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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산악회 대만 가오슝(高雄)·아리산 여행 - 4(마지막) 기간 ; 2023. 4. 27 (목) ~ 4. 30 (일) 참가자 ; 서익진, 정규식, 김용운, 신삼호(회장), 신성기(총무), 손상락, 임상후, 허정도, 권영찬(초대 손님), 김재현(글쓴 이) 4.29(토, 셋째날 오후) 맑음 아리산에서 30여분 버스로 이동해서 ‘아리산추족문화부락’에 도착한다. 아리산 고산지역에 사는 원주민 추족(鄒族)의 생활상과 음식, 차문화, 현지 아리산 커피 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산록에 넓은 녹차밭도 있고 정원의 꽃들도 아담하게 잘 꾸며진 관광민속촌이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은 후, 녹차밭 아래 자리잡은 찻집에서 젊고 잘생긴 남녀원주민이 타주는 다양한 차를 시음했다. 몇 회원은 선물용 차도 샀다. 커피하우스에 들러 아리산 커피도 마시고 구매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2023. 5. 16.
학봉산악회 대만 가오슝(高雄)·아리산 여행 - 3 기간 ; 2023. 4. 27 (목) ~ 4. 30 (일) 참가자 ; 서익진, 정규식, 김용운, 신삼호(회장), 신성기(총무), 손상락, 임상후, 허정도, 권영찬(초대 손님), 김재현(글쓴 이) 4.29(토. 셋째 날) 맑음 – 드디어 아리산(阿里山)으로 새벽부터 서둘러 이번 여행의 목적지이자 클라이맥스인 아리산으로 출발한다(6시 50분). 아리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대만 최고봉인 위산(玉山, 3592m)의 서쪽 산악지대에 있는 18개의 산봉우리를 포함한 지역을 의미한다. 공식 명칭으로는 ‘아리산 국가풍경구’(阿里山國家風景區)’로 산 전체가 거대한 관광지이다. 아리산 운해, 일몰, 삼림과 삼림열차, 쭈샨(祝山)의 일출 등이 유명하다. 일제는 아리산 지역의 벌목을 위해 자이(嘉義)역에서 펀치후(分起湖) .. 2023. 5. 11.
학봉산악회 대만 가오슝(高雄)·아리산 여행 - 2 기간 ; 2023. 4. 27.(목) ~ 4. 30(일) 참가자 ; 서익진, 정규식, 김용운, 신삼호(회장), 신성기(총무), 손상락, 임상후, 허정도, 권영찬(초대 손님), 김재현(글쓴 이) 4.28(금. 둘째 날) 맑음 아침 6시반 기상, 7시부터 식사, 8시 반 까오슝 북쪽에 있는 도시인 타이난(台南)으로 출발. 40여분 걸려 타이난시 남쪽에 있는 ‘치메이(奇美) 박물관’에 도착한다. 이 박물관은 타이난에서 태어난 치메이그룹 창업주이자 회장인 쉬원룽(許文龍:1928- )이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80여년에 걸쳐 꿈을 실현한 결과물로, 평생 모은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2015년에 개관했다. 쉬원룽 회장은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탁월한 사업가이자 바이올린을 켜는 예술인이며 장자의 사상을 실천하는.. 2023. 5. 8.
학봉산악회 대만 가오슝(高雄)·아리산 여행 - 1 기간 ; 2023. 4. 27(목) ~ 4. 30 (일) 참가자 ; 서익진, 정규식, 김용운, 신삼호(회장), 신성기(총무), 손상락, 임상후, 허정도, 권영찬(게스트), 김재현(글쓴 이) 4.27(목, 첫날) 홋카이도 대설산 산행 이후 4년만의 해외 나들이라 공항에 모인 일행들은 모두 밝은 표정이다. 권영찬씨가 게스트로 참여하여 딱 10명이 되어 다행이었다. 짐이 간단해 기내에 싣고 타기로 결정. 식사를 못한 분은 개인적으로 식사하고 나는 몇 사람과 함께 여유있게 대합실 2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10시 10분에 김해공항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 정도 걸려 가오슝(高雄)국제공항에 도착한다. 가오슝은 대만해협 쪽 남쪽에 있으며 부산처럼 대만의 2번째 도시인 항구도시다. 한국이 1시간 빠르므로 현지 .. 2023. 5. 5.
