽서가 비치된 우체통이 있다. 남산 관련 사진이 새겨진 엽서다. 주소와 사연을 적어 널어놓으면 1년 후에 배달해준단다. 가장 젊은 신성기 회원이 한 장 써 넣길래 나도 따라 한 장 써 넣었다. 마눌님 귀중! 아까운 주말 자기와 함께 안 보내고 나간다고 불평하시는 마눌님 달래는 돈 안 드는 방법으루다가. 사실은 무릎이 안 좋아 같이 등산 다니는 건 포기한지 오래다.

남쪽을 향해 능선을 탔다.

얼마 안 가서 남산의 주봉 금오봉이었다. 학봉산악회 플랭카드를 앞에 펼치고 단체증명사진을 찍었다. 이건 반드시 필요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단체는 사진을 남긴다. 명언이 아닌가. 아니라꼬?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 ‘상사바위’와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에 왔다.

표지판에 남근석이 있다는데 모두들 어느 것인지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못 찾았다. 누군가 상상력을 너무 발휘한 것은 아닐까? 우측 멀리 산중턱 암벽에 현신한 ‘마애석가여래좌상’ 한 분이 삼릉계곡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육안으로 잘 안보이시길래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보니 그런대로 잘 나왔다.

조금 후 펑퍼짐한 바위가 나왔다. 논란 끝에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잘 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여기부터 줄곧 내리막이었으니 말이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 했던가. 배부르고 노곤하니 노래 생각이 났던가. 벌써 오래 전부터 학봉 가수로 추대되신(?) 김용운 회장에게 모두들 노래를 주문한다. 좀 빼던 김 회장, 갓바위 노래를 열창한다. 가사도 안 보고 하는 것 보니 가수가 맞기는 한데, ‘신라의 달밤’은 엇다 두고 웬 팔공산 갓바위인가.

이어 메들리를 구성지게 부르는 가수는 임학만 대장이 가져온 이동식 스피커로 증폭된 사이버 가수 ‘레몬’이다. 바위에 기대어 남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듣고 있으니 따스한 햇살이 잠결로 이끌어 간다.

여기서 하산해 목욕탕으로 직행할 것이냐 애초의 계획대로 맞은 편 ‘고위봉’을 공격할 것이냐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사실 지도상으로는 능선으로 이어진 길인 줄 알았다. 와 보니 계곡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전체가 남산이지만 고위봉은 전혀 다른 산이나 다름 없다.

상대적으로 젊은 회원들은 공격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험해 보이고 멀어 보인다, 이미 많이 걸었고 돌아가는 길도 상당하다며 안 가려고 하는 원로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언제는 안 그랬나? 속으로 투덜대며 내려들 간다.

내려와서 보니 다들 잘 내려왔다며 다시 공격했더라면 고생 좀 했을 것 같다는 데 모두들 동의한다. 거 봐, 원로들의 천리안과 선견지명을 실감했으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역방향으로 오는 등산객도 많다. 정오 무렵이니 등산객이 가장 많을 시점이긴 하다.

웅장한 자태의 ‘용장사 삼층석탑’이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점에 절묘하게 서 있다. 탑의 층수를 셀 때는 좌대가 몇 층이든 아무리 높든 지붕 개수로 따진다는 원칙을 되새겼다.

 

 

단체사진을 찍어준 웬 중년 여인의 애교에 모두들 반한 것 같았다. 애교가 아예 없거나 부족하거나 이젠 더는 없다고 생각하는 마눌님들을 모시고 사는 사내들의 본능이다.

탑 아래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에게 예배를 올리고 내려가니 바로 ‘용장사지’다.

절 구경할 생각을 했었는데 웬 걸 절터만 있다. 터의 생김새로 보아 규모는 작았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을 가진 명찰이었을 것이다. 제법 내려 왔나? 작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설잠교’를 건너니 삼거리다. 왼쪽 오르막길이 ‘고위봉’으로 간다고 팻말이 가르쳐 준다. “으잉, 여기서부터 고위봉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우와 포기하길 잘 했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부터는 거의 평평한 계곡길이다. 이름하여 ‘용장계’다. 계곡 입구 거진 다 온 곳에 매월당 김시습과 금오신화에 관한 소개 패널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올 때 차 안에서 읽었던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이다.

이어 다리를 건너니 동네가 시작되고 아줌마들이 토마토 등을 팔고 있다. 먹음직해 보였고 값도 싸 보였지만 그냥 지나쳐왔다.

동네를 따라 내려오니 국도다. 작지만 주차장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여기서 문제의 사진사 여인을 다시 만났다. 이 여인이 친구 한 명과 함께 토마타를 먹으면 맛있다 한다. 아까 아줌마들한테서 산 것이다. 우리도 아는 체 하면서 한 개씩 얻어먹었다. 기꺼이 준다. 얼굴이 예쁘장하니 마음도 고우스레한 걸까! 이건 법칙일까 착각일까!

