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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5 00:00

YMCA 연원을 찾다 - 2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 국제담당국장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라는 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약속한대로 36일 오전 1115분 세인트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정면입구 계단에서 만났다.

나는 e메일을 통해 약속한 대로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나를 확인한 캔 국장이 다가오면서 이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은 시티 오브 런던의 러드게이트 힐에 있는 높이 108m의 성공회 성당으로 런던 주교좌가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시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런던을 대표하는 성당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왕족과 함께 해온 곳이라면 세인트 폴 대성당은 오랜 시간 서민들과 함께 호흡해온 곳이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완전히 불타 버렸지만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Christoper Wren)35년을 투자해 재건축했다. 둥근 돔이 있는 현재의 모습은 그때 재건된 모습 그대로다.

이는 영국 노르만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높이가 110m에 이른다. 로마 성 베드로 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이며 성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과 더불어 세계 3대 성당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훗날 워싱턴 국회 의사당이나 파리의 판테온 건축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1965년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이 거행된 장소로 유명하다.

성당 내부는 매우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벽화는 모자이크로 되어 있고, 천장화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성당 내부에 들어선 사람들은 그 웅장한 규모와 정교한 장식에 눈길을 빼앗긴다. 성당 내부 계단을 통해 돔까지 올라갈 수 있다. 스톤 갤러리에 올라서면 런던 시내를 360도로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지하 납골당에는 이 성당의 설계자인 크리스토퍼 렌 등 영국을 빛낸 유명인사 200여 명의 묘가 있다.

이 대성당은 런던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대부분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1666년 화재 전후의 St. Paul’s Cathedral>

 

Ken Montgomery 국장은 먼저 조지 윌리암스가 점원이었던 Hitchcock & Rogers상회 장소로 나를 안내했다.

지금은 새로운 건축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이미 옛 Hitchcock & Rogers 상회는 흔적 조차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도시개발로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상상해보면 당시에 가장 번화한 요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자리였다.

성당 앞에서 보면 전면 왼쪽 모퉁이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었다. 이 새 건물의 전면 오른쪽 모퉁이 쯤에 Hitchcock & Rogers 상회가 있었다는데 지금 모습으로는 도저히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건물의 일층 안쪽 벽에 크지 않은 동판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오래동안 보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조지 윌리암스가 근무했던 당시의 Hitchcock & Rogers 상회 건물>

 

설명문 / 1844년 George Williams는 런던에서 일하는 열정적인 11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가 일하면서 살던 이곳의 양복점에 YMCA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이곳에서 YMCA는 처음부터 세상을 아우르도록 성장했습니다

 

이어서 캔 국장은 조지 윌리암스가 영면해있는 세인트폴 대성당 지하로 나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 영국이 자랑하는 해군제독 호레이쇼 넬슨, 웰링턴 공작 등이 잠들어 있다.

방문한 날 마침 묘소 공간에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고 있었지만 조지 윌리암스의 묘는 입구 첫 위치여서 경계 밖에서도 잘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부착된 브론즈 표식판에는 조지 윌리암스의 이름과 생몰 기록이 품위있게 양각되어 있었다.

 

 

그를 기념하는석상 아래에는

<나의 마지막 유산이자 소중한 것은 YMCA입니다. 나는 많은 나라의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YMCA를 계속 이어가고 확장하도록 그들에게 YMCA를 맡깁니다.>

라는 영문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는 내가 평생 활동해온 YMCA를 탄생시킨 분 앞에서 감사와 존경의 예를 갖추었다.

 

성당나와 캔 국장은 캡을 타고 두 장소를 더 안내해주었다.

초기 시민강좌를 하며 런던시민들에게 YMCA를 크게 부각시켜 YMCA의 성지(SHRINE)라고도 부르는 EXETER HALL이 있던 장소와 조지 윌리암스가 생애 마지막 26년을 살았던 장소(No.13 RUSSELL SQUARE)였다.

<EXETER HALL이 있었던 당시 건물 / 지금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있다>

 

<No.13 RUSSELL SQUARE 표지판 앞에서 Ken Montgomery와 함께>

 

이미 당시의 건물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었지만 No.13 RUSSELL SQUARE에는 기념표지판이 붙어져 있어서 YMCA의 위상과 조지 윌리암스의 역사적 평가를 실감했다.

Darlington에 산다는 캔 몽고메리 국장은 이 안내를 위해 3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고마운 안내였다.

 

평생 YMCA 운동을 해오면서, 조지 윌리암스가 YMCA를 탄생시켰던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상회와 YMCA 탄생 유적들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망을 이루었다. 조지 윌리암스의 묘소까지 참배한 행운은 기대하지 않았던 덤이었다.

내게 이 행운을 누릴 수 있게 도와준 이는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을 지낸 후 현재 홍콩에 있는 아시아태평양YMCA연맹 남부원 사무총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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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00:00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담당국장이었다.

 

YMCA184466일 런던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조지 윌리암스를 비롯한 12명의 청년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수도 런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 200만에 도달한 세계 최고 최대의 도시였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과학기술의 발전이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던 꿈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어두움의 그림자도 깊었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은 무제한적 투자와 건설, 끝없는 생산과 착취가 수반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심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교회와 교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분열했고 종교적 소명도 자기중심적으로 분출했다.

초기 YMCA가 쉽게 전파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우 성실하고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1821년 영국 남부의 애쉬웨이(Ashway)에서 성공적인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이 되던 1835년 글로인 스쿨(Gloyn School)을 졸업하고 열다섯에 브리지 워터(Bridge water)의 홈즈 직조공장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조지 윌리암스는 그곳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을 규합, 작은 기도 모임 주관하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1841,

윌리암스는 런던의 대형 포목점인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 상회에 조수 점원으로 취직을 하는데, 그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 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지 윌리암스가 일했던 Hitchcock & Rogers상회 / 지금은 철거 되고 없다>

 

그 시기에 그가 남긴 기록이다.

