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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윤의 <마산야화> - 27. 미잠수정 출몰, 28. 조언 단속법 27. 미잠수정(美潛水艇) 출몰 1941년 일본의 대미 선전포고를 며칠 앞둔 12월 모 일, 청진과 일본 쯔루카(敦賀) 사이의 정기 연락선 게히마루(氣比丸)가 청진 출항 얼마 후 로영(露領) 블라디보스톡에서 부설하였던 기뢰(機雷)에 접촉 침몰하여 승객 백수 십 명이 몰살되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사이라 하여 한 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으며 소련 역시 반구의 진사(陳謝)도 없이 이렁저렁 끝맺고 말았다. 이 배의 승객 중에 경도제대의 철학과 일본인 학생이 있었는데, 당시 대판 조일신문에 게재 소개된 그의 수기인 즉 ‘생과 사는 표리가 동일하다’는 내용인바, 배는 해저로 내려가는데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종용(從容)히 최후를 마친 그의 유서였었다. 이 해상 사고 후 일본 철도성.. 2015. 6. 29.
김형윤의 <마산야화> - 25. 기독교인과 마산신사, 26. 도리이를 닮은 문 25. 기독교인과 마산 신사(神社) 일본인 추방무골(諏訪武骨)옹의 마산항지(馬山港誌)에 의하면 현 문화동의 높은 자리에 위치하였던 마산 신사는 1909년(원문에는 1910년으로 되어 있음 / 옮긴 이), 즉 명치 42년에 창건된 것이다. 정전(正殿)에는 천조(天祖)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모신 곳이며 경내 우측에는 도하대명신(稻荷大明神)을, 그 곁에 사당은 주호신(酒護神)을 모신 송미신사(松尾神社)를 건조하여 경신(敬神)관념을 숭양(崇養)해 왔는데 신관(神官)으로서 발령된 사람은 고등관 3등의 수자춘충(須子春忠)이었다. 아침 미명 때를 기하여 일본인 노소남녀가 앞을 다투어 박장(拍掌) 참배하는 것은 그들의 경신(敬神)하는 정신적 관례이지만 일인 아닌 조선인의 별의별 각설이와 풍각쟁이 같은 아유배(阿諛輩) .. 2015. 6. 22.
김형윤의 <마산야화> - 23. 203고지의 거포, 24. 돝섬의 위장 적기 23. 203고지의 거포(巨砲) 마산 신사(현 제일여중·고) 정문 앞 공지에 녹슨 대포 일문(一門)이 거치되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해방된 몇해 안가서 포대와 동시에 흔적이 없다. 이 대포는 1904년에 발발한 일로(日露)전쟁시 일본 최고의 군벌인 대산(大山), 내목(乃木) 등 원수급에 의하여 일본 조병창에서 건조, 군함으로 여순항에 인양하여 격전장이던 203고지에서 공을 세운 것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마산만 입구이며 중포병 대대 입구 까치나루(鵲津) 산정에 두었다가 1935년 대대장이던 굴구중좌(掘口中佐)가 마산부에 기증하였던 바, 부 당국은 이것을 전기 장소에 이전 거치함으로써 마산만을 일모(一眸)에 보고 일본의 군국주의 사상을 환기했던 것인데, 그대로 보존해 두어서 하등 해될 것도.. 2015. 6. 15.
김형윤의 <마산야화> -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22. 철도 이야기 21. 간판칠갑의 사무소 마산에 간판 많기로 이름난 점포는 신마산 함흥집 자리의 석견옥(石見屋)이라는 신약 도매상이었다. 간판을 보면 대학목약(大學目藥), 미안수(美顔水) 하루나, 대전위약(大田胃藥) 등을 비롯하여 장방형의 작은 간판이 20여 개나 되었는데, 제내과(諸內科) 자리 건너편 3층 건물로 신축 이전 후에는 없어졌고, 본래 점포에는 ‘고마야’라는 상호의 오복점(吳服店)이 들어 앉았다. 몇해 후에는 민의소 건너편에, 즉 지금의 중앙병원 자리에 노농동우회(勞農同友會)와 조선일보 지국이 자리잡고 난 뒤로는 대소 간판이 십 수개가 붙었는데 기억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노농문고(서적 대부분이 ML당원 김형두의 장서), 무산자신문(日共의 佐野學 主宰), 민중신문(일본의 赤松克磨 주간), 혜성사진(彗星社進.. 2015. 6. 8.