이제 국도변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산길보다 포장도로가 훨씬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체험으로 안다. 뜨뜻한 목욕탕을 에 노곤한 육신을 담굴 것을 생각하며 다리 아픈 걸 참고 간다. 기사 회원 두 분은 계속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기로 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단체가 돌아가고 사회도 돌아가는 법이지. 그런 사람이 제대로 대접 받는 세상이 되기를!

갈 때는 통도사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마산에 도착해 파도횟집에서 도다리 회를 실컷 먹었다. 4월 일본 북해도 대설산행을 기대하면서 헤어졌다.

이렇게 천년의 왕국, 황금의 유토피아, 불국토의 한 자락을 건성으로 다녀왔다. 백산(百山) 리스트 꽉 채우기를 갈망해 마지않는 신 대장에게 경주 남산은 25번째 백산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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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3 00:00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대 오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 (월남동3가 11)에 소재한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개설]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0년에 이르러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어 경찰이 치안을 맡도록 했다.

1921년에 지금의 마산 중부 경찰서 자리에 있던 헌병 분견대 건물을 증축해 마산 경찰서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 건물을 경찰에게 내어 주고 1926년에 지금 자리에 헌병 분견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신축 시 대지가 넓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폭 축소되어 건물 주위로 한정되어 있다. 건물 인근에는 분견소장 관사(官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위치]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 3가 11]에 있다. 남해 고속 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마산회원구를 거쳐 국립 3·15 민주 묘지 방면으로 3·15대로[국도 2호선]를 따라 내려가다 3·15 의거 탑과 마산합포구청을 지나 경남 대학교 방면으로 약 13㎞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

[변천] 구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독립 운동가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었던 근대사의 질곡을 보여 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일제의 탄압과 무단 통치를 상징한다. 1945년 광복 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현 국군 기무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사찰했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에 보안 사령부가 폐지되고 군 정보 요원들이 철수하면서 건물만 남게 되었으며, 그 후 기무사 출신 퇴역 군인들의 친목 단체인 ‘충호회 경남 지부’와 보훈 자녀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주변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고, 한 블록 뒤에는 저층 주택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택지 외곽에는 중고층 높이의 공동주택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마산항 및 지금은 폐지된 된 마산항역이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9월 14일 등록 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벽돌 조적조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이고, 연면적은 175.21㎡이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 놓인 현관 출입 부를 중심으로 양측에 3개씩의 세로 창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외벽에는 회흑색 벽돌을 사용하여 다섯 줄의 수평 띠를 둘렀는데, 이는 단조로운 벽면을 분할하여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붉은 벽돌의 물성과 세로로 긴 창은 일제의 통치 보조 기관이었던 헌병대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요소이나 벽면에 넣은 여러 줄의 수평 띠는 이를 다소 완화하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 복도를 둔 중복도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출입부 우측편의 사무장실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관 출입부와 창의 위쪽의 인방은 평아치에 가까운 약한 곡률의 아치 형태로 만들었으며, 창 하부의 흰색의 창대는 외벽 밖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다. 아치형 창 상인방의 중앙에는 사다리 모양의 흰색 석재를 끼워 넣어 창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은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가며 쌓는 영식 쌓기 방식으로 시공한 것이다.

지붕은 단정한 형태의 우진각 지붕으로,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 기와를 덮었다. 정면 현관 출입 부 상부에는 본래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철거되었다. 지면에서 4단의 계단을 올라온 지점에 1층 바닥이 있으며, 그 하부는 지하층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건물 우측면의 대지가 좌측보다 낮아 지하층의 우측면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현황] 2008년에 지붕을 해체하여 수리한 후 최근 건물의 원형 복원을 위한 수리를 했다. 보수 전 건물의 창은 본래 목제 오르내리창이었으나 미서기창으로 바뀌었다. 고증과 외벽에 남아 있는 흔적을 고려할 때 건물의 우측면에는 지하층으로 통하는 복도각과 원형창이 시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마산에 헌병을 파견하여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독립 운동가를 탄압했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제의 강권 무력 통치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당시 외래 건축의 영향을 받아건축된 서양식 건축이라는데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192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잔악한 일본의 대명사였던 헌병대가 민중을 억압하고 독립투사들에게 가혹 행위를 자행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벽면 전체에 돌림띠를 둘러 장식하고 수직의 긴 창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등 관공서 건축물로서의 권위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마산헌병 분견대는 1905년 일식의원 건물을 빌어 사용하다가 1909년 12월 2일, 관할이 대구로 옮겨지면서 현 소재지로 이관하여 사무를 개시하였다. 현재의 벽돌조 건물은 1926년에 신축되었으며, 당시 근무인원은 8명이었다고 한다.

