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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5.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2 / 내부 고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용기, 내부고발>

 

의인인가 배신자인가?

사회에서는 의인으로 칭송받지만, 동료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내부고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왜 그런 결단을 하였을까.

내부고발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거나 신고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사건,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야기한 최순실 국정농단. 모두 내부고발로 시작되었다.

바깥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은밀한 곳에 숨겨졌던 것, 내부자가 아니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베일 속의 비밀이었다. 공익을 위한 한 사람의 위대한 용기가 이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은 공익신고자라는 사회적 평가와 달리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치부된다.

실제로 내부 고발자 상당수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각종 불이익을 당했다.

조직에서는 축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쫓겨난 후에도 배신자라는 굴레를 씌워 재취업마저 힘들다. 사회적 매장 상태, 정 맞은 모난 돌 신세가 된다.

 

 

이런 현실은 군대에서 하는 소원수리에 그대로 드러난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하급자의 불만을 무기명으로 적어내라지만 의도대로 잘되지 않는다. 솔직한 건의보다 상급자 칭찬이나 군 생활에 만족한다는 등의 형식적 글이 대부분이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밀보장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가 보복을 당한 선례를 병사들이 먼저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부패와 비리의 수법이 날로 은밀화·지능화되고 있다.

외부기관의 감시만으로는 이를 적발하고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고도화된 비리에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내부인의 정보제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익신고는 배신이 아니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시켜 조직을 살리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용기다. 선진국일수록 공익신고가 많고, 이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신고자를 보호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이다. 그 결과가 공공의 재정적 이익을 가져온 경우 거액의 보상금까지 지급한다.

그러함에도 이 법에는 약점이 많다. 금융실명거래법, 형법, 상법 등 대기업이 관련될 만한 비리가 대상에서 빠져있다. 때문에 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법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사회인식이다.

네덜란드의 한 컨설턴트가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낸 친구가 허위증언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진실을 말하겠다는 사람이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에서는 90% 이상, 프랑스와 스페인은 60%대였지만 우리나라는 26%였다.

사적 의리가 공적 정의를 압도했다. 정실을 중시하는 우리 모습을 반영한 결과지만 이런 인식이라면 청렴사회는 요원하다.

개인적 이익을 계산하며 공익신고를 하는 이는 없다. 신고 뒤 불어닥칠 후폭풍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을 결단시킨 것은 오로지 공리적 정의감이다.

그런 점에서 공익신고자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리는 '공익신고자 명예의 전당' 건립을 제안한다. 그것으로라도 그분들의 용기와 정의에 감사하고 싶다.<<<

 

<경남도민일보(2018. 10. 29)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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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8.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1 / 고소득은 선진국?

오늘부터 8회에 걸쳐 '새로움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포스팅한다. 2018년과 2019년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첨삭하였다. 원래 제목은 '청렴사회를 꿈꾸며'이다.

 

<소득만 높다고 선진국 되는 것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옥에 갇혔다. 일을 도왔던 고위공직자들도 형을 살고 있다. 그룹총수인 재벌들도 재판 중이다. 자신의 권한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했거나 사회질서를 교란한 한국사회 지도층의 민얼굴이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부정한 용도로 사라지는 돈이 한국기업은 매출액의 10%, 미국은 5%라는 추정까지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180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45위, 2019년 39위였다. 2017년 51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국가청렴도 평가가 이렇듯 국민의 공직자와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은 냉혹하다. 예외가 아닌 곳이 없다. 청렴도가 국가신인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댄데 가야 할 길이 멀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집권 중 20위권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정부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는 정녕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주어진 일을 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고 그 보상만으로도 행복한 세상은 불가능할까?

돈과 출세에 절박한 사회에서 부패를 막을 길은 없다.

부패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사회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전개되는 금전만능 사회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배태한다.

그런 점에서 부패는 사회적 산물이다. 미래는 각자 알아서 스스로 대비해야 하고, 돈 외에 어떤 것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는 필연적이다.

부패는 부정(不正)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의 선택이다.

