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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1) - 강점제3시기 원마산의 도로는 1910년까지 자연발생적 세도 밖에 없었으나 1910년대 들어서 근대식 도로가 격자형으로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이와 함께 해안에 매립도 시행되어 짧은 기간 동안 급격한 도시구조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도로망의 패턴은 매립을 하면서 조성된 도로와 자연취락 내에 신설된 도로의 축(軸)이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서로 상이하였습니다. 도로망의 패턴이 일정한 체계를 갖추어 발달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도로를 확장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또한 초기의 도로망에 비해 후기에 갈수록 도로망 개설 영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으며 강점 말기에는 기존 원마산 시가지 전체가 격자형 도로망 구역 내의 영역으로 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해안의 매립지는 직사각형 격자형 도로망이 뚜렷이 그 형태를.. 2014. 2. 17.
스페인 도시이야기 9.검은 성모상 '라모레네타'의 몬세라트 ●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북서쪽으로 약 50키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뭉실 뭉실한 바위산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몬(Mont)+세라트(serrat), 굳이 해석하자면 '나누어진 산'이라는 의미처럼 바위산 전체가 울퉁불퉁한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이러한 자연경관을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협곡에 자리잡고 있는 모세라트 수도원과 성당을 보기 위해서랍니다. 또한 성당내에 있는 '라모레네타'라고 하는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한 순례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읍니다. 그럼 주변경관부터 둘러보실까요! - 투어버스에서 내려 아래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조각물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마치 바람이 불면 휘이 돌아갈 듯한 긴장감이 .. 2014. 2. 1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200) - 강점제3시기 지난 글에 이어 도로망패턴에 대한 내용입니다. 2) 강점 제1시기(1911년-1920년) 강점 제1시기인 1910년대 초기에는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중심가로가 약 15m 폭으로 준공되었으며 이 무렵 진주가도의 확장공사도 완료되어 두 도로가 연결되었습니다.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중심가로는 원마산의 시가지 한복판까지 이어졌고 때를 맞춰 원마산에 다수의 근대식 격자형도로가 개설되었고, 이 도로는 남성동 매립지의 격자형 도로와 연결되었습니다. 이로써 최초로 신마산과 원마산을 연결하는 근대식 중심가로와 두 시가지에 격자형의 도로망이 개설되어 도시의 도로망 패턴이 근대적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계획된 신마산과 달리 원마산의 도로망은 격자 체계가 명쾌하게 조성되지 못했습니다... 2014. 2. 10.
스페인 도시이야기 8.성모발현 성지 사라고사 ● 성모발현 도시 사라고사(Zaragosa): 사라고사의 위치는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중간쯤에 있는 도시입니다. 아라곤 주의 주도로 스페인에서 인구규모면에서 5위체 해당하는 큰 도시입니다. 도시의 성격은 종교도시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카톨릭에서 성지로 여기는 성모발현 도시라는 사건 때문에 스페인에서 기독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도시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를 살펴보면, 기원후 40년에 이곳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러 온 야곱(예수님의 제자)에게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의 기둥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둥성당', '필라르 성모성당'을 건립하게 되어 신앙의 중심지가 되는 성지로 알려져 있는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과정에 기독교인들이 박해.. 2014. 2.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9) - 강점제3시기 도시는 교통망, 즉 도로를 중심으로 배치․형성되며 이들 도로의 얽힘 상태를 일컫는 것이 바로「도로망 패턴」입니다. 도시의 형태 구성은 크게 방형상형(方形狀型)․대상형(帶狀型)․방사환상형(放射環狀型)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들 세 가지 도시의 도로망 구성을 보면 방형상형은 격자(格子)와 장방형(長方形), 대상형은 선상(線狀), 방사환상형은 방사동심원형(放射同心圓形)입니다. 다음 그림은 현대도시계획의 선구자로 불려지는 소리아 이 마타 (Soria Y. Mata)가 1882년 제안한 선상도시입니다. 도시의 형태가 특정한 양식으로 결정되는 과정은 그 도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성인(成因) 및 입지조건이 작용합니다. 특히 자연조건은 도시형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어느 요소보다도 능동적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 2014. 2. 3.