“1841년 하느님의 섭리로 나는 런던에 왔다. 그리고 세인트 폴즈 처치야드(St. Paul’s Churchyard)의 어느 상점에 직장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저녁시간의 대부분은 멋대로 분망하게 보냈으며, 여기저기 오락장엘 드나들었다. 저들의 말투, 부도덕함, 술타령 등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상점에 취직했을 때 130~150명의 조수점원이 있었다. ……. 나는 5~6명의 점원들과 한 방을 썼는데……

 

<St. Paul’s Churchyard의 현재 모습>

 

조지 윌리암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과 은밀한 기도모임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러던 중 1843년 말 어느 날, 모임을 함께 갖던 조지 윌리암스와 친구들은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임을 조직화해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YMCA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기독교 청년회)는 그렇게 시작한 열두 명의 청년에 의해 탄생되었다. 184466일 조지 월리암스의 하숙방에서였다.

창설 초기의 활동은 주로 성경연구와 기도회였지만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인문, 자연, 종교에 관한 공개강연회와 출판, 도서실 설치 등 다양화되어갔다.

처음에는 10여 개 점포의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활동했으나 참여인원이 많아지면서 일반 청년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창립 후 회원들이 급증했다. 창설 4년 뒤인 1848년에 런던 회원이 1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지방 회원도 520명 가입했다.

 

175년 전 런던 세인트폴 처치 야드의 조그만 방에서 시작된 YMCA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시민조직체가 되었다.

전 세계 123개국에 7,139YMCA, 800여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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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1 00:00

무등산 산행기-3

무등산 산행기-3

 

장불재를 내려다보며 하산하다.

장불재는 무학산 서마지기보다 훨씬 더 평평하고 너르다. 마산 같으면 만날재 같은 역할을 했다. 한쪽에는 방송중계탑들이 모여 있다.

 

하산길은 일방적인 내리막이 아니다. 중봉으로 가는 넓고 평평한 임도를 마다하고 북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광주천 발원지 표말이 나온다. 정말 소소한 웅덩이, 물은 있지만 마실 수는 없다.

좀 더 내려가니 갈림길이다. 등산객들 대다수는 바로 직진 하산길을 가는데 우리는 중봉 방향 쪽 오솔길로 들어선다.

 

 

능선들의 중간을 가로질러 가다보니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한다. 그러나 정말 이 코스로 잘 왔다.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데 산 위의 주상절리와 함께 중요한 요인이 된 엄청난 규모의 너덜을 두 개나 건넜다.

앞서 가는 일행들이 일렬로 너덜강(경상도식 이름)을 건너는 광경을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신과 함께라는 영화에서 본 저승의 어느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슨 고찰의 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가다보니 작은 갈림길이 나온다. 먼저 도착한 허 원로, 한 등산객에게서 막걸리를 얻어 마시고 있다.

혼자 마시기 미안한지 권하는 잔을 모두들 마다하다. 산행 중에서는 술 안 마시는 게 좋다고 말한 게 당신인 것 같은데...

산악회 이름을 영자(영혼이 자유로운,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산악회로 바꾸자는 실없는 얘기도 하며, 무등산이 멋지다며 칭찬도 하며, 한참을 왔나보다 하는데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씩씩하게 큰 길을 따라 얼마 안가서 좌측으로 상당히 가파르게 꺾이는 곳에 멀리 무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사각정이 하나 있다.

잠깐 휴식을 취한 정자의 이름은 만치정(晩峙亭; 나뭇꾼들이 저녁 무렵 풀피리 불며 쉬어가는 언덕을 의미하며 늦재의 한자식 표현).

 

 

 

이제 다들 다리가 좀 아픈지 뒷걸음으로 내려온다. 희한하게도 뒷걸음질 치면 모인 다리가 좀 풀어지는 듯안 느낌이 든다. 나만 그런가? (그 며칠 후 신문에서 뒷걸음치면 치매 예방에 좋다는 기사를 봤다.)

원효사 뒷문 쪽에 도착하니 지도가 그려진 팻말이 하나 있다. 다들 어디쯤인지 궁금해 지도를 바라보는데 현재위치 표시가 없다. 역시 허 원로, 지나가던 국립공원 차량 탑승자에게 불평 섞인 민원을 제기한다.

원효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바로 주차장이다. 오늘 산행길은 약 12km. 아~ 장단지가 모여온다.

점심 겸 저녁, 이 역시 허 원로가 순대가 유명하다며 추천한 창평전통시장의 창평장터국밥’.

식당으로 가기 위해 무등산을 조금 내려오니 어제는 보지 못했던 계곡 초입에 마을이 나타나고 어젯밤(?)을 보냈던 단풍산장’의 큰 간판이 보인다.

좀 더 내려오니 무등산 수박 단지라는 대형 입간판도 다가선다. 사실 이번 등산 전까지는 무등산 하면 수박밖에 몰랐다. 수박을 팔았더라면 반드시 샀을 것이다.

삼거리에서 우측에 있다는 소쇄원도 무시하고 좌측 광주호를 끼고 '창평장터국밥'으로 GoGo.!

목적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등산이 광주 동쪽 끝에 있고 담양군과 경계를 이룬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창평장터국밥'집 사장은 자신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기 집 자랑을 한참 늘어놓고 우리가 앉은 방 벽에 그려진 풍악놀이 그림도 자랑한다. 하도 생동감이 있어 한 컷했다. 감상들 하시며 추억도 되새겨보시길 ...

이 글을 여기까지 써놓고 앞선 산행기를 고참원로 블로그에서 원로 시키는 대로 했더니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코치가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못 찾았을 것이다.

블로그의 마지막 산행기가 20161229일자 비슬산 산행기다. 100산을 근 2년이나 안 간 것인지 아니면 그 후로는 산행기를 안 쓴 것인지 헷갈린다.

몇 개 더 살펴보니 대개 사진 위주로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에이, 미리 보았더라면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있었냐?

 

다시 섬진강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며 쉬었다가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다들 좋았다는 감상 피력하며 다시 만날 기약을 하다. 고작 일주일 후 무학산 둘레길에서.

