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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3) - 강점제3시기 한 도시를 짧은 말 한마디로 규정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도시는 그 도시의 특유한 자연조건과 문화조건 혹은 대표적인 생산품 등으로 그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목포하면 항구, 진해는 벚꽃 등과 같은 것들을 두고 하는 말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제강점기 마산을 말한다면「술과 꽃의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산지역의 역사에서 술과 관련된 기록이 등장하는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마산지역을 찾은 관료나 시인들의 시를 보면 술과 관련된 작품이 적지 않습니다. 고려의 유명한 시인 정지상은 “푸른 물결 아득하고 돌이 우뚝한데……백년 풍류에 싯귀가 새롭고 만리 강산에 한잔 술을 드네”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시기의 또 다른 이는 “기이한 바위가 바닷가에 우뚝한데 모두들 유선.. 2012. 10. 2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2) - 강점제3시기 마산 최초의 의료기관은 1904년 덕영오일(德永吾一)이 설립한 사립마산병원인데 1925년 도립마산의원으로 변경된 이후 1926년 신축하여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습니다. 다음 사진입니다. 1941년 당시 마산의사회 회원은 12명이었습니다. 이 중 한국인이 운영하는 의원은 삼성의원․학산의원․순천의원과 창동의 동인의원․중앙의원․평안안과의원과 중성동의 대동의원 그리고 수산의원․삼광의원 등 9개의 의원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의사가 경영한 의원은 대곡(大谷)․전원(前原)․수상(水上)의원 등 3개소였습니다. 강점말기 마산의 치과의사는 한국인이 4명이었으며 일본인 치과도 이와 비슷했는데 한국인이 경영하는 치과에 환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강점 말기, 마산에도 방송국이 설립되었습니다. 조선방송협회에서 노비산에 자리잡고 있던.. 2012. 10. 22.
수변공간을 활용한 도시재생 스페인'아반도이바라(Abandoibarra)'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8)수변공간을 활용한 도시재생 스페인'아반도이바라(Abandoibarra)' 마산은 바다를 끼고있는 항구도시이다.동시에 바다를 가장 활용하지 못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가 가진 천혜의 자연유산을 외면하고 방치하고 있는것이다. 산업의 쇠퇴로 마산과 비슷한 처지에 처했던 도시가 수변을 이용해 어떻게 재생하고 부흥했는지 스페인의 빌바오시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빌바오는 1970년대 중반까지 철강과 조선업을 주축으로 한 스페인 최고의 산업중심지이자 항구도시였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유럽의 여느 산업도시들 처럼 산업구조의 변화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낡은공장과 항만시설이 위치한 강변은 일반시민의 출입조차 차단되기에 이른다.  1992년 스페인 중앙정부와 바스크 주 정부가 절.. 2012. 10. 1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1) - 강점제3시기 1941년 간행된『약진마산의전모(躍進馬山の全貌)』와『마산개항백년사』에 게재된 내용에 의하면 1930년대 마산의 교육기관은 공립으로 마산공립중학교․마산공립상업학교․마산공립고등여학교가 있었습니다. 반면 사립으로는 창신․호신․의신학교․마산노동야학교 등이 있었으며 초등교육기관으로서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마산성호공립심상소학교․마산완월공립심상소학교가 있었습니다. 유아교육기관으로는 사립마산유치원과 사립대자유치원 등 몇 개의 시설이 있었으며 종교기관에서 사회교육차원에서 행한 교육시설도 있었습니다. 현 마산고등학교의 전신인 마산공립중학교는 1936년 개설하였으며 입학생의 대다수가 일본인이었습니다. 한국인 학생은 친일파 자제이거나 성적이 우수한 극소수의 학생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몇 년 전.. 2012. 10. 15.
