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33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6) - 강점기 정리 어느 도시건 시가지의 확산은 사회경제적 조건과 인구의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진행됩니다. 확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양상, 즉 방향성․속도․형태 등은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상황에 따라 위치를 비롯한 강약과 완급의 정도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원마산(마산포)과 신마산 두 도시로 나누어져 있었던 마산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마산과 신마산을 나누어 설명해보겠습니다. 1) 원마산(마산포) 현 남성동과 동성동 해안일대에 밀집하여 조성되어 있던 자연취락 형태의 전통도시였던 원마산은 개항이후 일본인에게 토지의 소유권이 넘어가고 상권 침범을 당했습니다. 특히 원마산에서 볼 때 신마산 방향(남쪽)인 수성동 일대는 1910년 경 무려 66%의 토지가 일본인의 소유가 되어버리는 큰 변화를 겪습니다. 비록 도.. 2014. 1. 13. 한국100명산 8. : 한려해상을 바라보며. 남해금산 ● 이번 산행은 송년회를 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산을 고르다 보니 100명산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이며, 산행하기 수월한 남해금산을 선택하였습니다. 해발이 그리 낮은 편은 아니지만, 정상근처인 보리암까지 여차하면 차량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심리적으로 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2월 28일(토)아침 10시에 출발하여 남해읍에 도착할 즈음 12시경,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번 산행에서도 지역의 맛집을 찾은터라, 급하게 남해의 맛집중 짜장면이 유명한 집을 읍내 근처에서 쉽게 찾을수 있었습니다. 읍에서 차를 돌리려는 차에 우뚝 솟은 지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남해성당이었습니다. 정삼각형에 가까운 경사지붕이 창공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단순 명료한 형태에 군더더기 없는 이미지가 보기 좋았습.. 2014. 1.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5) - 강점기 정리 지난 회 까지는 1945년까지 생성·변화해온 마산 도시의 변천과정을 총 194회에 걸쳐 소개했습니다. 오늘부터는 1945년까지 변해온 마산도시의 특성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구성요소로 ① 시민(citizen), ② 활동(activity), ③ 토지(land), ④ 시설(facility)의 네 가지를 듭니다만 이를 둘로 묶으면 인간적 요소(①시민, ②활동)과 물리적 요소(③토지, ④시설)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적 요소인「시민」과「활동」분야는 아쉽지만 논외로 하고「시민」의「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수용해 주고 뒷받침해 주는 물리적 요소, 즉「토지」와「시설」중 일부를 살펴보되 정확하게 확인되고 분석 가능한 것들, 즉 ① 시가지 확산 : 도시영역을 형성하는 물리적 시설(도.. 2014. 1. 6. 스페인 도시이야기 5. 콘스에그라, 돈키호테가 등장하는 풍차마을 - 안달루시아지역은 북아프리카와 접한 유럽의 가장 남서측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남부 스페인의 도시들은 모로코을 통해 들어온 무어인(아프리카 회교도)이 정복한 도시가 많습니다. 현재 이슬람 유적과 관련된 도시가 많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코르도바, 세비야, 론다, 그라나다와 같은도시들을 예로들 수 있습니다. 안달루시아 지역투어를 마치고 북부스페인을 가는 중간쯤 중부 내륙스페인정도에 해당하는 곳에서 들른 곳이 콘스에그라 지역입니다. 그 지역의 라만차 평원지역하면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영웅 돈키호테가 활약한 무대입니다. 흔히 말해서 소설 속의 등장배경지로서 각광을 받는 곳입니다. ● 스페인 문학의 지존 '세르반테스' : 중세 16세기에 발간된 소설 동키호테는 출간한지 4세기가 .. 2014. 1. 2. 새해인사 또 다시 새해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올 한해 모두 안녕들 하시기 바랍니다. 2014. 1. 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4) - 강점제3시기 120회부터 시작된 1930년대 이후 마산도시변화에 대한 마지막 포스팅입니다. 일제 강점 제3시기는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전쟁기로서 한반도를 병참기지화한 시기로, 일제는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잠재우기 위하여 소위 황국신민화정책을 폈습니다. 1930년의 마산 인구는 27,885명이었는데 1940년에는 36,429명이었습니다. 