김형윤의 <마산야화> - 19. 풀먹은 총순, 20. 쌍사슴표 성냥 19. 풀(糊) 먹은 총순(總巡) 마산 본주민으로 우리가 유시(幼時)부터 알기로는 총순(總巡)이라 칭하는 사람이 두 분인데, 한 분은 한부성 친부(親父)인 한총순과 정성호 친부(親父)인 정총순이다. 그런데 확실히 기억 안 되나 한성(서울) 경무국에서 출장 온 총순 한 분이 마산경무청(위치=현 구마산 오처탕 위의 공설시장) 청사(廳使 / 使童)에게 위장이 좋지 못하다 하여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미음을 끓여오라 하였다. 총순은 출발 차시간이 급박하였다. 명령을 받은 김응도(故)는 번개 같은 꾀가 났다. 그때는 다 엽전을 쓰던 때다. 엽전 두 푼(百푼이 일원)어치의 풀(糊-그때 풀은 쌀임)에다 설탕을 섞어서 끓여다 진상하였더니 총순 어른은 풀인 줄이야 알 턱 없이 신속하고 맛이 좋게 끓였다 하여 사환 김응도에.. 2015. 6. 1.
김형윤의 <마산야화> - 17. 요사한 유학생들, 18. 바산을 마산으로 17. 요사(夭死)한 유학생들 마산 학생으로서 청운의 대지(大志)를 품고 급(笈)을 지고 동양의 신문화 도시 동경에서 유학 중 제4기쯤 될까? 재학생으로 이역에서 요절한 학생은 황갑주 2남 황희찬이다. 황은 경응의숙(慶應義塾) 대학생으로 하기 방학 때면 유학생 야구단의 1루수로서 활약한 바 있었는데 악성면정(惡性面疔)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사망한 것을 필두로, 명치대학 전문부 법과생 옥용환은 급성 맹장염으로 역시 동경 우거(寓居)에서 사망, 경응의숙대학의 김창재, 산구고상(山口高商)의 강우정, 그리고 중앙대학 법과의 구연혁은 식중독으로, 조도전(早稻田)대학 특대생 이상수는 장질부사로 사망하여 한때는 동경 유학을 주저하기도 하였으나 이들은 모두 수재들로서 국가 장래를 촉망하였으나 지금 생각하면 애석하기 이.. 2015. 5. 25.
김형윤의 <마산야화> - 16. 공중욕탕 16. 공중욕탕 60여년 전 인구 2만을 넘지 못했을 때 신·구마산의 공중 욕탕을 손꼽으면 신마산 일인촌에 불로탕(不老湯), 앵탕(櫻湯), 구마산에 상반탕(常盤湯), 명호탕(鳴戶湯), 오동동에 조선인이 경영하던 곳이 고작이었다. 40여 년 전에는(구마산의 3개 탕은 폐업) 오처탕(吾妻湯), 오동동 입구 오동탕(午東湯) 그리고 현재 청락탕 자리(마분'馬糞'저장소)에 웅천 사람이 탕업을 차린 조일탕, 남성동 매립지에 소금탕, 현 철도 PX 이웃에 일인이 경영하던 곳과 철도 합숙과 기관구에 직원용의 큰 욕탕은 현재도 있다. 공동탕의 입욕료는 대인 5전, 소아는 3전에서 1전 5리까지며 월정을 하고 매일하는 사람은 1월 5전으로 4, 5전의 덕을 보게 되며 이웃 사람에게는 온정을 베풀어 무료 제공인바, 이것은 .. 2015. 5. 18.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 B29의 맹위, 15. 학병의 출진 14. B29의 맹위 그라만 함재기가 수십편대로 동경 천지를 저공으로 전주 사이를 날아다니며 곡예식으로 맹습한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암타(暗打)한 131일만인 1942년 4월 18일인데, 그로부터 오랜 침묵을 지켜오던 연합군 측의 소위 대공의 요새라는 B29기가 행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으로서 중국 성도에서 이륙, 마산의 무학산정을 거쳐 천자봉을 경과, 일로(一路) 일본 본토를 진공하였는데 처음 마산 상공에 나타난 것은 한여름 오후 9시경. 어스름 달밤에 가는 비가 내렸다. 이로부터 한반도 상공으로 B29기가 통과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이것들이 통과하고 나면 일본 각 도시는 소이탄(燒夷彈)과 폭격으로 날로 초토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무사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 다소의 피해가 있었으니 마.. 2015. 5. 11.