무등산(無等山), 내 맘대로 해석하길,

광주인들에겐 같은 등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산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등급 없이 모두에게 평등한 산이다. 나 같은 초보 등산객도 큰 무리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무등등한 산이기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지만 올 기회가 없었던 산, 다시 올 기약을 하기도 어려운 산.

안녕!

 

[광주 무등산 산행 개요]

* 20181130~121: 12

* 참가자 : 허정도(원로, 해외원정대장), 서익진(가짜 원로, 백산 산행기 담당), 김재현(예비 회원), 정규식(전 회장), 신삼호(전 백산대장, 육대주추진단장), 손상락, 임학만(보급 및 백산대장), 신성기(신입회원)

* 불참자 : 김용운(회장), 김흥수

* 코스 : 창원마산 3.15아트센터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섬진강 휴게소 광주서구 나주식육식당 단풍산장(일박) - 원효사 주차장 무등산 옛길 입구 중봉 위 능선 삼거리 서석대(정상) - 입석대 장불재 광주천 발원지 너덜강 만치정 원효사 주차장 장평장터국밥 섬진강휴게소 3.15아트센터 - 해산

 

 

,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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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00:00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일인당 1만원. 그러나 그 환상적인 맛 덕분에 100산대장 어젯밤 받았던 비난을 상당히 회복했다.

 

 

주인장이 포장해준 닭 조리탕 남은 것을 받아들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데 차오차오 개가 우리 옆에 어슬링거린다. 이름이 문수란다. 좀 위에 있는 원효사에서 키우다 사정이 안 되어 자기에게 그냥 주었단다.

문수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앞에 앉혔는데 셔터 누르는 찰나 도망가 버려 실패했다. 그래 환생하신 문수보살께서 어찌 중생들과 같이 사진 찍으려 했으랴.

830 숙소 출발.

 

금방 원효사 앞 사설주차장(3천원/하루)에 주차하고 즉시 산행을 시작했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인 줄은 안내판 보고 이미 알았지만 산행로(팻말에는 옛길로 되어 있다) 입구에 수 명의 직원이 서서 감시하는 줄은 몰랐다.

입산자 자동 체크 장치도 있다. 어흐, 담배와 라이터 뺐길까봐 조바심이 들었는데, 조사는 하지 않는다.

막 오르막으로 들어서다가 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생각나 다시 내려와 가게에서 생수 작은 것 8개를 신삼호 대원이 구입해 나하고 4개씩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다른 회원들 이미 올라가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안 올라가서 만난 제철유적지 푯말을 그냥 지나쳐 올라가니 김덕령 의병장 묘 푯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유심히 읽어본다. 그의 활약상과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웅을 시샘하는 자들은 있게 마련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란 나무 팻말이 나온다. 나뭇꾼들의 땔감이나 숯 이동길이었다가 1960년대에 무등산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선 후부터 보급품 나르던 길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그냥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봉에서 오는 능선 길과 만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절반 이상은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화장실 겸 휴게소가 있어 보급대장이 나눠준 보급품을 먹으며 줄어든 에너지를 재충전하다. 보급대장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다시 출발해 얼마 지나니 갑자기 주상절리 형태의 암벽이 턱 하니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며 야단법석 하는데 지난 가는 등산객 진짜 서석대는 좀 더 위에 있단다. 약간 머쓱해진다.

서석대(瑞石臺) 장관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주상절리는 보통 해안가에 있는데 산봉우리 주상절리대라 처음 본다. 국내 유일한 것인지 궁금하다.

 

 

좌측으로 난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서석대 위쪽 뒤편에 무학산 서마지기 같은 펑퍼짐한 곳이 나오고 무등산 정상이 정면으로 마주보인다.

등산객인 시민은 더 이상 접근금지다. 군부대가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점령한 것이다.

푯말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정상의 원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암석봉우리들을 통째로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만행을 과연 1960년대 야만의 시대, 군부독재정권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저지를 수 있었을까?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도 그 연장선임을 알겠다.

서석대(1100m)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서 학봉산악회 현수막을 앞세우고 단체증명사진을 찍다.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현수막이 주인공이다. 이 사진을 위해 여기까지 발을 절뚝이며 올라온 것이다.

 

 

 

서석대는 한자로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설판은 이 유식한 해석이 식자우환임을 금방 깨닫게 한다. 선돌의 한자식 표현(음 차용)으로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라는 거다. 반만 맞춘 것도 아니다. 전혀 맞추지 못했다.

! 상식(常識)의 허망함이여! 세인이여, 상식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입석대(立石臺)도 마찬가지로 선돌의 한자식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역시 그러함이 곧 확인되었다.

사방이 확 트인 곳이라서 그런지 올라올 때는 없던 세찬 찬바람이 횡행한다.

이제 보급품을 소진시키고 하산할 시간이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백산대장 멋진 곳을 찾았다. 돌병풍으로 둘러싸여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돌병풍을 우측으로 돌아가니 아늑한 서향받이 조그마한 분지가 나타나고 중심부에 파헤쳐진 무덤(?)이 있다. 문외한이 봐도 명당자리인데... 국립공원 내 무덤의 이전 공고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짐승이 그랬는지 파헤쳐진 이유를 모르겠다.

드디어 100산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반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남은 보급품을 끌러먹는데 여전히 온기를 간직한 닭도리탕이 남다른 맛을 준다.

 

 

산 정상에서 먹는 닭도리탕은 세상에서 역사상 우리가 처음일 것이고 향후 역사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쾌거가 아닐까.

기대하지 못했던 커피까지 나눠주는 보급대장. 모두들 만족하며 선견력 있음을 맘속으로(?) 칭송하다. 언젠가 송덕비라도 세워줘야 하지 않을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본격적으로 하산한다. 곧 입석대를 만났다. 단체도 찍고 개인별로도 찍고.