비율로 보면 30.6% 증가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목포가 85.2%, 부산이 70.9%, 진주가 71.9% 증가한 것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강점 후기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앙마산 조성계획은 193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1920년대에는 중앙동 2가와 3가, 즉.. 2013. 12. 30. 한국100명산 7. : 영암아리랑의 본거지 월출산 ● 학봉 산악대 전라남도 원정 등반하다. : 모처럼 원정등반을 하였습니다. 당일치기도 가능할 수 있지만, 첫 전라도 등정이라 식도락 여행도 겸하여 1박일정으로 잡았습니다. 12월 6일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산장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아침 등반을 하는 일정으로 전남 영암의 월출산이 12월의 산행지로 선정되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4시에 집결을 해서 저녁은 영암을 대표하는 음식중의 하나인 갈낙탕을 먹기로 결정하고 영암군 독천면으로 향하였습니다. 얼추 3시간 만인 7시쯤에 도착하여 식당을 찾았습니다. 독천리는 읍도 아니고 조그만 마을이었는데, 장터 인근 상가들의 대부분이 낙지요리 전문식당이었습니다. 아마 낙지의 집산지였던 것 같았습니다. 수십개의 낙지요리집이 있는 중에서 사전에 알게된 식당을 향해 꺼리낌없이.. 2013. 12.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3) - 강점제3시기 1930년대부터 해방 때 까지 원마산의 범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해방 무렵에는 북서쪽으로 상남동을 지나 회산교까지 원마산과 이어짐은 물론 오동교까지 건물이 가득 들어섰으며, 해안지역에는 오동교까지 매립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달리, 산호리는 여전히 원마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당시 산호리의 정경은 1941년 발표된 지하련의 단편소설「체향초(滯鄕抄)」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인 임화의 둘째 부인이었던 소설가 지하련(1910년, 거창생, 본명 이현욱 李現郁)은 천석지기 집안에서 태어나 1926년 마산으로 이주하여 1935년 마산으로 내려온 임화와 결혼, 1938년 상경하였습니다. 하지만 1940년 결핵에 감염되어 마산 산호리 562번지로 낙향하였다가 1947년 가을, 임화와 함.. 2013. 12. 2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2) - 강점제3시기 이번에는 강점 제3시기에 있었던 마산의 도시구조 변화에 대해 정리합니다. 만주사변 등으로 1930년 이후 국내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최악이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급격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도 점점 열악해갔습니다. 그러나 마산의 경우, 위치가 전선과 멀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일본과 대륙을 연결하는 접점이라는 점과 군수물자 공급창이라는 점 때문에 새로운 매립도 시도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산의 건설경기가 과도하게 상승하여 ‘황금시대’ 운운할 정도였습니다. 지형적으로 볼 때 매립 전의 마산은 자산동 입구, 즉 몽고정 부근에 해안이 깊고 환주산이 해안 쪽으로 돌출해 있어서 가용대지가 협소했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개의 철도와 한 개의 간선도로(현재의 장군로)가 지나고 있어서 .. 2013. 12.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1) - 강점제3시기 도시문제와 관련한 두 기사입니다. 16. 1938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都市問題會議에 馬山代表出發」이며 「경성부민관에서 개최되는 전국도시문제 회의 출석과 함께 선진도시의 시찰을 겸하야 마산부회의원과 상공회의소원 일행 20명이 출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75년 전 식민지시대 일입니다만, 이 기사를 현재 시간으로 당겨보면 「서울시민회관에서 개최되는 전국도시문제회의 참석과 함께 선진도시의 시찰을 겸해 마산시의원과 상공회의소회원 일행 20명이 출발하였다」가 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습니다. 17. 1938년 12월 11일자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大工場을 誘致 공업용수문제의 해결과 함께 工業馬山府에 朗報」입니다. 기사의 내용을 대략 .. 2013. 12.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90) - 강점제3시기 마산도시변화와 관련한 두 기사입니다. 14. 1936년 7월 28일 매일신보 4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약진 마산부의 인구 3만5천을 돌파, 6개월간 1천여 인 증(增)」입니다. 내용은 1936년 상반기 6개월간 마산부의 인구가 1천여 명 증가하여 정체되었던 마산이 연말까지 총인구 3만5천 명을 돌파하겠다는 내용으로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산부의 희망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입니다. 