마산항지(1926년) - 47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4. 개항 10년 기념 축하회 마산 거류민단은 제도 실시 이래 겨우 일 년 반 정도가 지났을 뿐, 소햑교 신축 이외에는 별로 특기할 만한 사업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간 착실히 정비를 가다듬어 여유를 가지게 되어, 명치 41년(1908) 5월 1일에 성대한 개항 10주년 기념축하회를 개최하였다. 이보다 앞서 마에다 민장이 지명한 준비위원 10명은 전체 항구를 세 지역으로 나누었다. 오타니천(大谷川) 이남 치바마을까지는 남조(南組), 이동(以東) 지역 장군천까지를 중조(中組), 장군천 동쪽을 동조(東組)로 한 것이다. 각조에는 사무소를 마련하여 조마다 십수 명의 위원을 뽑아 기부, 장식, 취향이란 세 부문으로 나누고 서로 취향, 장식 등 기타에 빠짐이 없도록 노력하고 전심, 전념토록 하였다. 4월 27.. 2023. 5. 1.
마산항지(1926년) - 46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2. 신구(新舊) 마산의 공칭 명치 40년(1907) 말부터 거류지 사람 중에 마산포를 가리켜 구마산(舊馬山)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었는데 거류지에 동네 이름을 붙이고 난 뒤에는 거류지인은 공공연히 스스로 거류지를 신마산(新馬山)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 명칭은 한국의 전도(全道)에서 거의 반공칭(半公稱)으로 되어 버렸는데 최근에 와서 마산포 방면에 사는 사람은 ‘구(舊)’자를 갖다 붙이게 되니 참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흔히들 이곳을 마산포가 부르는 사람이 있으며 저자도 ‘구’자를 사용하기보다는 의연히 이곳을 마산포라 하는 것에 흥취를 느껴 이 책에서도 모두 마산포로 표기하기로 했다. 따라서 그 중간의 거류지 경계인 신월천 이동(以東)부터 장군천을 지나 마산포의 입구인 척산교(尺山橋)에 이르는 철도.. 2023. 4. 24.
마산항지(1926년) - 45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0. 요새포병(要塞砲兵)의 임시 위수(衛戍) 명치 40년(1907) 즉 광무 11년 7월 21일 이척(李拓) 왕(王) 군방(君邦, 순종 황제의 자(字))폐하는 전 이재황(李載晃) 왕(王) 광무황제의 선양(禪讓)을 받아 제위에 올라가고 8월 3일 융희(隆熙)라고 개원하여 윤 씨 비를 황후로 진봉하고 아우인 은(垠) 왕 영친왕을 활태자로 삼았다. 이와 동시에 일한신협약(日韓新協約)이 이루어져 한국통감의 권한은 확장되고, 통감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부통감에 소네 아라스케(曾根荒助), 총무장관에 츠루하라 사다키치(鶴原定吉) 외 기타 참여관 2명 외에도 한국 내각 및 각 관아에 차관으로 모두 일본인을 추천하고 경무고문부 및 이사청 경무관 1천여 명을 한국의 관직에 옮기고 재류(在留) 일본인에 대한 경찰.. 2023. 4. 17.
마산항지(1926년) - 44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8. 소학교 낙성식 본교 위치는 현재의 위치 즉 민단구역의 중앙에 있는 철도용지의 일부, 면적 약 2천5백 평을 무산으로 대여 받아 건축기사 노지마 다네조(野島種造) 씨와 금 2만9천512원 49전으로 청부계약을 맺어 전년 6월 27일에 기공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6천여 원은 지방유지의 기부, 나머지 2만원은 민단이 빌린 것이다. 원래 본교는 취학아동 5백 명을 수용할 예정으로 건축시킨 것인데, 준공한 건물(아래 그림)은 교사 기타를 포함하여 384평 정도가 되지 않는데도, 당시 등교 아동은 남자 160명, 여자 186명 합계 346명에 불과하여 아주 여주가 있었던 것이다. 건물이 다 된 것은 1월 21일로, 노지마 씨는 이 공사로 7~8천 원의 손실을 보아 다시는 공사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 2023. 4. 10.
