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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해,소주,항주 답사기 연재합니다. 지난 6월 2일부터 6일까지 4박5일간 중국 상해, 소주, 항주지역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창원대학교 도시건축 설계연구실 소속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함께 일반 관광지는 되도록 배제하고, 해당 지역의 도시와 건축물을 위주로 탐방하였습니다. 단체답사이고 일정이 짧아 많은 곳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역사도시의 흔적과 신개발지역의 발전상을 짧은 소회와 곁들여 전해드리겠습니다. 상해,소주,항주 도시건축 답사기-1 전통이 살아숨쉬는 도심상업지역 소주 관전가(觀前街) 상해 푸동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처음 들린곳은 소주 관전가 입니다. 관전가는 소주도심을 동서로 가로질러 800여 미터에 달하는 거리에 각종 상점, 음식점, 보석가게들이 즐비한 상업지역으로 보행전용거리 입니다. 서울 명동이나 마산 창동거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 2011. 6. 17.
대구 원도심 '근대로(近代路)의 여행' 지난달 말 경남건축가협회 회원들과 대구의 원도심일대를 투어하고 왔습니다. 마산지역의 원도심은 거의 아시직전에 도시재생이라는 처방으로 노력을 기울이는데 반해, 대구의 원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결과는 대구에서 동성로의 가로경관디자인과 함께, 근대건축물과 근대기의 골목문화를 지속적으로 가꾸고 관리해온 결과일 것입니다. '근대路의 여행'은 대구시에서 작명한 골목문화 탐방로를 말합니다. 설명에 앞서 대구 원도심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 대구읍성 : 대구의 원도심은 원래 대구읍성터를 경계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읍성이 철거하게된 배경은 역시 일제강점기때에 경부선이 북문쪽으로 개통되자 (1904년) 연이어 1908년에 기존의 성곽을 철거하.. 2011. 6. 1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2) - 강점 제1시기 마산에 전국 최초로 시외버스가 다녔다면 믿어지십니까? 햇수로 100년 전인 1912년 9월 마산-진주간을 달리는 버스가 생겼습니다. 한달 전인 8월에 대구-경주-포항간 버스가 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만, 마산-진주간 버스가 1911년 12월에 최초로 영업인가를 받았으니 최초라 말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자동차역사에 관한 기록을 보면 1911년 진주에 살았던 ‘에가와(繪川)’라는 일본인이 포드 8인승 무개차 1대를 들여와 마산-삼천포간 버스영업을 시작한 것이 한국 최초의 버스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일신보에 의하면 마산-진주와 진주-삼천포간 버스를 1911년 12월에 인가를 받고 다음 해 9월 마산-진주부터 운행이 시작되었으며 대판에 자동차를 주문했는데 한 대만 도착해 마산-진주를 먼저 운행했.. 2011. 6. 13.
주차에도 위아래가 있다? 창원대학교 공과대학 54호관 건물에 인접한 교직원 전용주차장이 있습니다. 근처에 주차할곳이 없는것도 아닌데 왜 이런 표지판을 세웠나 맘에 걸리던 차에, 얼마전 부터 교직원주차증이 없는 차량은 단속하겠다는 안내가 붙었고, 실제로 앞유리에 경고장을 붙이고 있습니다. 건물에서 가까운 가장 좋은 자리에 교직원만 주차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새삼스럽게 학교의 주인이 누구냐를 거론하기 전에 교직원의 특권의식이 불편합니다. 교직원은 학교에서 계속 근무하고, 학생은 졸업을 하면 떠나기 때문에? '군사부일체'의 유교사상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학생이 공부나 열심히 하지 무슨차를 끌고다녀? 어떤 이유로도 좋은 자리를 차지한 교직원전용주차장을 설명하기에 궁색해 보입니다. 창원대는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국가가.. 2011. 6. 10.