근대도시 목포여행 ● 근대도시 목포를 얼마전에 다녀왔습니다. 목포는 마산과 같이 1987년 개항을 맞이한 도시이기에 유사함 점이 많읍니다. 마산이 동남권 끝단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목포는 한반도의 서남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일제가 한반도를 지배하는 과정에 남해안의 양축 교두보로 삼기 위해 동시에 개항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투어는 도코모모 코리아*(근대건축 보존회)에서 주관한 행사에 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DOCOMOMO 란 ‘DOcumentation and COnservation of buildings, sites and neighborhoods of the MOdern MOvement (근대운동에 관한 건물과 환경형성 의 기록조사 및 보존을 위한 조직)’ 를 줄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20세기의 중요한 조류.. 2012. 10. 1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30) - 강점제3시기 1938년, 전시체제를 총괄하는 기본골격 '국가총동원법'이 제정되어 조선 전역에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으로 일제는 한반도의 사람과 물자 모든 것을 마음대로 유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에 빠졌습니다. 쌀의 자유로운 시장거래를 완전히 중지하고 공출제란 이름으로 빼앗은 후 배급하였으며,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금속식기류까지 공출이란 명목으로 탈취해 갔습니다. 세숫대야 솥 등 가정집에서 갈취한 금속류를 만족한 듯 바라보고 있는 일제관료들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마산항에는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수탈한 쌀가마니가 쌓였고 이 쌀들은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미곡공출을 강요하는 전단지입니다. "한 알의 쌀이라도 더 많이 나라에 바쳐서 귀축미영을 때려부.. 2012. 10. 8.
대규모 맥주공장을 도심재생의 촉매로 만든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7) 대규모 맥주공장을 도심재생의 촉매로 만든 일본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삿포로 맥주공장이 현재의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것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도가 지구주변을 대상으로 '에비스지구 정비계획 기초조사'를 실시하면서 틀을 마련했고 1987년 공장이적지의 재개발구상과 공장의 이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실질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물과 녹지와 정보문화도시를 테마로 구체적인 마스터플랜이 계획되었고 1989년 환경영향평가, 개발허가, 건축설계등을 거쳐 1991년 착공해 1994년 8월에 준공하였다. 이프로젝트가 위치한 에비스지구는 도쿄의 대표적인 부도심인 시부야지구에 인접한 지역으로 맥주공장으로 인해 오랜기간 주변지역이 침체해 있었는데 본 프로젝트를.. 2012. 10. 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9) - 강점제3시기 강점 후기의 조선인 말살 정책에 대해 간단히 몇 자 적습니다. 마산도시변천에 대한 글이라 정치사회변화에 대해서 말한 입장은 아닙니다만 도시변화가 사회변화와 별개의 것이 아니니 간단히 당시 분위기만 적습니다. 1929년에 불어 닥친 세계적인 경제공황은 일본을 완전한 군국주의의 길을 택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압제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특히 제7대 총독으로 취임한 남 차랑(南 次郞, 미나미 지로)은 재임 6년 동안 철저하게 한민족 말살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에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전시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소위 황국신민화정책을 폈습니다. 1938년부터 각 급 학교에서 조선어 교육을 폐지시키고 일본어만 사.. 2012. 10. 1.
거대한 가스저장고를 미술관으로 - 독일 오버하우젠 가소메터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6)거대한 가스저장고를 미술관으로 - 독일 오버하우젠 가소메터 독일의 루르지방은 지난번에 소개한 환경공원이 있는 뒤스부르크, 폐광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에센과 오버하우젠 등 대표적인 산업도시들이 밀집해있는 지역이다. 한때 번성했으나 산업의 변화로 도시가 쇠락하는 비슷한 상황을 맞았고 도시를 살리는 방법 또한 산업에서 찾아내었다. 오버하우젠에 있는 유럽최대규모의 가스저장고는 1929년 철강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저장, 배출하는 시설로, 높이 117.5m, 둘레 67.6m, 저장공간 34만7000㎥, 면적 7000㎡ 규모로 조성됐다. 2차세계대전 당시 폭격, 화재 등을 겪은 기념비적 산업시설로 가동됐지만 에너지 공급방법의 변화에 따라 1988년 문을 닫았다.. 2012. 9. 27.
다양한 매력을 품은 합천 황매산 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씩 산을 오르곤 하는데, 아무래도 집 가까이 있는 정병산이나 무학산을 자주 찾게됩니다. 나름대로 명산들이지만 워낙 많이 오른탓에 익숙해져서 인지 경치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습니다. 차를 타고 한두시간만 나가도 지리산을 비롯해 가야산, 운문산등 풍광이 빼어난 산들이 많습니다만 게으름탓에 쉽게 나서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던차에 경남도민일보에서 합천으로 1박2일 블로거 팸투어를 떠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말그대로 블로거들이 답사를 해보고 소감을 생산해 내는 형태의 여행입니다. 팸투어에 참여해본적도 없고 낯선분들과 1박의 부담도 있었지만, 코스 중에 황매산 모산재가 있기에 흔쾌히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두 번 정도 갔었던 황매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주말까지 일하는 습.. 2012. 9. 2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8) - 강점제3시기 『마산상공회의소 백년사』에는 1939년 현재 마산에서 활동한 개인 영업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제조업과 운수업 등은 제외한 통계입니다. 이들 개인영업자 중 한국인 상인들은 주로 원마산 중심상가와 부림동 시장 및 남성동 해안 일대에서 곡물, 면사포 등의 포목류, 해산물, 식료품, 고무신 등 생활필수품을 많이 취급했고 대금업도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상인들은 주로 건축자재, 철물, 과장, 서적과 문방구, 가구, 의복, 술과 고기, 연료, 선구(船具) 등을 판매했고 대금업도 10여명 정도 되었고 토건청부업도 있었습니다. 자료에 나타난 개인영업자의 숫자는 232명이며 영업장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이용해 232개의 영업장을 원마산․신마산․중앙마산으로 나누고 다시 각 동별로 나.. 2012. 9. 24.