스페인 도시이야기 7.마드리드, 피카소의 게르니카 vs 독재자 프랑코 ● '마드리드'는 몰라도 '레알마드리드'는 아시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도,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하면 어느나라의 어떤 도시라는 이미지보다 더 잘 알려져 있는것 같습니다. 스페인은 몰라도 그냥 유럽의 유명한 축구팀으로 더 알려진 까닭은 무엇일까요? 20세기를 통틀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독재자의 원조에 해당하는 독재자 프랑코(1935-1975년까지 스페인통치자)때문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프랑코 통치 하의 스페인이 문화의 황무지 였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고 합니다. 체제에 대한 이념보다 보다 통속적인 문화를 통해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목적으로 스포츠, 영화, TV를 통해 관심을 돌리려 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흥행몰이를 한 것이 축구였는데, 당시 1948년 빈곤한 스.. 2014. 1. 2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8) - 강점기 정리 강점기 동안 있었던 마산의 도시변화 중 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개항기 원마산의 시가지 범역 규모는 약 0.19㎢였고 이는 1910년 합방기까지 변화가 없었습니다. 1910년대 들어서 경제적 잉여를 목적으로 시행된 남성동의 매립과 구마산․북마산 두 역의 발달로 인해 유통이 활발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가지가 확산되었는데 이미 인근에 자리하고 있던 자연취락까지 연결될 정도의 확산양상을 보여 1930년에는 0.9㎢로 약 470%나 확장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1920년대 이후부터 확산의 강도와 속도가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원인은 산업의 발달에 따른 도시인구의 증가와 철도역으로 인한 인근지역과의 교류 때문이었습니다. 확산의 방향은 원마산의 자연적 조건(원마산을 지형적으로 보면 남쪽 신마산 방.. 2014. 1. 27.
문익환의 추억 지난 18일은 늦봄 문익환 목사님 가신지 20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한복판에서 한 치 두려움 없이 살다 가신 그를 추억하며 짧은 글 한 편 올립니다. 제5공화국 독재 권력의 칼바람이 불던 시절, 목사님은 이 나라 전역을 누비며 시국강연을 많이 하였습니다. 우리지역에도 대학이나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문 목사님의 강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독재타도'의 사자후를 토했습니다. 건강한 몸도 아니고 체구가 크지도 않은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올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가 그의 몸에서 솟구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면 문 목사님과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뒤풀이를 가졌는데, 모일 장소가 늘 문제였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 구하기가 마땅 찮았습니다. 주무실 곳 찾기도 간단치.. 2014. 1. 2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7) - 강점기 정리 1) 인구변화 추이 개항부터 해방까지의 마산인구 변화를 그래프로 정리한 것이 다음 표입니다. 개항 초기에 1만여 명이었던 마산의 인구는 합방기에 1만 6천여 명이 되었는데 이 중 일본인이 6천여 명이었고 한국인은 1만여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10여 년 동안 마산의 전체 인구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폐항으로 인해 일본인이 2천여 명 정도 줄었으나 한국인은 2천여 명 정도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1920년대가 지나면서 마산의 인구는 약 1만여 명이 늘어나 2만 6천여 명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인의 숫자도 늘어나 다시 5천명을 넘어서게 되었으며 한국인도 2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이런 인구 증가 현상은 회사령 폐지로 인한 산업구조의 변화 때문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시가지의 확산과 토지이용구조의 변화.. 2014. 1. 20.