 

위와 같이 두 공식 기록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확정하고 있다.

이 포스팅은 그에 대한 글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가장 먼저 추정한 이는 한상술 씨다.

한상술 씨는 2000년 「마산의 근대건축에 관한 연구」라는 경남대학교 석사논문 54쪽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이라고 밝혔다. 

한 씨가 이 논문에서 각주를 달아 근거로 제시한 문헌은 일본인 스와 시로우(諏方史郞, 추방사랑)가 쓴 『마산항지』(1926년) 155쪽이었다.

한 씨가 인용한 『마산항지』 155쪽 '마산헌병분견소' 항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간략한 번역문도 함께 올린다.

 

馬山憲兵分遣所

本町四丁目に在り、明治三十八年中晉州より派遣せられ、現都橋畔にて水上医院なる建物を借充し、其その後管轄は大邱に移り遂ついに馬山憲兵分隊となり現建物は此この時、建築せられしものにて分遣所の建物として比較的広大なるは夫それ之こか為ためなり、幾干もなくして分隊は鎭海に移り建物は分遣所に於て其の儘そのまま之これを使用し別室に郷軍馬山分会事務所を借設せり、本町五丁目角に分遣所長官舎の新築あり、現時の所長は曺長片桐文三氏なり。

마산헌병분견소

본정 4정목(현 월남동 3가)에 있다. 1905년 진주에서 파견되어, 현 중앙동 다리 근처 수상의원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였다. 그 후 관할이 대구로 이관되어 마산헌병분대가 된 현 건물은 그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분견소 건물로서는 비교적 광대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 분대는 진해로 옮겨가고 건물은 분견소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별실에 향군마산분회사무소가 임대 사용하고, 본정 5정목 모퉁이에 분견소장 관사를 신축하였다. 현재 소장은 상사(曺長) 가다키리 분조(片桐文三. 편동문삼) 씨다.

 

그런데 내용을 아무리 봐도 이 글에서는 건물의 건립연도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인지 한 씨는 이 부분을 인용하며 1926년으로 확정하였다.

한상술 씨가 논문에서 밝힌 건립연도 1926년은 이후 여러 후속연구에서 인용되었다.

필자의 글에서도 별다른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였다. 필자 뿐 아니라 이런 저런 문헌 여러 곳에서 인용되었고, 강의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이 글 첫머리에서 소개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문에서도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두 공식기록의 건립연도 역시 한상술 씨의 논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최근 이 건물의 건립연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시 건축의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신삼호 건축사가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12년이라고 했다.

 

신삼호 건축사가 제시한 자료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지도를 소개하며 이 건물의 건립연도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1)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1914년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에 의하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명치45년 즉 1912년 건립되었다.

이 문건의 ‘마산헌병분대청사 및 부속건물’ 항목을 보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1912년 2월에 기공하여 같은 해 7월에 준공하였다'고 적혀 있다.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까지 첨부(아래 그림)되어 있고, 아래에서 보듯이 도면 내용도 실재하는 건물과 동일하고 정확하다.

 

<배치도>
<평면도>
<정면도>

 

2)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마산헌병분대' 편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1909년(명치42년) 12월 2일 마산 본정 3정목(현 월남동 3가)에 대구헌병분대분견소로서 설치되어 1910년 7월에 편재개정의 결과 마산분대로 개칭되어 김해, 웅천, 진해, 진동, 배둔역, 고성, 장목포의 7분견소를 관할하고 있으며 지금의 청사는 1912년(명치45년) 7월에 낙성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1/10,000 지도 「마산」 에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지도를 확대(아래 그림)해 보면 '헌병분견소'라고 표기된 건물이 정확히 그려져 있다. 위치도 정확하고 건물의 배치형태도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의 ‘마산헌병분대청사및부속건물’에 첨부된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의 도면과 동일하다.

 

 

이 세 자료, 즉 1914년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 기록과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내용, 그리고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 「마산」 등이 이 건물 건립연도가 1912년임을 말하고 있다.

도 「마산」은 1912년이라고 확정 짓기보다는 1916년 이전에 지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적어도 건립연도가 1926년은 아님은 확실히 보여준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등록문화제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도는 1926년이 아니라 1912년로 추정된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자료만으로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건립연도는 재고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 다시 정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 받는 '등록문화재 제198호'의 건립연도에 대한 문제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사과드린다.

논문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한 것은 온전히 제 잘못이다. 잘못된 글을 읽은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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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7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3 - 한빛 원전1호기는 폐쇄가 답이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한빛 원전1호기는 33년 된 원전으로 95만kw 짜리 원전입니다.

한빛 원자력발전소에는 비슷한 규모의 원전이 6기가 있습니다. 전남 영광에 있죠.