100산-40 ; 경남 거제도 대금산(大錦山) 학봉산학회 거제 대금산 탐방기(2023. 4. 1 산행) 참석자 : 서익진, 정규식, 신삼호(차량), 손상락, 김재현(글쓴 이), 허정도 산수유, 개나리, 매화 등은 벌써 지고 벚꽃, 진달래 등이 마구 피어나 지려고 하는 3월 마지막 금요일(31일) 아침, 4년 전 마산에서 부산으로 이사한 내게 정규식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봉산악회에서 내일(토요일) 대금산 가는데 같이 가자는 반갑고도 고마운 전화였다. 대금산은 진달래 축제로 유명한 산이고 거리도 괜찮아서 바로 오케이라고 했다. 마침 진달래꽃이 한창이기도 하고, 또 대만 아리산 산행 전에 우리 산악회 회원분들 얼굴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4월 첫째 날 아침 들뜬 마음에 잠도 일찍 깨어 산행 준비를 하고 8시 반 넘어 만남 장소인 도해사(道海寺)로 .. 2023. 4. 5.
마산항지(1926년) - 43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5. 승마(乘馬) 합방호(合邦號)의 권위 번역관 겸 경시(警視)로서 한국의 내부(內部)로 발령 받은 사카이 마산경찰서장의 후임으로 명치 41년(1908) 1월 15일, 전남 광주에서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 경시가 왔다. 그가 타는 아라비아 종 애마 ‘합방호’는 아주 크게 생겼기 때문에 조랑말(果下馬)에 익숙한 한인들을 놀라게 했으며 그 말을 보고 귀마(鬼馬)라 하며, 일본 말이 이 정도로 큰다면 일본 소는 더 클 것이라고들 하였다. 씨는 도오야마 미츠루(頭山滿) 옹의 양자이며 현양사(玄洋社) 출신의 경부로 내무성 경관연습소에 들어가 졸업 후 경시가 되어 대만 가의현(嘉義縣) 서기관으로 부임했다가 그 직에서 풀려 한국통감부로 내임한 평민주의를 가진 독신자이다. 아주 많이 한국 사적 탐사에 취미를 가지.. 2023. 4. 3.
통제영 청남루 디지털복원 재고해야 이 글은 3월 29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것이다. 지켜야 했던 많은 것이 사라졌다. 남았다면 자랑스러웠을 수많은 문화유산이 없어졌다. 일제강점기와 전쟁, 도시개발이 주범이었다. 경제가 좋아지고 사회가 안정되어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때는 늦었다. 경남만 해도 창원읍성과 진주객사, 근대기 밀양세무서 등 없어진 것들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통영은 역사문화유산이 많은 도시다. 그중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삼도수군통제영 유적이다. 국보 세병관과 동피랑·서피랑, 이름만 들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통제영 유적 중에도 사라진 것들이 많다. 통제영 정문이었던 청남루가 대표적이다. '통영 남문'이라고도 했던 통제영의 얼굴이었다. 강점기 내내 보통학교로 사용된 세병관은 수모를 겪은 대신 살아남았지만, 청남루.. 2023. 3. 30.
마산항지(1926년) - 42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3. 소학교의 이전 융희 원년 즉 명치 40년(1907) 1월 민회는 만장일치로 아동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학교 교사와 그 부속건물의 신축을 의결했다. 바로 기부금 모집, 실행, 최계 담당 세 위원을 구성해 마산철도용지의 한 지역을 무상으로 빌려 일체의 설계를 통감부 철도관리국 마산임시건설부장으로 있던 오츠카 조사부로(大塚常三郞) 기사에게 맡겼다. 이해 10월 임시건설부가 철폐되어 약 60여 명의 직원들은 인천과 초량으로 이동했다. 마산소학교는 바로 그 터를 빌려 민단사무소와 함께 이전하게 되었다. 이 건물(위 사진)은 과거에 한국인을 놀라게 한 마산우편국 이상의 굉장하고 훌륭한 서양식 건물이라 마산건축계에서 그 위용과 풍채를 뽐냈다. 우편국 건물은 명치 41년 초여름에 해체되어 용산으로 이축되었.. 2023. 3. 27.
마산항지(1926년) - 41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1. 거류민단의 조직 우리 거류민회가 마산이사청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이사관을 감독관으로 거류민단제를 시행한 것은 광무 10년 즉 명치 39년(1906) 9월 1일이었다. 이보다 앞서 일본정부가 경성에 한국통감부를 두게 되자 각지에 있는 영사관을 폐지하여 이사청을 두고 재근 영사를 바로 이사관으로 임명했다. 이때 내외의 교섭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평민주의의 원활함이 너무 좋다는 평을 들어온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영사는 경성이사청 이사관으로 전보되어 이해 2월에 부임하러 떠났다. 경성 영사였던 미마스 구메키치 씨가 그 후임으로 마산 이사청 이사관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씨는 삿포로농대 출신의 농학사로 미국공사관 서기관부터 구미 각지의 영사를 역임한 관권 만능.. 2023. 3. 20.