김형윤의 <마산야화> - 12. 중학교유의 익사 13. 민족의 제전 상영금지 12. 중학교유(中學敎諭)의 익사 마산 공설해수욕장은 원산의 명사십리에 못지 않는 곳이다. 물결이 잔잔하면서 차지 않고 멀리까지 얕았으며 깔려있는 모래가 깨끗하고 해변은 철도공지에 창창한 송립이 쭉 늘어져서 문자 그대로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경치였던 것이다. 매년 7월 13일에 개장이 되면 각 지방의 피서객과 수영 훈련차 학생단체 등이 쇄도한다. 이 학생 훈련생들은 연중 정례로 오는데 2,3년 계속하여 온 학교 중에는 대구 의전생(醫專生)과 대구 중학생은 수영 감독 겸 지도하는 선생이 인솔하였다. 1928년(소화3년)경에 십수 명의 대구 중학생 중 두 명이 수영을 하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목격한 인솔 선생이 무아무중(無我無中)으로 뛰어들어 난을 면케 한 것은 다행한 일이었으나 구제해 준 선생은 심장마비.. 2015. 5. 4.
김형윤의 <마산야화> - 10, 양악대 11, 감전사 제1호 10. 양악대(洋樂隊) 마산부내에 양악대가 시초된 것은 1911년 전후라고 기억되는데 현재 신마산에 자리잡고 있는 마산극장 위편 모 상점 자리에 일본인이 경영한 안부(安部)양복점이 있었다. 여기에 악기를 일본에서 구입하여 활동사진이나 일본 연극단체의 선전으로 신·구마산을 일주하면서 점원들의 후생사업을 하여 왔던 것이다. 그 뒤 몇 년이 지나서 마산 사립 창신학교에도 7인조 양악기를 구입하여 고등과 학생에 한해 연습케 하였는데 총지휘자는 안부(安部)양복점 주인과 직공 몇 사람이었고, 교습을 받은 생도들은 박군현(팔룡), 김인숙, 황장오, 김필석, 김영근, 박성우, 최사규, 김정기, 김상기, 강을렬, 박진우 등 제씨로 기억된다. 이들 창신학교 학생 밴드대는 교내 춘추 대운동회 때는 취악(吹樂)을 하여 선수 .. 2015. 4. 27.
김형윤의 <마산야화> - 8. 말띠 여성의 수난 9. 극장 순례 8. 말띠 여성의 미신 본시 우리 민족 간에는 없던 미신 하나가 이 땅의 여성계에 정착했으니 말띠 여성의 숙명론이다. 이것이 일본에서 건너온 미신인데, 그 근원을 캐어보면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일본 여성들이 크게 기(忌)하는 이 ‘말띠’는 ‘병오생(丙午生)’에 한한 것이지 다른 말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데, 이 병오생의 처녀가 시집을 가면 신랑을 잡아먹든지 아니면 결혼 얼마되지 않아서 상부(喪夫)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숙명론이 퍼지게 된 근원을 캐어보면 이러하다. 일본 강호(江戶, 지금의 동경)의 한 반찬 가게 집에 오시찌(於七)라는 딸이 있었는데 이 딸이 방화범이 되어 강호(江戶)의 군데 군데에 불을 질러 주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된 일이 있었다. 이 오시찌가 병오생이었는 데서 미신의.. 2015. 4. 20.
김형윤의 <마산야화> - 6. 인단과 유성기 7. 창가 6. 인단(仁丹)과 유성기 일본 대판에 제조공장과 본점을 둔 국내 향료로서 발매된 ‘仁丹’은 경영을 ‘森下 博’이 처음에 근소한 자금으로 시작한 것이 의외에도 동남아와 조선은 물론 얼마 안가서 만몽(滿蒙) 전역에까지 판매망을 석권하였다. 초기에는 글자 그대로 녹두만한 크기에 붉은 색이며 백립(百粒)에 10전이었다. 이것을 집시풍의 일본인들이 이 나라에 돌아다니며 가두 선전은 않고 밤을 이용하여 각 가정을 방문코 유성기(축음기)를 틀어 손님을 모은다. 음반은 조선인으로 제일 먼저 취임했다는 박춘재 재담에 몇 종의 조선노래를 틀어서 이런 신기한 것을 처음 듣는 중년 남녀의 마음을 흥겹게 한 뒤에 본격적으로 거짓말 투성이의 효능을 시부렁거린다. 두통, 치통, 위장병, 신경통, 피로 회복, 악역(惡疫) 예방 등.. 2015. 4. 13.