책임지지 않는 공권력과 부도덕한 경제력으로 대별된다. 소시민들의 생활에도 흠결은 있겠지만 권력 부패에는 견줄 바 아니다.

노동 없는 부, 도덕 없는 경제, 원칙 없는 정치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간디의 말이다.

소득만 높아진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은 선진국민이 만든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라 기회가 좋다. 촛불을 들었던 그 손으로 부패의 사슬마저 끊어야 한다. 촛불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청렴사회다.

해낼 수 있을까 반문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우리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청렴사회는 어렵다고 포기해버릴 일이 아니다.

부패는 들판의 풀과 같다. 양의 차이가 있을 뿐 풀이 안 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차별 있는 청렴사회는 없다. 엄중하되 공정한 잣대가 필요하다. 다수가 공존하는 복잡사회에서 준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행복지수와 부패인식지수 둘 다 최상위권인 덴마크도 처음부터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그룬트비의 바람대로, 덴마크 국민은 서로를 사랑했고 나라를 사랑했고 나라의 법과 제도를 사랑했다.

나라는 '부자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가난한 이를 적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덴마크 국민은 나라의 정책을 사랑하고 따랐다. 그 노력이 오늘의 덴마크를 탄생시켰다.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간이 1마일(1.6㎞)을 4분 안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54년 영연방체육대회에서 의학도였던 아마추어 육상선수 로저 베니스터(위 사진)가 3분 59초 4로 4분 벽을 넘었다.

그러자 한 달 후 1명, 1년 후 27명, 2년 뒤 300명이 따라 넘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의 힘이었다. 새로운 사회, 청렴사회로 가는 길도 이와 같다.<<<

 

<경남도민일보(2018. 10. 16)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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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1. 00:00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마산번창기 표지>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통, 호구, 경제사정, 마산잡록잡황, 마산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안내서 성격이다.

1900년대의 마산에 대한 일본 문헌으로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 여러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자료가 처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번창해 가는 新市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또 近刊 書目으로 馬山開港十年史, 馬山名所舊跡誌, 馬山裏面 세 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보여지는 諏方武骨은 1906년경부터 마산에 정착한 이후 1915년에 朝鮮史談会란 단체를 만들고 朝鮮史談이란 잡지도 내며 활동하다가 1926년에 馬山港誌를 출판했다.

근간할 예정이었던 책들은 아마도 출판되지 못했고 아마도 馬山港誌에 수렴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다음 해에 慶南史蹟名勝談叢이 그의 유고집으로 나왔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마산번창기 광고면에 실린 현 월남동 3가에 자리한 인풍당약국과 자산동의 한국요리점 융월. 융월의 광고에는 두 기생의 사진과 함께 하단에 명월, 월선 등 기생 이름을 공개해 놓았다>

 

위의 글을 4월 6일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가 기사화 했다. 기사 제목은 「개항기 풍경 담은 〈마산번창기〉 발견」.

이 책의 광고 면에는 당시 마산의 약식 지도 외에 약, 요리, 잡화, 여관, 은행, 병원, 신문, 주조, 정미소, 인쇄, 수산회사, 법률사무소, 목재상, 사진관, 산파, 미곡, 담배 등의 업체를 소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통영의 산업에 대한 광고이다. 통영의 어시장, 여관, 잡화점, 선박회사, 요리점, 약국 등도 이 책 광고 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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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6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여섯번 째 마지막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舊 馬山浦>

각국 거류지를 지나 약 10리 거리의 昌原街道에 있고 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한 곳이다.

戶數는 2,000여戶이며 監理署(감리는 창원군수가 겸임), 경찰서 등이 있고 시가는 해변에 면하여 선박화물의 폭주가 매우 빈번하다. 産物은 미곡, 牛皮, 소금, 魚類, 무명(木綿), 솜(綿) 등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일본상인(행상)의 근거지였지만 마산개항에 즈음하여 신마산으로 이전하였다. 지금도 20여 호가 있고 대부분 조선가옥에 기거하고 있다.