마산항지(1926년) - 40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7. 마산포의 대화재 광무 9년 즉 명치 38년(1905) 1월 5일 새벽, 마산포의 한 한인 집에서 불이나 때마침 차고 거센 바람이 불어와 부근 40채의 일, 청, 한인 집들이 연소되었다. 소방기계가 하나도 구비되지 않은데다가 동지(冬至) 후인지라 물조차 적을 때라 한인들은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바가지에 물을 길러 붓는 등 불길을 막으려 대혼잡이 벌어졌다. 이것이 마산포 최초의 대화재로 불리며 불 난 곳은 현재의 모토마치(元町)이며 구마산금융조합 서쪽 이웃으로 생각되나 소실 구역은 거기보다 동쪽 현재의 고토부키마치(壽町) 까지 퍼졌던 것이다. 필자가 대정 11년(1922) 6월 22일 오후 2시 반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조선인 신용균(申容均)의 집 온돌에서 불이 나 우리 집에도 불이.. 2023. 3. 13.
마산항지(1926년) - 39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6. 군사철도의 개방 군사철도 마산선이 개통됐을 당시에는 마산, 삼랑진 간에는 오직 창원과 진영의 두 개 역밖에 없었는데 러일의 평화가 회복되고 군사전용이 필요가 없어짐에 따라 이해 11월 1일부터 민간에 개방되어 일반 공중이 자유로이 탈 수 있게 되니 이주자는 확연히 격증하였고 다음 해 광무 10년 즉 명치 39년(1906) 봄부터 거류지, 마산포 및 그 중앙부 다 같이 건축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일본인의 여관은 빈방이 있는 데가 없고 한인의 여인숙에도 좁은 온돌방에 모국의 동포가 네댓 명이 합숙하는 등 정도의 서광을 엿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다음은 그해 6월 하순에 적어놓았던 필자(아래 사진)의 메모 몇 절을 발췌해서 수록하니 최고 자료로 삼았으면 한다. 나는 처가 있을.. 2023. 3. 6.
마산항지(1926년) - 38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5. 우쿠무라(奧村) 여사의 연설에 미우라(三浦) 영사가 화를 냄 철도감부 마산반은 이 당시 가청사를 마산역 구내에 신축하고 이사하여 본래 터에는 본파 본원사(本派本願寺) 포교장이 개설되었는데, 애국부인회 오쿠무라 이오코(奧村五百子, 아래 사진) 여사가 남만주에 출정한 황군을 위문한 후 한국에 들어 우리 마산에서 유세를 하고자 이 포교장에서 연설회를 개최하였다. 그 연설의 한 마디에 우리 여순 공격군의 참상을 이야기하며 여러분들은 아들을 가졌어도 변사로 보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 했다. 방청석에서 듣던 미우라 영사가 그 실언에 크게 냉소하는 것을 본 여사는 바로 화를 내며 무례한 짓을 꾸짖었다. 또 한 부인이 갓난애를 업고 방청석에 있었는데 그 애가 울기 시작하자 상식이 없다고.. 2023. 2. 27.
마산항지(1926년) - 37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3. 축첩회(祝捷會)와 철도개통식 해전 대첩 축하회는 6월 1일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마산 철도선의 공사가 거의 완료되어 6일에 거행할 개통식과 합동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있어 미우라 영사는 이를 수락하고 회장을 현재의 교마치 3정목 네거리에 있는, 당시의 빈터 풀밭에서 하기로 하고 그 중앙에 좌석 배치를 겸한 여흥 무대로 만들었다. 혼마치에서 들어오는 정문에는 대국기를 교차시켜 게양하고, 거기서 혼마치로를 종관해서 매축 미완성지를 비스듬히 가서 오직 흙바닥 상태인 마산역에 이르는 도로변 양쪽에 등과 깃발을 같이 걸어 놓았다. 개회는 오후 2시로, 미우라 영사는 러일전쟁 개전의 경위를 간단히 얘기하는 식사를 마치고 양 폐하의 만세를 삼창하였고, 도키오 반장은 마산철도의 기공과 결.. 2023. 2. 20.
