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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밤은 아름다운 공연과 함께...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지만 매년 이 맘때가 되면 수요일 밤마다 성산아트홀 어울마당에서 야외공연이 열립니다. 회사와 집이 지척이라 가끔 가족과 함께 산책나와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곤 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부터 국악, 무용 등 장르도 다양하고 꽤 수준있는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대뒤 도로의 차량들과 행인들로 인해 좀 산만한 면이 없진 않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공연의 딱딱함을 풀어주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는 창원시립무용단의 "5월의 춤나들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요. 한시간 가량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휴대전화로 촬영해 화질은 별로지만 공연의 감흥은 어느정도 느낄 수 있을겁니다. 흔히 서울에 비해 지역에서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드물다고 푸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만.. 2011. 5.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9) - 강점 제1시기 1910년대의 마산은 1911년 1월 1일을 기해 진해군항을 일제의 해군요새로 보호한다는 구실로 마산항을 폐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합방 일주일 후인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발표한「일한병합에 관한 선언」제4호에서 「종래의 개항장은 마산포를 제외하고는 종전대로 이를 개항으로 하며 다시 신의주도 개항에 추가하여 내외선박의 출입 및 이에 의한 화물의 수출입을 허한다」함으로써 마산의 개항은 종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마산개항의 역사는 11년 8개월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합방이후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남아있던 각국공동조계지도 해제되고(1914. 3. 31) 마산부(府)로 행정구역이 개편되는 등 제도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하지만 개항이 종료되어 마산항이 대외적으로는 폐쇄되었으나 일제가 필요로 하는 외.. 2011. 5. 23.
마무리 하며 : (10)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맨홀뚜껑 / 공공디자인 공공시설물중에서 "공공디자인의 영역은 이런부분까지 해당합니다~"라고 설명할때 가장 하찮은 공공시설물로서 제시되는 것이 맨홀뚜껑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디자인맨홀뚜껑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우선 현재의 우리 모습을 먼저 살펴보아야겠지요. 주철로 생상되는 양산품들입니다. 튼튼하기로서야... 하지만 잘 관리되지 않아 훼손된 모습은 아래와 같이 되어버립니다. 물론 디자인의 개념상 반복패턴으로 세련되지 못한것은 아닙니다만, 바뀐모습을 보이기엔, 또는 공공미술적인 요소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란 것입니다. 그나마 컬러 맨홀뚜껑으로 나온 것이 다음과 같으며, 다음 통영시의 맨홀뚜껑도 그에 해당합니다. 검색내용중에서 눈에 띄는 사진이 한잔 있었습니다. 경북 디자인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도자로 만든 맨홀뚜껑 .. 2011. 5. 20.
신라 古都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경주하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통해 한번씩 다녀왔던 곳이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문단지 주변 휴양숙소에 들르는 정도일 뿐, 불국사에는 갈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을 하고 갔답니다. 초등학교 때, 약 3-40년 전에 갔었던 기억의 흔적이라도 찾을겸 해서 선후배 동문 건축사들과 지난 4월 말에 당일치기로 갔다 왔습니다. ● 불국사 -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751년)때 지어진사찰이었느나, 조선 선조(1593년)때 왜구의 의해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리고, 일부 건물만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3년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입니다. - 불국사 정문 모습입니다. 원래 사찰 배치에 의해 지어진 것은 아니고 최근에 관리상 만들어진 정문 같습니다. 보통 절에 가면 .. 2011. 5. 18.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8) - 강점 제1시기 오늘부터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10년간을 다루겠습니다. '일제강점 제1시기'로 분류되는 이 시기의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요? 1910년 8월 22일, 우리나라는 소위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에 강제 조인하고 일주일 후인 8월 29일 이를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약은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는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한제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이름은「한국의 국호를 앞으로는 조선으로 칭함」이라는 칙령 제318호에 의해 다시 ‘조선’이라 불렸고 통치권은 조선총독부가 가졌습니다. 이 조약문이 실효를 발한 1910년 8월 29일 일제는 '일한병합축가'와 '.. 2011. 5. 16.