한빛 1호기는 격납건물 철판과 콘크리트 벽에서 구멍이 발견되고, 지난 1월과 3월에는 화재가 발생하는 등 끊임없이 지역주민과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원전입니다.

 

<한빛 원전1호기 전경>

 

한빛 1호기는 부실시공의 보완공사와 점검을 끝낸 후 재가동 승인을 받았습니다.

지난 5월 10일 오전 3시 제어봉 시험운전을 시작했는데요,(제어봉은 핵분열을 조절하는 설비로 제어봉을 핵연료사이에 넣으면 분열이 멈추고 빼면 핵분열함) 오전 9시 반경 열 출력이 기준치보다 5%의 이상 출력 현상을 보였습니다.

5% 이상 열 출력이 되면 수동으로 정지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10시 31분에는 18%까지 상승하여 보조급수 펌프가 작동되고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여 0%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원안위가 현장 조사에서 이상 출력 현상을 확인하고 정지명령을 내려 한수원은 이상 발생 12시간 만인 오후 10시 2분 원자로를 정지시켰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은 제어봉 시험 중에 실수로 과다출력이 발생하여 4초 만에 폭발할 만큼 출력이상은 위험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핵폭탄은 수초 만에 출력이 높아져 폭발하는 것이고요 원전은 제어봉으로 출력을 조절해서 천천히 폭발시켜 열을 내는 것입니다. 그만큼 출력조절이 중요한 것입니다.

체르노빌과 구조가 다르고 격납용기도 있어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지만 위험한 상태인 것은 맞습니다. 그래서 5% 이상이면 수동으로 멈추게 정해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핵시민운동단체회원들이 '한빛 1호기 제어봉 조작 실패'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첫째, 한수원은 이미 체르노빌 사고에서 학습한 바 있는 출력 조절에 대하여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이상의 출력이면 당연히 수동정지하고 이상여부를 확인해야 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입니다. 더구나 제어봉 조작을 면허도 없는 사람에게 시킨 것은 한수원의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빛1호기는 격납용기의 콘크리트 구멍, 내부철판의 부식, 화재발생 등으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로부터 폐쇄요구를 꾸준히 받았던 원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지역주민의 요구에는 귀를 막고 관행적으로 원전을 가동해 왔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둘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원전 규제가 형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전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사법경찰관을 투입하고 사용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사건의 정확한 원인과 상황에 대한 의혹은 풀리지 않고 5% 이상의 원자로 열 출력이 발생해 바로 정지 조치를 취해야 했음에도 왜 12시간이 지나서야 수동정지를 시켰는지 제대로 된 해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5월 10일에 발생했는데 5월 21일에야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원안위가 10일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사고가 발생했는 지 발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의 안전에 관한 일입니다. 국가기밀이 아닙니다. 한수원의 입장을 고려하는 지, 원안위의 책임회피를 위한 방책을 연구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신속하게 사건의 진상과 경과를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그것이 원안위의 존재이유입니다.

한수원의 안전불감증과 원안위의 무능이 우리 국민들을 파국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사고가 잦은 한빛원전 6기는 조기 폐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력설비는 충분합니다. 가스발전은 아직도 가동률이 50% 미만입니다. 미가동 가스발전소가 원전 19기 만큼 있습니다.

 

박종권 /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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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2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5월 9일 제1야당 대표는 “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를 폐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대비 없는 에너지 정책 정말 무책임하다.”라고 원전사고를 교통사고에 비하며 탈원전 정책을 비판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사람의 안전이다.

자동차 사고는 당사자와 주변 몇 사람이 피해를 본다. 하지만 원전은 단 한 번의 대형사고로 울산 같은 산업도시는 한 순간에 폐허로 변하고 수출이 전면 중단된다. 부산의 종말도 가능하다.

100년간 복구가 불가능하다. 국토가 좁고 시설이 밀집되어 있어서 국가가 파산될 수도 있다.

방사능 피폭은 3대까지 유전질환이 계속된다. 70년 전에 피폭된 히로시마 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을 친 원전주의자들은 진정 모르는가. 원전 사고는 교통사고와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정치 지도자가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원전의 안전성이 어떻게 충분히 입증됐나?

2012년 2월, 고리1호기는 블랙아웃되었다. 6개의 전기 공급선이 모두 상실된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원전은 전기 공급이 상실되면 냉각기능이 상실되고 폭발로 이어진다. 그래서 6개의 전기 공급선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고장, 수리 태만 등등으로 6개의 전원이 끊어졌지만 다행히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 대형 사고는 면했다.

한수원은 이런 중대 사고를 은폐했다. 한 달 후 밝혀진 블랙아웃 사건으로 이웃나라 일본이 깜짝 놀랐다. 안정성이 충분히 입증됐다는 말은 허구이다.

그는 또 “우리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는 원자력 뿐"이라며 역사상 원전사고는 단 3건 밖에 없는데도 안전 때문에 원전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정말 그런가?