마산항지(1926년) - 36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2. 천동같이 진동한 쓰시마 앞바다 해전 개전 이래 이희일우(一喜一憂)하며 그 결과를 걱정했던 마산의 동포들은 당시 생활해갈 길이 막막해 떠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철도공사 개시 후로 철도감부 마산반의 사무소는 마산우편국의 맞은편 해안으로 내려가는데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빈집에 설치되어 감부원 수십 명이 근무하게 되어 이에 수반하는 다수의 인부가 출입함으로써 시장 상황이 크게 회복되었다. 특히 요정, 음식점 등에는 짙게 화장한 매춘부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전황은 매번 우리 황군의 연승을 보도하였고, 러시아가 난공불락이라 자랑하던 여순 요새도 마침내 함락되었다 한다. 광무 9년 즉 명치 38년(1905) 1월 1일 수비대장 스텟셀(1848~1915, 러시아제국 육군 중장. 1904년.. 2023. 2. 13.
소설 속의 요시무라 준조 이 글은 2월 3일 건축사 신문에 게재된 '건축시론'입니다. 동료들께 소설 한권 권해드린다. 시간 없다는 핑계로 전공서적 아니라는 이유로 소설 잡아본지 오래된 분들 많을 것이다. 속 깊은 건축은 인문학에서 나온다지만 그럴 여유도 쉽지 않을 터이다. 설계현장의 이야기이고 가슴 뜨거웠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 소설이라 지면을 빌렸다. 이미 읽은 분들께는 양해를 구한다. 일본작가 마쓰이에 마사시(松家仁之)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제64회 요미우리문학상 수상작이며 원제목은 ‘화산자락에서(火山のふもとで)’이다. 요미우리는 심사평에서 ‘장면이면 장면, 언어면 언어, 하나하나에 정중함이 담긴 품격 있는 작품’이라며 격찬했고, ‘명석하고 막힘없는 언어의 향연’ ‘풍요로운 색채와 향기가 담긴 경탄스러운 작품.. 2023. 2. 8.
마산항지(1926년) - 35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10. 군용철도 마산선의 건설 명치 37년(1904) 8월 31일 우리 영사관에 갑자기 ‘철도대 내일 귀지에 간다’라는 내용의, 발신인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전보가 배달되었다. 그때는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씨가 사카타 영사 대신 마산 주재 영사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영사관에서는 이 전보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고 아주 의아해 했다. 과연 9월 1일 아침에 몇 척의 운송선이 인천 철도감부(鐵道監部)의 마산 반장인 도키오 젠사부로(時尾善三郞) 중좌, 지바(千葉) 대위 등을 태우고 철도재료, 측량기 등을 운반하며 많은 인부들과 함께 상륙했다. 이것은 8월 21일의 어전회의에서 결정한, 경부선 삼랑진에서 분기해 마산에 이르는 일본육군 군사전용철도 속성공사의 착수임이 처음으로.. 2023. 2. 6.
중평들판의 팽나무 이 글은 1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것이다. 1200백 년 까마득한 세월, 해상왕 장보고가 서해를 호령하던 때. 그 아득한 시간 언젠가 중평이라 불렀던 들판에 팽나무 한 그루가 섰다. 그로부터 1000년도 더 지난 20세기 벽두, 동아시아 해상 장악을 꿈꾼 일제는 해군기지와 함께 그곳 중평들판에 신도시를 건설했다. 창원시 진해구의 '구도심' 혹은 '서부지역'이라 불리는 곳이다. 11개 마을의 390가구, 2000여 주민이 신도시건설로 쫓겨났다. 청천벽력, 하루아침에 땅 빼앗기고 집 헐리고 내동댕이쳐졌으니 그런 목불인견이 없었다. 이를 두고 매천 황현은 '왜인이 늑탈하여 이속도 농민도 고기잡이도 모두 흩어져 마치 난리를 만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저항이 없지 않았지만 이미 일본인 세상이라 버틸 수.. 2023. 2. 1.
