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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22.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6 / 면책

공직자를 춤추게 하는  ‘면책’ 

 

2016년 1월, 갑작스러운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되었다.

예상치 못하고 공항으로 나온 승객들은 오도 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공항 당국에서 모포와 편의 물품을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때, 공항의 한 직원이 절차를 뛰어넘어 필요 물품을 우선 지급해 사태를 수습했다.

눈이 멎고 긴급 상황이 종료되자 그 직원에게 규정 위반이라는 문책이 떨어졌다. 하지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긴급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로 인정했다. '면책'이었다.

 

 

진보든 보수든 집권 때마다 한결같이 '규제철폐'를 들고나왔다. 하지만 '규제 전봇대', '손톱 밑의 가시'라는 말만 유행했을 뿐 별 성과는 없었다.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어본 이들은 안다. 다수의 공직자가 법과 규정만 따진다. 철밥통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만하다.

경제성을 최고로 치는 민간 기업은 숫자로 나타나는 이윤을 통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영역의 성과는 애당초 계량하기가 어렵다. 공익성과 수익성의 상반되는 가치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하여 선례가 없으면 규정을 찾을 수밖에 없다. 편의주의라는 비판이 따르지만 잘못되면 징계를, 잘되면 특혜시비에 휘말리니 그럴만하다.

행동경제학의 손실회피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은 것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한다.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라거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나서지 말고 적당히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기술과 산업은 물론 가치 기준까지 변하고 있다. 당연히 공직자의 자세와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더욱 창의적이어야 하고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가 적극행정면책이다.

면책은 공직자가 공익을 위해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잘못을 면제·감경해 주는 것이다. 사후감사 의식 말고 소신 있게 일하라며 만든 제도다.

현 정부 감사원의 혁신과제에도 권력기관 감사 강화와 함께 적극행정면책 활성화가 포함되어 있다.

이미 사례도 많다. 얼마 전 경남 도내 한 공무원이 결격업체와 음식물쓰레기처리 계약을 체결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되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악취 등 주민불편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시 관내 유일한 업체였다는 점 등을 인정하여 면책하였다. 규정 위반으로 보지 않고 적극행정으로 판단했다.

최근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새로운 사업을 할 때, 하지 말라는 법의 근거가 없으면 해도 괜찮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공직자를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런데도 아직 적극행정면책을 체감하지 못하는 공직자가 많다. 홍보와 권장에서 나아가 한 단계 더 높은 동기부여 수단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미 밀려들었다. 변화의 시대에 가장 위험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논리로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설거지하다 그릇 깨는 사람이 그릇 깰까 봐 설거지하지 않는 사람보다 낫다.<<<

 

<경남도민일보(2018. 12. 24)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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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5.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5 / 건설 부패

부정·부패·부실의 대명사 ‘건설산업’

 

건축은 권력의 표상이었고 당 시대 문명의 상징이었다.

로마시대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문장력과 회화, 기하학을 건축가의 조건으로 들었다. 역사학과 철학, 의학, 천문학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다. 공간이 주는 감흥을 음악에 비유하며 건축이 기술이나 돈이 아닌 시대의 철학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문화예술이라는 의미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건축가를 산업혁명 후 전개된 기계문명의 총아로 상징했고,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건축가를 창조계급에 포함했다.

하지만 이런 호의적이고 우아한 것들에 앞서 건설의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한 용어가 '건설족'이다. 일본에서 시작된 말이다.

'건설족'은 건설업계와 유착해 있는 정치인, 관료, 언론인, 학자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건설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속에서 뭔가를 챙기기 위해 부나방처럼 모여든 권력자와 전문가들을 말한다.

우리나라 부실공사의 원조는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였다. 낮은 공사비로 6개월 만에 공사를 끝낸 서울 마포구의 5층 아파트 한 동이 준공된 지 넉 달 만에 무참히 주저앉았다.

 

 

건설사고 중 가장 충격이 큰 사건은 1995년 6월의 삼풍백화점 붕괴였다. 사망 502명 부상 937명, 전쟁 후 최악의 인적재난이었다.

건설 과정에서 누적된 비리와 부실이 원인이었다. 금전적 이익 앞에 타인의 안전과 생명이 경시된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대참사였다.