끊어진 다리 얼마 전, 압록강 하류에 있는 중국 단동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요령성 단동은 북한의 평안복도 신의주와 철교로 이어지는 곳,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 땅입니다. 한반도와 중국 땅을 오가기 좋은 곳이라 예부터 조공로(租貢路)로 사용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육이오 때 미공군 폭격으로 부서져 있는 철교며, 이성계가 회군했던 위화도며,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의 도도한 자부심이 넘치는 중국정부의 기념물들과 여진족을 막기 위한 명(明)의 장성(長城, 虎山山城)이며, 고금을 넘나드는 시대의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이곳이 소용돌이쳤던 역사의 한복판이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하여 압록강 철교의 밤풍경부터 보았습니다. 6.25 때 잘려나간 철교가 어두운 압록강 위에 걸쳐 있었습니다. 일한병합 직후인 1911년 .. 2011. 6. 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1) - 강점 제1시기 당시 마산전경사진입니다. 현 대우백화점과 삼익아파트 일대에 매립을 하기 전이라 해안선이 환주산 밑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고, 신마산과 마산포 사이의 옛 마산시청부터 몽고정까지는 전부 논밭입니다. 왼쪽에 문신미술관이 있는 환주산을 시작으로 멀리 용마산과 팔용산 자락이 차례로 보입니다. 환주산과 용마산 사이에 있는 마을이 마산포이고, 산 능선 중 잘룩 들어간 곳이 현재 봉암다리가 있는 곳입니다. 매립 전이라 마산만이 꽤 넓습니다. 1911년 새해벽두부터 개항지였던 마산항이 폐쇄되긴 했지만, 식민지의 통치와 수탈에 필요한 선박에 대해서는 세관장의 특별허가라는 명목으로 선박의 출입항을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수탈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일본 선박은 개항기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통계상으로는 오히려 .. 2011. 6.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60) - 강점 제1시기 일제강점기 마산의 인구 통계는 마산부가 자체적으로 간행한 몇몇 자료에 남아 있는 기록과 국세조사 등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한 기간을 단위로 조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전반에 걸친 인구변화의 추이를 알아보기 위한 자료로서는 부적당합니다. 그러나 병합 이후에 매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해서 출판한『조선총독부 통계연보』는 조사방법이나 조사시기의 간격이 일정합니다. 여기서는 이 자료를 이용해 마산의 인구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1910년대 마산의 인구변화추이입니다. 연도 한국인 일본인 외국인 합계 일인 비율(%) 1910년 10,664 5,941 52 16,657 35.7 1911년 9,847 6,199 46 16,092 38.5 1912년 5,672 1913년 9,494 5,262 41 14,.. 2011. 5. 30.
'창원'하면 떠오르는 도시이미지는? 얼마전 인터넷을 검색하던 후배가 재밌는 그림을 발견했다며 아래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세계각국의 도시들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엠블럼으로 만든것이었다. 어느나라 사람이 보더라도 공감할수 있을 정도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지막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보고 참 묘한 생각이 들었다. 기막히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국가의 이미지가 이래서야 되겠냐는 탄식이 뒤따랐다. 이미지의 출처를 찾아보려고 애썼으나 결국 알아내지 못했고, 다른 이미지는 모두 도시명인데 우리만 국가로 표기된점을 보아 한국의 이미지는 국내 네티즌의 자폭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파트숲과 교회십자가... 안타깝지만 부정할수 없는 우리 도시의 이미지이다. 홍콩의 건축거장 '아론 탄'이 지난.. 2011. 5. 27.