'태풍 산바'가 지나고 난 뒤 풍경 ● 태풍이 왜이리 자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 역사상 우리가 알만한 태풍의 기록을 살펴보면 1959년 9월 11일 발생한 '사라호 태풍'으로 당시 중심 최대풍속이 85m/s로 이로 인한 사망 및 실종 849명으로 한국에서 재해 기록이 이루어진 1900년도 이래 당시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합니다. - 다음으로 우리지역 마산에서 2003년 9월에 발생한 '태풍 매미'입니다. 당시 인명피해 130명이 발생하여 마산지역이 전국의 뉴스 포커스에 오르기도 하였읍니다. 올해만 해도 '태풍 볼라벤'에 이어 일주일 만에 '태풍 산바'가 우리지역을 거쳐 지나갔습니다. ● 태풍 산바가 지나간 다음날 아침 수출자유지역 해안로를 따라 출근하는 중이였읍니다. 해안로 도로확장을 위해 물막이 공사벽 옆에 설치한 오탁방지망 튜브.. 2012. 9. 1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7) - 강점제3시기 1920년 조선회사령이 철폐 후 마산에 들어오기 시작한 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분야는 섬유산업이었습니다. 1923년에 설립된 마산조면공장과 1927년에 설립된 태전마산공장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섬유산업의 발전가능성을 간파한 마산상공회의소는 1930년대들어 적극적으로 섬유산업 유치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 조선물산주식회사, 조선신흥방직주식회사 등 대형 섬유공장이 마산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주류양조산업과 섬유산업의 두 축이 마산의 대표산업으로 자리를 잡게된 것입니다. 1930년대 이후 마산에 들어 온 대표적인 두 섬유회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1939년 설립된 조선물산주식회사입니다. 오동동 2,200평 부지를 매입하여 건평 1,000평의 공장을 건설한 이 회사는 「낙낙직(樂樂織)」이라고 부른 특수.. 2012. 9. 17.
'진해근대문화유산연구보존회'가 출범하였읍니다. ● '진해근대문화유산연구보존회'창립총회에 참석하였습니다. - 어제(9월 11일 화요일 오전 11시) 진해지역에서 의미있는 시민단체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간에 진해'흑백다방 살리기' 모임으로 시작된 근대건축유산 보존운동이 본격적인 시민들의 모임으로 결성되어, 구체적인 사업을 실천할 수 있는 단체로 출범을 하게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을것 같습니다. - 축하를 위해 참석하신 분들은 진해향토사학의 개척자인 황정덕 선생님, 마산영상자료관 관장님인 이승기 선생님, 창원향토사료관 관장이신 사진가 양해광선생님, 녹색경남21 추진협의회 전점석 회장님과, 최근 진해근대사에 관심이 많으신 허정도 박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그외에도 김씨박문관의 김현철 관장님, 소사마을에 '갤러리 마당'에서 작업을 하시는 박배덕 선생님외 여러분.. 2012. 9. 1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6) - 강점제3시기 강점 제3기 마산의 산업 중 상업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시장입니다. 마산의 시장은 1924년 개설한 원마산의 부림동공설시장과 1923년 신마산에 개설된 반월동공설시장 외에 구마산 어시장․신마산 어시장․우시장․신마산청과시장이 있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1937년경 부림시장 전경입니다. 그리고 1930년대 들어서 마산해산주식회사(1940년)와 부림동(富町) 부영(府營)청과시장(1941년)이 전 강남극장 앞에 개설되었습니다. 1931년 경상남도가 펴낸 통계연보에 의하면, 당시 마산에서 법인으로 등록된 회사는 주식회사 20개와 합자회사 5개로 총 25개가 있었는데 그 중 한국인이 소유한 회사는 8개였습니다. 1940년에는 법인조직으로서 마산에 본사를 갖고 있던 기업체는 주식회사 21개사․합명회사 2개사․합자.. 2012. 9. 10.