상업은 모든 잡화류를 판매하고 중매상인도 아직 거주하는 자가 있다. 유명한 博友商會도 이곳에 있어서 전적으로 군함에 식품을 납품하고 있다.

 

<당시 마산 지도>

 

名所古跡

<馬山城址>

마산항에서 10여 리 북방, 다시 말해 구마산포에 가까운 천주산맥의 언덕에 있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창원부성을 쌓았던 것이다. 지금도 外廓돌담이 남아 있고 정문의 형태도 뚜렷이 남아있다.

<鎭海灣>

마산에서 육로로 30리, 해로로 20리 되는 거리의 남쪽에 있다. 진해만은 천연의 良港으로서 일본의 前松島와 비슷하다. 일찌기 해군의 군항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며 러시아 역시 그렇게 바라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하는 곳으로서 일 만 톤 이상의 군함이 자유롭게 정박할 수가 있다.

진해항은 인가 200여 호의 어촌으로서 콩, 쌀 등을 産出하고 거제도에 이르는 船便이 있다.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이 灣內의 기묘한 경치를 탐낼 정도다.

<호텔>

각국거류지 남단에 마산포에서 유일한 러시아 호텔이 있다. 해변에 면하여 조망이 좋은 위치에 있다.

<掘江旅館>

思君亭으로도 불리는 마산의 유일한 여관으로 요리점도 겸하고 있다. 객실은 많지 않으나 깨끗하고 調理나 손님접대를 잘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유렵지>

마산부근 일대는 鳥類가 많아 겨울에 총을 지니고 해안을 따라서 돌아다니면 총 한발에 새 열 마리 이상 잡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따라서 한국에서 날짐승 고기가 가장 싼 곳이 마산으로 오리 한 마리에 12전이라고 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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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년 전 마산은? - 5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5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다섯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居留地 雜組

<官衙>

일본영사관이 있어 통상 및 彼我의 교섭사무외 경범죄 이하의 재판사무를 취급하고 있으며 현재의 領事는 阪田重次郞이다. 그는 처음에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이 마산영사관으로 개칭될 때 부임하였다. 부속 경찰서는 마산영사관內에 있으며 사법행정의 경찰업무를 취급하며 서장은 警部 境益太郞이다.

<郵便局>

영사관의 아래 큰길에 있으며 현재 공사 중인데 늦어도 올해 8-9월경까지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현재는 셋집에서 업무를 보고있다. 보통우편외 환어음, 소포, 저금 등의 사무를 취급하고 국장은 阪田領事가 겸직한다.

 

<참고자료 ; 준공 이후의 우편국 전경>

 

<各國居留地會>

모든 행정을 관장하는 곳으로서 각국영사, 한국지방관, 즉 감리 및 地主대표자에 의하여 의원이 조직되고 현재 7명의 의원이 있으며 의장은 일본영사가 선임되었다. 그리하여 그 사무는 경찰, 토목, 위생, 도로, 하수, 소방 등을 주로 하고 경찰사무는 편의상 일본경찰에 위임되었다.

<敎育, 宗敎>

일본인 학교는 없고 한국인을 교육시키는 일본학교가 구마산포에 있다. 재학생 66명.

淨土宗 本山에서는 이번에 포교장을 개시하는 한편, 정식 소학교도 개설하고 在 釜山別院 三隅田持門師로 하여금 그 책임을 맡긴다고 준비중이다.

<居留民會>

일본인의 공공기관으로서 거류민회가 있으며 理事는 仙石勘九郞이다.

<渡航者注意事項>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은 상륙 3일 이내에 書面으로 居留地 民會를 경유하여 영사관에 신고하고 거류지를 떠나는 자도 이와 같다. 단 滯留者(3일 이상 滯在하는 자)는 1 개월 분 頭課金으로 10전을 납부할 것.

<海關>

한국정부의 세관서는 각국거류지 중앙 해안에 있다.

<漁業組合>

朝鮮海通漁組合聯合會 馬山支部가 있다.