수요일 밤은 아름다운 공연과 함께...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이 맘때가 되면 수요일 밤마다 성산아트홀 어울마당에서 야외공연이 열립니다. 회사와 집이 지척이라 가끔 가족과 함께 산책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곤 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부터 국악, 무용 등 장르도 다양하고 꽤 수준있는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대뒤 도로의 차량들과 행인들로 인해 좀 산만한 면이 없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공연의 딱딱함을 풀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창원시립무용단의 "5월의 춤나들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요. 한시간 가량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휴대전화로 촬영해 화질은 별로지만 공연의 감흥은 어느정도 느낄 수 있을겁니다. 흔히 서울에 비해 지역에서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고 푸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2011. 5.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1910년대의 마산은 1911년 1월 1일을 기해 진해군항을 일제의 해군요새로 보호한다는 구실로 마산항을 폐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합방 일주일 후인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발표한「일한병합에 관한 선언」제4호에서 「종래의 개항장은 마산포를 제외하고는 종전대로 이를 개항으로 하며 다시 신의주도 개항에 추가하여 내외선박의 출입 및 이에 의한 화물의 수출입을 허한다」함으로써 마산의 개항은 종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마산개항의 역사는 11년 8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합방이후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남아있던 각국공동조계지도 해제되고(1914. 3. 31) 마산부(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등 제도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개항이 종료되어 마산항이 대외적으로는 폐쇄되었으나 일제가 필요로 하는 외.. 2011. 5. 23.
마무리 하며 : (10)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맨홀뚜껑 / 공공디자인 공공시설물중에서 "공공디자인의 영역은 이런부분까지 해당합니다~"라고 설명할때 가장 하찮은 공공시설물로서 제시되는 것이 맨홀뚜껑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디자인맨홀뚜껑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현재의 우리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겠지요. 주철로 생상되는 양산품들입니다. 튼튼하기로서야... 하지만 잘 관리되지 않아 훼손된 모습은 아래와 같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디자인의 개념상 반복패턴으로 세련되지 못한것은 아닙니다만, 바뀐모습을 보이기엔, 또는 공공미술적인 요소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 것입니다. 그나마 컬러 맨홀뚜껑으로 나온 것이 다음과 같으며, 다음 통영시의 맨홀뚜껑도 그에 해당합니다. 검색내용중에서 눈에 띄는 사진이 한잔 있었습니다. 경북 디자인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도자로 만든 맨홀뚜껑 .. 2011. 5. 20.
신라 古都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경주하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통해 한번씩 다녀왔던 곳이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문단지 주변 휴양숙소에 들르는 정도일 뿐, 불국사에는 갈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을 하고 갔답니다. 초등학교 때, 약 3-40년 전에 갔었던 기억의 흔적이라도 찾을겸 해서 선후배 동문 건축사들과 지난 4월 말에 당일치기로 갔다 왔습니다. ● 불국사 -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751년)때 지어진사찰이었느나, 조선 선조(1593년)때 왜구의 의해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리고, 일부 건물만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3년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입니다. - 불국사 정문 모습입니다. 원래 사찰 배치에 의해 지어진 것은 아니고 최근에 관리상 만들어진 정문 같습니다. 보통 절에 가면 .. 2011. 5.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오늘부터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간을 다루겠습니다. '일제강점 제1시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1910년 8월 22일, 우리나라는 소위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에 강제 조인하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약은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이름은「한국의 국호를 앞으로는 조선으로 칭함」이라는 칙령 제318호에 의해 다시 ‘조선’이라 불렸고 통치권은 조선총독부가 가졌습니다. 이 조약문이 실효를 발한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일한병합축가'와 '.. 2011. 5. 16.