기사 아래의 표는 조선총독부가 정식으로 발표한 강점제3시기(1930-1945) 마산의 인구입니다. 1944년과 1945년 인구는 '마산개항백년사' 등 다른 자료에서 뽑았습니다. 신문기사는 공식통계자료와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15. 1938년 11월 6일 동아일보 4면 기사입니.. 2013. 12. 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9) - 강점제3시기 마산도시변화와 관련된 두 개의 기사 두소개합니다. 12. 1940년 2월 3일자 동아일보7면 기사입니다. 기사 제목은 「共同墓地 移轉要望」이고, 내용은 「마산부 완월동 산기슭에 설치되어 있는 현재의 공동묘지는 도시의 미관으로나 일반출입인사의 눈에 뜨이는 점으로 보아 늘 불유쾌한 감이 있어 각 방면에서 항상 논의되어 오던 터에 더욱 마산부에서도 대마산건설을 목표로 명년에 도시계획실시의 예정인 차제 도시미관을 파괴하는 차등공동묘지는 당연 타처로 옮겨야할 것을 크게 요망한다. 차 지구는 마산의 고지대로서 도로가 불편하므로 부 도로 행정에 대한 불편의 소리도 자자하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완월동 공동묘지는 1916년에 제작된 마산지도(아래 그림 참조)에도 나타납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이 공동묘지는 일본인들이.. 2013. 11.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8) - 강점제3시기 도시와 관련한 두 가지 기사입니다. 10. 1938년 7월 21일자 매일신보 6면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馬山午東洞에 夜市」이며 기사는 「마산부 오동동에 있는 번영회 주최의 납양야시(納凉夜市)는 작년부터 개시 하였던 바 금년에도 지난 17일부터 개시되었는데 첫 날부터 나온 사람이 무려 수천 명에 달하여 납량구역 오동동 일대에는 미증유의 잡담과 은성을 이루었고 주로 과일 도시 목공물 포목 십전균일품 등으로 또 값도 싸므로 성적이 양호하다고 한다」입니다. 1937년부터 개장된 오동동 야시장이야기인데 당시 오동동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기사입니다. 기사 중 납양야시(納凉夜市)는 '여름철 더위를 피해 시원한 밤에 열리는 시장'으로 이해할 수 있겠고, ‘은성을 이루었고…’는 요즈음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번화.. 2013. 11. 18. 한국100명산 6. : 중국 당나라 전설따라 주왕산 ● 10월의 마지막 밤이 며칠 남지않은 즈음에, 100명산 목록중에서 단풍놀이를 겸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으로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10월 26일 아침 7시반에 예외 일명없이 학봉산악대원 전원이 집결하였습니다. 단풍도 감상할 겸 겸사겸사한 관계로 출석률이 좋은것 같았습니다. 마산에서 청송에 가는길은 크게 두개의 코스가 있었습니다. 구마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서 우측으로 빠져서 포항하는 길로 올라가는 코스와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안동까지 올라가서 내려오는 코스가 있었습니다. 전자의 코스로 가기로 하였으나, 대구 즈음에서 운전중에 잡담을 심하게 한 관계로 우측으로 빠지는 코스를 놓쳐서 할 수 없이 안동까지 올라가는 코스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풍철이 .. 2013. 11. 1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7)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 관련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8. 1938년 2월 24일 동아일보 7면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돝섬을 새 명소로 만들기 위해 마산중포병연대에서 돝섬공원화 계획을 수립하였다는 내용입니다. 돝섬공원화 계획의 의도는 진해요항부와 비봉리에 해안도로를 조성한 후 진해와 돝섬을 연결하여 진해를 찾은 관광객이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오도록 한다는 겁니다. 또한 진해 부산 간 계획하고 있는 자동차도로가 개통되면, 돝섬이 연결점이 되어 1시간 3-40분내에 부산-진해-돝섬-마산이 이어질 것이므로 돝섬공원화 계획에 마산부민들도 적극 협력할 것이라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처럼 돝섬이 개발되고 부산에서 진해와 돝섬을 거쳐 마산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실제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9. 1938년 6월 3일 동.. 2013. 11.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6) - 강점제3시기 도시변화와 관련된 기사 두 개 소개합니다. 6. 