 

 

입석대에 관찰사 등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실감난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하니, 낙서의 민족인지 기록의 민족인지 헷갈린다. 나도 어딘가 이름을 새겨 놓아야 할까봐? <<<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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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00:00

무등산 산행기-1

무등산 산행기 - 1

 

학봉산악회 전 100(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대장 신삼호 회원에게 몇 년 전부터 약속했던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랜만에 가는 100산 등산이라 인자부터 산행기 꼭 쓰겠다고 덜컥 약속해삤다.

또 어기자니 면이 서지 않고... 잘 찍지도 않던 사진도 찍고 하니 허정도 고참원로 날리는 멘트, “우와 열심히 하네, 기대된다.”. 부담시럽게... 안 쓰모 안 될 이유가 또 생기뿌릿다.

 

20181130일 오후 2, 3.15아트센터 주차장에 8명의 선수 집결. 신삼호 회원과 임학만 회원의 승용차 2대에 내맘대로 정한 원로팀과 비원로팀으로 나눠 타고 출발.

원로팀 차 안의 화제는 단연 허정도 회원이 출발 전에 한 권씩 나눠준 따끈따끈한 최신작 도시의 얼굴들이다. 마침 경상대 출판부장 전화인지, 여러 곳에서 주문이 온다는 얘기를 훔쳐듣다.

대박 예감이 든 동승자들, “대박==이라며 벌써부터 한턱내기를 종용했다. 그러나 역시 반격의 대가, 이 위기 속에서도 받아친다. 한턱 약속 대신 서평을 써서 어디든지 올려라는 거다. 밥 한 그릇, 술 한 잔에 서평 하나, 어째 갑자기 엄청 밑지는 장사라는 느낌이 확 든다.

웃고 떠들다보니 벌써 휴식장소로 약속한 섬진강 휴게소. 커피 한 잔씩 들고 다시 출발.

서광주 인터체인지였던가를 돌아나오니 차창으로 흘러가는 나에겐 좀 생경한 빛고을 광주 거리다. 5.18의 비극을 잠깐 생각하게 하더니 곧 떠오른 추억의 얼굴 하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연천 신망리 6군단 직할 포병대대 알파소대에서 2년 정도 같이 군대생활을 했던 광주 출신의 한 친구다. 시도 쓰고 노래도 잘 하던 화가였다. 그는 사지반장, 나는 2.4종 창고지기. 둘이 죽이 맞아 야산 꼭대기 사지반 참호에서 시간을 죽이고 추운 겨울밤 페치카 불에다 라면을 반합에 끓여먹던 추억이 아스라하다.

제대 후 꼭 만나자고 했지만 40년이 다가도록 만나지 못했다. 그나 나나 생활에 쪼달렸던 것 같고, 그동안 마산과 광주는 얼마나 멀었던가? 남해고속도로가 뚫려 공간은 지척이 되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그만큼 줄지는 않은 것 같다.

광주 서구 어느 이면도로의 나주식육식당.’ 허원로의 추천으로 100산대장이 일찌감치 5시에 예약을 했단다.

 

 

이 시간에도 손님이 있는 걸 보니 유명한 맛집인가?

소고기 생고기가 부위별로 두 접시. 꼭 육회 같다. 생고기와 육회의 차이를 두고 설왕설래하다가 여주인을 불러 물었다.

정답: 오늘 갓 도살한 고기는 그냥 먹는 생고기, 하루만 지나면 양념으로 버물러 먹는 육회.

 

여주인은 바깥주인이 직접 도살한 소만 사용하며 좆나게 맛있다는 걸쭉한 말발에 모두들 나자빠지다. 어원 놀이 끝에 경상도에서는 좆빠지게’->‘좆나, 전라도에서는 좆나게로 변했고, 최근 전국적으로 졸라로 전화되었다는 추정에 모두들 동의하다.

허 원로, ‘졸라의 어원이 숭하니 애들에게 알려줘 가급적 안 쓰게 해야 한다고, 원로다운 결론을 내렸다.

유사어로 허벌나게허벌은 뭘까? 아무도 몰라. 안주인 얘기로 근처에 옛날부터 도살장이 있었다 하던데, 나오면서 보니까 인접 거리에 식육식당 간판이 상당히 많고 용감하게도(?) ‘백정식육식당이라는 간판을 버젓이 내건 집도 있다.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내비아가씨 시키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서석동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김재현 교수 왈, ‘상스러운 돌이라고 해석하자 다들 군말 없다, ? 모르니까. 근처에 그런 방구가 있나보다 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실이 드러날 것임을 그때는 어찌 짐작이나 했으리.

숙소가 무등산 어딘가 산장이라는데, 무등산은 보이지도 않고 산자락을 올라가다 고개 비슷한 것을 넘어서더니 다시 내려간다. 무등산이 무학산보다 200미터 이상 더 높다는데, 아이고 내려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곧 도착.

이름 하여 단풍산장’.

 

 

초겨울 단풍은 모두 지고 없는데 처음 보는 개 한 마리 반갑게 맞이한다.

차오차오 종으로 중국에서는 엄청나게 비싼 인기 만점 견공이라나. 그러자 개님이 더욱 멋있어 보였고, 쓰다듬어주며 같이 좀 놀아주었다.

 

 

그런데 식당 집합 신호가 떨어진다. 이른 석식을 먹고 바로 달려왔는데 산장 식당에 닭조리탕을 예약해놓았다고... 모두들 구시렁거리면서도 100산대장이 하신 일을 어쩌겠는가... 막걸리를 안주삼아 겨우 몇 점씩 먹고는 대부분을 남겼다.

주인장이 내일 아침에 다시 데워줄테니 산에 올라가서 먹으라 한다. 으잉, 그런 생각은 꿈에도... , 여기에도 100산대장이 숨겨놓은 또 하나의 반전의 복선이 숨어 있을 줄이야.

금방 방으로 돌아와 각자 주무실 준비하고 거실에 모였다.

100산대장이 영원한 보급대장의 진가를 다시 발휘하다. 수출용 진로소주 큰 병 하나와 중국산 술 큰 병 하나를 꺼내놓는다.