진해 군항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코스는 어디가 좋을까요? 지역내에 잔존하고 있는 근대 역사문화 유산을 보존하고 체계적으로 정비해나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잘만 된다면, 역사적 가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벚꽃축제할적만 붐비는 진해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비슷한 여건의 타 도시들도 벌써부터 활성화되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관심이 시작된 곳도 있습니다. 주요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인천 ‘개항 누리길’ - 인천개항박물관, 근대건축전시관, 차이나타운(짜장면박물관), 한국이민사박물관,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빈민촌 모둠살이) 등 ○ 대구 ‘근대路(로)의 여행’ - 선교박물관(선교사주택),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김수환추기경 사제서품, 박정희 전대통령 결혼식), 이상화고택, 근대문화체험관계산예가 등 ○.. 2012. 9. 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5) - 강점제3시기 1904년에 한목단(寒牧丹)이라는 상표를 가졌던 아즈마(東)주조장을 시작으로 마산에는 일찌감치 양조산업이 들어왔습니다. 한목단(寒牧丹)이라는 상표를 가졌던 아즈마주조장은 나중에 원전(原田)주조장으로 회사명을 바꿨는데 현 경남대 정문 앞, 옛 일성펌프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 1930년대 중반의 원전(原田)주조장입니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마산양조산업은 1928년 그 생산량이 11,000석으로 늘어 10,000여석을 생산한 부산업계를 제치고 드디어 국내 지역별 술 생산량에서 제1위를 차지했습니다. 마산청주업계의 호황은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생산량이 해마다 증가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와 중국에 까지 그 이름을 떨쳤고, 1938년에는 양조량이 20,000석을 넘었습니다. 마산의 청주업자 조합에서 현 제.. 2012. 9.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5)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탄광 독일 에센의 졸퍼라인  독일의 근대 산업화를 이끈 공업도시들이 모여있는 루르지방에 에센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전에 소개한 환경공원이 있는 디스부르크가 철강도시라면 에센은 탄광도시이다.에센북쪽지역에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졸퍼라인이라는 탄광이 있는데 한때 하루 1만2천톤의 석탄을 생산했던 독일 최대의 광산이었다.  산업시설이면서도 특이하게 유능한 건축가들이 설계에 참여하여 규모나 생산성과 더불어 건축적 미학을 지닌 구조물로 인해 유럽의 대표적인 탄광으로 호황을 누렸다.하지만 쇠퇴의 길로 접어든 석탄산업은 1986년 졸퍼라인 탄광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일반일의 접근이 금지된채 10여년간 방치되었다. 그러다 한 개발회사가 이지역을 사들여 시설물을 철거.. 2012. 9. 1.
중국 광저우 오페라하우스 지난 봄 학교 연구실에서 중국 광저우에 건축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해 항주,상해를 갔을때도 느낀것이지만 중국의 건축은 이미 우리나라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있지만 공공건축물과 중심업무지구 등은 투자를 아끼지 않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 광저우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설계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작품입니다. 자하하디드는 이라크출신으로 건축계의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건축가이고 뛰어난 소품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이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광저우 오페라하우.. 2012. 8. 2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4) - 강점제3시기 무역량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는 것 같아 빼다보니 글이 짧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후 일제가 중국대륙으로 진출하면서 병참기지 기능을 맡았던 한국의 역할은 마산의 무역량을 늘이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0년대 마산항의 무역은 그 구조상 1920년대와 별 차이가 없이 수․이입에 비해 수․이출의 금액이 훨씬 많았습니다. 전체금액은 1930년의 730만 엔에서 1939년에는 1,770만 엔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였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이후 마산항의 무역 증대는 정상적인 무역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에 필요한 제반물자의 반․출입 증가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제하 마산항의 수․이출, 특히 미곡의 일본 반출량 증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굶주림을 강요한 결.. 2012. 8. 27.