스페인 도시이야기 6. 똘레도, 500년전 중세도시 카톨릭수도 ● 똘레도를 보기전에 스페인을 이야기 하지마라 : 전성기의 스페인,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남미정벌에 가장 열을 올렸던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광산이 개발된 후 17세기까지를 가장 전성기로 보고있습니다. 그래서 축구에서 스페인 축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로 '무적함대'라는 사용하는 것도 이 시기 스페인의 왕성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기에,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의 수도였던 '똘레도'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위치상으로는 스페인 대륙의 정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의수도인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약 70키로키터 정도 떨어진 도시입니다.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긴것이 1560년도 이니까 지금으로 부터 450년보다 훨씬 이전의 도시형태가 고스란.. 2014. 1.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6) - 강점기 정리 어느 도시건 시가지의 확산은 사회경제적 조건과 인구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진행됩니다. 확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 즉 방향성․속도․형태 등은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위치를 비롯한 강약과 완급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원마산(마산포)과 신마산 두 도시로 나누어져 있었던 마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마산과 신마산을 나누어 설명해보겠습니다. 1) 원마산(마산포) 현 남성동과 동성동 해안일대에 밀집하여 조성되어 있던 자연취락 형태의 전통도시였던 원마산은 개항이후 일본인에게 토지의 소유권이 넘어가고 상권 침범을 당했습니다. 특히 원마산에서 볼 때 신마산 방향(남쪽)인 수성동 일대는 1910년 경 무려 66%의 토지가 일본인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큰 변화를 겪습니다. 비록 도.. 2014. 1. 13.
한국100명산 8. :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남해금산 ● 이번 산행은 송년회를 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산을 고르다 보니 100명산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이며, 산행하기 수월한 남해금산을 선택하였습니다. 해발이 그리 낮은 편은 아니지만, 정상근처인 보리암까지 여차하면 차량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으로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2월 28일(토)아침 10시에 출발하여 남해읍에 도착할 즈음 12시경,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번 산행에서도 지역의 맛집을 찾은터라, 급하게 남해의 맛집중 짜장면이 유명한 집을 읍내 근처에서 쉽게 찾을수 있었습니다. 읍에서 차를 돌리려는 차에 우뚝 솟은 지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남해성당이었습니다. 정삼각형에 가까운 경사지붕이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단순 명료한 형태에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가 보기 좋았습.. 2014. 1.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5) - 강점기 정리 지난 회 까지는 1945년까지 생성·변화해온 마산 도시의 변천과정을 총 194회에 걸쳐 소개했습니다. 오늘부터는 1945년까지 변해온 마산도시의 특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구성요소로 ① 시민(citizen), ② 활동(activity), ③ 토지(land), ④ 시설(facility)의 네 가지를 듭니다만 이를 둘로 묶으면 인간적 요소(①시민, ②활동)과 물리적 요소(③토지, ④시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적 요소인「시민」과「활동」분야는 아쉽지만 논외로 하고「시민」의「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수용해 주고 뒷받침해 주는 물리적 요소, 즉「토지」와「시설」중 일부를 살펴보되 정확하게 확인되고 분석 가능한 것들, 즉 ① 시가지 확산 : 도시영역을 형성하는 물리적 시설(도.. 2014. 1. 6.
스페인 도시이야기 5. 콘스에그라, 돈키호테가 등장하는 풍차마을 - 안달루시아지역은 북아프리카와 접한 유럽의 가장 남서측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남부 스페인의 도시들은 모로코을 통해 들어온 무어인(아프리카 회교도)이 정복한 도시가 많습니다. 현재 이슬람 유적과 관련된 도시가 많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코르도바,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와 같은도시들을 예로들 수 있습니다. 안달루시아 지역투어를 마치고 북부스페인을 가는 중간쯤 중부 내륙스페인정도에 해당하는 곳에서 들른 곳이 콘스에그라 지역입니다. 그 지역의 라만차 평원지역하면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영웅 돈키호테가 활약한 무대입니다. 흔히 말해서 소설 속의 등장배경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입니다. ● 스페인 문학의 지존 '세르반테스' : 중세 16세기에 발간된 소설 동키호테는 출간한지 4세기가 .. 2014. 1. 2.
새해인사 또 다시 새해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올 한해 모두 안녕들 하시기 바랍니다. 2014. 1. 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4) - 강점제3시기 120회부터 시작된 1930년대 이후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 강점 제3시기는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쟁기로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시기로,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잠재우기 위하여 소위 황국신민화정책을 폈습니다. 1930년의 마산 인구는 27,885명이었는데 1940년에는 36,429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보면 30.6% 증가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목포가 85.2%, 부산이 70.9%, 진주가 71.9% 증가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강점 후기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앙마산 조성계획은 193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중앙동 2가와 3가, 즉.. 2013. 12. 30.