 

 

소주, 맥주, 막걸리에 이은 술 파티 겸 회의 아닌 회의. 무엇보다 신입 김재현과 신성기의 정식 가입 여부를 논의하는데, 허 원로, 오늘 하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엄포를 놓자 학봉산악회 회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려는 듯 다른 기존 회원들도 맞장구치며 분위기를 잡는다.

신성기 예비회원 눈치 빠르게도 원로들 주무실 방에 잽싸게 침구를 깔아놓고 오자 허원로 당장 합격 판정을 내린다. 속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럼 김재현 예비회원은?

철학과 교수답게 소신과 강단이 있다. 회장, 100산대장, 해외원정대장, 육대주추진단장, 보급대장, 무슨 소린지 출발 때부터 해온 정신없는산악회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내년 시산제에서 무릎 꿇는 것 보고 결정한다는 판결에 내가 왜 무릎을 꿇어라는 얼굴이다. 모두들 산신에게 무릎 꿇고 절한다는 의민데...

나도 후명년 시산제까지 1년간 의무 산행하는 것 본 후에 결정하자고 공갈을 친다. 사람 놀려먹고 놀림감인 줄 알면서도 박자 맞춰주는 재미로 화기애매한학봉산악회.

해외 원정 산행안이 나와 논란 끝에 425일에 34일 북해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해외원정대장 허원로가 김재현 회원(?)에게 일정 짤 것을 지시하고 김 회원(?) 그렇게 하겠다 한다. 이거 도대체 앞뒤가 맞는 거여? 정신없는 산악회 맞는 거 아녀?

시간가는 줄도, 두 병의 독주가 비는 것도 몰랐다.

11시가 넘었나? 술이 떨어지자 회원인지 아닌지 애매한 김재현 예비회원, 술 더 없냐고 큰소리친다. 막 가자는 건가? 100산대장 잽싸게 식당에 가서 막걸리 3통을 더 가져온다.

이젠 김재현 썰 푸는 판이다. 허 원로는 습관대로 벌써 누워 가늘게 코를 골고 몇 사람도 자리에 누웠다.

내가 같은 직장 다녔다고 끝까지 김재현을 상대하고 다른 몇 사람도 같이 어울린다.

김재현 철학자 삼미(三味)’ 이론을 전개한다. 모임은 재미와 의미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묘미가 있어야 한단다. 정말 괜찮은 이론이다. 다른 데서 써먹을 만하다. 막걸리도 떨어지고 파장이다.

김 교수를 방으로 끌고 들어와 눕히고 나도 옆에 누워 잠을 청한다. 조금 있다 부시럭 소리가 나더니 김 교수 일어나 여기가 어디야? 나 집에 갈거야라며 고함친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는 여기 집이야, 누워 자면 돼해도 여러 번 같은 고함을 치더니 진짜로 일어서서 몇 발짝 옮겨 거실로 나가더니 폭 고꾸라져 잔다. , 고작 서너 걸음 가더니 집에 다 온 것으로 생각했나보다.

철학자의 술 쿠세(?)는 정말 점잖다. 고함 몇 마디로 끝이다. 아침 기상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화장실 찾는 사건 있었다는 후일담은 나는 자느라 알지 못했다.)<<<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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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19세기 서구사회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리적 일체감과 만족감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바람과 달리 지금 우리의 아파트는 계층 간 분리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리 취급되고 여가와 취미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까지 제공되는 주방으로 변했다.

주부의 의지에 아파트 분양의 성패가 달렸다는 사실을 간파한 건설업자의 전략 때문이었다.

자동으로 작동되는 각종 기기들은 이와 조화를 맞춘 가구와 더불어 빌트인(builtin)시스템 방식을 탄생시켰다.

미디어·방재·교류 등 생활시설들도 획기적으로 변하였으며 모든 시설들이 자동 혹은 원격 조정이 가능하도록 변하고 있다.

아파트는 오직 현관문 하나만으로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순하고 짧은 동선이 주는 편리함과 단열 및 보온이 주는 냉난방시설의 효율성 때문에 도시주거형식으로 일반화된 지 오래다.

대량공급이 가능해 부족한 주택 량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가 하면 매매가 용이해 교환가치도 높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범 계층적 주거형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경남은 2010년 기준으로 단독주택이 40.1%인데 비해 아파트가 54.1%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지역의 아파트 건설은 경관·교통 등 도시 관리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은 택지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의 조건에서 쉽게 포기될 수 없는 대안이다.

향후 새로운 대안이 창출되지 않는 한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원2구역의 아파트들은 70년대 공단건설이 시작되고 80년대 독립 시()로서 신도시건설이 본격화되었던 시기에 지어졌다.

주거시설로서는 계획도시 창원의 증언자이자 기원이기도하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버텨온 이 나이든 집들이 사라지고 나면, 같은 자리에 키 크고 반듯하고 훨씬 진보된 새 아파트가 탄생할 것이다.

갯가가 멀지 않았던 한가로운 농촌이 돌과 흙으로 덮여 사라지고 그 위에 집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 땅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새 아파트 사람들도 수십 년간 서있었던 지금의 아파트와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땅의 역사를 기억시키지 못하는 도시에서 토막 삶을 사는 탓이다. 이 글은 단절된 삶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되었다.<<<

 

<동양상가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게시판>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경남아파트>

 

<참고자료>

창원기계공업공단, 창원기지5년사, 1979

강영환, 집의 사회사, 1992

창원시사편찬위원회, 창원시사, 1997

손수일, 아파트 외관의 시대별 형태변화특성에 관한 연구, 1999

강영환, 한국주거문화의 역사, 2002

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 마산·창원역사읽기, 2003

강석재, 아파트 외관의 변천에 따른 분석적 연구, 2004

전남일·양세화·홍형욱, 한국주거의 미시사, 2009

창원문화원, 창원600년사, 2009

이창윤, 근대 한국아파트의 평면변화에 관한 연구, 2009

박노학,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단위주거 평면계획 변화특성에 관한 연구, 2012

박배균·장세훈·김동완, 산업경관의 탄생, 2014<<<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 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는 이번 13회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모두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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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1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 동선유형

주동의 동선유형은 주동의 배치와 건물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동의 동선유형은 통로형식에 의해 좌우된다.