(9)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볼라드 / 공공디자인 누구나 '개구리 주차'를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도로교통법상의 주차개념이 아니면서 범용화된 주차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불법이지요.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범칙금이 승합차의 경우 5만원, 승용차는 4만원이나 됩니다. 우리 도시의 일상 도로를 다녀보면, 일반적인 이면도로 왕복4차선의 경우, 대부분이 각편도 1차선씩은 불법 주차가 만연합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을 셀수없이 많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의 편의가 우선이 되게 되므로 아무리 '대중교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외치더라도 대중교통이 더 불편한것을 어쩌겠습니까. 더욱이 보도에서 자동차가 사람 다니기 거북할 정도로 불쑥 올라와 있을땐 정말 짜증나기까지 하고, 그자리에 없는 운전자를 욕해대기도 합니다. 교통문제로 화두가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편도.. 2011. 5. 13.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써니’라는 코믹인생드라마입니다. 24년 전에 지은 집을 고치느라 요즈음 제가 좀 부산합니다만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보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괜찮았습니다. 40대 초반 여성들의 여고시절추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이나 상처 등의 진부하거나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써니’라는 여고생서클 출신들의 쾌활한 이야기였습니다. ‘고교생서클’하면 영화 ‘친구’가 떠올라 으레 남학생들의 폭력서클 이야기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써니’는 여학생들 이야기라 조금 색달랐습니다. 성공하였지만 사람사는 재미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 나미, 만년 꼴지 보험설계사 장미, 싸구려 술집 접대부 복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방문교사 금옥, 돈은 많지만 바람피우.. 2011. 5.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7) - 개항이후 개항 직후 시작된 이 도시의 생성과 변화를 31회에 걸친 포스팅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던졌어야할 질문을 뒤늦게 던져봅니다. 그들은 왜 '창원군 외서면 월영리와 신월리 해안'을 개항지로 삼았을까요? 근대 마산의 시작은 개항이었고 개항지는 마산포 남쪽 2㎞지점의 월영리와 신월리 일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였던 이곳은 ‘신마산’이라 불렀고 그들이 부른 ‘신마산’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지로 선택되었던 월영리와 신월리,,,,, 그곳은 마산도시의 최남단으로 지형상 말단부였습니다. 동쪽은 합포만, 서쪽은 무학산이 막아 북쪽 마산포 쪽으로만 시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조건이 이러했슴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조계지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① 외부와의 연결은 물론 당시에 문물교류 루.. 2011. 5.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도시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도시내부의 변화도 많았지만 도시외부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길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동쪽으로 창원․덕산․김해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약 120리 길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 진영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는 국도입니다. 이 길이 1909년 우마차가 쉽게 통행할 수 있는 신작로로 개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넓은 길은 없었습니다.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 수레도 없었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넓은 도로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청일과 러일 양 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군이 개통시킨 군사도로 경의․경인․경원선이 최초였으며 전국적으로 일반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였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도로의 확장공사는 매우 이른 .. 2011. 5. 2.
(8)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쉘터 / 공공디자인 봄볕에 며느리보내고, 가을볕에 딸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봄에 한해농사의 일이 힘들어 며느리를 시키고, 추수는 힘이들어도 수확에 따른 성취감을 맛볼수 있기때문에 딸을 보낸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한, 봄과 가을의 기온은 비슷한것 같으나봄 하늘의 오존층이 얇기때문에 자외선에 더욱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찬란한 봄날'의 햇볕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도시공공시설물에서 파고라가 더욱 필요합니다.물론 무수히 많이만 세워지는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일률화된 우리 도시의 파고라 모습을 보면서외국의 특색있는 파고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독일 만하임 ** 독일 슈투트가르트 **마카오 ** 스위스 제네바 ** 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빌바오 ** 스페인 세비야 ** 스페인 코르도.. 2011. 4. 29.
유적지, 다 막아놓으면 관리는 편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내세울 만한 유적이 별로 없습니다. 일제의 지배와, 전쟁, 산업화등 격변기를 겪으면서 먹고사는 문제외에는 관심을 둘만한 여력이 없었던 탓이겠지요. 하지만 남아있는 유적의 관리가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지역의 역사를 알기위해 애써 찾아가도 겉모습만 보고 돌아올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본디 집이나 물건은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만 제구실을 하고 오래간다고 했습니다. 관리의 편의성만 생각하여 꽁꽁 막아놓는다고 해서 유적들이 과연 온전할까요? 물론 철없는 사람들로 인한 훼손이 염려되기는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사업등의 방식으로 낮시간 만이라도 관리하는 분이 있으면 어떨까요? 탐방객들에게 유적에 대한 안내도 하고, 청소 등 관리도 한다면 훨씬 의미가 있을.. 2011. 4. 2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1910년 경 마산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복원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를 각각 그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도시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토지과세가격과 비교하여 토지등급으로 지가(地價)를 분류해도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남성동(당시 元町) 1번지의 사정토지대장입니다. 노란색 원 안에 등급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등급이 몇 차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복원도의 땅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색깔이 짙을수록 비싼 땅, 번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마산창을 중심으로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 2011. 4.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1910년 경, 일본인들은 마산포의 땅을 얼마나 차지했을까? 사실을 알기 위해 복원도에 나타난 모든 땅의 소유관계를 사정토지대장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붉은 색 표기를 한 토지가 당시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부지입니다. 한일병합 직후에 한국인들의 오랜 터전이었던 마산포에 일본인들이 이처럼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존의 여러 문헌에서는 '비록 일본인들이 신마산은 차지했으나 주민들의 반일의식 때문에 마산포에는 쉽게 진출하지 못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위 도면을 보면 이런 주장들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마산포 주민들의 반일의식과 달리 마산포 요지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일본인들에게 토지를 매도하여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원마산 진출을 가능하게 하였.. 2011. 4. 18.