(9)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볼라드 / 공공디자인 누구나 '개구리 주차'를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도로교통법상의 주차개념이 아니면서 범용화된 주차방법이기도 합니다. 물론 불법이지요.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범칙금이 승합차의 경우 5만원, 승용차는 4만원이나 됩니다. 우리 도시의 일상 도로를 다녀보면, 일반적인 이면도로 왕복4차선의 경우, 대부분이 각편도 1차선씩은 불법 주차가 만연합니다. 저 또한 그런 경험을 셀수없이 많이 하기도 하였습니다. 개인의 편의가 우선이 되게 되므로 아무리 '대중교통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외치더라도 대중교통이 더 불편한것을 어쩌겠습니까. 더욱이 보도에서 자동차가 사람 다니기 거북할 정도로 불쑥 올라와 있을땐 정말 짜증나기까지 하고, 그자리에 없는 운전자를 욕해대기도 합니다. 교통문제로 화두가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만, 편도.. 2011. 5. 13.
그래,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야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았습니다. ‘써니’라는 코믹인생드라마입니다. 24년 전에 지은 집을 고치느라 요즈음 제가 좀 부산합니다만 시간을 내어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보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괜찮았습니다. 40대 초반 여성들의 여고시절추억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랑이나 상처 등의 진부하거나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라 ‘써니’라는 여고생서클 출신들의 쾌활한 이야기였습니다. ‘고교생서클’하면 영화 ‘친구’가 떠올라 으레 남학생들의 폭력서클 이야기만 가능한 줄 알았는데 ‘써니’는 여학생들 이야기라 조금 색달랐습니다. 성공하였지만 사람사는 재미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주인공 나미, 만년 꼴지 보험설계사 장미, 싸구려 술집 접대부 복희, 시어머니에게 구박받으며 어렵게 살아가는 방문교사 금옥, 돈은 많지만 바람피우.. 2011. 5. 11.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7) - 개항이후 개항 직후 시작된 이 도시의 생성과 변화를 31회에 걸친 포스팅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 던졌어야할 질문을 뒤늦게 던져봅니다. 그들은 왜 '창원군 외서면 월영리와 신월리 해안'을 개항지로 삼았을까요? 근대 마산의 시작은 개항이었고 개항지는 마산포 남쪽 2㎞지점의 월영리와 신월리 일대였습니다. 일본인들은 조계지였던 이곳은 ‘신마산’이라 불렀고 그들이 부른 ‘신마산’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항지로 선택되었던 월영리와 신월리,,,,, 그곳은 마산도시의 최남단으로 지형상 말단부였습니다. 동쪽은 합포만, 서쪽은 무학산이 막아 북쪽 마산포 쪽으로만 시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조건이 이러했슴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조계지로 선정되었던 이유는 ① 외부와의 연결은 물론 당시에 문물교류 루.. 2011. 5.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6) - 개항이후 도시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도시내부의 변화도 많았지만 도시외부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당시 마산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길은 크게 세 갈래였습니다. 그 중 하나는 동쪽으로 창원․덕산․김해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약 120리 길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 진영을 거쳐 부산으로 연결되는 국도입니다. 이 길이 1909년 우마차가 쉽게 통행할 수 있는 신작로로 개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넓은 길은 없었습니다. 많은 물량을 실어 나를 수레도 없었고,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넓은 도로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청일과 러일 양 전쟁이 벌어지면서 일본군이 개통시킨 군사도로 경의․경인․경원선이 최초였으며 전국적으로 일반도로가 개설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였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이 도로의 확장공사는 매우 이른 .. 2011. 5. 2.
(8)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쉘터 / 공공디자인 봄볕에 며느리보내고, 가을볕에 딸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봄에 한해농사의 일이 힘들어 며느리를 시키고, 추수는 힘이들어도 수확에 따른 성취감을 맛볼수 있기때문에 딸을 보낸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한, 봄과 가을의 기온은 비슷한것 같으나봄 하늘의 오존층이 얇기때문에 자외선에 더욱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찬란한 봄날'의 햇볕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럴수록 도시공공시설물에서 파고라가 더욱 필요합니다.물론 무수히 많이만 세워지는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일률화된 우리 도시의 파고라 모습을 보면서외국의 특색있는 파고라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 독일 만하임 ** 독일 슈투트가르트 **마카오 ** 스위스 제네바 ** 스페인 마드리드 ** 스페인 빌바오 ** 스페인 세비야 ** 스페인 코르도.. 2011. 4. 29.