김형윤의 <마산야화> - 4. 선교사의 박애심 5. 사기 비행사 4. 선교사의 박애심 앞(지난 주)에서 말한 도변(渡邊)이란 포주의 창녀 최모 양이 포주와 항쟁하여 자신이 해방되기 12년 전의 얘기다. 역시 같은 동네에 명월루(明月樓)라는 유곽이 있었는데, 이 포주는 명치 41년 경에 구마산 서성동(町名 시행 전) 해변에 목조 2층을 짓고 일본에서 창기(娼妓)를 모집해 온 젊은 청년으로서 이름을 길천(吉川)이라 하였다. 이 길천이는 불시에 화재를 당하여 유곽을 날려버리고 다시 남성동에다가 덩그렇게 2층 화식(和式) 건물을 지어 창녀업을 운영해왔으나 이번에는 부채로 실패,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격으로 이번에는 다시 수성동에 규모를 축소, 목조 단충으로 소자본에 알맞게 가난한 농촌 여식들을 싸게 사서 운영을 해보니 과연 지출은 적고 수입은 느는 편이었으며 이곳을 찾아오.. 2015. 4. 6.
영국도시이야기 39(마지막회). 온천휴양도시 '바스' ♬ 로마시대에 온천마을로 번성했던 바스는 '목욕'을 뜻하는 단어 Bath의 고향에 해당되는 온천도시의 이름입니다. 18세기에는 상류계급이 모이는 고급 리조트지역으로 번성했었으며, 지금은 관광도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이 바스교회(Bath Abby)와 인접하여 광장(Abby Church Yard), 그리고 대목욕장 '로만바스(The Roman baths)'가 유명합니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곳에 인접한 반달형 공동주낵으로 알려진 '로얄 크리센트(Royal Cresend)' 가 볼만한 건축물입니다. (가로풍경) (바스강 하류에 있는 댜목적 레저시설인 바스파빌리온) ♬ 현재의 바스 : 광천수의 효는덕분에 온천장으로 발전하였으며, 온천도시로 알려진 이후에도 직물도시로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직물.. 2015. 4. 2.
김형윤의 <마산야화> - 2. 변태성 고리업자, 3. 포주의 횡포 2. 변태성 고리업자 시내 서성동(幸町) 일인 간수(看守)부락에 천기(川崎) 모(某)라는 60대 고리대금 업자가 있었다. 집에는 6개월 혹은 길면 1년마다 젊은 여자가 교체된다. 직업은 조선인을 상대하는 고리대금업이다. 일본 은어(隱語)로 고리업이나 창기업(娼妓業) 혹은 호색자(好色者)를 시계의 4시 40분 혹은 8시 20분이라 하여 위의 눈꺼풀이 좌우로 처진 때문에 그들을 꼬집어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천기(川崎)의 눈도 그러하였다. 피부 빛깔은 검붉어서 고리업자로서 일목(一目) 직감된다. 고리업자나 전당업자는 일본인, 조선인 할 것 없이 음음(陰陰)함은 상통하여 채무자가 기일을 어길 때는 인정사정 헤아리지 않고 즉각 법적 행동을 취한다. 그런데 천기(川崎)의 경우는 다르다. 채무자가 이자나 원금을 환.. 2015. 3. 30.
두월동 근대건축의 마지막 모습 - 두월동 초입에 있는 근대건축물이 사라졌습니다. 이 사진은 시공업체로 부터 협조를 받아 철거 전에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정리해 본 것입니다. 사진 촬영은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오전 11시경에 촬영한 것입니다. 마산역사문화유산보존회 고명천 회장님과 회원들과 함꼐하였습니다. - 도로에서 보았을 때 오른편 코너에 있는 건물입니다. 건축년도는 1905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110년 전에 건립된 건물이 사라지게되었습니다. 당시 이 가로는 교마치(경정)라고 불리웠으며, '마산의 신주꾸'로 불린 정도로 번화한 상업가로였으니, 이 건물의 주가도 만만찮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이 사진은 1952년 두월동 가로사진입니다. 이 건물의 건너편 가로전경입니다. 50년대 상업가로 풍경입니다.. 2015. 3. 26.