문닫은 공장을 환경공원으로 바꾼 독일 디스부르크 랜드스케이프파크(landschaftspark)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4)문닫은 공장을 환경공원으로 바꾼 독일 '디스부르크 랜드스케이프파크'(landschaftspark) 독일 서부 인구 50만 명의 도시 디스부르크는 전후 독일의 부흥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공업도시였다. 하지만 요즘은 자연이 살아있는 유명한 환경도시로 변신하였다.  이 놀라운 변화 뒤에는 공장을 공원으로 재생시킨 '뒤스부르크환경공원'이 있다.  어찌보면 정반대의 환경인 공장이 어떻게 공원으로 변신하게 되었을까?   이곳은 원래 독일 최대의 철강회사인 '티센'의 제철소가 있던 곳이었다. 1901년에 부터 독일 철강산업의 주축을 담당했던 곳이지만 철강산업의 쇠락과 시설노후로 1985년 문을 닫는다.한일합섬이나 한국철강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의 도시였다면 재개발 해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 2012. 8. 25.
창동예술촌에 있는 80년된 막걸리 양조장을 찾아서 ● 창동예술촌 안에서 막걸리 술도가를 찾다. - 창동예술촌이 개장된 후 사진을 찍으러 몇차례 골목길을 탐방하다가 골목 주택안에 높이 솟은 빨간벽돌 굴뚝을 발견하였었다. 필시 무슨 공장이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 개인적으로 마산의 술공장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것이 있어서, 지번도를 대조해보니 술공장이 틀림이 없었다. 게을러서 언젠가 해야지 하고 미루어 두었는데, 이제사 간단히 정리를 해본다. - 우선 마산의 탁주 양조장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마산 탁주 양조장의 역사 탁주, 약주는 소위 우리 한민족의 국주로서 구 한국시절에는 가가호호 임의로서 양조 하였으나, 일제의 침탈기에 주세를 걷을 목적으로 개인 막걸리 양조장을 면허제로 하였다. 1928년에 당시 마을에 하나씩 있는 막걸리.. 2012. 8. 22.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3) - 강점제3시기 강점 제3시기에는 마산의 인구도 많이 변했습니다. 1930년에 25,810명이던 것이 1941년에는 41,546명이 됨으로써 증가율이 161%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 한국인이 20,149명에서 35,670명 177%가 늘어난 데 비해 일본인은 5,559명에서 5,865명 105.5%로 변화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을 제외한 기타의 외국인은 102명에서 11명 10.8%로 심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사진은 1930년대 한국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등학교)와 일본인들이 다녔던 마산공립심상고등소학교(현, 월영초등학교)입니다. 1930년 이후부터 해방 때까지의 인구 변화는 다음 표와 같습니다. (1944년의 54,000명은『통계연보』를 인용한 표를 이용했는데 천 단위 이하는 삭제되어 있었으며.. 2012. 8. 20.
쌍용양회 사일로에 상상력을 입혀보자!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3) 쌍용양회 사일로에 상상력을 입혀보자!  ↑ 암스테르담 사일로 재활용 공모전에 출품된 아이디어작품  마산 해안도로변에 우뚝 서있는 쌍용양회 사일로는 1977년에 세워진 시멘트저장고로 현재는 기능을 다하고 방치되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아파트 주민의 다수는 조망권을 이유로 철거를 원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재활용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기능을 다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도시의 흉물로 방치되는것 보다는 철거하는 편이 낫겠지만, 잘 활용한다면 도시의 명물이 될수도 있다. 건립시기가 근대라고 부르기엔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30년 넘게 산업시설물로서 제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산업유산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돈을 들여도 얻을수 없는 역사성을 품고 있고, .. 2012. 8.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2) - 강점제3시기 일제가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해 고시 제556호로 발포한 마산의 시가지 계획은 구역면적 43,287,000㎡, 계획인구 80,000명, 목표연도는 1961년까지, 내용은 가로개설 및 구획정리였습니다. 계획인구 8만명, 목표연도 1961년이라는 일제의 계획을 보니 어떻습니까? 이 고시가 발포된 시기는 1941년 4월 19일이었습니다. 발포시기와 달리 마산은 1936년과 1938년에 가로(街路)축조공사를 이미 시행하였는데 이 공사도 「조선시가지계획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추정됩니다. 도시사학자 손정목(사진)은 「조선시가지계획령」 분석을 통해 원마산 지역은 1920년대에 총독부의 재정 지원으로 실시한 시구개정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신마산 지역은 시구개정을 하지 않았지만 개항장을 조성할 때 비교적 도.. 2012. 8. 13.