유적지, 다 막아놓으면 관리는 편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도시에는 내세울 만한 유적이 별로 없습니다. 일제의 지배와, 전쟁, 산업화등 격변기를 겪으면서 먹고사는 문제외에는 관심을 둘만한 여력이 없었던 탓이겠지요. 하지만 남아있는 유적의 관리가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지역의 역사를 알기위해 애써 찾아가도 겉모습만 보고 돌아올수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본디 집이나 물건은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만 제구실을 하고 오래간다고 했습니다. 관리의 편의성만 생각하여 꽁꽁 막아놓는다고 해서 유적들이 과연 온전할까요? 물론 철없는 사람들로 인한 훼손이 염려되기는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면 공공사업등의 방식으로 낮시간 만이라도 관리하는 분이 있으면 어떨까요? 탐방객들에게 유적에 대한 안내도 하고, 청소 등 관리도 한다면 훨씬 의미가 있을.. 2011. 4. 27.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5) - 개항이후 1910년 경 마산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곳은 어디일까요? 복원도에 나타나는 1,157필지를 각각 그 사정토지대장을 확인해 각 토지를 등급에 따라 구분하여 그 결과를 그림으로 나타내 당시 도시상황을 확인하였습니다. 토지과세가격과 비교하여 토지등급으로 지가(地價)를 분류해도 오류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다음 그림은 남성동(당시 元町) 1번지의 사정토지대장입니다. 노란색 원 안에 등급이라는 표기가 되어있는데 등급이 몇 차례 바뀐 흔적이 있습니다. 복원도의 땅 1,157필지는 최저 17등급에서 최고 77등급까지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모두 여섯 단계로 구분하여 그림으로 나타내 보았습니다. 색깔이 짙을수록 비싼 땅, 번화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마산창을 중심으로 서굴강과 동굴강을 감싸고 있는 남성동 .. 2011. 4. 25.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4) - 개항이후 1910년 경, 일본인들은 마산포의 땅을 얼마나 차지했을까? 사실을 알기 위해 복원도에 나타난 모든 땅의 소유관계를 사정토지대장으로 확인해보았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붉은 색 표기를 한 토지가 당시 일본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부지입니다. 한일병합 직후에 한국인들의 오랜 터전이었던 마산포에 일본인들이 이처럼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기존의 여러 문헌에서는 '비록 일본인들이 신마산은 차지했으나 주민들의 반일의식 때문에 마산포에는 쉽게 진출하지 못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위 도면을 보면 이런 주장들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마산포 주민들의 반일의식과 달리 마산포 요지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일본인들에게 토지를 매도하여 결과적으로 일본인의 원마산 진출을 가능하게 하였.. 2011. 4. 18.
상상나라 '남이섬' 방문기 지난달 중순경 녹색창원추진위원회 위원들과 공무원 관계자들과 춘천에 있는 남이섬을 답사하고 왔다. 4월 1일 재개장을 한 돝섬의 개발방향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목적으로 갔었다.  ▲ 상상나라 남이섬의 정크아트(Junk Art) ▲ 남이섬 선착장 : 주중이라 외국인들이 많았다 남이섬 CEO인 강우현의 외모는 시골 촌부처럼 수수한 차림이었지만, 첫인상은 봄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 탓인지 야무지게 보였다. 이어진 그의 토론은 시간을 쪼개 쓰려는 듯 거의 달변에 가깝게 속사포처럼 뿜어내었다. ▲ 좌측이 강대표, 서주원 남이섬 환경학교 교장 그의 상상력은 2001년 8월 남이섬에 들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단계에 '섬의 개발방향의 전환' 에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 발굴이야기, 그리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이벤트들.. 2011. 4. 1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3) - 개항이후 마산포가 조선시대 번성했던 포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옛 마산포의 해안선이 현재 도시 속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밝힌 적은 없었습니다. 시사(市史)를 비롯한 몇몇 자료에서 대충 언급했지만 추측일 뿐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밝히는 마산포 해안선(海岸線)은 사정지적도(査正地籍圖)와 그 외의 여러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것입니다. 저는 정확(?)하다고 봅니다만 땅을 파보지 않아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마산포에는 일찍이 두 개의 굴강과 네 개의 선창이 있었습니다. 동굴강과 서굴강으로 불렸던 두 굴강에 대해서는 1964년 『마산시사 사료집 제1집』의 「마산축항지」에서 김준이 그 용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습니다. 「서굴강(西掘江)은 인공(人工)으로 구축된 듯한 방축(防築)이며 여러 파도를 막고 범선(帆船)들이 정박하.. 2011. 4. 11.