사정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혹세무민하는 것인가?

‘한화 큐셀’은 태양광 세계 1위 기업이다. 독일 시장에서 점유율 1위인 기업이 우리나라 ‘한화 큐셀’이다. 우리 기술이 세계 최고인 것은 원전이 아니라 태양광 발전 기술이다.

역사상 단 3건의 사고밖에 없는데 원전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무책임한 말이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독일은 왜 원전을 포기하나? 원전 종주국 미국은 왜 30년 동안 원전을 짓지 않나? 국민의 안전을 생각하고 원전의 경제성이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신한울 3,4호기는 계획단계에서 포기한 원전이다. 건설허가조차 받지 않은 원전인데 건설재개라는 말을 쓰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전형적인 혹세무민이다. 건설재개라는 말은 신고리 5,6호기처럼 건설 중인 원전을 멈췄을 때 하는 말이다. 건설 허가도 받지 않았고 당연히 건설 착공도 하지 않은 원전을 건설 재개라니 너무 생뚱맞다.

 

탈핵운동가 박종권 대표

 

국민의 안전과 미래세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더 이상 탈원전 정책을 흔들지 말기 바란다.

전 세계 원전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다음의 사고국가는 한국을 1순위로 생각하고 있다. 사고 난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2019.5.9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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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00:00

핵발전소 이대로 좋은가? 11 - 우리나라의 잦은 지진, 불안하다

<이 글은 탈핵경남시민행동 박종권 공동대표 기고문입니다.>

 

지난 4월 4일 발생한 강원도 고성, 속초의 산불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 19일과 4월 22일 사흘 간격으로 발생한 지진은 강원도 지역 주민들의 가슴을 또 한 번 쓸어내리게 하였다.

특히 이곳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있어 더욱 불안하다.

지난해에도 많이 발생했지만 금년 들어서도 1월 1일 영덕 앞바다에서 규모 3.1의 지진이 있었고, 1월 10일 경주에서 규모 2.5의 지진이 있었다.

1월 31일 영덕에서 2.2, 2월 10일 포항 앞바다에서 4.1, 2월 10일 포항 앞바다에서 2.5, 4월 19일 동해 앞바다에서 4.3, 그리고 4월 22일 울진앞바다에서 3.8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너무 잦다.

 

일자

규모

발생장소

2019. 1. 1

3.1

영덕 앞바다

2019. 1. 10

2.5

경주

2019. 1. 31

2.2

영덕 앞바다

2019. 2. 10

4.1

포항 앞바다

2019. 2. 10

2.5

포항 앞바다

2019. 4. 19

4.3

동해 앞바다

2019. 4. 22

3.8

울진 앞바다

(2019년 지진발생 현황)

 

왜 이렇게 지진이 잦을까?

이 지역은 원래 활성단층지대다. 지진이 많이 발생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다.

동해시 앞바다에서 규모 4.3의 지진이 일어난 지 3일 만에 울진 앞바다에서 3.8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같은 지진대일 가능성이 있다.

기상청은 4월 22일의 지진은 3일전의 발생지와 116km 떨어져 있어 연관성이 적다고 하지만 지진에서 116km는 그야말로 가까운 거리인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180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지진 때문이었다.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의 영향으로 한반도가 일본열도 쪽으로 더 끌려가 지진이 발생하기 쉬운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시피 지진은 아무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 지역은 특히 우리나라 전체 24기 중 18기가 몰려 있고 신고리 5,6호기, 신한울 1,2호기 4기도 이 지역에 건설 중이다. 지뢰밭에 원전이 몰려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 정부는 원전에 대한 내진 보강조치를 했지만 월성 2,3,4호기는 내진보강 조치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월성 원전은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 원전이라 고준위핵폐기물이 4-5배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시민단체는 월성 원전의 조기폐쇄를 주장하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활성 단층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되지 않았고 해저 활성단층 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 언론은 신한울 3,4호기를 계속 짓자고 주장한다. 이 원전은 건설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허가가 취소된 원전이다.

건설재개라는 말도 맞지 않고 활성단층 지역에 원전을 더 짓자는 것은 국민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주장이다.

고리원전은 1970년대 건설할 당시에 활성단층지대라는 사실을 알았다.

군사 정권시대에 반대할 힘도 없었고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설이 가능했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전력도 필요했다.

이제는 이 지역이 활성 단층지대라는 사실을 알았고 원전이 안전하지도 값 싼 에너지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재생에너지라는 대안도 찾았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과 세계 2,3위 원전 강국들(프랑스, 일본)이 원전을 더 이상 짓지 않고 있다.

국민소득 3 만 불인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기술력은 세계 최고에 자본력도 충분하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가습기살균제 사건, 세월호 사건을 겪었다. 그때마다 더 이상의 이런 재앙은 없어져야 한다고 소리쳤다.