김형윤의 <마산야화> - 1. 수전노 2제 예고해 드린 대로 오늘부터는 우리 지역 이야기, 목발(目拔) 김형윤 선생의 『馬山野話』를 포스팅하겠습니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마산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도시문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수록되어있어서 이 도시의 한 시대를 이해하기에는 이만한 자료가 없습니다. 초판본은 목발 선생이 돌아가신(1973. 8. 7 작고) 후인 1973년 말에 출판되었고, 재판은 1996년 ‘도서출판 경남’의 수고로 나왔습니다.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었을 뿐 원문을 손대지 않아 초판과 재판의 내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글『馬山野話』는 재판본을 그대로 싣는 겁니다. 원문 그대로이며 혹 탈오자가 있으면 바로 잡겠습니다. 글이 모두 141꼭지라 짧으면 1년6개월, 길면 2년 정도 걸릴 분량입니다. 의 .. 2015. 3. 23.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3-마지막 회) - 매립의 도시, 마산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8 매립의 도시, 마산 19세기 말, 동성리(현 동성동)에 김경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항된 해인 1899년 10월, 마산포 조창에 들어있던 창원감리서에 ‘서성리에서 오산리(현 오동동)에 걸친 간석지 50파(把, 1파는 양팔을 벌린 길이)를 매립하여 선창의 혼잡을 덜고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하여 정부로부터 매립허가를 받은 사람이다. 당시의 상황으로 항만건설과 매립사업을 생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상인 히로시 세이죠(弘淸三)에게 15,000량의 공사비를 차용하여 매립공사에 착공했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하여 그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1906년 히로시는 김경덕의 매립인허장을 저당 잡을 때 작성한 전집표에 ‘차용금을 갚지 못하면 매립권은 .. 2015. 3. 16.
영국도시이야기 38. 전설의 고향 '스톤힌지' ♬ 스톤헨지는 런던근교 코츠월드 가는 길목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잉글랜드 평원이 광활하게 펼쳐진 곳에 있는 스톤헨지는 코츠월드 가는 봉고 팩케이지에 포함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스톤헨지를 보기위해서 표를 끊고 들러야 하는 전시장 모습입니다. 평원의 갈대에 종잇장 하나 걸쳐져 있는것 같은 모양입니다. - 입구 안내매표소 입니다. 입장가 15파운드면, 2만 5천원정도 되네요 - 외벽 상세 : 대나무로 걸쳐진 움막 같은 느낌이 든다할까요, 지붕면은 마치 검은 망테기를 씌운것 처럼 가장자리가 얼기설기한 모양입니다. 벽면의 나무는 도장을 하지않아서 어느정도 삭은 느낌이 들도록 연출하였군요 - 지붕의 처마면은 일부러 불규칙한 구멍을 뚤어서 건물형상을 또렷하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형상을 '흐릿하.. 2015. 3. 13.
영국도시이야기 37. 전원도시 '코츠월드' - 코츠월드(Cotswolds) : 잉글랜드 남동부에 위치한 전원지역으로, 녹색 초원에 하얀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목가적인 풍경 펴져인 곳이 코츠월드입니다. 오래된 전원주택가입니다. - 주택가 이미지은 별도의 설명없이 묵묵히 보시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 하천과 다리, 주변의 사람들 : 이곳은 은퇴자들이 선호하는 곳입니다. - 친환경 창고 : 벽과 지붕 모두가 돌로 이어진, 원초적으로 친환경적인 건물입니다. - 조경이 아름다운 주택가 : 나름 자동차 박물관도 있습니다. 담장은 기본적으로 담쟁이 넝쿨입니다. - 가로풍경, 그리고 커피숖이 있는 골목 풍경들 - 공원녹지에 모인 사람들 : 절반은 관광객으로 보시면 됩니다. (돌이 만든 풍경들: 담장, 벽면, 지붕 그리고 ~~~) (돌과 녹음의 조화 : .. 2015. 3. 11.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2) - 겨울 언덕에 서서, 『마산문화』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7 겨울 언덕에 서서, 『마산 문화』 1979년의 부마항쟁은 10·26을 이끌어 내었고 곧바로 이른바 ‘서울의 봄’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정부 수립에 대한 기대를 한껏 고양시켰다. 하지만 1980년의 5·18광주학살의 피를 머금고 치솟은 전두환 5공정권의 반동적인 일방통행을 손놓고 지켜 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모두는 전율하고 절망해야만 했다. 한참 동안의 강요된 침묵과 개인차원으로 분리된 침잠의 시간이 흘러 갔다. 그러다 1982년 언저리로 접어 들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남양서보급회 집현전에 관여했던 사람들이 소모임 형태로 모이면서 경제와 한국근대사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되었고, 경남대와 창원대, 창원전문대 등에서는 탈춤과 마당극을 통해 시련.. 2015. 3. 9.