사고의 원인은 부실공사다. 하지만 그 뒤에는 건설업의 고질적인 부정부패와 비리가 스며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그 속에는 물질만능주의와 조급증이라는 본질적 화근이 도사리고 있다. 수십 년 지속한 개발만능주의의 폐해이자 금권유착의 사생아다.

삼풍백화점 사고 후 2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정권도 수차례 바뀌었다.

탄생하는 정권마다 부정부패 척결을 정책 첫머리에 세웠고,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에도 윤리경영시스템을 도입해 부패방지 노력을 했다. 규정도 강화했고 시스템도 개선했다.

하지만 건설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건설업은 여전히 부정, 부패, 부실 산업의 대명사이다. 이 같은 오명을 쓰게 한 배금주의와 조급증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나아지기는커녕 경주 마우나 오션리조트 붕괴사고(2014년)에 이어 2018년 9월 서울 상도유치원 붕괴까지 크고 작은 부실 건축 사고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정황상 달라질 가능성도 별로 없다.

사람이 건축을 만들지만 그 건축이 사람을 만든다.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인간 활동의 공간적 배경인 건축이 거꾸로 인간의 품성과 정서를 지배한다는 의미다. 좋은 건축이 좋은 사람을 만들고, 그를 통해 좋은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건설산업에 부정, 부패, 부실 비극이 존재하는 한 선진사회는 요원하다.

돈을 벌기 위한 거래이기 이전에 건설의 결과물은 인간 삶을 담는 그릇이자 행복권을 결정짓는 도구다. 국가자산이자 당 시대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경남도민일보(2018. 12. 10)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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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8.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4 / 갑질

<부끄러운 생활적폐 ‘갑질’> 

 

'갑질'이 한글사전에 등재되었다. 생활적폐로도 규정되었다.

돈으로 하는 갑질, 힘으로 하는 갑질, 부끄럽지만 싫건 좋건 갑질은 우리의 한 모습이 되었다. 급기야 '갑질공화국' '갑질민국'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2~3년 전 "내가 누군지 알아?" 큰소리치며 행패 부린 두 사람이 구속된적이 있었다.

한 명은 청와대 경호처 직원이었고, 또 한 명은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다. 그들이 내뱉은 '내가 누군지 알아?'는 자신의 지위로 상대방을 누르기 위한 허세다. 갑질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이 주로 쓰는 말이다.

'갑질공화국'의 적나라한 민낯은 양진호라는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패악질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엽기적인 장면과 증언들이 쏟아졌다. 장도로 생닭의 목을 공중에서 베게 한 기이한 신형 갑질에는 전 국민이 전율했다. 정신상태가 의심되는 갑질의 끝판왕이었다.

갑질이 폭로될 때마다 여론이 들끓었다.

그때마다 갑들은 고개를 숙였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그래서인지 처벌은 솜방망이였다.

하지만 여론이 수그러들면 또 다른 갑질이 드러났고 같은 사과가 반복됐다.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고 고쳐질 것이라 믿는 이도 없다. 고치기는커녕 제보자를 보복하는 신종 '리벤지 갑질'까지 생겼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갑은 어디선가 하루아침에 뚝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다'면서 '갑들이 눈치 안 보고 마음껏 갑질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수많은 을들과 그들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든 시스템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문제는 사회문화와 사회 작동원리다. 그리고 그것은, 어렵지만 엄격하고 강하게 제동하면 고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민은 공공기관을 '갑'으로 인식한다. 예외에서 빠지는 기관은 없다. 오랜 세월 관과 민의 관계가 낳은 업보다. 이 불편한 진실은 공공의 솔선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2018년9월, 행안부 감사관으로부터 굴욕적인 취조를 당한 고양시 공무원의 폭로가 있었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이 이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갑질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에 저항하는 을이 있어 세상이 한 걸음씩 진보하고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갑질에 분통을 터뜨린 을들도 많다. 시민의식이 상승한 덕이고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공도 크다.

익명 사이트나 오픈채팅방 등 조직 내 비리와 갑질을 고발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많아졌다. '노'라고 말할 수 없던 분위기와 '너만 참으면 된다'는 권위적인 조직문화가 바뀌고 있다.