대원2지역의 경우 분절된 소규모 단지의 집합이므로 2-3주동의 진입이 각각 구분되어 있다.

동선의 구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도 않지만 사실상 소규모 단지 하나에서 발생하는 동선체계와 다를 바 없이 분절적이며 직렬적이다.

 

. 평면유형

주동의 수평 수직적인 형태구성은 단위세대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한 주동 내의 평면유형이 동일할 경우 주동의 형태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적 조합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대원2지역 역시 이러한 제한에서 벗어 날 수 없었고 결국 가장 단순한 외관으로 귀결되었다.

대원2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에 지어진 우리나라의 아파트 전부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특히 규격화된 부지에 규격화된 규정을 적용받은 대원2지역의 경우 그 정도가 심했다.

 

. 층 변화 및 지붕형상

앞서 말한 대로 대원2지역의 5층 아파트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다. 규정에 의해 지어진 것일 뿐이다.

하지만 지붕의 형상은 각 사업자의 선택에 의한 결과다. 주동 최상부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지붕 형식은 건물외관에 결정적 영향을 주며 경사지붕일 경우 경사도에 따라 건물의 형태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대원2지역의 경우 모두 평스라브 비중을 가진 아파트라 크게 보면 모두 같은 지붕을 가졌다. 하지만 한걸음 들어가 세분해보면 각 단지마다 지붕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지붕의 형태가 다르다기 보다 평스라브의 형태를 마무리하는 파라펫의 형태가 다르다는 말이다.

파라펫의 형태만 다른 것을 두고 지붕의 형태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어렵지만 관찰자의 입장에서는 지붕의 모양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 때문에 파라펫 모양을 경사지붕화 시킨 사례는 전국 곳곳에 크고 작은 건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 경사진 파라펫, 특히 경사면 위에 기와 등 지붕재료를 얹어 놓은 양식에 대해 호불호의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그 뿌리는 장구한 세월동안 형성된 기와집에 대한 그리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원2지역 7군의 아파트 중 평스라브 형태를 가감 없이 노출시킨 단지는 현대사원아파트, 대원아파트, 동양상가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경남아파트이다.

이 중 현대사원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경남아파트는 경사진 콘크리트 파라펫이었지만 이는 인동간격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결정이었지 아파트의 형태를 고려한 결과가 아니었다. 동양상가아파트의 옥상 파라펫은 큰크리트 대신 철재난간으로 되어 있다.

경사 파라펫 위에 기와를 얹은 형식은 새경남아파트, 쌍용아파트이다. 이 두 아파트는 파라펫을 경사지게 하여 외관을 다듬었다.

기와는 전면에만 있었고 후면은 직선의 콘크리트 파라펫이었다.

이러한 두 유형의 지붕 형태는 대원2지역에만 시도된 특수한 형태가 아니라 당시 한국 5층 아파트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 옥탑형상

단조로울 수밖에 없는 5층 아파트에서 옥탑은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다.

옥탑에는 옥상으로 연결되는 계단실과 물탱크가 주어졌고 5층이라 엘리베이터 기계실은 없다.

간혹 옥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건물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옥탑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대원2지역에서는 모든 주동이 옥탑을 가지고 있다.

옥탑의 형상은 앞의 지붕형식에서 파라펫과 마찬가지 성격을 가지며 파라펫의 형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파라펫의 형태와 옥탑의 형태 간의 조화가 단순해지는 5층 평스라브 아파트의 외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원2지역 7개 군의 아파트 모두 평스라브 형태의 옥탑이라 단조로운 모습이다.

 

. 입면분절 양상

각 주동의 형태구성은 단위세대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평면유형이 동일한 주동의 경우 각 단위세대의 반복적 조합으로 외형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수직 수평 혹은 계단실 등에서 입면을 분절하여 변화의 효과를 취하기도 하지만 저층 아파트에서는 그 효과가 크지 않아 자주 시도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직분절은 비록 일자형의 평범한 아파트이지만 계단실이나 슈트 등 수직적으로 분절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존재하므로 이를 이용해 입면의 변화를 추구하기도 한다.

대원2지역의 경우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다섯 개 층이 창과 벽으로 교환변화되는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계단실과 슈트 등을 이용하여 수직분절을 꾀하고 있다.

각 단지 주동의 분절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작은 변화가 각 주동외관의 단조로움을 탈피시켜준다.

 

  3) 외장 계획

외장은 건물의 외부 장식을 위해 사용된 건축 재료와 기법을 말한다.

다른 건물과 달리 아파트의 외장 재료는 극히 단순한 편이다. 실내공간 확장으로 발코니가 없어진 자리에는 수평으로 길게 찢어진 창과 위 창과 아래 창 사이를 채우고 있는 벽으로 중요 형태가 결정되었다.

그 사이사이 수직분절 요소와 계단실과 옥탑, 지붕의 형태 등의 볼거리들이 상호작용을 하지만 아파트 외관의 결정적인 요인은 면적에서 압도하는 창과 창 사이의 벽이다.

주택난이라고 하는 공급적 요인에 의해 단기간에 보급되기 시작한 우리나라 아파트는 태생적으로 외관계획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외관은 질적인 문제였고 건설은 양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양이 부족한 시기에 질을 따지기는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아파트에 색채 개념이 도입된 것도 80년대 후반 혹은 90년대 초반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대원2구역 아파트들이 지어질 때만해도 색채는 언감생심 아파트의 외장은 베이지 아니면 회백색의 도장 외는 생각지도 않았다.