영국도시이야기 36. 대학도시 '옥스포드' - 옥스포드(Oxford) : 대학도시로 잘 알려진 학문의 도시로, 도시의 기원은 8세기 초반 앵글로 색슨족의 여왕 Frideswide가 이 지역에 수도원을 지은 것이 현재의 '크라이스트 처지(Christ Church)'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후 13세기에 접어들어 대학도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 출입구는 좌측 도로에서 하단의 정원으로 진입한다. 중정 좌측면에 솟은타워가 교회 돔타워이다. - 진입정원 전경이다. 관리동 건물이 온통 돌로 마감되어 있어 고색창연하다. - 관리동 외벽면 상세: 봉쇄하기 용이한 구조로 발코니 창호가 이채롭다. - 실내 복도 전경 : 천정면의 리브볼트가 볼만하다. 구조와 장식을 겸한 구조용 부재 - 작은 중정을 지나서 다시 실내로 향하게 된다. 중정에 면한 지붕면의 .. 2015. 3. 6.
에딘버러도시이야기 35. 글라스고의 '리버사이드뮤지엄' - 리버사이드 뮤지엄(Riverside Museum) : 유명건축가의 작품이 있는 곳에는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게됩니다. 최근에 가장 잘나가는 건축가중에 한 사람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이 리버사이드뮤지엄입니다. 이 사람의 유명세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 동대문프라자, 일명' DDP'프로젝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정형 곡선을 잘 사용하는 건축가입니다. 이라크 출신으로 건축대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AA School'출신입니다. - 리버사이드 가기 위해 내린 전철역 전경입니다. 연립주택 규모의 적벽돌 건물이 즐비합니다. 건물 벽화 사진으로 봐서 주변에 유명한 농구팀이 있나 봅니다. - 강변에 있는 박물관을 보기 위해 강가로 가는 과정입니다. 널다란 녹지와 도로망, 한적한 .. 2015. 3. 4.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1) - 문화운동공간, 「집현전」과「책사랑」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6 문화운동공간, '집현전'과 '책사랑' 근대 대중도서관 사상은 지적 자유에 바탕한 비판의 자유를 확립하려는 데서 비롯됐다.이 사상은 1600년대 프랑스의 노데가 기초를 닦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근대 도서관 운동은, 첫째, 도서관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하고, 일반대중의 접근이 편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의 도서관은 일반인들에게 비공개로 운영되었고, 위치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보다는 지배계층이 거주하는 비공개적인 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둘째, 책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소장했다고 해도 일반인이 자유롭게 장서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그 장서는 사회적으로 유용하다고 볼 .. 2015. 3. 2.
에딘버러도시이야기 34. 예술의 도시 '글라스고' '글라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맥킨토시 입니다. 글라스고는 디자인 스쿨로 유명해진 것이 그라스고 학파의 찰스레니 맥킨토시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로서 글라스고가 성장한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19세기 제조산업이 성장하면서, 항만관련 시설이 발달하면서 조선산업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후 후기 산업화과정을 거치면 쇠락되었다고 최근들어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부흥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에딘버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글라스고는 애딘버러라는 고도에서 온 터라, 그다지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 글라스고 성당(Glasgow Cathedral) : 스코틀랜드 중세건축양식의 드문 사례로서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주교좌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성망고성당.. 2015. 2. 27.