1935년 10월 22일자 매일신보 3면 기사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舊馬山驛移築 用地買收完了’ 이며 기사 내용은 ‘경남 제2의 능률을 내고 있는 구마산역은 외관상 누추와 내용상 협애(狹隘) 및 이의 장래발전에 반(伴)하는 요충지대에 이축을 계획하고 그 동안 용지 매수에 열중 중이던 바 가격 평가가 원만히 되지 못하여 매수에 지장이 되어있던 바 근일에 이것이 호전되어 매수가 거의 완료된 모양이라 하며 가급적 금년 내 완성을 보게되도록 할 것이라 하며 완성 후는 구마산에 신위관(新偉觀)을 정(呈)하리라 한다’ 입니다. 지금의 육호광장 자리에 있었던 구마산 역은 이 신문 기사처럼 위치를 약간 옮겨온 자리입니다. 처음에 있었던 역도 비슷한 위치에 있었습니다만 역.. 2013. 11. 4.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5) - 강점제3시기 오늘도 두 기사 소개합니다. 4. 1935년 4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마산의 교육현안에 대한 내용입니다. 기사의 제목은 ‘내 地方當面問題(지방당면문제)’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기사는 ‘高普設置問題(고보설치문제)’라는 제목으로 마산에 중등교육기관인 고등보통학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며, 두 번째 기사는 ‘商校昇格問題(상교승격문제)’라는 제목으로 당시 3년제 을종학교로 1922년 개교한 마산상업학교(옛 마산상고, 현 용마고)를 5년제 10학급 갑종학교로 승격시키자는 겁니다. 첫 번째 주장인 고등보통학교 설립 문제는 이듬해인 1936년 4월 11일 마산공립중학교(현 마산고등학교 / 개교 당시 5년제 10학급)가 개교됨으로 이루어졌고, 두 번째 주장인 마산상업학교 승격문제는 1939년 5년제 10.. 2013. 10. 2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4)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대 이후 마산 도시변화와 관련한 신문보도를 기사와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간단한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꽤 볼만한 기사도 있습니다. 1. 먼저 1931년 7월 23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돗섬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納涼村施設 마산 저도에」이며 기사는 「마산부에서는 여름 동안의 피서지(避暑地)로 마산부 저도리(猪島里, 돗섬)에 납량촌(納凉村)을 신설할 터이라 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부민들을 위해 돗섬에 어떤 피서시설을 만든다는 내용인데 건물을 짓는다는 건지 해수욕 시설을 조성하는 건지 이 기사만으로는 구체적인 내용을 모르겠습니다. 2. 1933년 11월 19일자 동아일보 3면에 게재된 몽고정 관련 기사입니다. 제목은 「馬山 蒙古井 大谷博士 證明」이며 기사는 「지난 14일 성대교수 .. 2013. 10. 21. 경남도민건축대학 3. 함양 남계서원 답사 ● 남계서원에 대해서 : 정여창 고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남계서원이 있습니다.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을 모시는 서원입니다. 학자로서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목적과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조선 명종 7년(1552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지어질 당시는 함양지역의 뼈대있는(?) 문중에서 기금을 내어 지어진 사립학교로 운영관리 되었다고 합니다. 건립은 정여창 선생의 후손인 하동정씨, 풍천노씨, 진주정씨, 진주강씨, 나주임씨, 동래정씨, 남원양씨 등이 동참해 지었다고 합니다. 훗날 명종 21년(1566년)에 나라에서 '남계'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액'은 국가에서 내리는 서원의 액자간판으로 국가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인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 2013. 10. 1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3) - 강점제3시기 '관광 마산'에 소개된 사진 중 마지막 석장입니다. 53. 자안지장(子安地藏) 자안지장에 대해서는 처음 접하는 분이 많을 것 같아서 우선 관련 글 한편 소개합니다. 『약진 마산의 전모』에 실린 글입니다. "구강(마산 팔용산 수원지 내지 산호리 일대) 광천 쪽으로 가는 왼쪽으로 상당한 급경사의 산길을 약 1시간 가량 올라가면 자안지장을 안치해놓은 곳에 다다르는데, 거암 아래의 안쪽에 안치된 지장불 근처에는 송송 맑고 정결한 물이 샘솟는다. 전설에는 이 거암을 '상사암'이라 부르는데, 남녀가 서로 연모하였으나 결국은 부부가 되지 못했다면 뱀으로 변하여 연인을 마음대로 희롱하기 때문에 이 바위 위에 앉혀서 주문을 외우게 했고, 그렇게 해보아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를 공물로 바친다고 전한다. 이곳을.. 2013. 10. 14. 한국100명산 4.5 : 영남알프스의 우측날개 신불산과 영취산 ♪ 준비과정 1. : '한국 100명산' 원정일자를 잡는 것은 정말 힙듭니다. 당초는 9월 말에 일정을 잡았으나, 대원B님의 느닷없는 일정때문에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친한분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을 깜빡 했나 봅니다. 