원전 사고마저 당한다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진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정답은 정해져 있다.

노후 원전은 조기 폐쇄한다. 신규 원전 건설과 신규 석탄 발전 건설은 더 이상 없다. 에너지 소비를 선진국의 80% 수준까지 줄인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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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6 00:00

쓰레기 대란, 이제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 때다

대한민국 곳곳이 쓰레기 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최근 필리핀으로 쓰레기를 불법 수출했다가 국가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쓰레기 대란은 2017년 중국이 플라스틱 수입 중단 조치를 발표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수출이 막힌 데다 국내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 더미가 마치 산처럼 높게 쌓여가고 있습니다.

전국 235곳 120만 톤에 달하는데 매립, 소각, 연료 재처리 시설등이 확충되지 못하고 처리에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되묻고 싶습니다. 시설을 확충해서 처리하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우리나라는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1위,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 2위 국가입니다. 2016년 기준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98.2kg,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64.12kg입니다.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도 2015년 기준 1인당 420장입니다.

독일 70장, 핀란드 4장에 비하면 너무 많은 양입니다. 일회용 컵 사용량도 275억 개로 1인당 514개의 컵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30년생 나무로 따져보면 1500만 그루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종이컵 하나를 만들기위해 펄프를 생산하고 표백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물은 약200리터라고 합니다.

일회용품 사용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 편리함의 대가는 다시 우리에게 고스란히 쓰레기 대란과 환경오염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미세먼지 역시 이러한 무분별한 1회용 사용과 낭비에 가까운 전력소비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방식을 뒤돌아 볼 때입니다.

커피숍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규제해서 종이컵으로 대체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종이컵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비닐코팅이 되어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99% 소각 된다고 합니다.

 

해결방법은 이렇습니다

첫째,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를 다시 실시해야 합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테이크아웃 컵에 보증금을 부과하여 환급할 때 보증금을 반납하는 제도입니다. 과거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2002년 실시돼 5년간 컵 회수율이 37%까지 늘어난 효과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따로 수거할 수만 있다면 재활용률은 올라갑니다.

둘째,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를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165제곱미터이상인 대형마트, 백화점, 슈퍼마켓은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 되었습니다. 환영할만한 일입니다만 비닐봉투 사용량을 10% 줄이는데 그칩니다. 편의점이나 전통시장은 여전히 그 대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셋째, 종이팩을 별도로 수거하여 재활용 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합니다.

종이팩 역시 일회용종이컵과 마찬가지로 코팅이 되어 있어 폐지와 함께 배출시에 재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집니다. 따로 수거되기만 하면 종이팩은 고급펄프라서 종이나 휴지로 재활용 될 수 있습니다.

국회는 적극적인 자세로 통과해야 할 법안은 통과시키고 새롭게 법안을 제정해서라도 쓰레기 대란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소위 데모를 시작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할 대책을 정부에 요구합니다. "정부는 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때가 아니다. 즉각 대책을 내 놓자 않으면 공멸한다."

엘고어 미국의 전 부통령은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동남아 환경운동가들도 한국의 석탄 발전 건설과 수출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을 Economic animal 이라고 비난했는데 한국이 같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처럼 소비를 하면 한국땅 8.5개가 필요하답니다. 세계 1위 입니다.

현재의 1회용품 규제로는 쓰레기 천국을 막지 못하고 미세먼지 해결하지 못합니다. 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미래세대로부터 비난받고 소송당하는 부끄러운 국가에서 벗어납시다.<<<

 

박종권 / 전 마창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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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00:00

London and Quadrant / L & Q

"No one should be denied the opportunity to achieve their potential because of where they live."

“어느 누구도 그들이 사는 곳 때문에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거절당해서는 안된다.”

 

런던에 소재한 주거복지재단 L&Q(London and Quadrant)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을 알게 된 뒤 L&Q에 관심을 가졌다.  ‘임대주택 거주자와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천박함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했다.

생각 때문이었을까, 마침 가볼 기회가 생겨 직접 그곳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울림은 적지 않았다.

이 포스팅은 그때 L&Q에서 얻은 정보와 느낌을 간단히 정리한 글이다.

 

□ L&Q(London and Quadrant) 소개

ㅇ 1963년 10명의 전문가 그룹이 참여한 주택조합 결성에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1974년 주택법(Housing Act)에 따라 주택공급 보조금을 지원받고 유사한 성격을 가진 단체들과의 통합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영국 최고의 주택조합이며 가장 성공한 소셜 비즈니스 단체 중 하나다. 직원 수는 2천 수백 명에 이른다.

ㅇ 재단은 2011년 주택건축과 단지 조성을 넘어서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재단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사회・경제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ㅇ 재단의 목표는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집과 이웃을 만드는 것이다.