직장 상급자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업무시간 외의 상사 요구도 대부분 갑질로 분류된다. 퇴근 후 업무문자, 예고 없는 회식, 잦은 주말산행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갑질 관련 키워드 1위는 '회사'다. 우리나라 직장 괴롭힘 피해율은 3.6~27.5%로 EU 국가들보다 두 배 이상 높다.

많은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지만 정작 상급자 자신은 하급자에게 충성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진정한 충성은 상호교환으로 완성된다. 그것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다. 정의는 평등한 사회에서만 존재한다.<<<

 

<경남도민일보(2018. 11. 26)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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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3 / 채용비리

미래를 좀먹는 범죄 ‘채용 비리’

 

차별은 세상을 병들게 한다. 차별하는 사회는 통합도 관용도 불가능하다.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편법 시비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 와중에 인사 책임을 진 간부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자기 아내를 전환자명단에 누락시켜 물의를 더 키웠다.

사정기관에서 진의를 밝히겠지만 힘없는 서민들과 배경 없는 취업준비생들이 입은 상처가 이미 크다.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금융권과 사립교원 문제는 이미 만성화되었고, 채용비리의 끝판왕 강원랜드 사건은 전 국민을 경악시켰다.

행태는 다르지만, 쌍둥이 두 딸의 내신관리 부정을 서슴지 않았던 교무부장 아버지의 사례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지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혈육을 힘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불거지는 채용비리 때문에 너나없이 낯이 뜨겁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오래된 우리의 모습이라 탓하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비리 유형도 각양각색이다. 부정한 지시나 청탁, 평가 기준의 불법적 운용, 점수조작, 심사위원의 부적절한 구성, 채용요건 불법충족 등 백태를 보였다.

힘없는 사람들은 불법 탈법을 저지를 수 없다.

수단과 방법은 다르지만 채용비리에 관한한 모두 금수저라 불리는 특권층이거나 쥐꼬리만 하더라도 권력을 가진 이의 짓이다.

적지 않은 기관에서 블라인드 전형 등 투명하고 공정한 채용을 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018년 9월 기준 실업자 수는 102만여 명에 이르렀다. 100만 명을 넘긴 것이 9개월 연속되었다.

그중 청년 실업자가 37만 8000명이나 된다. 이런 상황이라 채용비리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절망의 날벼락이다.

더구나 비리의 현장이 공공기관이어서 취업준비생뿐 아니라 전 국민이 아연실색했다. '그것뿐이겠는가?'라는 의구심도 만연하다.

 

 

취업을 위한 청년들의 준비와 노력은 눈물겹다.

인턴을 하고 스펙을 쌓고 졸린 눈을 비비며 밤을 새운다. 도서관에도 빈자리가 없다. 이들은 나름의 공력을 쌓은 후 채용전형이라는 경기에 출전한다.

하지만 막상 청년들이 출전한 취업경기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내보일 수 없는 경기장이었다. 동일한 룰을 적용하지 않는 편파적인 심판들도 있었다.

불공정한 세상의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다.

취업에 실패한 한 청년의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했지만 결국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만 남았다"는 자조가 귀에 쟁쟁거린다.

부족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고르지 못함을 걱정하라 했다.

세상에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이다. 채용비리는 단지 청년취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좀먹는 심각한 범죄행위이고 선량한 다수를 짓밟는 반사회적 행위다.

능력이 아니라 신분 때문에 채용되지 못하는 국민이 있는 한 선진국은 요원하다.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 아닌가.

백년대계를 위한 일이다. 채용에 관한 부정과 비리는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정사회를 꿈꿀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람이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생각과 행동이다.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경남도민일보(2018. 11. 13)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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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25.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2 / 내부 고발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용기, 내부고발>

 

의인인가 배신자인가?

사회에서는 의인으로 칭송받지만, 동료에게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내부고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왜 그런 결단을 하였을까.

내부고발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외부에 폭로하거나 신고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를 바꾼 닉슨 대통령 워터게이트사건,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을 야기한 최순실 국정농단. 모두 내부고발로 시작되었다.