한 두사람의 사사로운 사정을 감안하다 보면 앞으로 10년간 원정 일정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가려고 했느나, 본인이 꼭 가보고 싶은 산인데 1주일만 연기해 주면 그 은혜는 '백골난망'으로 갚겠다는 탄원이 들어와서, 일정연기를 고민하였습니다. 1주일 연기만 해준다면 죽어서도 그 은혜를 갚겠다는데 살아서 그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자는데 의견이 모아져서 1주일 연기하여 10월 5일 출정을 하게되었습니다. ♬ 준비과정 2. : 산행코스 정하는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마침 무학산 산행시에.. 2013. 10.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2) - 강점제3시기 오늘도 그림 석장입니다. 50. 마산해수욕장 당시 마산 최고의 관광지요 피서지였던 월포해수욕장입니다. 아래 사진은 1934년 7월 5일 자 5면에 실린 이 해수욕장 관련 동아일보 사진 기사입니다. 기사는『때 만난 마산월포해수욕장』이라는 제목으로, 내용은 「여름의 바다는 젊은 남녀들의 마음을 떠들썩거리는 판인데 마산 진해 해수욕장에도 벌써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욕객이 모여드는 판이다. 마산 월포해수욕장은 남조선 지방에서도 물이 맑고 모래가 희어 풍광이 명미하기로 이름이 높아 각 여관업자들은 이 때 한목을 보게 된다고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51. 완월동 부동폭포 장군천 상류에 있는 완월폭포입니다. 이 폭포에 대해 1941년 발간된 『약진마산의 전모』에서는 "화강암의 바위 사이를 이으면서 흐르는 물은 옥을 .. 2013. 10. 7. 경남도민건축대학 2. 함양 상림, 정여창고택 답사 ♪ 0. 함양의 푸짐한 인심 : 오전에 산청의 남사마을 탐방을 마치고 제촉하는 가을비를 맞으며 함양으로 향하였다. 경남건축사회에서 준비한 식당에서 함양오곡밥 정식을 먹었다. 밥을 연잎에 싸서, 찐 모습 그대로 나오는게 독특했다. 식사를 마치고는 함양건축사회에 준비한 오곡세트 선물(손바닥만한 봉투에 담긴 것)을 받은채 부른 배를 두드리며 푸짐한 함양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후 함양 상림에 당도하니 연락이 닿았는지 군수님이 직접 맞이할 준비해 주었다. 경남도민 130여명이 함양을 방문한다고 하니 직접 환영하러 나온신 것 같았다. ♪ 1. 함양상림공원[咸陽上林公園:천연기념물 154호] : 함양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총 면적이 약 21Ha이고 숲의 길이가 1.6Km에 달하.. 2013. 10. 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1) - 강점제3시기 그림 석장입니다. 47. 마산수도배수지 팔용산 저수지에서 공급된 물을 정수하고 배수하던 곳입니다. 위치는 추산동 마산박물관 일대였습니다. 1930년, 이 정수장이 준공되어 통수식을 할 때, 도지사와 진해요항사령부 사령관까지 참석하여 성대하게 기념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준공식 당시 마산부윤 판원지이(板垣只二 / 제5대부윤 / 1928.3-1930.10 재임)의 글을 석각해 놓은 「水德無疆(수덕무강)」이라는 넉자 글입니다. 한반도 조선을 영원히 지배할 줄로 알았던 일제관료의 확신과 힘센자의 너그러움까지 서려있는 글입니다. 48. 산제당 당시 마산 사람들의 종교적 근원지였던 환주산에 있었습니다. 사진의 건물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성덕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2013. 9. 30. 경남도민건축대학 1. 산청남사마을 답사 ♬1. 도민건축대학 : 조금 늦긴 하였지만 지난 9월 6일 경남건축사회에서 주관하는 도민건축대학의 건축물 답사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이 행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경남건축사회에서 매년 가을쯤(주로 9월)에 경남도민들을 상대로 경남의 명소와 고건축 및 유명한 현대건축물들을 답사하면서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올해로 13회를 거듭하고 있는 행사다. 건축관련 전문가의 해설과 곁들이기 때문에 혼자 방문해서 느낄 수 없는 소소한 부분까지 알게 되는 정말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답사는 서부경남의 산청과 함양을 130 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방문하였다. 두 곳다 유서깊은 고건축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김화봉교수님(경남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의 구술이 더해지면서 고건축물 하나하나 마다 간직하고 있는 .. 2013. 9. 27. 한국100명산. 3. 