<銀行>

지금까지 금융기관이 없었으므로 상업발달상 유일한 결점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처럼 금융시설이 없는 것이 마산항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마산의 일반 상인들까지 말하고 있다.

<農業>

경작지에 자갈 등은 적고 그 지질이 비옥해서 아주 쌀 농사에 적합하다. 종자는 주로 일본 벼 씨를 사용한다.

<韓國 郵電>

거류지 조계로부터 구마산포에 이르는 도로상에 한국 우체사, 電報司가 있어 일본인의 전보는 이 電報司에 의뢰한다. 한국 내의 각지는 물론 일본과의 통신도 취급하고 있다.

<海運>

해운권의 성장과 무역의 성쇠와는 가장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일로서 해운이 발달한 곳에서는 무역도 발달하고 해운이 부진한 곳에서는 무역도 부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운을 외국무역의 가장 큰 요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마산과 각 항 간 또한 일본과의 해운을 볼 때 대판상선회사, 대한협동郵船회사, 부산八頭司組의 정기항해가 있으며 그 외 帆船의 왕복이 빈번하다.

대판상선이 당 항에 寄港하게 된 것은 1901년 4월로서 그 航回數 및 船名, 톤數는 다음과 같다.

*대판상선회사

白川丸(대판-인천); 566톤(매16일에 1회 兩地를 출발함)

寄港地; 神戶, 下關, 釜山, 馬山, 木浦, 群山, 仁川

*大韓協同郵船會社(韓國汽船)의 仁川․鏡城線

顯益號; 444톤(매월 각1회 程度)

蒼龍號; 403톤(매월 각1회 程度)

寄港地; 군산, 목포, 제주, 마산, 부산, 포항, 원산, 西湖, 前津, 新浦, 新昌, 遮湖, 성 진, 明川, 鏡城

*釜山八頭司 回漕部취급 汽船

第2玉吉丸(和歌浦丸이라고도 부른다. 부산-마산포); 매월 10회(항해시간은 5-6시간)

운임; 1등-2圓50錢. 2등-1圓50錢. 3등-1圓(한국인은 3등에 한해 500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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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20. 00:00

120년 전 마산은? - 4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네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案內』겉표지와 속표지>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諸 物價>

일본인의 諸 물가와 노동임금은 다음과 같다

이발료 - 20錢

여자 미용료 - 10錢

숙박료(1박2식) - 80전

점심식사 - 40전

선원 임금(1인) - 10전

手荷物 - 3전

藝妓線香(1시간) - 45전

고용인 (仕切) - 2圓

목수, 석공, 미장(日給) - 1원 20전

일본인 중개사(一日) - 80전 가량

한국인 일급 - 200文이내

운반비; 마산에서 부산까지 쌀, 콩 운반비(1石 당) - 24전(상륙까지)

 

<營業種類>

일본인 영업구분은 다음과 같다(1902년1월말 조사)

 

무역상 1

仲買商 6, 겸직4

藥種商 5

잡화 27, 겸직 6

술 소매 2, 겸직 1

陶器 겸직5

일상잡화 겸직 1

주물상 겸직 1

옷가게 3, 겸직 2

부엌잡화(荒物) 겸직1

洋酒 겸직 2

담배 겸직4

과자商 3, 겸직2

설탕商 겸직 2

석유상 겸직1

醬油商 겸직 2

의사 2

問屋 1, 겸직1

회사 2

여인숙 겸직 1

야채상 겸직 1

두부 1

요리점 1

떡집 2

푸줏간 1

세탁업 1

일고(日雇) 5

藝妓 1

선원 겸직 1

목수 15

석공 6

미장 2, 겸직 1

鐵力細工 1

대장간 2

이발관 1

미용실 1

된장 겸직 2

일용노동자 22

土木請負 1

精米商 겸 1

식빵 1

大弓 겸직 1

페인트칠 1

酌婦 3

船頭 3

鑛業 2

러시아인은 호텔업 1, 잡화상 1

중국인은 잡화상 7, 雜貨行商 3

독일인은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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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13. 00:00

120년 전 마산은? - 3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3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세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商業>

마산浦의 수출입 무역은 1900년에 총액 241,789圓이며, 그 중 수출액이 87,024圓, 수입액 154,765원이다. 이 가운데 외국무역에 관한 수출 6,203원, 수입 13,185원, 합계19,388원이며 연안 무역액이 222,401원인데 그 중 수출액 89,821원, 수입액 132,580원이다.