바깥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은밀한 곳에 숨겨졌던 것, 내부자가 아니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베일 속의 비밀이었다. 공익을 위한 한 사람의 위대한 용기가 이 비밀을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럼에도, 내부고발은 공익신고자라는 사회적 평가와 달리 조직에서는 배신자로 치부된다.

실제로 내부 고발자 상당수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각종 불이익을 당했다.

조직에서는 축출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쫓겨난 후에도 배신자라는 굴레를 씌워 재취업마저 힘들다. 사회적 매장 상태, 정 맞은 모난 돌 신세가 된다.

 

 

이런 현실은 군대에서 하는 소원수리에 그대로 드러난다.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하급자의 불만을 무기명으로 적어내라지만 의도대로 잘되지 않는다. 솔직한 건의보다 상급자 칭찬이나 군 생활에 만족한다는 등의 형식적 글이 대부분이다.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밀보장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말했다가 보복을 당한 선례를 병사들이 먼저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부패와 비리의 수법이 날로 은밀화·지능화되고 있다.

외부기관의 감시만으로는 이를 적발하고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고도화된 비리에는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내부인의 정보제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익신고는 배신이 아니다.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시켜 조직을 살리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용기다. 선진국일수록 공익신고가 많고, 이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은 까닭도 그 때문이다.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신고자를 보호하고 그로 인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법이다. 그 결과가 공공의 재정적 이익을 가져온 경우 거액의 보상금까지 지급한다.

그러함에도 이 법에는 약점이 많다. 금융실명거래법, 형법, 상법 등 대기업이 관련될 만한 비리가 대상에서 빠져있다. 때문에 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법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사회인식이다.

네덜란드의 한 컨설턴트가 '과속으로 교통사고를 낸 친구가 허위증언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진실을 말하겠다는 사람이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에서는 90% 이상, 프랑스와 스페인은 60%대였지만 우리나라는 26%였다.

사적 의리가 공적 정의를 압도했다. 정실을 중시하는 우리 모습을 반영한 결과지만 이런 인식이라면 청렴사회는 요원하다.

개인적 이익을 계산하며 공익신고를 하는 이는 없다. 신고 뒤 불어닥칠 후폭풍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을 결단시킨 것은 오로지 공리적 정의감이다.

그런 점에서 공익신고자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리는 '공익신고자 명예의 전당' 건립을 제안한다. 그것으로라도 그분들의 용기와 정의에 감사하고 싶다.<<<

 

<경남도민일보(2018. 10. 29)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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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8. 00:00

새로움을 꿈꾸며 - 1 / 고소득은 선진국?

오늘부터 8회에 걸쳐 '새로움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포스팅한다. 2018년과 2019년 경남도민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첨삭하였다. 원래 제목은 '청렴사회를 꿈꾸며'이다.

 

<소득만 높다고 선진국 되는 것 아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옥에 갇혔다. 일을 도왔던 고위공직자들도 형을 살고 있다. 그룹총수인 재벌들도 재판 중이다. 자신의 권한을 부당하게 사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했거나 사회질서를 교란한 한국사회 지도층의 민얼굴이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부정한 용도로 사라지는 돈이 한국기업은 매출액의 10%, 미국은 5%라는 추정까지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180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45위, 2019년 39위였다. 2017년 51위에 비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국가청렴도 평가가 이렇듯 국민의 공직자와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은 냉혹하다. 예외가 아닌 곳이 없다. 청렴도가 국가신인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댄데 가야 할 길이 멀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로 집권 중 20위권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정부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패는 정녕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주어진 일을 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고 그 보상만으로도 행복한 세상은 불가능할까?

돈과 출세에 절박한 사회에서 부패를 막을 길은 없다.

부패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사회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전개되는 금전만능 사회는 필연적으로 부패를 배태한다.

그런 점에서 부패는 사회적 산물이다. 미래는 각자 알아서 스스로 대비해야 하고, 돈 외에 어떤 것도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는 필연적이다.

부패는 부정(不正)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의 선택이다.

책임지지 않는 공권력과 부도덕한 경제력으로 대별된다. 소시민들의 생활에도 흠결은 있겠지만 권력 부패에는 견줄 바 아니다.