한국 100명산이야기 17 : 온천장이 더 유명한 백암산 ♪ 을미년을 맞아 1월 시산제는 무학산 학봉에서 올리고, 원정은 못가지만 저도의 비치로드를 거닐며 차디찬 푸른바다를 보며 올해 100명산의 무사, 무탈을 기원하였습니다. 이번 원정은 백암온천으로 더 유명한 백암산을 택했습니다. 산행후의 온천이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시에 출발하여, 온천장에 도착하니 11시였습니다. 주행길이는 250키로였지만 오면서 아침도 먹고 국도변을 달리다 보니 시간이 꾀 소요되었습니다. 11시 7분 출발에 앞서 한 컷했습니다. - 사실 예년 같으면 눈에 덮힌 설산을 예상했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눈도 적고, 무척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모두들 설산을 예상하고 온지라 모자하며, 방한외투로 중무장한 모습입니다. - 길은 한적하니 좋았습니다. 백암산! 말 그대로 바위가 많은 산인.. 2015. 2. 25.
마산 창원 역사 읽기 (40) - 공기 좋은 마산의 표본, 결핵병원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5 공기 좋은 마산의 표본, 결핵병원 흔히들 마산을 두고 공기 좋고 물 맑아 인심이 후한 곳으로 일컬어져 왔다. 맞는 말이다. 온난한 해양성 기후를 접하고 살아가는 마산시민들은 잘모르지만 타지사람들이 마산에 오면 안온한 기후에다 살기 좋고 쾌적한 도시임을 실감한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일찍이 일제가 마산을 강제 개항시키고 나서 온난한 날씨에다 더 없이 맑은 물과 공기에 착안하여 거점도시의 기틀로 삼은 점을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먼저 기후부터 보자. 마산은 중위도 유라시아 대륙의 동안에서 길게 뻗은 한반도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기후의 특색을 보면 먼저 온대 몬순기후로 겨울철에 한랭 건조한 대륙성 극기단에서 발생하는 북서계절풍과 여름철엔 고온다습한 열대기단에.. 2015. 2. 23.
마산 창원 역사 읽기 (39) - 일본 청주에 밀려난 조선 탁주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 5-4 일본 청주에 밀려난 조선 탁주 역사 연구에도 일종의 흐름이 있다. 술과 같은 음식문화도 그런 흐름을 타는 품목 중의 하나이다. 사실 유교주의적 학문 세계 속에서 먹는 것이라든가 입는 것, 또는 인간의 본능과 관련된 분야는 늘 소외되어 왔다. 송나라 때의 주자학자들이 강조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있어서 굶어죽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인 반면, 의리를 잃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역사에서는 국가나 민족, 이념, 엘리트 등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 생활 그 자체 역시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인간의 본능이 최근에 이르러 인문학자들에게 중시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2015. 2. 16.
마산 창원 역사 읽기 (38) - 귀환동포와 하모니카촌 5. 삶과 문화로 보는 마산·창원의 역사5-3  귀환동포와 하모니카촌  1945년 8월 15일, 일본 왕의 항복 소식을 들은 한국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은 깊이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광복군을 길러 연합군의 당한한 부대로 참전하려던 계획을 실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나버린데 대한 통한의 눈물이었다. 조국 해방의 주체가 한국민이 아니고 외세였을 때, 그 외세의 간섭이 조국의 운명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 염려했기 때문이다.일본의 항복 소식에 국내외의 동포들은 감격에 벅차 있었지만 상황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지는 못했다. 여운형 중심의 중도계열 인사들이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하여 치안을 맡고, 일본인들의 재산을 관리하며, 심지어 해외동포들의 국내 귀환을 위한 배까지 보내는 등의 활동.. 2015. 2. 9.
에딘버러도시이야기 33. '애딘버러 뉴타운' ♣ 소개 순서가 늦긴 했지만 애딘버러의 위치를 살펴보면 스코틀랜드 남동부에 있으며, 포스 만(灣)의 남쪽 해안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2세기경 에든버러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곳이 지금의 지금은 올드타운에 해당됩니다. 마일로드를 중심으로 중세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캐슬록이라고 하는 현무암 절벽이 우뚝 솟아 은 곳과 에딘버러 성을 양축으로 형성된 고도입니다. 반면 뉴타운은 조지아 시대, 18세기말과 19세기에 캐슬록의 기슭에 위치한 노스 호가 배수되면서 세워진 곳입니다. 조지아 풍을 잘 음미할 수 있는 곳이 뉴타운입니다. (가운데 웨이벌리역 건물의 동서축을 기점으로 하부가 올드타운입니다. 하단에 에딘버러성이 우뚝 솟아있으며, 상부에 원형광장과 네모광장을 기점으로 잘 정비된 곳이 올.. 2015.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