한국100명산 7. : 영암아리랑의 본거지 월출산 ● 학봉 산악대 전라남도 원정 등반하다. : 모처럼 원정등반을 하였습니다. 당일치기도 가능할 수 있지만, 첫 전라도 등정이라 식도락 여행도 겸하여 1박일정으로 잡았습니다. 12월 6일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산장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아침 등반을 하는 일정으로 전남 영암의 월출산이 12월의 산행지로 선정되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4시에 집결을 해서 저녁은 영암을 대표하는 음식중의 하나인 갈낙탕을 먹기로 결정하고 영암군 독천면으로 향하였습니다. 얼추 3시간 만인 7시쯤에 도착하여 식당을 찾았습니다. 독천리는 읍도 아니고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장터 인근 상가들의 대부분이 낙지요리 전문식당이었습니다. 아마 낙지의 집산지였던 것 같았습니다. 수십개의 낙지요리집이 있는 중에서 사전에 알게된 식당을 향해 꺼리낌없이.. 2013. 12.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3) - 강점제3시기 1930년대부터 해방 때 까지 원마산의 범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해방 무렵에는 북서쪽으로 상남동을 지나 회산교까지 원마산과 이어짐은 물론 오동교까지 건물이 가득 들어섰으며, 해안지역에는 오동교까지 매립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달리, 산호리는 여전히 원마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산호리의 정경은 1941년 발표된 지하련의 단편소설「체향초(滯鄕抄)」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 임화의 둘째 부인이었던 소설가 지하련(1910년, 거창생, 본명 이현욱 李現郁)은 천석지기 집안에서 태어나 1926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1935년 마산으로 내려온 임화와 결혼, 1938년 상경하였습니다. 하지만 1940년 결핵에 감염되어 마산 산호리 562번지로 낙향하였다가 1947년 가을, 임화와 함.. 2013. 12. 2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2) - 강점제3시기 이번에는 강점 제3시기에 있었던 마산의 도시구조 변화에 대해 정리합니다. 만주사변 등으로 1930년 이후 국내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최악이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도 점점 열악해갔습니다. 그러나 마산의 경우, 위치가 전선과 멀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과 군수물자 공급창이라는 점 때문에 새로운 매립도 시도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산의 건설경기가 과도하게 상승하여 ‘황금시대’ 운운할 정도였습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매립 전의 마산은 자산동 입구, 즉 몽고정 부근에 해안이 깊고 환주산이 해안 쪽으로 돌출해 있어서 가용대지가 협소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개의 철도와 한 개의 간선도로(현재의 장군로)가 지나고 있어서 .. 2013. 12.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1) - 강점제3시기 도시문제와 관련한 두 기사입니다. 16. 1938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都市問題會議에 馬山代表出發」이며 「경성부민관에서 개최되는 전국도시문제 회의 출석과 함께 선진도시의 시찰을 겸하야 마산부회의원과 상공회의소원 일행 20명이 출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75년 전 식민지시대 일입니다만, 이 기사를 현재 시간으로 당겨보면 「서울시민회관에서 개최되는 전국도시문제회의 참석과 함께 선진도시의 시찰을 겸해 마산시의원과 상공회의소회원 일행 20명이 출발하였다」가 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17. 1938년 12월 11일자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大工場을 誘致 공업용수문제의 해결과 함께 工業馬山府에 朗報」입니다. 기사의 내용을 대략 .. 2013. 12.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0) - 강점제3시기 마산도시변화와 관련한 두 기사입니다. 14. 1936년 7월 28일 매일신보 4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약진 마산부의 인구 3만5천을 돌파, 6개월간 1천여 인 증(增)」입니다. 내용은 1936년 상반기 6개월간 마산부의 인구가 1천여 명 증가하여 정체되었던 마산이 연말까지 총인구 3만5천 명을 돌파하겠다는 내용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산부의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입니다. 기사 아래의 표는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발표한 강점제3시기(1930-1945) 마산의 인구입니다. 1944년과 1945년 인구는 '마산개항백년사' 등 다른 자료에서 뽑았습니다. 