최고의 건축술로 만든 동물의 건축 / 인간이 만든 동물모양 건축 2010년 방송영상 그랑프리에서 비드라마부문에 '동물의 건축술'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습니다. 총 3부작으로 제작된 다큐로 동물들이 때로는 사람보다 더 큰 통찰력을 가지고 자기 집을 짓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알포가 만난 동물 건축가(김명호 저, 구름사다리 출판사)"에서도 서평에, '외계인 건축가가 지구로 건축답사를 온다면?'에 대한 자문자답으로 사람들이 지어만들어온 콘크리트와 철근 덩어리로 만든 건축물보다 흙과 실, 나무, 침 따위로 만든 친환경적이고도 튼튼하며, 그 규모면에서도 곤충(예)들의 초고층 건축술을 가미된 건축물에 더 흥미를 느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작은 벌새가 짜(?) 만들어논 둥지는 가장 작은 집이며, 아프리카 흰개미의 집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해당합니다.. 2011. 4. 8.
오래된 편지 한통 - 마산해양신도시 오래 전에 썼던 편지 한 통을 소개합니다. 가포신항과 해양신도시 때문에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의 담당사무관에게 보낸 8년 전 편지입니다. 편지를 나눈 분은 이후 고위공직자가 되었습니다. *( ) 안은 원본에 없는 글입니다. ○○○ 사무관님께 드립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전화로 시간을 뺏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글까지 보내게 된 것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마산항(가포신항)의 건설과 서항매립(해양신도시)이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것이고, 개발의 결과는 현재와 미래의 마산시민들 삶의 질을 결정할 중요한 사안이기에 이렇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사무관님께서는 전화 통화에서 ‘서항 매립은 항만 건설과 별개(해양신도시와 가포신항은.. 2011. 4. 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2) - 개항이후 -마산포의 길- 포구를 끼고 발생한 마을의 경우, 마을 규모가 작을 때는 한 개의 선창을 중심으로 단순하지만 마을 규모가 클 때는 몇 개의 선창을 연결하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형성됩니다. 마산포의 경우는 후자처럼 창원가도(昌原街道)를 중심으로 수계(水系)와 능선 그리고 등고선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얼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난 회에 올렸지만 다시 한 번 마산포 복원도를 보겠습니다. 남성동 파출소 일대, 즉 조창지 부근지역은 조창과 관련한 관리들 거주지 혹은 조창관련 건물들 탓에 계획된 도로로 보이는 직교격자형이 많았습니다. 이 지역은 한일병합 이후 근대식도로가 개설되면서 금융 등을 비롯한 새로운 산업시설을 담당하는 마산포의 중심공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와 달리 인구 증가와 함.. 2011. 4. 4.
1997년 그려진 '마산항 재개발계획'을 보면서 ■ 그간 논란이 많았던 '마산 해양신도시'의 건설방향에 대하여 국토해양부의 결정을 지난 주 창원시가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매립지의 면적을 19만평으로 축소하되, 공공용지로의 개발과 함께 매립면적의 축소에 따른 민간 참여업체의 손실비용 측면을 고려한 개발도 불가피함을 시사하고 있었다. ■ 만약 상업용지와 아파트부지 용도로 사용된다면 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 문제는 매립지의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도심에 미치는 영향이다. 현재 원도심 재생사업을 진행하면서 매립지에 대형상권을 형성되었을 때의 기쇠퇴한 원도심의 상권이 아무리 재생을 한다고 한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매립지에 수 천호의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을 때 현재 진행중인 재건축 및 재개발 아파트 개발지역의 사업은 제대로 진척이 될 수.. 2011. 3. 3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1) - 개항이후 지금부터 소개할 마산포 복원도는 1905년-1910년 시기의 마산포 도시상황입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보아 이때 상황이 19세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어서 이 복원을 ‘조선후기의 마산포 복원도’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복원도 작성 범위- 복원작업의 범위는 토지의 지목과 형상을 분석하여 주거용지로 사용되었을법한 토지들이 일정한 형태로 집합되어있는 영역으로 결정하였으며, 외곽경계는 가급적 도로로 하였습니다. 설정된 범위는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당시 원마산의 주거용지 경계와 비교하면서 조정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적도에서 복원한 당시 주거지 영역과 다른 자료에 나타나는 주거지 영역이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복원도 작성 방법- 복원방법은 제가 임의로 착안하였습니다. .. 2011. 3. 28.