폐기된 가스저장소를 아파트로 재생시킨 놀라운 상상력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2)폐기된 가스저장소를 아파트로 재생시킨 놀라운 상상력 - 비엔나 가소메터 주거단지  1870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건설한 사회기반시설인 가소메터는 비엔나시의 가정과 가로등에 가스를 공급하던 가스저장소이자 공장이었다.도시에 천연가스가 공급되면서 1986년 가동이 중지되었고 내부요소들은 해체된채 외양만 남게되었다.  간혹 문화행사등의 장소로 활용했지만 마땅한 용도를 찾지못해 도시의 애물단지로 남게되었다.  시는 건축전문가들과 함께 호텔이나 박물관 등으로의 개발계획을 시도했지만 해결방안을 찾지못했고, 고민끝에 주거공간을 포함시키는 것을 대안으로 모색하였다. 130년 전에 만들어진 산업시설물이 아파트라는 전혀다른 생활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것이다. 1,600t 무게의 강철원형지붕을 떼어.. 2012. 8. 10.
무더운 여름, 도시전체가 물놀이터로 변신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 소식과 예비전력에 대한 기사가 쏟아집니다. 그 키워드들은, 어느 뉴스에서나 '무더위', '폭염', '기승', '극심', '찜통' 등 비슷합니다. 그나마 상업시실로 물놀이 시설을 갖춘 곳의 광고나 해수욕장, 계곡 등의 피서지가 시원한 사진을 담는 가운데, 도심내에서 물놀이를.. 게다가 "공짜"로 즐길수 있는 곳이 도시가 있습니다. 성남시가 그 주인공으로, 탄천, 공원, 동네놀이터 등에 물놀이장 20곳을 개장하여 9월2일까지 무료로 시민에게 제공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탄천내 물놀이장은 태평동, 야탐동, 맨돌공원, 정자동, 금곡동 물놀이장 5곳이며, 그곳에는 휴게그늘쉼터, 샤워시설, 간이매점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공원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은 희망대공원, 단대공원, 영장공원.. 2012. 8. 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1) - 강점제3시기 마산은 192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구조 변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30년대에 이르러 전쟁으로 인한 군수물품 공급창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들이 원인이 되어 해안 전역에 걸쳐 대규모 매립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1920년대 중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중앙마산이 완성됨으로써 이전까지 공간적으로 나누어져 있던 두 도시가 하나의 도시로 연담화되었으며, 원마산은 철도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범역이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계획법은 1934년 6월 20일자로 만들어진「조선시가지계획령」입니다. 이보다 앞서 1920년에 시가지계획령을 입안한 일이 있으나 시기상조란 이유로 폐기되어 버렸습니다. 도시계획과 관련한 법제 중 가장 이른 것은 한일병합(1910) 이전에.. 2012. 8. 6.
빨간벽돌 창고를 매력적인 문화.쇼핑공간으로 재생시킨 요코하마 아카렌가창고 도시를 바꾼 열가지이야기Ⅱ(1)빨간벽돌창고를 매력적인 문화.쇼핑공간으로 재생시킨 요코하마 아카렌가창고 요코하마 아카렌가창고(yokohama-red-brick-warehouse)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부지에 위치한 빨간벽돌 건물로 전시장, 공연장 등 문화시설을 갖춘 1호관과 잡화점, 레스토랑등 상업시설을 갖춘 2호관 두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미나토미라이21 부지는 과거 미쯔비시조선소, 다카시마 부두, 요코하마 철도역등이 위치해 수도 도쿄의 배후도시로서 물류전진기지역할을 수행했던곳입니다.조선소를 옮긴 자리를 비롯한 해안일대에 요코하마를 독립적으로 발전시키고 수도권의 기능을 분담하는 지구를 계획하면서 요코하마시는 '도시정체성'을 부각하는 전략을 세웁니다. 중앙지구의 고밀도 개발전.. 2012. 8. 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오늘부터는 1930년부터 1945까지 15년간을 올리겠습니다. '일제강점 제3시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이 시기는 일제가 대륙침략의 야욕을 드러낸 1931년 만주사변으로부터 일제가 패망한 1945년까지로 전쟁수행을 위해 한국을 병참기지화한 시기입니다. 1929년 10월 미국에서 발발한 경제공황은 자본주의 세계 전반에 파급된 대공황이었습니다. 대미무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던 일본 경제도 여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업생산이 위축되고 임금체불 노동자의 대량 해고로 노사 간의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었고, 그 여파가 농촌에까지 이어져 몰락하는 농가가 속출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일본자본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931년 .. 2012. 7.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