신문기사는 공식통계자료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15. 1938년 11월 6일 동아일보 4면 기사입니.. 2013. 12. 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9) - 강점제3시기 마산도시변화와 관련된 두 개의 기사 두소개합니다. 12. 1940년 2월 3일자 동아일보7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共同墓地 移轉要望」이고, 내용은 「마산부 완월동 산기슭에 설치되어 있는 현재의 공동묘지는 도시의 미관으로나 일반출입인사의 눈에 뜨이는 점으로 보아 늘 불유쾌한 감이 있어 각 방면에서 항상 논의되어 오던 터에 더욱 마산부에서도 대마산건설을 목표로 명년에 도시계획실시의 예정인 차제 도시미관을 파괴하는 차등공동묘지는 당연 타처로 옮겨야할 것을 크게 요망한다. 차 지구는 마산의 고지대로서 도로가 불편하므로 부 도로 행정에 대한 불편의 소리도 자자하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월동 공동묘지는 1916년에 제작된 마산지도(아래 그림 참조)에도 나타납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이 공동묘지는 일본인들이.. 2013. 11.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8) - 강점제3시기 도시와 관련한 두 가지 기사입니다. 10. 1938년 7월 21일자 매일신보 6면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馬山午東洞에 夜市」이며 기사는 「마산부 오동동에 있는 번영회 주최의 납양야시(納凉夜市)는 작년부터 개시 하였던 바 금년에도 지난 17일부터 개시되었는데 첫 날부터 나온 사람이 무려 수천 명에 달하여 납량구역 오동동 일대에는 미증유의 잡담과 은성을 이루었고 주로 과일 도시 목공물 포목 십전균일품 등으로 또 값도 싸므로 성적이 양호하다고 한다」입니다. 1937년부터 개장된 오동동 야시장이야기인데 당시 오동동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기사입니다. 기사 중 납양야시(納凉夜市)는 '여름철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밤에 열리는 시장'으로 이해할 수 있겠고, ‘은성을 이루었고…’는 요즈음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번화.. 2013. 11. 18.
한국100명산 6. : 중국 당나라 전설따라 주왕산 ● 10월의 마지막 밤이 며칠 남지않은 즈음에, 100명산 목록중에서 단풍놀이를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으로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10월 26일 아침 7시반에 예외 일명없이 학봉산악대원 전원이 집결하였습니다. 단풍도 감상할 겸 겸사겸사한 관계로 출석률이 좋은것 같았습니다. 마산에서 청송에 가는길은 크게 두개의 코스가 있었습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서 우측으로 빠져서 포항하는 길로 올라가는 코스와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안동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전자의 코스로 가기로 하였으나, 대구 즈음에서 운전중에 잡담을 심하게 한 관계로 우측으로 빠지는 코스를 놓쳐서 할 수 없이 안동까지 올라가는 코스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풍철이 .. 2013. 11. 1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7)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 관련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8. 1938년 2월 24일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돝섬을 새 명소로 만들기 위해 마산중포병연대에서 돝섬공원화 계획을 수립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돝섬공원화 계획의 의도는 진해요항부와 비봉리에 해안도로를 조성한 후 진해와 돝섬을 연결하여 진해를 찾은 관광객이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오도록 한다는 겁니다. 또한 진해 부산 간 계획하고 있는 자동차도로가 개통되면, 돝섬이 연결점이 되어 1시간 3-40분내에 부산-진해-돝섬-마산이 이어질 것이므로 돝섬공원화 계획에 마산부민들도 적극 협력할 것이라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처럼 돝섬이 개발되고 부산에서 진해와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9. 1938년 6월 3일 동.. 2013. 11.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6)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와 관련된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6. 