(7)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음수대 / 공공디자인 채ㅡ음수대, 말그대로 물을 마실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제 첫 기억의 음수대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운동장 한켠에 제가다니던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어느학교를 가던 놓여있던 (당시 말로) '수돗가'였습니다. ** 저보다 어른세대에는 우물가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멘트로 마감되고 수도꼭지만 겨우보였던, 말그대로 물만 마실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나마라도 타일로 마감되어 있던 모양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던 곳에 그늘을 드리우는 쉘터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된 구조물로 자리하게 된것이지요. 근래에 학교말고도 공원이나 약수터, 등산로 등지에 '수돗가' 가 아닌 '지하수 음수대'가 마구 마구 생겨났습니다. 모양은 대개가 대동소이하게 아래와 같습니다. 대개는 위와 같지만, 몇몇 다른 변종형태(?)들이 생기.. 2011. 3. 25.
한 건축가가 세상을 떠난 후 생각해 본 집의 의미 지난 3월 11일 오전 건축가 정기용 선생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대가의 반열에 오른 분이라 모르는 분이 없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일 겁니다. 하지만 진해에 있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라고 하면 '아~' 하실겁니다. 역시 건축가는 이름도 얼굴도 아닌 그가 남긴 건축물로 기억되는가 봅니다. '기적의 도서관'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건물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가보면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이나,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공간은 아무곳에나 철퍼덕 앉아 책을 펼치고 싶은 맘이 절로 들게 합니다. 도서관을 사용할 아이들의 입장에서 모든 시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 사저를 비롯해, 2004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한국관 설계를 맡았고, 부산 .. 2011. 3. 23.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50) - 개항이후 지적학자 리진호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지적도는 1908년 탁지부 임시재산정리국 측량과 명의로 발행된 서울의 지적도입니다. 하지만 이 지적도는 명목상으로 남아있던 대한제국 탁지부의 첫 시도라는 의미만 있을 뿐, 전국토를 정식으로 도면화 시킨 최초의 지적도는 1912년 일제가 제작하였습니다. 토지의 소유관계를 조사하고 심사하여 확정지었다는 의미에서 이 지적도를 사정지적도(査定地籍圖), 함께 제작된 토지대장은 사정토지대장(査定土地臺帳)이라고 부릅니다. 일제기 마산에 살았던 일본지식인 추방사랑(諏方史郞)의 『마산항지』에 의하면 마산에서 토지조사가 시작된 것은 1909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산의 사정지적도(査定地籍圖)는 착수 후 3년이라는 제작시간을 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적도 제작과정에 .. 2011. 3. 21.
(6)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교통(버스 등)승강장 / 공공디자인 도시의 공공디자인에서 버스승강장은 시민들의 생활환경과 매우 밀접한 연계성을 지닙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때문에 유니버설디자인(Universal Design) 개념이 적용되어야함은 물론이고, 최근 많은 정보와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는 버스승강장이 등장함에 따라 게시시설, 정보시설, 판매시설, 장식, 기타 시설 등이 같이 설치됨에 따라 디자인에 대한 심도깊은 고려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이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유니버설 디자인센터'의 소장이던 로널드메이스(Ronald L. Mace)가 사회를 정비하려는 전략으로 생각해낸 용어로, "장애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편리한 것, 사용에 있어서 차별이 없는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함으로 .. 2011. 3. 18.
1991년의 마산풍경 1991년 마산의 풍경을 수채화로 보시겠습니다. '한국의 도시'라는 책에 실린 박병주 교수님의 작품을 책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산호공원에서 마산만을 정남쪽으로 조망한 그림입니다. 어시장이 매립되기 전 풍경이라 마산만이 한결 넓어 보입니다. ▲ 돝섬에서 본 전경입니다. 무학산 산사면에 5층 아파트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풍경입니다. ▲ 한국철강터에서 가포유원지 가는 언덕에서 본 그림입니다. 근경을 돝섬에 두고, 중경에 마산 도심부, 원경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잡은 장면입니다. ▲ 귀산동에서 본 전경입니다. 수출자유지역의 항구의 활기찬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오동동 해안도로(노산로)와 수출자유지역의 전경입니다. 당시 해안도로 공사장면입니다. ● 불과 20년 전의 모습입니다. 지금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2011. 3. 16.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9) - 개항이후 오늘부터 마산포(원마산)의 옛 모습에 대해 7회로 나누어 포스팅하겠습니다. 근대적인 계획도시였던 신마산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전통도시 원마산의 사정은 사뭇 달랐습니다. 당시 마산포(원마산)의 규모입니다. 1900년-1910년 경 마산포는 인가(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했으며 2,000여 호의 재래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상점가는 주로 해변에 면해 있었습니다. 마산포의 중심부인 현 제일은행 마산지점 자리에는 정사각형의 1,500여 평의 부지에 150여 년 동안 존속해 온 마산창이 개항과 함께 감리서아문(監理署衙門)으로 변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마산창은 100여년 전까지 존재했던 건물로서 규모․위상․역사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상위의 관아였습니다. 마산창에 대해서는 에서 이미 소개하였습니다. .. 2011. 3. 14.