 

□ L&Q 주요 사업

ㅇ 런던과 영국 남동부 전역에 걸쳐 약 95,000채 25만 명의 주거를 지원하고 있다.

ㅇ 핵심사업은 사회임대주택 건설이다. 시세의 50% 미만 정도되는 낮은 임대료로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한다.

ㅇ 앞으로 10년간 10만채의 신규주택을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며 단순한 주택서비스의 제공을 넘어 지역사회의 사회적 파트너로서 활동할 계획이다. 주요 업무는 공공주택 건설, 부동산 관리, 지역사회 투자 등이다.

ㅇ 2016년, 재단은 L&Q 가구에 대한 대규모 사회・경제 조사를 완료했다. 이 조사를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조사 결과는 이후 L&Q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전략수립에 통계적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임대주택을 공급하였고 유사한 문제를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그들의 성공과 실패사례를 듣고 싶어 L&Q 재단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두 분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주택의 사회적 지원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었다.

런던 동부의 웨스트햄 지역에 위치한 L&Q에 도착하자 Matt Bayliss(Head of Independent Lives)와 그의 동료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L&Q 사무실 전경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여서 마음이 바빴다.

나는 먼저 그에게서 그들이 하고 있는 사회임대주택 거주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나왔다.

특히 영국사회가 선진국가 중 계층 간 이동성이 가장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이 점을 자각하고, L&Q 입주민들에 대한 대규모 사회・경제적 조사와 통계분석을 통해 실효성 있는 전략 수립과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한다고 했다. 이 대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L&Q 재단의 임대주택 거주자들은 평균에 비해 불우하거나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다른 사회주택의 평균소득 보다 10% 이상 소득이 낮은 저임금 상태라고 했다. 평균 연령이 50세 이상이라고도 했다.

런던도 우리처럼 판매 및 임대를 위한 주택개발 유형에 따라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Q는 유형적인 유산뿐 아니라 사회적인 유산까지도 창출하여 역사상 유래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가장 가슴에 와 닿은 이야기는 금융 쪽과 함께 만든 자활펀드였다. 우리도 적용해볼만한 프로그램이지만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언젠가 실제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었다.

 

재단 관계자들과 함께

 

앞서 말한 것처럼 영국은 선진국 중 사회적 이동성이 가장 낮기 대문에 사회임대주택 거주자들은 일반에 비해 나쁜 사회적 결과를 가진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L&Q 재단은 입주민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집과 이웃을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3가지 도전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Independent Lives (독립적인 삶) ; 입주민들의 사회・경제적 회복을 위해 새로운 고용 방안 발굴, 기술훈련 투자, 재정 및 금융에 대한 컨설팅 등을 통한 지원 강화

・ Successful Places (성공적인 장소) ; 지역사회 편의시설 등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장소 형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

・ Social Responsibility (사회적 책임) ; L&Q 사업전반에 걸쳐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요소들을 도입하고 아울러 L&Q-학교 파트너십 프로그램 등을 통해 거주 학생과 젊은이들의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

 

재단의 3가지 도전 전략

 

이 외의 사업으로 창업, 사회적 기업, 사회단체를 위한 시설로 사무실, 회의공간, 교육 등 다양한 지원서비스도 제공한다고 했다.

2시간 정도 진행된 이야기 나눔에서 그들도 우리와 유사한 문제를 겪어 왔으며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동일한 현안과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의식은 유사했지만 그들의 주거복지 네트웍이 우리보다 훨씬 촘촘하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 깊고 넓은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문제를 우리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고 깊게 다룬다는 점은 명확했다. 시간은 짧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공급 확대라는 물량적 측면에서 벗어나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연구와 노력이 시급하다는 것도 절감했다. 이미 시작하였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간을 넉넉히 내어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짧은 두 시간을 마무리했다. 

 

며칠 전 진주 가좌동 임대주택에서 대참사가 났다. 

방화살인범 안인득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참사였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주거복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를 두고 설왕설레하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두 달전에 갔던 L&Q가 떠올랐다.

그들에게도 이런 사고가 있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예방하고 있으며, 사고가 났을 때는 어떻게 조치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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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2 00:00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입장문

이 글은 지난 4월 11일 부터 17일까지 창녕 대봉늪 왕버들군락을 지키기 위해 결행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 사무국장의 단식에 대한 환경단체의 입장문입니다.

 

▮ 왕버들군락의 온전성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1등급 습지 대봉늪 지키기 단식농성을 해제하며

 

지난 4월11일 결행된 왕버들군락의 온전성이 희귀하고 아름다운 1등급 습지 대봉늪 지키기를 위한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국장의 단식농성을 단식 7일째에 해제하게 되었다.

 

이보경 국장 단식해제에 즈음해 입장을 발표하는 환경단체 회원들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이보경 사무국장은 경남지역에서 오래동안 활동해온 환경운동 활동가이다. 사진은 이보경 국장이 봉암갯벌 생태계를 설명하는 장면.