노동 없는 부, 도덕 없는 경제, 원칙 없는 정치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간디의 말이다.

소득만 높아진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은 선진국민이 만든다. 누구나 원하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라 기회가 좋다. 촛불을 들었던 그 손으로 부패의 사슬마저 끊어야 한다. 촛불혁명의 진정한 완성은 청렴사회다.

해낼 수 있을까 반문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 '우리는 안 된다'고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청렴사회는 어렵다고 포기해버릴 일이 아니다.

부패는 들판의 풀과 같다. 양의 차이가 있을 뿐 풀이 안 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차별 있는 청렴사회는 없다. 엄중하되 공정한 잣대가 필요하다. 다수가 공존하는 복잡사회에서 준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행복지수와 부패인식지수 둘 다 최상위권인 덴마크도 처음부터 그런 나라는 아니었다.

그룬트비의 바람대로, 덴마크 국민은 서로를 사랑했고 나라를 사랑했고 나라의 법과 제도를 사랑했다.

나라는 '부자를 많이 만드는 것보다 가난한 이를 적게 만드는' 정책을 펼쳤고 덴마크 국민은 나라의 정책을 사랑하고 따랐다. 그 노력이 오늘의 덴마크를 탄생시켰다.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간이 1마일(1.6㎞)을 4분 안에 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54년 영연방체육대회에서 의학도였던 아마추어 육상선수 로저 베니스터(위 사진)가 3분 59초 4로 4분 벽을 넘었다.

그러자 한 달 후 1명, 1년 후 27명, 2년 뒤 300명이 따라 넘었다.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의 힘이었다. 새로운 사회, 청렴사회로 가는 길도 이와 같다.<<<

 

<경남도민일보(2018. 10. 16)에 게재되었던 글을 일부 첨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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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1. 00:00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마산번창기 표지>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통, 호구, 경제사정, 마산잡록잡황, 마산의 노래 등으로 구성된 종합적인 안내서 성격이다.

1900년대의 마산에 대한 일본 문헌으로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 여러 문헌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자료가 처음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번창해 가는 新市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또 近刊 書目으로 馬山開港十年史, 馬山名所舊跡誌, 馬山裏面 세 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보여지는 諏方武骨은 1906년경부터 마산에 정착한 이후 1915년에 朝鮮史談会란 단체를 만들고 朝鮮史談이란 잡지도 내며 활동하다가 1926년에 馬山港誌를 출판했다.

근간할 예정이었던 책들은 아마도 출판되지 못했고 아마도 馬山港誌에 수렴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다음 해에 慶南史蹟名勝談叢이 그의 유고집으로 나왔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마산번창기 광고면에 실린 현 월남동 3가에 자리한 인풍당약국과 자산동의 한국요리점 융월. 융월의 광고에는 두 기생의 사진과 함께 하단에 명월, 월선 등 기생 이름을 공개해 놓았다>

 

위의 글을 4월 6일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가 기사화 했다. 기사 제목은 「개항기 풍경 담은 〈마산번창기〉 발견」.

이 책의 광고 면에는 당시 마산의 약식 지도 외에 약, 요리, 잡화, 여관, 은행, 병원, 신문, 주조, 정미소, 인쇄, 수산회사, 법률사무소, 목재상, 사진관, 산파, 미곡, 담배 등의 업체를 소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통영의 산업에 대한 광고이다. 통영의 어시장, 여관, 잡화점, 선박회사, 요리점, 약국 등도 이 책 광고 면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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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4. 00:00

120년 전 마산은? - 6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6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여섯번 째 마지막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舊 馬山浦>

각국 거류지를 지나 약 10리 거리의 昌原街道에 있고 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한 곳이다.

戶數는 2,000여戶이며 監理署(감리는 창원군수가 겸임), 경찰서 등이 있고 시가는 해변에 면하여 선박화물의 폭주가 매우 빈번하다. 産物은 미곡, 牛皮, 소금, 魚類, 무명(木綿), 솜(綿) 등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일본상인(행상)의 근거지였지만 마산개항에 즈음하여 신마산으로 이전하였다. 지금도 20여 호가 있고 대부분 조선가옥에 기거하고 있다.