이 밖에 한국선박에 의하여 마산 부산간 운반되는 화물 량도 적다고 할 수 없다. 그 금액을 개략 산정하면 13-14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것을 월별로 정리하여 무역의 전망을 예측하려 한다.

 

월 별

수 출 액

수 입 액

1900년 1월

16,037円

15,464円

2월

1,677

8,344

3월

862

5,284

4월

724

7,905

5월

746

5,575

6월

700

5,910

7월

3,594

8,035

8월

2,612

7,521

9월

1,048

20,562

10월

8,389

15,516

11월

16,849

27,760

12월

33,785

26,899

합계

87,024

154,765

 

1901년 상반기(1월부터 6월까지) 무역 총액 141,675원 중 수출 54,771원, 수입 86,904원인데 그 중에서 외국무역 수출입합계는 18,226圓, 연안무역합계 123,449원이다.

이것은 전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의 증가를 보이는 것이다.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월별

1901년도 상반기 수출액

1900년도 상반기 수출액

증가

1월

35,863円

31,501円

4,632円

2월

25,206

10,020

15,186

3월

37,185

6,147

31,038

4월

17,648

8,642

9,024

5월

12,830

6,321

6,509

6월

12,943

6,601

6,342

합계

141,675

69,214

72,461

 

수출품; 쌀, 콩, 동광(銅鑛), 사금(砂金), 소가죽, 솜, 등을 주로 하고 종이, 보리, 해삼, 말린정 어리, 吳倍子(藥材)등이 그 다음이다.

 

월별

1901년도 상반기 수출액

1900년도 상반기 수출액

증가

1월

35,863円

31,501円

4,632円

2월

25,206

10,020

15,186

3월

37,185

6,147

31,038

4월

17,648

8,642

9,024

5월

12,830

6,321

6,509

6월

12,943

6,601

6,342

합계

141,675

69,214

72,461

 

수입품 ; 방적사(紡績絲), 옥양목, 석유, 整製한 솜, 솜, 명태, 누룩, 성냥, 철제품 등이다.

수입중요품 ; * 紡績糸는 鐘淵방적회사의 제품이 많고 鐘표 및 平野방적회사의 제사(製糸) 가 인기가 있다. 전자는 한인사이에 호평을 받아 판로가 좋은 편이다.

 

鐘淵방적회사 효고(兵庫) 공장 

 

* 옥양목은 매표, 토끼표, 군인표 등을 일본에서 온 부유한 농민들이 아주 좋아 한다. 칠원, 진주이북 지방뿐만 아니라 전라도 부근의 먼 곳에서까지 이것을 사기 위해 오는 사람이 있다.

* 석유는 미국산 上松표가 마산포에서 독점販賣하려 한다. 종래부터 阪庫회사 가 판매하는 越后油(참고; 越後는 일본의 지방명)의 수입을 안한 것은 아니 지만 품질이 떨어져 평판이 좋지 않다.

* 성냥은 硫黃성냥과 안전성냥의 두 종류가 있다. 유황성냥은 기린표 및 히로시마에서 생산하는 삼각표가 있다. 삼각표는 품질은 좋으나 값이 비싸서 기린표의 값도 싸고 비교적 품질도 좋은 점에 눌리고 있다. 안전성냥은 사슴표, 코끼리표, 원숭이표가 있다. 종래에는 각종 모두 당 항 시장에서 잘 팔렸으나 근래 그 품질이 조악하여지는 기미가 있는 데다 기린표가 불이 잘 일고 내용 이 풍부하여 좋은 상품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 술은 일본 酒를 수입하는 사람이 여러 명 있으며 반 년 간의 수입액 평균 은 4,400여 円에 달한다. 재빠른 부산상인은 일단 마산으로 수입하여 일반세 관 수속을 거친 다음 연안漕輸品으로서 이것을 다시 부산에 재수출하여 동 거류지에서 요구되는 수수료를 면제받는 계책으로 마산포 부근 및 진해만, 거제도 방면에 出漁하는 일본어부의 飮料酒가 당 항의 술상인 손을 거쳐서 공급되는 일이 적지 않다.