최치원의 수양지 무학산 ♬ 예상치 않았던 무학산 100명산 탐방 : 둘레길만 걷던 초보등산꾼들이라 원거리 원정일정을 잡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정대로라면 포항 내연산은 8월말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8월의 100명산 원정은 취소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빼먹기를 쉽게하면 앞으로 애로사항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심 기회가 닿으면 무학산이라도 오를 기회가 있다면 그 달의 건수는 채워야지 하는 생각에 원정기념 현수막을 넣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지난주에 회원 모두가 참석하는 흔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잘되었다 싶어서 "오늘은 모처럼 모두 참석했는데 정상한번 가입시더"라고 의견을 내어서 100산중의 하나인 무학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 무학산 지명의 유래 무학산은 마산 중심가를 둘러싸고 있.. 2013. 9.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0) - 강점제3시기 오늘도 그림 석장입니다. 44. 마산공원 마산신사에 접한 위치. 지금의 제일여고 부지 중 일부였습니다. 조경계획은 임학박사였던 본전정육(本田靜六)이 하였고 수종은 벚나무, 매화나무, 대나무 등이었습니다. 강점기 내내 일본인들의 놀이터와 휴식처로 사용되었습니다. 45. 근위빈공원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조그마한 해변공원으로 1934년 월영동 해안에 조성되었습니다. 1941년 벚나무 묘목 1백본, 버드나무 2백본을 이식해 공원을 꾸몄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46. 추산공원 추산동 마산박물관 일대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암석이 많았다고 하며, 동쪽에 오래된 벚나무 수십 그루가 있어서 벚꽃이 필 때 쯤이면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2013. 9. 23. 스페인 도시이야기 4. 론다, 절벽위의 도시, 투우의 고장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론다는 앞서 소개한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와 함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인구 3만 5천명이 사는 작은 도시이다. 스페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로 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코달레빈 강이 만든 타호 협곡 위에 조성된 인상깊은 경관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문호 훼밍웨이가 집필활동을 한 곳으로서, 헤밍웨이는 론다의 풍경을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추천했기에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이와 연관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영화 촬영 배경지로 등장하기도 한 곳이다. 이 소설은 그가 참전한 1932년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기에 더욱 의미있는 곳이기.. 2013. 9. 1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79) - 강점제3시기 오늘도 그림 석장 소개합니다 41. 합성리 정동행성지 창원(昌原)이란 지명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조 3대 태종 8년(1408년)에 의창(義昌)현과 회원(會原)현을 합쳐 창원(昌原)부로 승격되면서 그 이름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의창(義昌)의 ‘昌’자(字)와 회원(會原)의 ‘原’자(字)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그러나 창원의 부성(府城)은 별도로 없었습니다. 현재 마산 합성동에 유적으로 남아있는 '합포성'의 병마도절제사가 창원부까지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합성리 정동행성지는 바로 그 합포성을 말합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53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어느 주택의 담벼락으로 아직 남아 있는 합포성의 성곽입니다. 42. 월영대 월영대는 경상남도기념물 제.. 2013. 9. 16. 스페인 도시이야기 3.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 - 클레식 기타의 플라스틱줄이 반복되게 굴러가는 선율을 기억할 것이다. 은은히 저음대와 고음대를 오가다가,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애잔하게 마무리되는 알함브라 궁전의 클레식 기타선율은 앨범 자켓에 그려진 알함브라궁전의 사진에 나타난 섬세한 장식미와 어찌그리 닮았는지! 했던 기억이 있다. 이처럼 그라나다라는 도시는 기타선율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이 이슬람 예술과 건축중에서 가장 위대한 건물이라는 것은 뒤늦게 알게되었다. ● 그라나다의 역사 : - 도시의 시초는 기원전 5세기에 스페인의 원주민인 이베로족의 거주지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도시의 형태를 갖춘것은 711년 이슬람교도의 정착에서 비롯되었다. 그라나다의 전성기는 11세기 무렵 이슬람 왕조의 정치적 .. 2013. 9. 13.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