1935년 10월 22일자 매일신보 3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舊馬山驛移築 用地買收完了’ 이며 기사 내용은 ‘경남 제2의 능률을 내고 있는 구마산역은 외관상 누추와 내용상 협애(狹隘) 및 이의 장래발전에 반(伴)하는 요충지대에 이축을 계획하고 그 동안 용지 매수에 열중 중이던 바 가격 평가가 원만히 되지 못하여 매수에 지장이 되어있던 바 근일에 이것이 호전되어 매수가 거의 완료된 모양이라 하며 가급적 금년 내 완성을 보게되도록 할 것이라 하며 완성 후는 구마산에 신위관(新偉觀)을 정(呈)하리라 한다’ 입니다. 지금의 육호광장 자리에 있었던 구마산 역은 이 신문 기사처럼 위치를 약간 옮겨온 자리입니다. 처음에 있었던 역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만 역.. 2013. 11.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5) - 강점제3시기 오늘도 두 기사 소개합니다. 4. 1935년 4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마산의 교육현안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내 地方當面問題(지방당면문제)’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高普設置問題(고보설치문제)’라는 제목으로 마산에 중등교육기관인 고등보통학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며, 두 번째 기사는 ‘商校昇格問題(상교승격문제)’라는 제목으로 당시 3년제 을종학교로 1922년 개교한 마산상업학교(옛 마산상고, 현 용마고)를 5년제 10학급 갑종학교로 승격시키자는 겁니다. 첫 번째 주장인 고등보통학교 설립 문제는 이듬해인 1936년 4월 11일 마산공립중학교(현 마산고등학교 / 개교 당시 5년제 10학급)가 개교됨으로 이루어졌고, 두 번째 주장인 마산상업학교 승격문제는 1939년 5년제 10.. 2013. 10. 2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4)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대 이후 마산 도시변화와 관련한 신문보도를 기사와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간단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꽤 볼만한 기사도 있습니다. 1. 먼저 1931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돗섬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納涼村施設 마산 저도에」이며 기사는 「마산부에서는 여름 동안의 피서지(避暑地)로 마산부 저도리(猪島里, 돗섬)에 납량촌(納凉村)을 신설할 터이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부민들을 위해 돗섬에 어떤 피서시설을 만든다는 내용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지 해수욕 시설을 조성하는 건지 이 기사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2. 1933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몽고정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馬山 蒙古井 大谷博士 證明」이며 기사는 「지난 14일 성대교수 .. 2013. 10. 21.
경남도민건축대학 3. 함양 남계서원 답사 ● 남계서원에 대해서 : 정여창 고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계서원이 있습니다.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을 모시는 서원입니다. 학자로서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목적과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지어질 당시는 함양지역의 뼈대있는(?) 문중에서 기금을 내어 지어진 사립학교로 운영관리 되었다고 합니다. 건립은 정여창 선생의 후손인 하동정씨, 풍천노씨, 진주정씨, 진주강씨, 나주임씨, 동래정씨, 남원양씨 등이 동참해 지었다고 합니다. 훗날 명종 21년(1566년)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액'은 국가에서 내리는 서원의 액자간판으로 국가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인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 2013. 10. 1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3) - 강점제3시기 '관광 마산'에 소개된 사진 중 마지막 석장입니다. 53. 자안지장(子安地藏) 자안지장에 대해서는 처음 접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우선 관련 글 한편 소개합니다. 『약진 마산의 전모』에 실린 글입니다. "구강(마산 팔용산 수원지 내지 산호리 일대) 광천 쪽으로 가는 왼쪽으로 상당한 급경사의 산길을 약 1시간 가량 올라가면 자안지장을 안치해놓은 곳에 다다르는데, 거암 아래의 안쪽에 안치된 지장불 근처에는 송송 맑고 정결한 물이 샘솟는다. 전설에는 이 거암을 '상사암'이라 부르는데, 남녀가 서로 연모하였으나 결국은 부부가 되지 못했다면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마음대로 희롱하기 때문에 이 바위 위에 앉혀서 주문을 외우게 했고, 그렇게 해보아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를 공물로 바친다고 전한다. 이곳을.. 2013.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