* 러시아, 중국 상인의 상업에 있어서는 아직 특기할 사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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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6. 00:00

120년 전 마산은? - 2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2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두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당시(1900~1901) 신마산 전경 / 이 사진은 1905년 뉴욕(and런던)에서 출판된 <The Re-Shaping of the Far East, Vol. 2, by B. L. Putnam Weale>에 수록된 것으로 이 책은 forgottenbooks.com에서 무료 열람할 수 있다. Wiki에서 검색해 보면 이 책을 쓴 사람은 영국인으로 20세기 초 중국 해관청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5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그의 책 중에선 The Fight for the Republic in China 라는 책이 유명하다고 한다.(사진 및 설명은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 제공)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總論>

마산포는 경상남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창원군 관할에 속하며 부산이 140여 리, 海路로는 40마일 거리로 마산포 남안(南岸)에 있고 동경 128‘ 50“ 북위 35’ 13” 66에 위치하고 있다.

<港灣>

마산만은 남쪽으로부터 진입하며 남북이 길고 동서가 좁으며 灣의 입구로부터 약 30리이고 거류지부근 일대는 수심이 얕아서 평균 5尋(발)으로서 겨우 천 톤 이내의 배가 정박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약 10리쯤 앞으로 나가면 군함 같은 큰 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있고 일본 함대를 비롯한 러시아 전함이 흔히 닻을 내린다. 유명한 진해만은 마산만의 外灣이다.

<居留地>

烽禹(火)山 동쪽 기슭과 마산만에 면한 良港, 즉 마산거류지는 1899년 5월1일에 군산, 성진과 함께 개항하여 각국거류지. 日本專管居留地. 露國專管居留地로 나누어져 있는데 현재 각국거류지를 제외한 조계는 토지의 구획을 하지 않고 있다.

각국거류지는 옛날 월영읍(里)으로서 서쪽에 높은 산봉우리를 등지고 동쪽은 마산만에 접하며 북쪽으로 구마산을 지나 창원으로 가는 도로와 남쪽으로 진주(경상남도 관찰부 소재지이며 마산에서 약110리 거리다)로 가는 도로가 있다.

면적 15만평으로 처음 개항되었을 때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을 두었다가 1900년 4월1일 본관(마산영사관)으로 개칭되었다. 현재의 영사관은 그 후 신축하여 시내 거리가 한눈에 드는 절경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러시아 영사관 또한 그 왼쪽의 한 단 낮은 곳에 있는데 모두 건축물로서 볼만한 가치가 있으며 영국영사관도 개설할 것이라고 한다. 영국영사관의 부지는 일본영사관 뒷면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전관거류지는 각국거류지의 남쪽 자복포에 있는데 잔솔밭 언덕에 둘러 쌓인 해안에 접한 30여 만평으로 아직 건물 등의 시설은 하지 않는다. 러시아 전관거류지도 역시 해안에 접하여 있으며 한 쪽 면이 波狀地이고 온통 구릉지로서 솔밭이 많으며 일본거류지에 접하여 남쪽에 이르는 이곳을 율구미라고 부른다. 면적 30만평이며 가옥은 거의 없다.

<市街>

각국거류지에 거주하는 사람은 거의가 일본인이고 가끔 중국인, 러시아인, 독일인 등이 체류하고 있으며 이들은 거류지 남쪽 모퉁이 쪽의 러시아 영사관 부근에 살고 있다. 거류지의 총 호수는 50호에 불과하고 가옥도 조밀하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울 정도로서 간신히 처마를 이어서 시가의 모양을 갖춘 것이 10여 호 뿐이다. 참으로 느리긴 하지만 발전하는 모습은 보인다.