상상나라 '남이섬' 방문기 지난달 중순경 녹색창원추진위원회 위원들과 공무원 관계자들과 춘천에 있는 남이섬을 답사하고 왔다. 4월 1일 재개장을 한 돝섬의 개발방향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목적으로 갔었다.  ▲ 상상나라 남이섬의 정크아트(Junk Art) ▲ 남이섬 선착장 : 주중이라 외국인들이 많았다 남이섬 CEO인 강우현의 외모는 시골 촌부처럼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첫인상은 봄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 탓인지 야무지게 보였다. 이어진 그의 토론은 시간을 쪼개 쓰려는 듯 거의 달변에 가깝게 속사포처럼 뿜어내었다. ▲ 좌측이 강대표, 서주원 남이섬 환경학교 교장 그의 상상력은 2001년 8월 남이섬에 들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단계에 '섬의 개발방향의 전환' 에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 발굴이야기,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이벤트들.. 2011. 4. 1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마산포가 조선시대 번성했던 포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옛 마산포의 해안선이 현재 도시 속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었습니다. 시사(市史)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서 대충 언급했지만 추측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밝히는 마산포 해안선(海岸線)은 사정지적도(査正地籍圖)와 그 외의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저는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땅을 파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마산포에는 일찍이 두 개의 굴강과 네 개의 선창이 있었습니다. 동굴강과 서굴강으로 불렸던 두 굴강에 대해서는 1964년 『마산시사 사료집 제1집』의 「마산축항지」에서 김준이 그 용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습니다. 「서굴강(西掘江)은 인공(人工)으로 구축된 듯한 방축(防築)이며 여러 파도를 막고 범선(帆船)들이 정박하.. 2011. 4. 11.
최고의 건축술로 만든 동물의 건축 / 인간이 만든 동물모양 건축 2010년 방송영상 그랑프리에서 비드라마부문에 '동물의 건축술'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습니다. 총 3부작으로 제작된 다큐로 동물들이 때로는 사람보다 더 큰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 집을 짓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알포가 만난 동물 건축가(김명호 저, 구름사다리 출판사)"에서도 서평에, '외계인 건축가가 지구로 건축답사를 온다면?'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사람들이 지어만들어온 콘크리트와 철근 덩어리로 만든 건축물보다 흙과 실, 나무, 침 따위로 만든 친환경적이고도 튼튼하며, 그 규모면에서도 곤충(예)들의 초고층 건축술을 가미된 건축물에 더 흥미를 느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작은 벌새가 짜(?) 만들어논 둥지는 가장 작은 집이며, 아프리카 흰개미의 집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해당합니다.. 2011. 4. 8.