상업은 모든 잡화류를 판매하고 중매상인도 아직 거주하는 자가 있다. 유명한 博友商會도 이곳에 있어서 전적으로 군함에 식품을 납품하고 있다.

 

<당시 마산 지도>

 

名所古跡

<馬山城址>

마산항에서 10여 리 북방, 다시 말해 구마산포에 가까운 천주산맥의 언덕에 있다. 임진왜란 때 이곳에 창원부성을 쌓았던 것이다. 지금도 外廓돌담이 남아 있고 정문의 형태도 뚜렷이 남아있다.

<鎭海灣>

마산에서 육로로 30리, 해로로 20리 되는 거리의 남쪽에 있다. 진해만은 천연의 良港으로서 일본의 前松島와 비슷하다. 일찌기 해군의 군항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며 러시아 역시 그렇게 바라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가 경쟁하는 곳으로서 일 만 톤 이상의 군함이 자유롭게 정박할 수가 있다.

진해항은 인가 200여 호의 어촌으로서 콩, 쌀 등을 産出하고 거제도에 이르는 船便이 있다. 한국을 찾은 여행객들이 灣內의 기묘한 경치를 탐낼 정도다.

<호텔>

각국거류지 남단에 마산포에서 유일한 러시아 호텔이 있다. 해변에 면하여 조망이 좋은 위치에 있다.

<掘江旅館>

思君亭으로도 불리는 마산의 유일한 여관으로 요리점도 겸하고 있다. 객실은 많지 않으나 깨끗하고 調理나 손님접대를 잘하여 호평을 받고 있다.

<유렵지>

마산부근 일대는 鳥類가 많아 겨울에 총을 지니고 해안을 따라서 돌아다니면 총 한발에 새 열 마리 이상 잡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따라서 한국에서 날짐승 고기가 가장 싼 곳이 마산으로 오리 한 마리에 12전이라고 한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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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27. 00:00

120년 전 마산은? - 5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5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다섯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居留地 雜組

<官衙>

일본영사관이 있어 통상 및 彼我의 교섭사무외 경범죄 이하의 재판사무를 취급하고 있으며 현재의 領事는 阪田重次郞이다. 그는 처음에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이 마산영사관으로 개칭될 때 부임하였다. 부속 경찰서는 마산영사관內에 있으며 사법행정의 경찰업무를 취급하며 서장은 警部 境益太郞이다.

<郵便局>

영사관의 아래 큰길에 있으며 현재 공사 중인데 늦어도 올해 8-9월경까지 완공될 예정이라 한다. 현재는 셋집에서 업무를 보고있다. 보통우편외 환어음, 소포, 저금 등의 사무를 취급하고 국장은 阪田領事가 겸직한다.

 

<참고자료 ; 준공 이후의 우편국 전경>

 

<各國居留地會>

모든 행정을 관장하는 곳으로서 각국영사, 한국지방관, 즉 감리 및 地主대표자에 의하여 의원이 조직되고 현재 7명의 의원이 있으며 의장은 일본영사가 선임되었다. 그리하여 그 사무는 경찰, 토목, 위생, 도로, 하수, 소방 등을 주로 하고 경찰사무는 편의상 일본경찰에 위임되었다.

<敎育, 宗敎>

일본인 학교는 없고 한국인을 교육시키는 일본학교가 구마산포에 있다. 재학생 66명.

淨土宗 本山에서는 이번에 포교장을 개시하는 한편, 정식 소학교도 개설하고 在 釜山別院 三隅田持門師로 하여금 그 책임을 맡긴다고 준비중이다.

<居留民會>

일본인의 공공기관으로서 거류민회가 있으며 理事는 仙石勘九郞이다.

<渡航者注意事項>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은 상륙 3일 이내에 書面으로 居留地 民會를 경유하여 영사관에 신고하고 거류지를 떠나는 자도 이와 같다. 단 滯留者(3일 이상 滯在하는 자)는 1 개월 분 頭課金으로 10전을 납부할 것.

<海關>

한국정부의 세관서는 각국거류지 중앙 해안에 있다.