도로는 근래 새롭게 개설하기 시작했다. 도로의 폭은 3間(1間은 1.8m)에서 8間이고 남북이 길어 거의 20여丁(町, 109.1m)에 이르고 동서는 좁아 7-8丁에 불과하며 舊 馬山浦와의 교통이 빈번하여 상거래가 점점 발달할 기미를 보인다.

<戶口>

일본인 거류민 중에는 山口縣에서 온 사람이 가장 많고 長崎縣과 大分縣이 그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1899년 말, 즉 개항한 해는 戶數 35호에 인구103명이었는데 올해(1902년) 1월은 戶數 80호에 인구 259명으로서 그 중 남자가 160명, 여자 99명이다. 단 이 중에는 구마산에 점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0여명이고 戶數는 20여戶이다.

중국인은 28명, 러시아인 12명, 독일인은 3인이다.

<氣候>

기온은 부산에 비해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하나 극한기에는 그 度가 약간 다르다. 바람이 적고 강설량도 적다. 灣內는 북풍을 제외하고는 波浪이 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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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30. 00:00

120년 전 마산은? - 1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1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案內』겉표지와 속표지

 

다음은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정리해 놓은 『한국안내』에 대한 설명이다. 약간의 첨삭이 있었다.

[정의]    개항기 조선을 소개할 목적으로 도쿄[東京]에서 간행한 책.

[편찬/간행 경위]   1876년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 이후 조선으로 여행하거나 이주하는 일본인이 급증하였는데, 이들 본토의 일본인들에게 조선에 관한 여러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일본인들의 조선 방문을 유도하는 한편 조선에서의 정착과 경제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한국 안내(韓國案內)』를 간행한 책이다. 저자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는 『관문시보(關門時報)』의 통신원으로 당시 부산에 주재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일본어로 기록되어 일본 도쿄의 청목숭산당(靑木嵩山堂)에서 1902년 9월 간행하였다.

[형태]   4·6판 총 476쪽의 책자로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한국 안내』는 총론과 9개의 장,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론에서는 지세와 행정, 지방제(地方制), 호구, 농업 등 조선의 전반적인 실정이 소개되어 있다. 경성, 평양, 부산 등 조선 내 개항장과 개시장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당시의 사회·경제적 실상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진출하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 지역에 대한 실측도가 첨부되어 있어 당시의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부록에서는 철도와 기선에 관한 정보를 비롯하여 한일 조약(韓日條約)과 해관 세목(海關稅目), 조선 약어(朝鮮略語) 등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진출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조선에서 영업하고 있는 일본인 회사와 은행, 상점 등에 대한 안내도 제공되고 있어 당시 조선으로 진출한 일본인의 실상을 살펴보는 데에도 유용하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조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안내서 성격의 자료는 많으나 『한국 안내』는 특정 지역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목차이다.

総論

第一編 京城案内

第二編 仁川案内

第三編 鎮南浦案内

第四編 平壌案内

第五編 元山案内

第六編 群山案内

第七編 木浦案内

第八編 馬山浦案内

第九編 釜山案内

附録

 

제8편 ‘마산포 안내’의 시작은 ‘馬山浦附近地圖(마산포부근지도)’로부터 전개된다. 다음 지도이다.

 

 

상세한 도면은 아니지만 개항 초기 마산과 주변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마산포 사건으로 유명한 율구미(栗九味)의 노국전관거류지(露國專管居留地)와 자복포의 일본전관거류지(日本專管居留地)가 점선으로 표기되어 당시의 정황을 짐작케 해준다.

각국거류지․마산포․구(舊) 성적(城跡, 현 용마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것임)이 표기되어 있다.