이미 건축된 지 30년이 더된 아파트의 현재 외부 색상을 지금 시점에서 논하는 것을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

이미 여러 차례 덧칠된 결과이다. 드러나지도 튀어나지도 않고 안정적이며 무난한 색상, 즉 주조색은 회백색에서 시작해 베이지와 옅은 주황색으로 이어지고 강조색으로 짙은 밤색과 붉은색 계열이 일부 사용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동양상가아파트의 붉은 벽돌 외장이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기법이지만 당시에는 간혹 나타났던 외장재료이다.

추정해볼 때 형식과 내용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시절, 분양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붉은 벽돌 위에 페인트로 덧칠되어 재료가 가지는 중후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은 사라져 버렸다.<<<

 

<대원아파트>

<대원아파트 입구 표지판>

<쌍용아파트>

<쌍용아파트>

<쌍용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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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4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1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주거환경은 기후와 지형 등 자연조건과 도로와 수목 등의 공공시설에 의한 영향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당해 건물의 외관이다.

특히 아파트라고 하는 집단주거시설의 외관은 공동체 형성은 물론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집단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의 외관은 단순히 물리적 혹은 인과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형태가 결정되기까지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사회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경제적, 제도적 요인이 결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성에 무게 중심을 둔 최저선의 제도(법규)에 만족시키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쾌적한 환경과 정체성이 발현된 주거시설이라면 지역적 특성을 수용하면서 다른 주거시설과의 차별성을 추구하여 조형성과 창의성이 간과되지 말아야 되겠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요구가 무시되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내 주동의 일률적인 배치나 구조적 구성요소의 유사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획일성과 경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의 원인은 크게 획일화된 건축 계획적 요소 단위세대 유형의 획일화 단위주동 유형의 획일화 아파트 배치의 획일화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획일화 현상은 90년대 후반부터 약간 달라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대원2지역의 경우 이런 획일화 현상이 일반적이었던 80년대 초중반에 건설되었던 터라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외관의 메스와 형태 측면에서 아파트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80년대 말에 시작된 200만호 건설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주로 저층아파트가 공급되었다.

 후부터는 200만호 건설이라는 국가단위의 정책에 의해 대량공급 위주의 주택사업이 일반화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건축기술의 발달로 90년 경 부터는 대부분 11층 이상의 아파트가 공급되어 현재에는 대부분 고층형이고 점점 더 고층화·고밀화되어 가고 있다.

강석재는 아파트 외관의 변천에 따른 분석적 연구에서 아파트 외관의 특성을 조형, 형식, 생산이라는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있다.

조형적 측면에서 단지에서의 전체적인 통일감과 그 단지만이 갖는 독자적인 조형성의 표현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형식적 측면에서는 단위주호의 수평·수직적인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아파트건축의 특성에 따라 외관 계획 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리고 생산적 측면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을 놓이기 위한 설계의 표준화와 재료 및 시공의 공업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이로 인한 형태의 획일성을 우려하고 있다.

어떠한 동질성도 가지고 있지 않는 주민들에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단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사회의 동질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사실상 획일화되어버린 우리나라 아파트의 외관에서 개별성을 부여하기는 힘든 일이다.

사업주체와 설계자, 시공자가 각각 다른 단지들의 외형도 모두 흡사하다.

최근 들어 이에 대한 반성으로 건설사의 브랜드에 따라 색상과 형태가 달라지고 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아파트는 모두 한 틀에서 찍어낸 국화빵처럼 하나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경직성은 구성요소의 유사성과 남향선호 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에 기인한다.

아파트의 외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단지계획이다.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아파트의 디자인 요소는 배치형태, , 인동간격, 주동의 높이와 길이 이며 지붕형식도 의미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파트의 외관도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게 변했다.

여기서는 아파트 외관의 변화를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3) 외장계획으로 나누어살펴본다. 아파트의 일반적인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를 함께 살핀다.

 

1) 단지계획

. 배치형태

배치형태는 단지 내 각 주동의 위치와 방향과 형태 및 각 주동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각 주동의 높이가 다를 경우 스카이라인을 비롯한 단지의 형태 이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하지만 경제적 효율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적 상황 때문에 일조조건과 관련된 향과 인동간격, 인접대지 혹은 인접도로와의 관계 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대원2지역의 배치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전체가 하나의 단지로 계획되지 않고 규모가 크지 않는 소규모 부지로 나누어졌다는 점이다.

이 결정은 대원2구역의 외관을 결정적으로 규정하였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이 창의적 변화 없은 평범한 모습을 낳게 하였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 결정을 두고 단견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설 당시의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리스크가 큰 대규모 단지건설을 민간이 외면 기피했을 수 있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들이 작용하여 천편일률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고도제한 등으로 인해 전체 도시경관에는 순응하였다고 볼 수 있다.

 

. 주동의 높이

아파트 주동의 높이는 대부분 관련법규에 의한 일조조건과 높이제한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주동 높이의 결정은 부지의 조건이 결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부지의 규모가 크고 법규적용이 자유로운 조건이라면 각 주동의 높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단지 내 각 주동의 층수 혼용으로 스카이라인의 변화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대원2지역의 경우 계획도시 창원의 전체 공간밀도 및 도시경관계획에서 5층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다른 시도와 창의적 접근을 차단하였다.

전체 도시의 경관관리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대원2지역이라는 단위공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아쉬운 점도 많다.

 

. 주동의 길이

주동의 길이 역시 주동의 높이만큼 아파트의 외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도시 내 건축물 경관이 가장 경계해야할 위압, 차폐, 잠식, 획일적인 경관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입면적과 차폐도를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일반적으로 주동의 길이는 인동간격의 2-3배 이하로 하지만 이곳조차 사치스러운 판단이 될 때도 있다.

대원2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부지의 모든 조건이 주동의 길이를 결정해주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확정적이다.

남형으로 각 자동이 배치됨으로써 동서 방향으로 늘어선 두 동의 배치는 애당초 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 입구 및 외부공간(주차장, 녹지, 놀이터 등)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원2지역 외부공간의 결정적인 단점은 단지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일관되게 계획되지 않고 소규모 부지로 나누어 계획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7군의 아파트의 외부공간은 제각각이다. 규모에 따른 법적용의 차이 및 각 아파트의 특성에 따라 크게 다르다. 여유로운 곳도 있지만 주차도 불가능한 아파트도 있다.