<漁業組合>

朝鮮海通漁組合聯合會 馬山支部가 있다.

<銀行>

지금까지 금융기관이 없었으므로 상업발달상 유일한 결점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이처럼 금융시설이 없는 것이 마산항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것이라고 마산의 일반 상인들까지 말하고 있다.

<農業>

경작지에 자갈 등은 적고 그 지질이 비옥해서 아주 쌀 농사에 적합하다. 종자는 주로 일본 벼 씨를 사용한다.

<韓國 郵電>

거류지 조계로부터 구마산포에 이르는 도로상에 한국 우체사, 電報司가 있어 일본인의 전보는 이 電報司에 의뢰한다. 한국 내의 각지는 물론 일본과의 통신도 취급하고 있다.

<海運>

해운권의 성장과 무역의 성쇠와는 가장 밀접하게 관계가 있는 일로서 해운이 발달한 곳에서는 무역도 발달하고 해운이 부진한 곳에서는 무역도 부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운을 외국무역의 가장 큰 요소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마산과 각 항 간 또한 일본과의 해운을 볼 때 대판상선회사, 대한협동郵船회사, 부산八頭司組의 정기항해가 있으며 그 외 帆船의 왕복이 빈번하다.

대판상선이 당 항에 寄港하게 된 것은 1901년 4월로서 그 航回數 및 船名, 톤數는 다음과 같다.

*대판상선회사

白川丸(대판-인천); 566톤(매16일에 1회 兩地를 출발함)

寄港地; 神戶, 下關, 釜山, 馬山, 木浦, 群山, 仁川

*大韓協同郵船會社(韓國汽船)의 仁川․鏡城線

顯益號; 444톤(매월 각1회 程度)

蒼龍號; 403톤(매월 각1회 程度)

寄港地; 군산, 목포, 제주, 마산, 부산, 포항, 원산, 西湖, 前津, 新浦, 新昌, 遮湖, 성 진, 明川, 鏡城

*釜山八頭司 回漕部취급 汽船

第2玉吉丸(和歌浦丸이라고도 부른다. 부산-마산포); 매월 10회(항해시간은 5-6시간)

운임; 1등-2圓50錢. 2등-1圓50錢. 3등-1圓(한국인은 3등에 한해 500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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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20. 00:00

120년 전 마산은? - 4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네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案內』겉표지와 속표지>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諸 物價>

일본인의 諸 물가와 노동임금은 다음과 같다

이발료 - 20錢

여자 미용료 - 10錢

숙박료(1박2식) - 80전

점심식사 - 40전

선원 임금(1인) - 10전

手荷物 - 3전

藝妓線香(1시간) - 45전

고용인 (仕切) - 2圓

목수, 석공, 미장(日給) - 1원 20전

일본인 중개사(一日) - 80전 가량

한국인 일급 - 200文이내

운반비; 마산에서 부산까지 쌀, 콩 운반비(1石 당) - 24전(상륙까지)

 

<營業種類>

일본인 영업구분은 다음과 같다(1902년1월말 조사)

 

무역상 1

仲買商 6, 겸직4

藥種商 5

잡화 27, 겸직 6

술 소매 2, 겸직 1

陶器 겸직5

일상잡화 겸직 1

주물상 겸직 1

옷가게 3, 겸직 2

부엌잡화(荒物) 겸직1

洋酒 겸직 2

담배 겸직4

과자商 3, 겸직2

설탕商 겸직 2

석유상 겸직1

醬油商 겸직 2

의사 2

問屋 1, 겸직1

회사 2

여인숙 겸직 1

야채상 겸직 1

두부 1

요리점 1

떡집 2

푸줏간 1

세탁업 1

일고(日雇) 5

藝妓 1

선원 겸직 1

목수 15

석공 6

미장 2, 겸직 1

鐵力細工 1

대장간 2

이발관 1

미용실 1

된장 겸직 2

일용노동자 22

土木請負 1

精米商 겸 1

식빵 1

大弓 겸직 1

페인트칠 1

酌婦 3

船頭 3

鑛業 2

러시아인은 호텔업 1, 잡화상 1

중국인은 잡화상 7, 雜貨行商 3

독일인은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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