오래된 편지 한통 - 마산해양신도시 오래 전에 썼던 편지 한 통을 소개합니다. 가포신항과 해양신도시 때문에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의 담당사무관에게 보낸 8년 전 편지입니다. 편지를 나눈 분은 이후 고위공직자가 되었습니다. *( ) 안은 원본에 없는 글입니다. ○○○ 사무관님께 드립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전화로 시간을 뺏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글까지 보내게 된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마산항(가포신항)의 건설과 서항매립(해양신도시)이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고, 개발의 결과는 현재와 미래의 마산시민들 삶의 질을 결정할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렇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사무관님께서는 전화 통화에서 ‘서항 매립은 항만 건설과 별개(해양신도시와 가포신항은.. 2011. 4.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마산포의 길- 포구를 끼고 발생한 마을의 경우, 마을 규모가 작을 때는 한 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마을 규모가 클 때는 몇 개의 선창을 연결하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형성됩니다. 마산포의 경우는 후자처럼 창원가도(昌原街道)를 중심으로 수계(水系)와 능선 그리고 등고선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얼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회에 올렸지만 다시 한 번 마산포 복원도를 보겠습니다. 남성동 파출소 일대, 즉 조창지 부근지역은 조창과 관련한 관리들 거주지 혹은 조창관련 건물들 탓에 계획된 도로로 보이는 직교격자형이 많았습니다. 이 지역은 한일병합 이후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금융 등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시설을 담당하는 마산포의 중심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인구 증가와 함.. 2011. 4. 4.
1997년 그려진 '마산항 재개발계획'을 보면서 ■ 그간 논란이 많았던 '마산 해양신도시'의 건설방향에 대하여 국토해양부의 결정을 지난 주 창원시가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매립지의 면적을 19만평으로 축소하되, 공공용지로의 개발과 함께 매립면적의 축소에 따른 민간 참여업체의 손실비용 측면을 고려한 개발도 불가피함을 시사하고 있었다. ■ 만약 상업용지와 아파트부지 용도로 사용된다면 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 문제는 매립지의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도심에 미치는 영향이다. 현재 원도심 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립지에 대형상권을 형성되었을 때의 기쇠퇴한 원도심의 상권이 아무리 재생을 한다고 한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매립지에 수 천호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을 때 현재 진행중인 재건축 및 재개발 아파트 개발지역의 사업은 제대로 진척이 될 수.. 2011. 3. 3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지금부터 소개할 마산포 복원도는 1905년-1910년 시기의 마산포 도시상황입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보아 이때 상황이 19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어서 이 복원을 ‘조선후기의 마산포 복원도’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복원도 작성 범위- 복원작업의 범위는 토지의 지목과 형상을 분석하여 주거용지로 사용되었을법한 토지들이 일정한 형태로 집합되어있는 영역으로 결정하였으며, 외곽경계는 가급적 도로로 하였습니다. 설정된 범위는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당시 원마산의 주거용지 경계와 비교하면서 조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도에서 복원한 당시 주거지 영역과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주거지 영역이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복원도 작성 방법- 복원방법은 제가 임의로 착안하였습니다. .. 2011. 3. 28.
(7)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음수대 / 공공디자인 채ㅡ음수대, 말그대로 물을 마실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제 첫 기억의 음수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운동장 한켠에 제가다니던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어느학교를 가던 놓여있던 (당시 말로) '수돗가'였습니다. ** 저보다 어른세대에는 우물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멘트로 마감되고 수도꼭지만 겨우보였던, 말그대로 물만 마실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나마라도 타일로 마감되어 있던 모양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던 곳에 그늘을 드리우는 쉘터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된 구조물로 자리하게 된것이지요. 근래에 학교말고도 공원이나 약수터, 등산로 등지에 '수돗가' 가 아닌 '지하수 음수대'가 마구 마구 생겨났습니다. 모양은 대개가 대동소이하게 아래와 같습니다. 대개는 위와 같지만, 몇몇 다른 변종형태(?)들이 생기.. 2011. 3. 25.
한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각해 본 집의 의미 지난 3월 11일 오전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 모르는 분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진해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라고 하면 '아~' 하실겁니다. 역시 건축가는 이름도 얼굴도 아닌 그가 남긴 건축물로 기억되는가 봅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보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공간은 아무곳에나 철퍼덕 앉아 책을 펼치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합니다. 도서관을 사용할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시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설계를 맡았고, 부산 .. 2011.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