마산항지(1926년) - 34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8. 러일의 국교단절 러일간의 기압이 갑자기 내려가 국교가 단절된 것은 명치 37년(1904) 2월 10일, 청황의 선전포고 때부터다. 이에 앞서 오사카상선회사의 시라카와마루(白川丸)는 한국 동남연안의 정기선으로 어느 날 마산에 입항한 그 배에 한 외국인이 타고 있었는데, 중국 산동성 지부(芝罘)에 가서 일본함대의 주력이 마산포의 전면인 진해만을 점거하고 있음을 전보로 알렸고 이것이 외국 신문에 게재되어 우리 해군은 크게 놀랐다. 곧바로 각 선박의 진해만 출입을 금지하여 해상 경계는 아주 엄격해지고 실리도와 견내량에는 탐조대를 설치하고 우편기(郵便旗) 깃발을 달고 각 어장을 순항하는 순라선(巡邏船)을 빼고는 어선이라도 빠짐없이 검문토록 했다. 이 바람에 마산거류민은 일상생활품의 공급이 .. 2023. 1. 30.
마산항지(1926년) - 33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5. 일본인 거류민회의 성립 일본인회 이사인 센고쿠 간쿠로(仙石勘九郞) 씨가 고질인 결핵이 악화되어 이사직의 자퇴를 요구해오니 평의회는 이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고 후임 후보자로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 씨를 선태했다. 미야하라 씨가 수임 의사를 표명한 그 평의원회가 개최된 날은 명치 36년(1903) 1월 11일이었다. 그때 센고쿠 이사는 귀신의 호적부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동포 입주자는 점점 늘어나 거류지, 중앙부, 마산포를 통털어 100호, 200여 명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의원회는 일본인회 회규가 협소하고 동포 통일의 불편을 느껴 이 조직을 일본인거류민회(日本人居留民會)로, 이사를 거류민회 민장(民長)으로 고치고 주민 호구장부의 조제 및 기타.. 2023. 1. 23.
마산항지(1926년) - 32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3. 각국거류지의 첫 장날(初市) 명치 35년(1902) 8월 3일은 음역 6월 30일에 해당되니 거류지의 첫 장날임을 각지에 선전하며 시장터를 마산영사관에서 아래로 내려온 현재의 혼마치 네거리 주변 일대로 정했다. 선전 노력의 효과가 났는지 지방시장 상인의 출점이 꽤 많았으며 사방 주위의 손님도 상당수가 모이고 동포들은 첫 시장을 경축하려 상인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니 그들도 좋아하고 앞으로 더 성대해질 것 같았다. 한편으로 정기장을 잃게 된 구강(舊江) 민중들은 크게 분노하여 이전에 반대하고 그것의 회복에 분주하거나 혹은 감리서에 압박을 넣거나 경성 정부에까지 운동하기도 했다. 또한 시장의 이전으로 재산까지 없어진 자가 나오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자 새 시장을 연 지 20여 회 즉 .. 2023. 1. 16.
100산-39 ; 저도(猪島) 용두산 학봉산악회 저도 용두산 탐방기 일자 : 2023년 1월 7일 참석자 : 서익진, 정규식, 김용운, 신삼호(회장, 글쓴 이), 손상락(산행대장), 신성기(총무), 허정도 오늘 소개할 은 마산합포구 구산면 저도에 있는 비치로드로 잘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가다 보면 진해만을 볼 수 있는 산책코스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계묘년 새해를 맞아 첫 산행을 저도 비치로드로 정한 것은, 푸른 바다를 거닐며 느낄 수 있는 시원함 때문에 해마다 연초에 찾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먹거리 때문입니다. 이맘때면 겨울별미 ‘굴 구이’나 ‘물메기탕’를 비치로드 주변에서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물메기를 먹을 것을 사전에 작정을 하였습니다. 준비 과정에 물메기 식당.. 2023. 1. 10.
마산항지(1926년) - 31 - 건권(乾卷) / 제7장 동포발전사 제7장 동포발전사 저자가 일본인이므로 여기서 '동포'란 마산 거주 일본인을 말한다. 1, 일본인회의 조직 명치 32년(1899) 5월 1일의 개항 당시 우리 일본 동포로서 마산포에 거류한 자는 야마모토 고조(山本好藏), 스미다 마사키치(隅田政吉), 하마다 린조(濱田林藏)와 그 외 2~3명에 불과했다. 미곡상인 나가사키(長崎) 현 사족 출신의 마츠바라 하야조(松原早藏) 씨가 본거를 부산의 친형 마츠바라 도모조(松原友藏) 씨 집에 두면서 창원읍내에 임시로 살며 가을에 미곡 매출로 왕래하는 일 외에는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원 2~3명과 경찰관 2명이 있을 뿐이었다. 같은 해 11월 3일 제1회 각국거류지 경매 이래 마산의 좋은 입지와 산수의 풍광명미함이 강지에 선전되어 이주자도 역시 점점 늘어나 동 33년(190.. 2023. 1. 9.