마산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도로는 팔용산 아래 봉암동을 거쳐 현재의 봉암교(당시는 다리가 없었음) 부근을 통과하여 진해 쪽으로 이어 지고 있다. 이 도로는 양덕동 부근에서 창원으로 가는 도로와 나누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창원공업단지가 있는 곳까지 바다였다는 것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특히 지도 상부에 별도로「馬山浦各國居留地市街圖」란 제목의 조계지 확대도면이 있다. 여기에는 조계지 내에서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조성된 도로가 표기되어 있으며 북쪽 일부 도로, 즉 예전의 마산극장 부근에 있는 도로는 매립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관장관택(海關長官宅)과 우편국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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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3. 00:00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문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정했습니다.

전 세계 45여개 국가 1400여개 지방정부는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고 강력한 기후변화 대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북극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가뭄과 홍수는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거대한 산불과 태풍, 동토의 해빙으로 인한 메탄가스 방출 등은 대기과학자들의 기후변화 시뮬레이션보다 더 빠르게 기후위기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1988년에 350ppm이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2008년에 385ppm으로 증가하더니 2019년에는 415ppm을 넘어섰습니다. 인간의 등장이후 최고치입니다.

30년 전에는 해마다 1.2ppm씩 오르다가 20년 전에는 1.7ppm, 최근 10년 동안은 2.7ppm씩 증가합니다. 이대로 가면 13년 후 450ppm이 되어 지구 온도는 2도가 상승하고 지구의 파국은 시작된다고 합니다.

디카프리오의 말처럼 기후위기는 과장도 아니고 빈말도 아닙니다.

과학계뿐만 아니라 산업계와 정부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국 국방성도 알고 있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알고 구테흐스 현 사무총장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지난 연말 EU집행위원회는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정책으로 결정하고 녹색경제로 전환하는데 132조원 규모의 ‘공정전환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EU 역내로 들어오는 상품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한다고 합니다.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유럽국가에 수출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200개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전기배터리는 이들 기업에 팔 수 없습니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금요일마다 학교를 가지 않고 거리에서 기후위기를 알리고 있고 그레타 툰베리에 감동 받은 세계적인 영화배우 제인폰다씨는 팔순 나이에 기후변화 집회를 주도하고 감옥 가는 것을 마다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지난 13일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기후변화를 막는데 효과가 없다면서 헌법 제10조, 34조, 35조에서 보장한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및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심판 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유행하는 감기에 불과합니다. 손 잘 씨고 마스크로 자기관리 잘하면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개인이 막을 수 없고 수백 년 동안 전 세계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때 이미 6번째 지구 대멸종이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대멸종을 멈추게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레타 툰베리 말처럼 수십만의 시민들이 모여 외치고 언론이 정치뉴스의 10분의 1이라도 보도해 준다면 기후 위기를 늦출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을 2030년까지 45%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에 도달하면 1.5도 이내에서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은 도민들과 도지사, 시장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에게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합니다.

앞으로 비상사태에 맞는 조례 제정과 예산 확보, 탄소 감축, 에너지 절약 등등의 조치들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요구할 것입니다.

도민 여러분과 언론의 관심, 그리고 동참을 호소합니다.

2020.3.14.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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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란교회 목사이며 하이패밀리 대표 송길원 목사(사진)가 3월 12일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되새겨볼만한 내용이라 옮겨 포스팅합니다.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되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2

본 회까지 총 12회에 걸쳐 독립운동가 죽헌 이교재 선생(위 사진)의 생애사를 연구한 유장근 경남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아래 사진)의 논문을 포스팅하였다. 이 논문은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99 No..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1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4)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상해격발」이라는 문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상화 소장 「상해격발」 참조.) 비단 위에 인쇄된 이 문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큰 주제..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10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3) 그렇다면 개별 문건들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이교재(우측 사진)가 전달하려던 문건 중에는 달성의 문영박(호는 장지, 1880~1930)에게 보내려던 두 종류의 문건이..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9

Ⅳ. 임시정부 발행 9개 문건의 국내 반입과 그 의미(2) 이교재(우측 사진)의 임정문서 일부가 동아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는 이정순의 아들인 이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이상화와의 면담은 2017년 9월 27일 마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