 

지난 4월15일 낙동강유역환경청장과 창녕군수의 면담결과 사람부터 살리기 위하여 “우선 공사중단과 사회적 합의와 대안모색을 위한 민관실무협의회의 구성”을 합의하였다. 행정의 수장으로 두분의 애민정신이 발현된 결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보경국장이 단식을 결행한 이유가 사람은 물론 뭇생물들의 생명까지 함께 살려야한다는 단식결행이유와 맥이 닿아있다.

뿐만아니라 15일 오후6시부터 16일 오후8시까지 한시적으로 이루어진 대봉늪지키기 전국연대 참여자 모집에서 336명의 개인과 86개 단체가 참여하였고 후원금 4,955,000원이 입금되었다.

이는 대봉늪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지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이보경국장의 마음이 전국 곳곳에 스며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무엇보다 두 행정수장이 만남을 통해 소통하고 합의를 이끌어 준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 환경단체는 민관실무협의회를 통하여 환경보전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대봉늪 보전방안을 마련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마지막으로 경상남도에 요청한다.

이후 운영되는 사회적 합의와 대안모색을 위한 민관실무협의회의에 경상남도의 관련 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행정협조 그리고 결정사항에 대하여 신속한 이행을(계성천하천기본계획변경, 관련 환경영향평가실시) 당부한다.

그리고 조직적인 행정력 발휘를 위해 사회혁신추진단으로 소통창구를 일원화 할 것을 당부한다.

2019. 4. 17

경남환경운동연합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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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00:00

미세먼지 줄이는 쉬운 방법

요즘 많은 사람들이 미세먼지로 고통 받고 있다. 노인들은 미세먼지가 심한 때 돌아가시기도 한다. 특히 호흡기 질환이 있는 노인들은 더욱 그러하다.

교통사고보다 미세먼지로 사망하는 사람이 더 많을 만큼 미세먼지는 우리들의 건강에 중요하다.

방사능식품은 또 어떤가.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가 WTO 규정위반이라 면서 일본이 제소하여 1심에서는 자료제출 미비로 우리가 패소했다. 지난 4월 11일 2심에서 패소할 것이 기정사실처럼 인식하고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우리가 승소했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입제한 조치는 WTO 규정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방사능 식품을 걱정해야 한다.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만큼 방사능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황당한 주장이다. 도둑을 막자고 조폭을 장려하자는 주장이다.

미세먼지와 방사능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욕심을 버려야만 퇴치할 수 있다. 그것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미세먼지는 에너지 소비에서 발생한다. 자동차 운행이 미세먼지 발생의 중요한 원인이다.

자동차 뿐 아니다. 1회용 컵 하나를 생산하는데도 발생하고 전기를 생산하는데도 발생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1년에 비닐 봉투를 4장 쓰는데 우리는 420장을 사용하고 1회용 종이컵을 500 개 이상 사용한다.

전기는 1년에 한 사람이 1만 kwh 사용한다. 우리보다 잘 사는 영국 국민은 4천 800kwh를 사용한다. 이 모든 낭비가 미세먼지를 불러온다.

우리는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비닐 봉투 값이 싸고 전기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비닐 봉투 생산과 소비에서 미세먼지에 대한 배려가 없다.

국토를 온통 쓰레기 산으로 만드는데도 마냥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값싸게 만들어 제공하고 사용 규제도 하지 않았다.

전기는 값싸다는 이유로 방사능이 발생하든 미세먼지가 발생하든 원전과 석탄발전을 마구 건설했다. 당연히 미세먼지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소비를 줄일 생각은 하지 않고 정부가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원전을 줄이고 석탄발전을 줄이면 전기요금이 오른다. 가스나 재생에너지는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전기요금 인상에 반대한다. 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그 돈이 그 돈인데 말이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잘 알지만 1회용 가격이나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다. 정치적 이유가 가려져 있다.

전 세계는 기후변화의 위험과 방사능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전기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 1회용 사용을 법으로 규제한다. 우리도 이 대열에 합류해야한다.

1회용에 환경부과금을 대폭 매기고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국민들은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소비도 줄여야 한다. 소비를 줄이는 방법은 도덕만으로 불가능하다. 법과 제도가 함께해야 가능하다.

전기요금 폭탄을 겁낼 필요는 없다. 월 5만원의 전기요금이 6만원이 되면 가능하다. 돈이 걱정되는 분은 전력소비를 조금 줄이면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후보시절에 전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기요금을 올려서 그 돈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뿐 아니다. 재생에너지는 미래의 먹거리산업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 옳은 말을 지키지는 못했다.

전기요금 올리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미세먼지와 방사능을 막으면서 경제도 살리는 길이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박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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