(5)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공공디자인 / 공중화장실 우리나라의 자랑거리는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온 산업화도 그 자랑거리중에 하나입니다만, 언제부턴가 너무도(?) 깨끗해진 공중화장실입니다. 특히 여가문화가 확산되면서 부터, 고속도로 휴게실엔 음악과 좋은 향기. 그리고 심지어 조경수, 분수 등이 있는 화장실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단지, 공원이나 도시내 공공시설로 이용되는 화장실엔 아직까지 청결함의 질은 어느정도 수준에 올랐다고 하겠지만, 그 외형은 그 서비스의 질에 못미치는 것 같습니다. 한 블로그 글에 의하면 (http://blog.naver.com/hdc200?Redirect=Log&logNo=71857777), 공중화장실의 혁신은 2002년 월드컵 개최시기에 일본의 화장실 시설과 비교를 통해 시민운동으로 펼쳐지면.. 2011. 3. 11.
만날고개의 옛길을 걷다 3월 5일, 오후 2시. 날씨는 봄기운이 완연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습니다. 유장근 교수의 마산도시탐방대 열 다섯번째 길, 모두 스무사람 쯤 만났습니다. 오늘 탐방지는 만날고개. 만날재의 전설과 옛 주막, 아기무덤터와 계비, 일제기 군용지 표지석과 일본인 유지들의 사유지 경계석, 그리고 월영마을 옛 신당,,,, 무심코 지나쳤던 만날재에 끝도 없이 펼쳐진 역사의 향연에 일행은 몸을 맡겼습니다. 이 글은 그 중 옛날 월영리에서 만날재로 넘어갔던 오래된 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만날재공원을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 올라가지만, 이 길이 뚫리기 전까지 만날재로 가는 유일한 길은 당산마을 한복판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당산마을은 산복도로 윗쪽 마을 이름인데 마을에 당산나무가 있어서 지으진 이름.. 2011. 3. 9.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48) - 개항이후 지난 주 포스팅한 내용처럼 마산포 6개리의 명칭이 일본식으로 바뀔 때, 6개리의 경계가 새롭게 획정되었습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추적한 결과입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변경되기 전 6개리의 경계를 복원해보겠습니다.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마산이라는 근대 도시를 탄생시킨 「조선시대 마산포 6개리 추적」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쓰는 글입니다. 마산포라는 지명은 고려후기 혹은 그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지만 마산포를 도시로 만든 맹아는 1760년 마산창 설치 후 발생한 6개리(里)였습니다. 동성리․서성리․중성리․성호리․오산리․성산리의 마산포 여섯 리(里)가 최초로 나타나는 지도는 마산포가 개항된 1899년에 간행된 창원읍지에 수록된 지도입니다. 관찬과 사찬을 통틀어 지금까지 행해진 마산연구.. 2011. 3. 7.
(4) 외국의 도시분위기는 왜 다른가? - 자전거보관대 / 공공디자인 ** 주. 케이웨더에 따르면, 빵 16~20℃, 반소매셔츠 19℃, 에어컨 20℃, 수영복 24℃, 아이스크림 25℃, 맥주 26℃, 살충제 26℃, 수박 27℃, 양산 28~29℃ 이상은 맞춤형 기상정보를 활용한 날씨마케팅에 사용되는 자료이다. 이제는 날씨가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특히 유통업계는 ‘경기3할, 날씨7할’이란 말이 있을 정도이며, 실례로 삼성테스코는 날씨정보와 판매량·수요량 예측치를 결부시켜 매출을 높였다고 한다. 유통업계뿐만 아니다. STX조선은 선박 건조스케줄과 날씨정보를 연결시켜 47억원이상의 활용도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좀 잡을 수 없는 날씨탓에 기상청에서는 진땀을 빼고 있다. 일주일 내도록 우산을 들고 다녀도 비가 안 올 때가 있는가하면, 우산.. 2011.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