마산항지(1926년) - 30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3. 전관거류지(專管居留地)의 협정 성립 6월 10일, 사카타 영사와 한 감리와의 교섭결과 가협정이 이루어져 서로 조인해서 교환했다. 〔일본전관거류지 가계약서〕 1. 전관거류지의 연간 조세는 일시적으로 일본정부 소유지에만 부과하도록 한다. 1. 한국정부 소유지 및 민유지는 예산상 바로 매수할 수가 없으므로 당분간 현상을 유지해 다른 외국인에게 팔거나 필려주지 않을 것. 1. 도로 및 구거(溝渠)는 미매수지 전부의 매수가 끝날 때까지 조세를 가하지 않을 것. 1. 전관지 북쪽 경계성 부근의 교차하는 곳은 실검(實檢)하고 일본전관지 내에 있는 한국정부 소유지과 교환해야 할 것. 1. 마산포에서의 악한과 무뢰배의 정황을 한국인 손에서 수사할 수 있게 정찰원을 상시 배치시킬 것. 1. 창원감리서.. 2023. 1. 2.
마산항지(1926년) - 29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2. 일본 기생(藝妓)이 폭행 당하다 러시아 소코프 영사가 오랫동안 군함 안에서 집무하여 해상영사관이라 불리었다. 그 후 현재의 혼마치(本町) 4정목에 있는 러시아인 소유의 일식 건축 민가를 빌려 쓰고 있더니, 올해 3월 중에 현재 다이마치(臺町)의 우리 영사관 남족에 위치한 소나무 숲 언덕에 신축사업을 설계했다. 건축 재료인 연와는 작진등 아래 해변가에서 구워내었다. 5월ᅟ하순에 준공하여 6월 1일에 낙성식을 그 관내에서 치루었다. 이에 앞서 우리 일본 동포들은 모두 마산포란 누추한 곳에 살고 있었기에 사카타 영사는 거류지에로의 이주를 권유했다. 이에 호응하여 첫 번째로 거류지에 이주한 이는 술, 차 검도, 궁도, 생화, 요리, 조원(造園), 바둑 등 각종 기예에 통달한 호리에 다마노신.. 2022. 12. 26.
마산항지(1926년) - 28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10. 러시아의 율구미 경영 마산포 사건은 위에서 서술한 경과를 통해 해결하고 러시아는 기어코 율구미 땅을 러시아제국의 전관거류지로 선언하며 바로 시설의 경영에 나섰다. 러시아의 운송선은 여순 혹은 블라디보스톡 방면에서 건축자재를 가득 싣고 왕래하며 러시아 동양함대의 육상사령부, 숙소, 장교 집회소, 하사관 집회소 등의 위치가 점차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병사들이 시설의 기초토목 공사에 소요될 연와(煉瓦)를 굽는 가마에서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광무 신축(辛丑) 5년(1901) 즉 명치 34년 3월 3일, 소코프 영사가 우리 영사관에 와서 율구미 경영에 따른 공사를 맡아줄 업자의 알선을 의뢰해왔다. 이에 바로 이마즈 가키치(今津嘉吉), 오카모토 유우(岡本勇) 두 사람을 소개하여 계약이 성립.. 2022. 12. 19.
마산항지(1926년) - 27 - 건권(乾卷) / 제6장 개항사(開港史) 제6장 개항사 8.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 이달(광무 4년, 1900년 4월) 30일 각국거류지 제2회 경매가 행해졌는데 러시아의 경매사도 단(壇) 밑에 섰지만, 제1회와 같은 희한한 가격은 나타나지 않았을 뿐더러 실하게는 원가 그대로 경락되거나 비싸도 10배 정도나 2~3할 높은 범위 내에서 멈춰졌다. 이는 러시아가 해군 근거지 경영을 율구미로 변경한 것이 한 원인이 되겠지만 또 다른 원인은 각국거류지의 위치는 진해만으로부터 부도수도(釜島水道)를 통해 마산만에 깊이 들어간 데 있고 선박 운행에 불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장래가 바람일지 비일지 혹은 눈일지 안개일지 앞날이 막막하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9. 율구미(栗仇味) 논쟁과 그 해결 5월 1일 사카타(坂田) 영사는 임관을 알릴 겸 율구미의.. 2022. 12. 12.