특히 입주 세대 간 동질성이 전혀 없는 새경남아파트, 대원아파트, 동양상가아파트, 경남아파트 등과 입주자 간 동질성이 있는 사원아파트 성격의 현대사원아파트, 쌍용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는 외부공간 구성에서 약간 씩의 차이가 있다.

특히 쌍용아파트는 사원기숙사형 아파트에서부터 일반아파트형까지 다양한 형태와 함께 건설시기도 크게 달라 14동이 제각각이라는 느낌을 준다.<<<

 

<현대사원아파트>

<현대사원아파트>

<새경남아파트>

<새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부탁된 입형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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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0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6

  1) 전면 폭

2) BAY

3) 실 구성

.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 침실

다. 다용도실

. 욕실

마. 현관

. 계단실

각층을 연결해주는 동선으로서의 계단은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연결 장치이다.

아파트의 단위세대 규모가 크거나 고급일수록 계단의 규모나 시설의 수준이 높다.

대원2구역의 경우 단위세대의 규모가 크지 않고 비교적 초기에 건설된 아파트이기 때문에 계단실의 규모와 시설도 이에 걸맞게 구성되어 있다.

계단실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현대사원아파트 ; 2.4×5.1 = 12.24

새경남아파트 ; 2.4×4.8 = 11.52

대원아파트 ; 3.2×4.8 = 15.36

쌍용아파트 ; 2.6×4.7 = 12.22

동양상가아파트 ; 2.6×4.8 = 12.48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2.8×4.8 = 13.44

경남아파트 ; 2.8×4.7 = 13.16 

 

계단실의 바닥재료는 모두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인조석갈기에 황동 논스립을 사용하였고 벽과 천정재료는 페인트 혹은 무늬코트 정도였다.

계단실의 난간은 다양하였다.

현대사원아파트는 철재 난간에 PVC 캡을 씌운 손스침이었고 동양상가아파트와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는 철판 성형으로 제작된 큼직한 손스침을, 나머지 아파트에서는 원형 혹은 사각형의 철재 손스침을 사용하고 있었다.

10세대가 사용하고 있는 계단실의 1층 진입부에는 철제로 제작된 세대별 전기계량기 박스와 우편물 수취함이 가지런히 벽에 삽입되어 있었는데 그 중 경남아파트는 스텐레스로 제작된 것이었다.

동양상가아파트의 계단실의 벽에 삽입 시공된 전기계량기와 화재경보기는 철판에 붉은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화재경보기의 것은 초기부터 붉은 색이었겠지만 전기계량기는 사용 중에 칠한 것으로 보였다.<<<

 

<현대사원아파트 계단실>

<새경남아파트 계단실>

<대원아파트 계단실>

<동양상가아파트 계단실 입구>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계단실>

<경남아파트 계단실>

<경남아파트의 스텐레스 전기계량기 박스>

<경남아파트의 스텐레스 우편물 수취함>

<동양상가아파트의 철제 전기계량기 박스>

<동양상가아파트의 화재경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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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1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9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1) 전면 폭

2) BAY

3) 실 구성

.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 침실

다. 다용도실

. 욕실

전용면적 85규모의 경우 1980년대 중반부터 2개의 욕실을 두는 평면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1개였다.

하지만 60규모는 면적의 한계로 1개의 욕실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60의 경우도 1998년 안목치수 도입 이후 실질적인 면적 증가로 소규모의 욕실이 추가되는 평면도 출현하였다.

1개의 욕실을 가진 60규모 아파트의 경우 욕실면적은 2000년대까지 평균 4.32였고 85규모는 욕실 1개였을 때는 대략 5~6, 2개일 때는 7~8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욕실 수는 각 세대별 1개 였으며 넓이는 타 아파트와 유사하다.

각 욕실의 면적은 다음과 같다.

현대사원아파트 ; 1.6×2.4 = 3.84

새경남아파트 ; 2.0×2.7 = 5.4

대원아파트 ; 1.6×2.5 = 4.0

쌍용아파트 ; 1.8×2.1 = 3.78

동양상가아파트 ; 1.8×2.2 = 3.96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1.9×2.7 = 5.13

경남아파트 ; 1.8×2.7 = 4.86 

각 욕실 안에는 샤워기가 장착된 욕조와 세면대 및 양변기가 배치되어 있었으며 넓은 면적의 욕실에는 세탁기가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조사 당시에는 많은 세대들이 욕실을 보다 넓게 활용하기 위해 욕조를 철거하고 샤워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욕실에 세탁기를 놓을 수 없는 세대에서는 세탁기를 베란다에 두었는데 베란다에 연결된 하수관은 우수관이어서 오수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세탁기 배출수 때문에 하천 및 나아가 마산만의 오염원이 되기도 했다.

 

<현대사원아파트 욕실 내부>

<새경남아파트 욕실 내부>

<대원아파트 욕실내부>

<동양상가아파트 욕실내부>

<경남아파트 욕실내부>

 

. 현관

현관이 크기도 시기변화에 따라 조금씩 넓어졌다.

1980년의 경우 60규모의 아파트 현관의 면적은 약 2였고 85규모는 약간 넓은 2.1정도였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현관은 이 보다 현격히 좁은 규모였다. 실 사용면적을 넓히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사원아파트 ; 1.5×0.9 = 1.35

새경남아파트 ; 1.2×1.4 = 1.68

대원아파트 ; 1.1×1.6 = 1.76

쌍용아파트 ; 1.1×1.3 = 1.43

동양상가아파트 ; 1.1×1.5 = 1.65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 1.1×1.3 = 1.43

 

경남아파트 ; 1.3×1.4 = 1.82㎡ <<<

 

<대원아파트 현관 >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현관문>

<경남아파트 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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